딱 1년된 것 같다. 작년 이맘때 퇴사하며 공유오피스 한 좌석을 사용했는데, 9평 사무실에서 5명이 앉아 있으니 어찌 보면 큰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해야 할 일이 참 다양하다. 동료들과 함께 하는 일도 많지만 나만 하는 일들이 문제다. ▲문서 작업이나 ▲고객 대응은 나눠서 한다고 해도 ▲고객사 이슈 대응이나 ▲세금 납부 ▲오프라인 미팅 등은 내가 해야 한다. 가끔 동시에 해야 할 일이 몰릴 때면 정말 정신이 없다.

하는 일이 무척 다양한데, 내가 과연 이 일들에서 얼마나 효율을 낼 수 있을까 싶더라. 하는 일을 모아보면 내 역량은 5% 정도씩 할당되지 않을까? 물론 그 업무를 다 모아도 100%가 될지는 모르겠다. 어째 전체적인 능력치는 하락해버린게 아닐까 싶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늘 문제만 쳐다보니, 어째 나 자체가 문제 투성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문제에 둘러 쌓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옆구리 툭툭 찔러주는 동료들이 없었다면 아마 또 깊은 나락으로 빠졌을지 모른다.

우연히 큰 컨퍼런스에 참여하게 됐다. ‘동아시아 기업 경영과 마케팅의 미래를 말하다’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 <2024 알바트로스 컨퍼런스 서울 : 골든 아워>다. 세계적인 석학과 기업인이 참여하는 컨퍼런스에 가면서 몇년 전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방한했을 때 참여한 컨퍼런스가 생각 났다.

사실 이 시기에 컨퍼런스를 참여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억지로 내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거라 주문을 걸며 9호선을 낑겨 타고 일찍 도착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컨퍼런스장을 보니 매주 행사를 다니던 기자 시절도 생각나고, 첫 창업 도밍고컴퍼니 시절도 생각 났다. 앞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던지는 연사를 보며 책을 출판하고 몇 차례 협업 도구를 주제로 강의했던 작년도 생각 났다.

컨퍼런스를 보면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갈 때가 있다. 마치 둘이서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오늘은 김재성 카카오 파트장이 그랬다. 특히 인트로 부분에서 단상에 서자마자 청중과 호흡하더니 단숨에 무대를 장악하는 모습은 언젠가 내가 갖고 싶은 능력치였다.

발표 중 ‘로지컬 씽킹’에 관한 내용이 있었는데, 이슈와 문제, 근본 원인 등에 관해 쪼개서 이야기 하는 부분이었다. 작년 100여명에게 협업 문화 강의를 하며 내가 사례로 들었던 내용과 맥락은 비슷했는데 문득 유자랩스 사업에서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잡고 있는 건 무엇일까. 문제일까 이슈일까 근본 원인일까. 우리 제품은 고객의 가려운 부분을 제대로 긁은 걸까. 정작 나는 그렇게 못하면서 단상에 서서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말을 했던 걸까.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 걸음 물러나 전체를 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니 요즘 나는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늘 전환비용이 발생해 피로한 상태였다. 때문에 한 걸음 물러나 전체를 볼 여유가 없었나보다.

컨퍼런스를 가면서도 여길 가는 게 맞나 싶었는데, 뜻밖에 찾아온 여유가 한걸음 물러나게 했다. 덕분에 내가 만들며 걸어온 길을 볼 수 있게 했다. 어쩌면 요즘 내게 필요했던 건 마냥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한 걸음 물러날 수 있는 어떤 계기가 아니었을까.

이 글을 빌려 한 걸음 물러날 어떤 계기를 선물한 박윤찬 알바트로스 헤드디렉터님께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