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나와 다른 경험치를 가진 지인을 만났다. 재무 쪽 커리어가 굵직한 지인인데, 앞서 CEO와 CFO 경험을 기반으로 언제나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유자랩스는 부트스트래핑 스타트업으로 단순히 유행에 따라 부트스트래핑 형태를 선택한 건 아니다. 커리어를 이어오며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의 여러 상황을 봤고, 이미 함께하고자 하는 동료들이 모인 상황에서 동료들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트스트래핑이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지인에게 내가 생각하는 스타트업과 부트스트래핑, 투자자, 투자 생태계 등에 관해 말했더니 이렇게 답했다.

“투자자를 스스로 판단하지 마세요. 그저 제안할 뿐입니다. 선택은 투자자의 몫입니다. 원하는 투자 유형을 고민하고, 그 유형에 동의하는 투자자를 만나면 되는 거에요.”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방향을 잡았다면, 그냥 액션을 취하는 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더라구요.”

순간 ‘아니, 내가 판단하지 않으면 누가 판단하지?’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미팅 이후 지속해서 머릿속에서 이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내가 생각하지 않으면 누가 생각하지?’라며 또 생각을 시작했다. 잘 시간이 지났는데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외부 미팅이 많은 날이다. 외부에 나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곤 한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유자랩스의 모습을 듣거나, 판단하지 못했던 업계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지인이 들려준 여러 이야기 조각이 맞춰졌다.

나는 여전히 엔지니어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나보다. 문제를 찾고, 원인을 파악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련의 문제해결 과정을 바꾸지 못했나보다. 엔지니어는 대부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한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예외 케이스를 차단하려 한다. 그게 일이기도 하고, 그게 편하기도 하다.

그런데 비즈니스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고객이며, 투자자며 내가 그들의 모든 선택을 가늠하고 판단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제시하면 될 뿐이다.

조직 방향성이 열려있는 초기 스타트업인만큼 가능성도 열어뒀어야 했다. 그동안 올바른 생각이란 이유만으로 내 판단을 고집했고, 생각을 깊이 할 수 있다는 자만으로 생각만 했던 것 같다.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