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제품과 함께 놓일 때가 있다. 경쟁 제품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훨씬 낫고, 내가 모르는 것보단 당연히 아는 게 낫다. 꼭 IT 세계가 아니더라도 이 시대에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처음엔 우리 제품이 어떤 제품과 함께 놓이는 것 자체가 좋았다. 앞서간 누군가와 함께 설 수 있다는 거니까. 그렇게 조금씩 제품을 업그레이드 하며 조금씩 자신감을 가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대표자로서 당연히 우리 제품에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나는 우리가 풀려는 문제에 관해 우리 제품이 좋은 제품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종종 우리 서비스를 설치했다가 경쟁사 서비스를 사용하는 걸 발견한다. 수백개 고객사를 매일 트래킹할 순 없지만 종종 고객사 사이트를 한바퀴 돌다가 발견하면 큰 의문이 든다.

지난해 쇼핑파트너스를 설치했다가 한동안 접속이 없는 고객이 있다. 판매량이 꽤 있는 편이라 고객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다른 제품을 사용하고 있을 줄이야. 그런데 오늘은 문득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싶더라. 그래서 분석해봤다.

고객사 서비스 상세 페이지와 우리 상세 페이지를 비교해봤다. 각자가 소개하는 서비스의 핵심 키워드를 뽑아보고 비교해봤다. 고객 입장에 서서 두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도 상상해봤다.

당연히 리서치 했던 서비스였다. 적어도 내가 서있는 시장에 어떤 플레이어가 있고, 그들이 어떤 문제를 푸는지는 알고 있다. 때문에 그들과 차별화된 포인트를 만들고,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엣지를 만들어 시장에서 고객에게 자신감을 갖고 제품을 제안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두 서비스를 두고 한 걸음 물러나 쳐다보니 조금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 유형의 고객은 우리 서비스를 보고 ‘불친절하다’고 느꼈을 것 같았다. 우리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허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 제품의 퍼소나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이 고객을 원한다. 퍼소나 설계가 틀어진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왠지 조금 더 가보고 싶었다. 이대로 고객을 놓쳐야만 할까? 글쎄, 이 고객은 당장 놓쳤을지언정 이 유형의 고객군 자체를 놓칠 순 없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고객을 떠올려보니 어떤 그룹이 만들어졌다. 그 그룹이 갖는 특성을 모으니 우리가 염두에 둔 퍼소나가 그려졌다. 우리는 분명히 초기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켜왔다.

어쩌면 이건 고객 퍼소나가 잘못 설정됐다기 보다는 재설정 해야 하는 시그널이 아닐까 싶다. 완전히 방향을 틀기 보다는 재조정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아니, 어쩌면 고객 퍼소나를 하나가 아닌 둘, 셋으로 나눠 조금 더 넓은 범위로 재설정이 필요한게 아닐까 싶다.

액션 플랜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간간히 요청 받았던 것들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고 새로운 고객군이 원하는 거라면, 어쩌면 이건 고객군 재조정이 아닌 다음 스텝으로 갈 시기인가 싶다.

매일 바쁘게 뭔가 해왔는데, 몇시간 동안 홀로 앉아서 우리 제품만 고민한 게 꽤 오랜만이지 싶다. 전부터 눈 앞에 있었는데 왜 여태 해맸나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엉덩이 무겁게 한 덕분에 막혔던 1cm를 더 파낸 것 같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