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높은 편이다. 일도 잘 하고 싶고, 결과도 내고 싶고, 과정도 갖고 싶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는 편하게 ‘선택과 집중’을 외치겠다만, 그게 잘 됐더라면 애초에 고민도 안 했겠지. 그래도 종종 원하는 결과를 얻기도 하고, 노력의 결실을 맺기도 한다. 어쨌거나 주어진 상황에서 노력하려 애쓰는 편이다.

누군가는 내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니 부럽다 했고, 누군가는 내게 내 일을 하니 부럽다 했다. 말을 잘 한다거나, 글을 잘 쓴다거나. 내 모습의 일부를 본 이들이 칭찬을 해줬다. 누구나 빙산의 일각이 있을 테니까.

성장을 하다가도 정체기를 겪는다. 계단식 성장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이 시기를 잘 견뎌내야 다음 스테이지가 열린다고 한다. 어쩌면 이 시기를 지나는듯 싶다.

노력형으로 성장해온 이들의 단점 중 하나는 더 이상 노력할 물리적 시간이 허락되지 않을 때 정체기를 겪는 것 같다. 내게 무언가를 더 해보라거나 바꿔보라고 하는 이들이 있지만, 빼곡히 일정을 넣어뒀는데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블럭을 무너뜨리라는 말로 들린다.

같은 방향, 같은 방법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원하는 무언가를 얻어낼 수 없다는 건 사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답답한 거다. 주기적으로 이런 시기를 겪는 나 자신보다 더 답답한 사람이 또 있을까.

기준은 물론 욕심도 많기에, 어느 하나 놓질 못하는 것 같다. 불안할수록 더 노력하게 되는. 불안을 노력으로 메우려는 습관이 이제는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 노력하지 않고 잘 되기엔 재능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은데.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20년만에 다시 입학한 대학에서도 욕심을 냈다. 다시 공부할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해보겠다는 생각, 더 좋은 환경에서는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아직 공부할 수 있는 두뇌가 있을 거란 생각. 이런저런 생각을 증명하고 싶었다. 이게 증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다시 장학금을 받아보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칭찬에 참 목말랐구나 싶다. 어느샌가 칭찬을 받기 어려운 포지션에 서 있더라. 열아홉에서 스무살로 넘어가는 12월 31일처럼, 내 마음은 그리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칭찬을 구하기도 어렵고, 칭찬을 해줄 이도 없는 것 같다. 어째 선택하는 길마다 외로운 것 같다.

그럼에도 계속 이 길을 가는 것은, 조금 용기 내 말해보자면. 사실 내 노력의 목적은 칭찬도, 결과도, 좋은 사람도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게 나로서 사는 거라 생각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싶다. 훗날 길 끝에 섰을 때 나로서 걸어왔길 바란다.

어쩌면 노력은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