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한동안 읽었던 책 중 가장 읽기 어려웠던 책임을 밝힌다. 정말이지 이렇게 읽기 힘든 책은 오랜만이었다. 독서소모임을 하며 딱 한 번 책을 읽지 않았던 적이 있는데, 몇년 전 ‘군주론’이었다. 도서 월든은 ‘군주론’ 급으로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읽었는데, 메시지를 알 수 없는 숲 속에서의 일상은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페이지를 넘기면 전 페이지가 기억나지 않는 것은 물론, 한 시간 동안 읽은 내용이 전혀 기억 나지 않기도 했다. 새삼 내 문해력이 이렇게 형편없었나 싶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서 배움을 찾아냈고, 하단 인상 깊은 문구를 보면 알겠지만 꽤나 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해보면, 내가 출판사 대표라면 몇몇 수정을 하고 싶다.

먼저, 이 책의 목적을 명확히 전달하고 시작할 것 같다. 분명히 초반 200페이지는 정독했는데, 저자가 이 책의 독자와 비독자를 설명한 부분을 이 책을 선택한 발제자의 발제문을 통해 알았다. 책의 목적을 좀 더 명확히 전달하는 머릿말이 있어야 하겠다.

둘째, 디자인 요소다. 이 책은 그저 텍스트를 나열했을 뿐 디자인 요소가 전혀 없다. 챕터 도비라를 좀 더 명확히 한다던지, 사이사이 박스를 넣고 설명을 넣는다던지. 원문을 살리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무려 1800년대 텍스트를 그대로 싣는게 마냥 의미가 있을까 싶다.

셋째, 설명 요소다. 1800년대 당시 달러와 센트는 지금과 전혀 가치가 다르다. 이 부분은 현재 가치로 얼마정도 되는지가 담겨야 할 것이다. 1년에 6주만 일하고도 모든 생활비용을 벌 수 있었다는데, 이 부분이 꽤 중요함에도 센트 따위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5년 이상을 이와 같이 오직 육신의 노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 결과, 1년 중 약 6주일간만 일하고도 필요한 모든 생활 비용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름의 대부분과 겨울 전부를 나는 순전히 공부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었다.

아무튼 저자의 필체를 비롯해 출판사의 편집 방향까지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다. 그래서 1점을 부여한다. 그럼에도 힘겹게 책을 읽었으니 느낀바를 적어본다.

어떤 결과는 행복을 보장하는가.

최근 무거운 번아웃이 왔다. 작년엔 이정도로 무겁게 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집중할 수 있는 세세한 일정을 잡지 않아서인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번 번아웃은 ‘어떤 결과’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를 얻었음에도 행복해지지 않았다. 노력 뒤에 이정도로 행복이 함께 오지 않은 적이 없기에 나는 꽤 당황했고, 어찌할 바를 모른채 한달 여를 우울하게 보냈던 것 같다.

자기 침대를 어깨에 메고 걷기란 젊고 건강한 사람도 힘에 겨운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픈 사람에게 침대를 버리고 달려가라고 충고하고 싶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많은 걸 가졌다. 그럼에도 늘 더 뭔가를 가져야 할 것 같고, 그래서 노력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어쩌면 이번 번아웃으로 나는 또 하나를 배운 것이다. 어떤 결과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언제쯤 ‘과정’을 즐길 수 있을진 모르겠는데, 과정을 즐겨야만 하는 이유를 알게된 것도 큰 진전이라 하겠다.

그런데, 아직은 노력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건 꽤 우울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과가 행복을 주지 않는다면, 과정을 즐겨야 하겠다. 그런데 과정도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원시시대의 소박하고 적나라한 인간 생활은 인간을 언제나 자연 속에 살도록 하는 이점이 있었다. 먹을 거소가 잠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나면 그는 새로운 여정을 생각했다. 그는 이 세상을 천막 삼아 기거했으며, 골짜기를 누비거나 평원을 건너거나 때로는 산마루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보라! 인간은 이제 자기가 쓰는 도구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배가 고프면 마음대로 과일을 따먹던 인간이 이제는 농부가 되었고, 나무 밑에 들어가 몸을 가렸던 인간이 주택의 소유자가 되었다.

행복했던 시기를 떠올리면, 한달 여 스페인에 머물던 대학교 4학년 시절이 생각난다. 너무 더워서 늘 목이 말랐던 그곳. 그때마다 보이는 자판기와 콜라 한 캔을 뽑아 마시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던 그때.

어쩌면 나는 ‘콜라’가 행복이라 느꼈고 언제, 어디서든 ‘콜라’를 사먹을 수 있도록 노력한 것 아닐까. 그런데 그 ‘콜라’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자 좌절한 것 아닐까. 그리고 이제 스페인에서 ‘콜라’를 마셔도 ‘행복하지 않을까’ 두려워진 것 아닐까.

그런데, 스페인에서 콜라를 마시고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될까?

도대체 나는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걱정이 많은 편이다. 뭐든 균형이 중요한데, 나는 능력보다 시야가 조금 더 넓어서 오는 문제 같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고,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빤히 문제가 보인다. 그리고 그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된다.

그래서 나는 늘 불안하고, 이 불안을 함께 해결하지 않는 모든 이에게 불만이다. 그런데 불안이 불만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 불안은 어디에 쓸 수 있을까?

나는 병아리를 기르지 않으므로 솔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 전부도 아니거니와 보인다고 모두 해결하는 건 아니다. 보인다고 모두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무거운 번아웃이 왔다고 한 이유는 이번 번아웃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번 번아웃도 극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주변 상황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로지 변한 건 내 마음가짐이다.

문득, 한달 여 고통 받던 내가 지금의 내 마음 상태를 미리 알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극복하리란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는 과연 불안했을까? 같은 맥락에서 내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진다면. 그 가설을 내가 믿는다면. 조금은 나를 믿는다면.

대체로 우리는 방 안에 홀로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항상 혼자이다. 고독은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 놓인 거리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보이고,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할 거라 믿는다면. 나는 더이상 내가 불안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 같다. 스페인에서 마시는 콜라가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프랑스에서 마시면 되지 않겠나.

마무리

발제문을 통해서야 알게된 저자의 말 중 이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다음으로 제외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기의 현재 상황 속에서 자극과 감흥을 발견하며 연인들 사이에나 있을 법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인데, 나 자신도 어느 정도는 이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내 인생에 자부심이 있고, 꽤 열정적이고 싶은 편이다. 나는 내 이야기를 만들며, 언제나 나로서 살고 싶다. 때문에 언제든 내 의지를 표현하는데 망설이고 싶지 않다.

어쩌면 저자가 쓴 대부분의 텍스트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 역시 부끄럽지만, 나는 내 신세를 한탄하며 주저앉아 울고만 있고 싶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쓴 대부분의 텍스트가 내겐 의미 없이 읽혔던게 아닐까 싶다.

비판적 사고를 지향하지만, 조금은 날카로움을 무디게 해도 되겠다 싶은 시간이었다. 어쨌거나 이 책은 지금으로선 내게 맞지 않았다.

한줄평

충분한 각색이 필요한 책.

인상 깊은 문구

  •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의 인생을 조용히 보내고 있다. 이른바 체념이라는 것은 확인된 절망에 지나지 않는다.
  • 나이 많음이 젊음보다도 더 나은 선생이 될 수 없고 어쩌면 그보다 못하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은 나이 먹는 과정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인생의 과정에서 절대적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배우지 못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늙은이들은 젊은이들에게 줄 만한 중요한 충고의 말을 갖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경험은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인생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 우리는 너무나도 철저하게 현재의 생활을 신봉하고 살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어.”하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원의 중심에서 몇 개라도 다른 반경을 가진 원들을 그릴 수 있듯이 길은 얼마든지 있다.
  • 오늘날 철학 교수는 있지만 철학자는 없다.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 한때 보람 있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그렇단 말인가?
  • 내가 말하려는 주요 대상은 인생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로, 자신의 운명을 개선해보려는 노력은 보류한 채 타고난 신세와 때를 잘못 만난 것을 한탄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한 가지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 한편에 궁전이 있으면 다른 편에는 빈민 구제 시설과 ‘말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이집트 왕들의 무덤인 피라미드 공사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들은 마늘을 먹으면서 연명했으며 죽은 후에는 격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묻혔을 것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택이 무엇인지를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이웃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정도의 집은 나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평생 가난에 쪼들리며 살고 있다.
  •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끝없이 노력하고, 때로는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 것인가?
  • 원시시대의 소박하고 적나라한 인간 생활은 인간을 언제나 자연 속에 살도록 하는 이점이 있었다. 먹을 거소가 잠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나면 그는 새로운 여정을 생각했다. 그는 이 세상을 천막 삼아 기거했으며, 골짜기를 누비거나 평원을 건너거나 때로는 산마루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보라! 인간은 이제 자기가 쓰는 도구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배가 고프면 마음대로 과일을 따먹던 인간이 이제는 농부가 되었고, 나무 밑에 들어가 몸을 가렸던 인간이 주택의 소유자가 되었다.
  • 사람이 자기 집을 짓는 데는 새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지을 때와 비슷한 합목적성이있다. 만약 사람이 자기 손으로 집을 짓고 소박하고 정직한 방법으로 자신과 가족을 벌어 먹인다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시적 재능이 피어나지 않겠는가? 마치 새들이 그런 일을 할 때 항상 노래하듯이 말이다.
  •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사회가 학생들의 값비싼 놀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동안 학생들은 인생을 ‘놀듯이 보내거나’ 또는 인생을 ‘공부만 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진지하게 ‘살아’보라는 것이다.
  • 한 소년에게 예술과 과학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싶다면 나는 그 아이를 어떤 교수가 있는 곳으로 보내는 식의 흔해빠진 방법은 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강의되고 실습되지만 삶은 예술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법을 가르치지만, 육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화학은 공부하되 자기의 빵이 어떻게 구워지는가는 배우지 않는다.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은 발견해내지만, 자기 눈의 티는 보지 못하며 또한 자기가 지금 어떤 악당의 위성 노릇을 하고 있는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 방울의 식초 안에 사는 괴균들을 연구하면서 자기의 주위에서 우글거리는 괴물들에게 자신이 잡아먹히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 자기 침대를 어깨에 메고 걷기란 젊고 건강한 사람도 힘에 겨운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픈 사람에게 침대를 버리고 달려가라고 충고하고 싶다.
  • 멕시코인들도 매 52년이 끝나는 시점마다 이와 비슷한 정화제를 지냈는데, 그들은 52년마다 한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나는 5년 이상을 이와 같이 오직 육신의 노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 결과, 1년 중 약 6주일간만 일하고도 필요한 모든 생활 비용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름의 대부분과 겨울 전부를 나는 순전히 공부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었다.
  • 예전에 내가 무슨 일을 해서 먹고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이리저리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허클베리를 따서 파는 일을 여러모로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이 일이라면 나도 자신 있어. 이익이 전긴 하지만 나한테는 충분한 것이야. 왜냐하면 나의 가장 뛰어난 재주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니까. 자본도 별로 들지 않고 나의 평소 생활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아.’ 어수룩한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을 이어가곤 했다.
  •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나갈 수 있으므로 값비싼 양탄자나 다른 호화 가구들, 맛있는 요리 또는 그리스식이나 고딕 양식의 주택 등을 살 돈을 마련하는 데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이런 것들을 얻는 것에 하등의 거리낌을 느끼지 않고, 또 일단 얻은 다음에 그것들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따면 그 사람들이나 실컷 그런 것들을 좇으라 하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일하는 것 자체가 좋아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같아 보인다. 또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나쁜 길에 빠지니까 일에 몰두할 수도 있으리라.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현재로써는 할 말이 없다.
  • 나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내어 그 길을 갈 것이지, 결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이웃의 길을 가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 사람들이 현자에게 묻기를, 지고한 신이 드높고 울창하게 창조한 온갖 이름난 나무들 가운데, 열매도 맺지 않는 삼나무를 빼놓고는 그 어느 나무도 ‘자유의 나무’라고 불리지 않으니 그게 어찌된 영문이나이까? 현재가 대답하기를, 나무란 저 나름의 과일과 저마다의 철을 가지고 있어 제철에는 싱싱하고 꽃을 피우나 철이 지나면 마르고 시드는도다. 삼나무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항상 싱싱하느니라.
  • 우리의 인생은 사소한 일들로 흐지부지 헛되이 쓰이고 있다. 정직한 사람은 셈을 할 때 열 손가락 이상을 쓸 필요가 거의 없으며, 극단의 경우에는 발가락 열 개를 더 쓰면 될 것이고 그 이상은 하나로 묶어버리면 될 것이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 왜 우리들은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가며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내일의 아홉 바늘 수고를 막기 위해 오늘 천 바늘을 꿰매고 있다. 일, 일, 하지만 우리는 이렇다 할 중요한 일 하나 하고 있지 않다. 단지 무도병에 걸려 머리를 가만히 놔둘 수가 없을 뿐이다.
  • 나는 신문에서도 기억해둘 만한 뉴스를 읽은 적이 없다.
  • 원칙만 알면 되지 무수한 실례와 응용을 구태여 들을 필요가 무엇인가? 철학자에게 소위 뉴스라는 것은 모두 가십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을 편집하거나 읽는 사람은 차나 마시고 있는 늙은 부인네들인 것이다.
  • 하루를 자연처럼 의도적으로 보내보자.
  •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하든 또는 거르든 차문하게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자. 손님이 오든 또는 가든, 종이 울리든, 아이들이 울든, 단호하게 하루를 보내보도록 하자. 왜 우리가 무너져 내려 물결에 떠내려가야 하는가?
  • 옛 고전을 원어 그대로 읽는 것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인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불충분할 수밖에 없으리라. 왜냐하면 어느 고전도 현대어로 번역된 일이 없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이런 책들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내가 보기엔 발음이나 악센트나 강조에 조금도 발전이 없고, 이야기로부터 어떤 교훈을 끄집어내든가 아니면 집어넣든가 하는 기술도 전혀 늘지 않는다. 이런 독서 취향은 결과적으로 시력의 감퇴, 혈액순환의 장애 그리고 지적 능력의 전반적인 위축 내지는 퇴보반을 가져온다.
  • 우리는 버릇이 없고 무식하며 천박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책을 전혀 읽지 못한 사람의 무식과, 어린애들과 지능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책만 읽는 사람들의 무식 사이에 그리 큰 차이를 두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 아무리 우리 눈에 익은 물건이라도 집 밖에 내놓으면 집 안에 있을 때와는 아주 색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 건강하고 순수한 사람의 귀에는 어떤 폭풍우도 ‘바람의 신’의 음악으로 들릴 뿐이다.
  • 조용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대자연 속에,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속에, 또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모든 경치 속에 진실로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주는 공기 그 자체처럼 무한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우호의 감정이었다. 이웃에 사람이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던 여러 가지 이점이 대단치 않은 것임을 느꼈고 그 후로는 두 번 다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아무리 발을 부지런히 놀려도 두 사람의 마음이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압니다.
  • 대체로 우리는 방 안에 홀로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항상 혼자이다. 고독은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 놓인 거리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농부는 하루 종일 혼자 밭에서 김을 매거나 숲에서 나무를 베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일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 내가 진정 아끼는 만병통치약은 희석하지 않은 순수한 아침 공기 한 모금이다.
  • 우리가 단지 고성다변만을 즐긴다면 뺨과 턱을 마주 대다시피 하고 상대방의 입김을 맡을 만큼 가까이서 이야기해도 좋으리라. 그러나 신중하고 사려 깊게 이야기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떨어져서 서로의 동물적 열기와 습기가 증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이 나무꾼의 존재는 인생의 최하층에도 천재적인 인물들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 사람들은 비록 평생 비천하고 무식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항상 독창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보며, 그러지 않으면 차라리 전혀 견해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 나는 병아리를 기르지 않으므로 솔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 아픈 사람에게 의사는 현명하게도 공기와 장소를 바꾸어볼 것을 권한다. 여기 이곳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니 천만다행한 일이 아닌가?
  • 나는 숲에 들어갈 때나 마찬가지로 어떤 중요한 이유 때문에 숲을 떠났다. 내게는 살아야 할 또 다른 몇 개의 인생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꼈으며, 그리하여 숲 생활에는 더 이상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쉽게 어떤 특정한 길을 밟게 되고 스스로를 위하여 다져진 길을 만들게 되는지는 놀라운 일이다. 내가 숲 속에 산 지 채 일주일이 안 되어 내 집 문간에서 호수까지는 내 발자국으로 인해 길이 났다. 내가 그 길을 사용하지 않은 지 5, 6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길의 윤곽은 뚜렷이 남아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 길을 밟아 길로서 유지되게 했나 보다. 땅의 표면은 부드러워서 사람의 발에 의해 표가 나도록 되어있다. 마음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 나는 실험에 의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기 꿈의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며, 자기가 그리던 바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 그는 과거를 뒤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을 것이다. 새롬고 보편적이며 보다 자유로운 법칙이 그의 주변과 내부에 확립되기 시작할 것이다.
  • 미래를 생각할 때, 또 앞으로 가능한 일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앞쪽 방면으로는 어느 정도 느슨하게, 선을 그어놓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 우리가 어떤 사물에 부여하는 어떠한 표면도 진실만큼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오직 진실만이 모든 것을 견디어낸다. 대체로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거짓된 입장에 있다. 천성의 어떤 약함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사정을 지레짐작하고 우리를 그 속에 맞추어 넣어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 사정에 처해 있으며, 거기서 빠져나오기란 두 배나 어려운 것이다.
  •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어라. 옷이든 친구이든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헌 옷은 뒤집어서 다시 짓고 옛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라.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 자신을 개발하기 위하여 서두른 나머지 수많은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기지 마라. 그것도 일종의 무절제이다.
  • 부자로 유명했던 크로이소스 왕의 재산을 우리가 물렵다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목적은 전과 다름없을 것이며 우리의 수단 역시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가난하기 때문에 활동 범위에 제한을 받더라도, 예를들어 책이나 신문을 살 수 없는 형편이 되더라도 당신은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경험만을 갖도록 제한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가장 많은 당분과 가장 많은 전분을 내는 재료만을 다루도록 강요를 받게 된 것이다. 뼈 가까이에 있는 살이 맛있듯이 뼈 가까이의 검소한 생활도 멋진 것이다. 당신은 인생을 빈둥거리며 보내지 않도록 보호받게 된 것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면에서 6피트의 깊이를 파본 적이 없고, 공중으로 6피트를 뛰어올라 본 적도 없다. 우리는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더구나 우리는 하루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깊은 잠으로 보낸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여기고 있으며, 지구의 표면에 하나의 질서를 확립했다. 정말이지 우리 인간은 심오한 사상가들이며 야심만만한 존재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우리의 눈을 감기는 빛은 우리에겐 어두움에 불과하다. 우리가 깨어 기다리는 날만이 동이 트는 것이다. 동이 튼 날은 또 있다. 태양은 단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