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K리그를 볼 수 있었다. 남부지방에서 올라올듯 안올라오던 장마전선이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이틀내내 비가 쏟아지고 있다. 때문에 수중전을 기대했지만 경기장엔 비가 오지 않았다.

경남 VS 광주. 사실 빅매치는 아니다. 게다가 전북, 서울 등의 우승후보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선수의 기량이 떨어져 경기의 질 또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앞섰기에 끌리는 경기는 아니였다.

K리그와 EPL을 보기 위하여 작년에 케이블 방송을 신청했다. ESPN을 보기 위해서 고급형을 당당하게 신청했지만 일반형에도 있던 SBS스포츠 채널이 EPL을 독식하면서 나는 엄청난 실망을 했었다. 거기에 K리그까지 독점을 하면서 SBS스포츠는 축구채널을 자청했지만 현실은 야구채널이다.

게다가 4인 가족인 우리집에는 TV가 한대라서 어머니께 드라마를 양보하고 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결국 난 울면서 아프리카 TV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루시오와 경남FC><출처 K리그 공식 홈페이지>

세번의 찬스. 광주.

전반전. 경남은 새로 영입한 브라질 용병에게 공을 돌리며 경기를 풀어나갔다. 조광래 감독이 영입한 새로운 브라질 선수는 마징요. 182cm 80kg의 24살 용병은 빠른 스피드와 브라질 특유의 좋은 개인기로 수비진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당히 넓은 시야로 패스를 뿌렸지만 마징요의 왼발은 조금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전반 25분경 광주의 서민국이 수비가 걷어낸 세컨볼을 잡고 전력질주로 골문 앞으로 달려가자 경남의 윤빛가람이 다리를 걸었다. 애매한 장면이긴 했으나 내가 봤을땐 다리가 걸려서 넘어진듯 했다. 윤빛가람이 다리를 걸지 않았다면 곧바로 경남의 김병지 골키퍼와 1:1 상황이였으나 주심은 파울을 불지 않았다. 광주로썬 상당히 아쉬운 장면이였다.

그리고 1분뒤 26분 이번엔 로빙 스루패스를 받은 광주의 김동현이 전력질주로 달려 김병지를 돌파하지만 공이 빠져나간뒤 김동현이 넘어지고 만다. ‘오, 드디어 점수가 나겠구만?’ 라고 생각했지만 주심은 김동현에게 헐리우드 액션이라며 경고를 준다. 이 장면 역시 애매한 장면이지만 이 부분은 주심의 판정이 맞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광주에겐 두번의 찬스를 모두 놓친 것이다.

그리고 전반 종료 직전 경남의 몇 안되는 스타이자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였으며 현재 K리그 최다 출장을 기록중인 골키퍼 김병지가 있음으로 환호를 지르게 만든다. 코너킥 부근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광주가 헤딩슛으로 연결하지만 충분히 골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 김병지가 다이빙으로 쳐낸다. 다시금 김동현이 슛팅을 날렸지만 이번엔 김병지가 엉덩이로 막아낸다.

세 장면을 제외하곤 상당히 재미없는 경기가 펼쳐졌다. 특히 경남의 공격진은 마징요를 제외하면 모두 평균 이하였다. 득점랭킹 1위를 달리는 루시오는 공을 몇번 잡지도 못했으며 원톱으로 나선 이훈은 공을 소유하지 못했다. 원톱이라면 스스로 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공을 소유하면서 주변의 선수들에게 찬스를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훈은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했다.

김병지의 슈퍼세이브와 함께 전반이 종료되었고 0-0 스코어로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들어간다.

두번의 골대 강타 광주. 한방 경남의 루시오.

전반전 시작과 동시에 경남의 조광래 감독은 이훈을 뺀다. 당연한 선택이였다. 이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훈 대신 까밀로가 들어가면서 조광래 감독의 쓰리톱은 모두 브라질 선수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해설진은 루시오가 살아야 한다고 말했고 조광래 감독 또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리그 11경기 9득점을 하면서 놀라운 득점력을 보여준 루시오가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경남에는 ‘골을 넣을 선수’ 가 없었다. 때문에 경남은 루시오를 살려야만 했다.

루시오에 대한 전술 변화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나타났다. 후반 3분 마징요가 올린 크로스를 엄청난 점프력으로 루시오가 헤딩 슛팅을 날린다. 184cm의 루시오가 187cm의 장현규와 경합했지만 루시오가 완전히 장현규 위에 올라섰으니 루시오의 점프력은 엄청난 것이다. 장현규는 루시오와 경합 후 그라운드에 내팽겨쳐졌다.

루시오는 후반 9분과 10분 연달아 슛팅을 날리며 몸상태를 끌어올렸고 결국, 후반 12분 골을 만들어 낸다. 페널티박스 밖 아무도 예상치 못한 거리. 루시오는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슛팅을 날리고 그게 수비수의 다리에 맞으면서 행운의 골을 기록하게 된다. 경남 최고의 스타가 해낸 것이다.

이제 광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광주의 최고 스타로 꼽히는 최성국. 후반 18분 수비수 네명을 바보로 만드는 드리블로 공격의 시작을 알린다. 후반 21분 수비수의 실책을 놓치지 않은 서민국이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슛팅을 날린다. 김병지도 어쩌지 못하는 엄청난 슛팅이였으나 크로스바 윗부분을 맞고 튕겨져 나간다. 조금만 아래로 내려갔다면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들어가는 골이였다.

후반 25분 경남의 마징요가 골키퍼 김지혁이 나온것을 보고 로빙슛을 시도한다. 데뷔전에서 마징요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골을 넣은 루시오와 도움을 기록한 까밀로 까지. 조광래 감독의 브라질 아이들은 모두 성공적인 용병이 될 가능성이 보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였다.

이때서부터 광주는 경남을 무섭게 공격했다. 후반 30분 최성국은 혼자서 드리블 돌파로 페널티박스 바로 바깥쪽에서 프리킥을 얻어내고 이를 주장 최원권이 기가 막히게 감아찼으나 또 다시 크로스바에 맞고 만다. 이로써 광주는 전반 두번의 찬스와 후반 두번의 골대 강타로 찬스에서 골을 전혀 만들지 못했다.

광주는 서민국의 날카로운 왼발로 프리킥과 코너킥으로 골을 노리지만 그때마다 어수선한 수비진에서 홀로 김병지가 튀어나와 펀칭으로 막아낸다. 후반 종료 직전이 다가오자 경남 선수들은 모두 지쳤고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김병지는 홀로 소리를 지르며 선수들을 격려했고 마지막까지 경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경기 종료 직전 광주의 박승민이 예상치 못한 중거리포를 날렸고 김병지는 특유의 반사신경으로 몸을 날려 겨우 막아낸다. 이로써 김병지는 완벽한 골찬스 두개를 홀로 막아낸다.

넣은 루시오. 막은 김병지.

사실 경기력은 광주가 한 수 위였다.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러간 ‘국가대표’ 김정우가 있었다면 경기는 분명 광주쪽으로 더욱 더 기울었을 것이다. 루시오의 골은 사실 운이였다. 수비수의 발에 걸리지 않았다면 김지혁 골키퍼의 정면으로 가는 공이였다. 하지만 어쨌든 루시오는 골을 기록했고 경남 최고의 스트라이커. 아니 현재 K리그 득점랭킹 1위의 스트라이커로써 이름 값을 했다.

전체적인 경기력으로 봤을땐 광주의 최성국이 루시오보다 훨씬 더 좋은 활약을 펼쳤다.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전 경기장을 뛰어다녔고 후반 막판에는 미드필더 진영까지 내려와서 공을 받는 등 광주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최성국은 골을 넣지 못했다. 루시오는 넣었다. 결국, 루시오의 승리다.

500경기가 넘는 출장을 하면서 아직도 많은 팬들의 지지를 받는 김병지. 나 또한 이운재 보다는 김병지에게 한표를 주는 김병지의 팬이다. 그런 김병지가 오늘도 두건이나 해냈다. 완벽한 찬스를 두개나 막아낸 것이다. 골키퍼는 짜릿한 포지션이다. 자신이 막으면 점수가 나지 않는다. 다른 선수들이 아무리 못해도 자신이 한골도 먹히지 않으면 결코 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다른 선수들이 아무리 잘해도 자신이 계속해서 점수를 잃게 되면 경기는 질 수 밖에 없다.

경험 많은 김병지. 월드컵 해설을 하면서 많은 욕을 들었지만 역시 선수는 경기장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병지가 얼마나 더 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오늘 승리의 주역은 김병지다. 김병지가 없었더라면 경남은 광주에게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스타가 있는 경남은 이겼고, 스타가 없는 광주는 졌다.

아쉬운 광주. 최성국의 파트너가 필요하다.

축구에서 스트라이커는 보편적으로 키큰 공격수와 키작은 공격수로 나뉜다. 대개 키가 크면 느린 대신 제공권이 뛰어나고 키가 작으면 빠르고 개인기가 좋다. 최성국은 성남에서 뛰었던 선수로 국가대표에서도 활약한 명성있는 선수다. 지난시즌 김명중(현 포항)과 호흡을 맞추면서 광주의 돌풍을 이뤘던 그가 파트너를 잃고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현재 최성국의 파트너는 김동현. 김동현은 188cm의 키가 큰 타깃형 공격수다. 이 두명의 조합은 어쩌면 김명중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성국은 오늘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주었다. 경남의 수비진을 정신 못차리게 휘저었다. 그렇다면 김동현은 자신의 몫을 해주었어야 한다. 김동현은 오늘 1:1 찬스 두개를 날렸다.

이강조 감독은 이 둘의 조합을 확실히 해야 한다. 오늘 최성국은 멋진 플레이를 펼쳤고 광주가 이겼다면 MVP를 받을만 했다. 김정우가 복귀하고 최성국의 파트너가 최성국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면 광주는 분명 후반기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된다.

안타까운 중계.

오늘 전북은 대전에 4-0으로 이겼고, 이동국은 30-30 클럽에 가입했다. 제주는 강원을 5-0으로 눌렀다. 부산은 4-2로 포항과 난타전 끝에 승리를 거뒀고, 서울은 1-0으로 전남에게 이겼다.

사실 전북과 대전의 경기 전반전을 보았다. 전반전에만 세골을 뽑았으며 우승후보답게 자신들에게 찾아오는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5골과 6골이 터진 경기는 얼마나 짜릿했을까?

만약 전북과 대전의 경기가 중립적인 해설을 했다면 그 경기를 전부 봤을 것이다. 하지만 대전에서 자체 중계를 하는 것인지 듣기 안좋은 목소리의 해설위원이 편파 해설을 하는 덕분에 스피커를 꺼버렸다.

FA컵 5경기가 모두 인터넷 생중계가 된다고 한다. 지금 같은 시대엔 꼭 TV로 경기를 보지 않아도 된다. FA컵처럼 인터넷 중계를 합법적으로 보여준다면 K리그 팬들은 행복할 것이며 지금 보다 훨씬 관중이 늘어날것이다. 일단 경기를 봐야 팬이 생기지 않겠는가?

지난 리그컵 경기도 빅매치였는데 중계가 안되서 안타까웠다. 오늘 같이 골이 많이 터지는 경기를 팬들이 봐야하는데 너무도 아쉽다. 좀 더 중계에 신경써줬으면 좋겠다.

Dragon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