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게 된 동기]
언젠가부터 고민이 생기면 찾게 되는 브라더가 있다. 몇 주 전 내 고민을 듣더니 ‘너가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라며 추천을 해준 책. 그냥, 내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난 책이라는데… 뜻밖의 득템이다.
[한 줄 평]
나와 같은 종족을 발견했다.
[서평]
전에도 딱 한 번 이런 적이 있었다. 하루에 두 권의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그때는 용돈을 받기 위함도 있었고 큰 감흥을 느끼진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블로그를 뒤져보니 2010년 5월 22일에 두 권의 책을 읽었다.[서평] 내 인생을 바꾼 1% 가치 ★★☆☆☆ 와 [서평] 광고인이 말하는 광고인 ★★★☆☆ 역시나 평점이 높지 않다.)
오늘 오전에 [서평] 프레임 ★★★☆☆ 을 읽고 오후에 이 책 [공부와 열정] 을 펼쳤다. 오랜만에 카페에 들러 카페라떼를 한잔 시키고 된장남 모드로 들어갔다. 느긋하게 보려던 이 책. 금새 자세를 고쳐잡게 되었다.
<해적 버커니어. 제임스 마커스 바크>
버커니어는 1625년 카리브 해 세인트키츠 섬에 정착한 프랑스, 영국 출신의 사냥꾼과 농부들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7세기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괴롭힌 ‘버커니어’ 들은 해적이다. 자유로운 영혼이며, 마음가는대로 살았던 이들이다. 저자는 자신의 공부법을 ‘버커니어식 학습’ 이라고 하며 스스로를 ‘버커니어 학자’ 라 말한다.
쉽게 말해 꼴리는 대로 산다 이거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그 뒤로도 정식 교육기관에서는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재 ‘박사’ 라 불리고 있으니 꼴리는 대로 참 잘~ 살고 있다 할 수 있겠다.
해적 버커니어와 같은 그의 외모는 그가 진짜 해적이 아닐까 의심된다.
자유로운 버커니어들의 이야기와 11가지 학습법에 따른 사례에서 나는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려는 찰나, 카페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시끄러운 카페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교육제도의 부적응자, 나…>
나는 세상을 살면서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단 한명도 본 적이 없다.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누가 마음에 들겠는가? 가끔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오래 될 수록 동질감은 이질감으로 변해갔다. 내가 바뀐건지 그들이 바뀐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
때문에 나는 늘 ‘까칠이’ ‘이상한 놈’ 등으로 불렸다. 처음엔 기분이 나빴지만, 듣다 보니 뭐 괜찮았다. 남들과 다른 것은 틀린게 아니니까. 나 또한 당신들과 같고 싶지 않다고…
우리는 납득이 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억지로 하지 말고 스스로 확인해서 하자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 우리는 ‘계획대로 연습하기’, ‘딴짓하지 않기’ 같은 다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을 몰아세운다고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납득되는 상황이 아니면 움직이지를 못한다. 학창시절 아쉬운 점 중 하나가 중학교때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은사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중학교 1학년. 초딩에서 중딩이 된 우리들은 서로를 견제했다. 절대 강자도 약자도 없던 시절 목소리가 크면 일진이 될 수 있던 초창기 한 달. 말솜씨가 있었던 내 주변에는 친구들이 몰렸다. 촌티나는 친구, 덩치 큰 친구, 축구부 친구 등 다양한 친구들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중 사건이 터졌지.
친해진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방송이 나왔다. ‘남학생들은 2층으로 내려와서 교과서를 받아가세요.’ 냉큼 일어나 2층을 가려는데 선생님이 날 향해 외쳤다.
‘오세용 너는 여자애니까 앉아. 너처럼 말 많은 애는 남자가 아니야. 여자야.’
40명의 반 친구들은 다 나를 쳐다보며 비웃었고, 남자 아이들이 2층에 가서 교과서를 가져오는 몇 분간 나는 쪽팔림을 꾹꾹 참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말을 많이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실습’은 책에 나온 설명대로 따라하기나 빈칸 채우기로 대체됐다. 이런 것을 한 다음 선생님께 제출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답을 맞게 썼는지 확인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10도 경사진 평면에 놓인 공은 1미터를 굴러가는데 초 걸린다.”
또 하나의 사건은 영어시간에 일어났는데, 그당시 우리 학교는 3개 반을 동시수업으로 묶은 다음 학생들을 상, 중, 하로 나누었다. 이는 중학교 3학년 때 까지 학기마다 한 번씩 반 이동이 있었다.
나는 1학년 1학기에 영어 ‘상’ 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1학년 2학기 이후로 5학기 동안 ‘중’ 반에 머물러 있었다. 왜냐고? 난 영어 단어가 외우기 싫었거든.
영어 ‘상’ 반 선생님은 덩치 큰 여자선생님이었다. 그 여자 선생님은 이른바 ‘실버스틱’ 을 들고 다녔는데, 창문 닦이 봉을 자른 쇠파이프였다. 아마 일주일에 두 번 있던 영어수업에서 매번 영어단어 30개를 외워오게 시켰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매번 30대씩 맞았고, 몇 주가 지나 약간의 레벨 조정이 있었다. 나는 그때 중반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나는 왜 영어 단어를 30개를 외워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 납득이 안되었다. 그 선생님에게 배운 것 중 아직도 기억나는게 딱 하나 있다. really? 와 really! 의 끝 억양이 다르다는 것. 물음표에서는 억양이 올라가고, 느낌표에서는 강하게 지른다. 그리고 매번 실버스틱으로 30대씩 맞았던 기억 뿐이다.
저자는 나보다 더했다. 시험을 아예 안보기까지 했고, 과제는 늘 제출을 안했다. 결국 16살에 자퇴를 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대학교 4학년 학사 졸업까지 했으니 양반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영화평] 억셉티드 ★★★★★‘ 를 아는가? 내 인생 최고의 영화이자 지난주에도 한 번 더 보았던 영화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는 “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학생들의 창의력과 열정을 자극시키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데, 뭐랄까… 굉장히 슬펐다. 영화에서 밖에 들을 수 없단 사실이 슬펐다.
나는 학교를 파괴하자는 게 아니다. 내가 해체하려는 대상은 다른 것이다. 바로 학교를 다녀야만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또 학교에서 해 주는 교육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우등생이라는 널리 퍼진 믿음이다.
학교는 필요하다. 나 또한 툴툴거리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은 분명히 있다. 물론 배운 것의 대다수는 다시는 그런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이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잘 찾아보면 있을 것이다.
인간이 지구 최고의 생명체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교육’ 덕분이다. 우리는 후세에 경험을 공유하고 공동체로써 생활하기에 다른 동물들보다 월등한 지능을 뽐내는 것이다. 다만, 그 교육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게 함정이다. 인간은 불완전하니까.
<버커니어의 자질>
주체적으로 자아를 구성하는 사람: 주입된 지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수동적이지 않은 사람. 공부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는 과정이라고 여기는 사람. 사색하고 배우며 가르치려는 사람.
저자는 버커니어 학자의 조건으로 여러가지를 나열했는데, 그 중 하나가 ‘주체적으로 자아를 구성하는 사람’ 이다. 저자는 자아가 굉장히 강하다. 책에 적힌 것만으로 봐서는 자유를 빼앗는다고 하면 자살을 해버릴 기세다. 자유가 없다면 삶의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스스로가 의미있기 위해 무언가를 찾았고, 저자는 그게 계속해서 배우는 것이었다. 아마 그가 학습에서 재미를 찾지 않고 해적질에서 재미를 찾았다면 마피아가 되었으리라. 강한 자아의 좋은 예라고 볼 수 있겠다. 적어도 소프트웨어 테스팅 분야에서는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까.
내 의지와 의식 사이에는 괴리가 있어서 때로 의식이 방황을 한다. 이것이 내 방식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가끔 나는 방황으로 유익하고 값진 발견을 한다. 그리고 현재 이런 방법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남과 다른 사고방식, 이것이야말로 나의 경쟁 우위이다.
저자는 계속해서 버커니어의 설명을 하는데, 혼자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 베시시 웃기도 하고, 헐! 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저자는 나와 많이 닮았다.
스스로 방황을 하면서도 스스로 길을 찾아 낸다. 납득이 되지 않으면 절대 수긍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브랜드화 하며,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한다. 열정을 이용하고, 주위에 사람들을 둔다. 혼자는 의미가 없으며, 함께 하는데서 행복을 찾는다. 대다수의 성향이 나와 비슷하지만 멘탈적인 부분에선 나보다 훨씬 성숙했음을 확인 했다.
저자는 이미 많이 쓰러져 보았으리라. 쓰러져 봤기에, 그리고 늘 스스로 일어났기에 더 이상 쓰러지는건 의미가 없다. 어차피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6학년 때 만난 베드린 선생님처럼 우리 아버지도 대화할 때 나를 어른처럼 대우했다.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에게 나는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나와 저자와 같은 류의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굴고 싶다면 훗날 아쉬운 소리를 절대 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존중을 한다면 존중으로 대할 것이다. 혹, 저자와 같은 류의 사람에게 존중을 받았다고 해서 마음껏 하대해서는 안된다. 당신을 존중하는 것은 당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당신이 잘났다고 내가 인정해서다. 주체는 당신이 아니고, 나다.
<쫄려? 뭐가 쫄리는데?>
4일동안 5권의 책을 읽었다. 어느새 올해 7권의 책을 읽었다.
그렇게 회피하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나는 또 책 속으로 회피했었다. 책 속에서 무언가 특별한 진리를 찾으려 애썼고, 덕분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런 내게 저자는 버커니어의 언어로 말한다.
비행기 조종법을 배우고 싶은가? 실제 비행기를 조종해 보거나 시뮬레이터로 연습을 해 보라. 전기의 작동 원리에 대해 알고 싶은가? 전자 장비를 사서 전기 회로를 만들어 보라.
번역하자면, ‘니 하고 싶은거 있다며? 해 그럼’ 정도가 되겠다.
회사를 나온 뒤 6주간 나는 많은 흔들림을 겪었다. 몸이 아프기도 했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으며,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그런 아픔 속에서 나는 슬슬 몸을 사렸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건강하다. 운동을 꾸준히 한 덕에 몸도 건강해졌고, 지금은 머리도 마음도 아프지 않다. 그럼에도 실험쥐 마냥 누군가에게 억압 받는 자세로 내 목표에 임하고 있었다.
기대치는 내가 ‘아는’ 나의 능력이다. 포부는 내가 ‘바라는’ 나의 능력이다. 내가 나의 기대치에 못 미쳤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딘가 삐끗한 것이다. 포부는 언제나 기대치보다 높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파괴를 경험하게 된다. 결국 기대치는 내게 건전하고 정상적인 영역에서 결정된다.
선배 버커니어인 저자는 내게 몇 가지 솔루션을 제시한다. 자신을 좀 더 사랑 할 것, 너무 달겨들지 말 것. 충분히 즐길 것.
특히 기대치와 포부에 대한 이야기는 참 감동이다. 기대치를 낮추되 포부를 높여라. 버커니어는 이 조율을 스스로 잘 해내야 한다. 이는 인간의 멘탈적인 부분이고, 이 능력치가 숙련되려면 앞으로 얼마나 경험이 필요할지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나는 이 능력치가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
내 이름을 브랜드로 띄우려면, 다수가 이해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더라도 뭔가 고집하는 게 있어야 한다.
내 올해의 단어는 ‘브랜딩’ 이다. 도밍고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내 올해의 목표다. 이 브랜드를 위해 나는 다수가 좋아하지 않지만 고집하는 뭔가가 있나 생각해보았다. 책을 읽은 것. 그래, 지금 시점에 내가 책만 읽으며 사색을 했던게 남들은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나만을 위한 솔루션으로 다가왔다.
내가 책을 좋아해서 참 다행이다. 그동안 내가 책을 곁에 두지 않았더라면 내 선배가 이 책을 추천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추천 했더라도 읽지 않았겠지.
배움은 공부를 통해 ‘자아’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나는 배움이 좋다. 무언가 배울 때마다 나를 더 드러내고 싶고, 더 나누고 싶다. 그런 과정들이 즐겁고 짜릿하다. 또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보다 스스로 터득하는게 더 많은 것을 보아 나는 역시 버커니어인 것 같다.
피하고 피하다가 결국은 책에서 해답을 찾았다.
그래, 결국 문은 열리게 마련이지.
[인상 깊은 문구]
- 제 경우는 뛰어든 분야에서 재미도 느껴야 했습니다. 재미가 없다면 관두세요. 제가 성공한 비결은 바로 이겁니다. 나한테 흥미로운 분야를 찾아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익히는 것. 저는 지금 제 의지로 흥미로운 일을 하면서 돈도 법니다.
- 배움은 공부를 통해 ‘자아’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 그러나 ‘실습’은 책에 나온 설명대로 따라하기나 빈칸 채우기로 대체됐다. 이런 것을 한 다음 선생님께 제출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답을 맞게 썼는지 확인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10도 경사진 평면에 놓인 공은 1미터를 굴러가는데 초 걸린다.”
- 나처럼 아이디어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명성이 곧 자격증이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내서 이름을 알린다.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된다.
- 유럽의 숨 막히는 문명화를 혐오한 이들은 버커니어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 선택에 따른 대가를 묵묵히 받아들였다.
- 나는 학교를 파괴하자는 게 아니다. 내가 해체하려는 대상은 다른 것이다. 바로 학교를 다녀야만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또 학교에서 해 주는 교육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우등생이라는 널리 퍼진 믿음이다.
- 나는 배우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충만함과 자기 결정력을 추구한다. 내가 배우는 지식은 내 주변 어디에나 깔려 있다. 나는 이를 얻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승인을 구걸하지 않는다.
- 우리는 납득이 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억지로 하지 말고 스스로 확인해서 하자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 우리는 ‘계획대로 연습하기’, ‘딴짓하지 않기’ 같은 다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을 몰아세운다고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주체적으로 자아를 구성하는 사람: 주입된 지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수동적이지 않은 사람. 공부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는 과정이라고 여기는 사람. 사색하고 배우며 가르치려는 사람.
- 이것이 버커니어 학자가 되면 얻는 이점 중 하나다. 끊임없이 배우기 때문에 눈앞에 기회가 다가오면 “죄송하지만 이건 제 능력 밖의 일이네요.”라며 물러서지 않고 기회를 덥석 문다.
- 종종 호기심에 이끌려 물색에 빠진다. ‘당시에는’ 필요 없어 보이는 것도 호기심이 발동해 일단 배워 둔다. 호기심은 우리처럼 순발력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생존 기술이다.
- 내게 진정 의미 있는 문제란 나의 생존이나 행복을 위협하는 문제다. 내가 첫 번째 상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려고 음악 하는 그 앞에서 하모니카를 불고(생존과 관련된 경우), 내 연주를 즐길 만큼 실력이 늘자 더 열심히 배우기 시작한 것(행보고가 관련된 경우)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 예를 들어 어떤 운전사가 전에 한 번도 몰아본 적 없는 자동차에 탑승한 경우, 그는 곧바로 조작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운전법을 알아낸다. 모든 차량이 유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자동차를 알게 되면 여기서 생긴 ‘자동차 스키마’가 다음에 다른 차량도 몰 수 있게 가르친다.
- 비행기 조종법을 배우고 싶은가? 실제 비행기를 조종해 보거나 시뮬레이터로 연습을 해 보라. 전기의 작동 원리에 대해 알고 싶은가? 전자 장비를 사서 전기 회로를 만들어 보라.
- 나는 독자적으로 공부하지만, 과거 버커니어들처럼 남들과 교류도 한다. 우리는 서로 비판해 주고 또 각자의 비판에 귀 기울이는데 서로에 대한 존중이 바탕에 깔려 있다. 우리는 서로를 똑똑하게 만든다.
- 훌륭한 버커니어들은 단어 앞에서 위축되는 일이 거의 없다. 단어를 정복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는 그 단어를 대수롭지 않게, 또 그 단어가 쓰인 글을 형편없게 보는 것이다.
- 어떤 대상을 단순화하려면 먼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혼잣말한다. 단순한 실들이 매우 복잡한 직물을 짜 낸다고. 이런 원리로 만들어진 패턴은 이해가 가능하다고. 설령 내가 틀렸어도 이를 깨달을 때면 이미 많은 사실을 알게 될 거라고.
- 나는 매일 내 감정에 충실하게 보낸다. 세세한 계획은 피한다. 대신 내 열정을 활용하고, 열정이 시들해져도 나를 용서하며, 열정이 사라지면 편히 쉰다.
- 어린 시절 난 내 나름의 학습 방식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시 난 자기 비하에 에너지를 낭비했는데 학교 선생님들이 일러준 방법으로는 머리가 굴러가지 않아서였다.
- 내 의지와 의식 사이에는 괴리가 있어서 때로 의식이 방황을 한다. 이것이 내 방식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가끔 나는 방황으로 유익하고 값진 발견을 한다. 그리고 현재 이런 방법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남과 다른 사고방식, 이것이야말로 나의 경쟁 우위이다.
- 처음 표를 만들 때는 기억나는 내용이 여섯 개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책을 겨우 몇 분 훑었을 뿐이다. 그런데 막상 적어 보니 기억이 바로바로 떠올랐는데, 마치 영감을 주는 조개 여신이 내 귀에 대고 속사이는 듯했다.
- 나는 내 의식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지나치게 엄격하지 않으려고 주의한다. 마치 작은 개를 데리고 숲을 산책하듯이 한다.
- 우리 아버지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었다. 평생 프로그램을 짜 본 일이 없지만 아버지는 컴퓨터의 모국어 배우기를 쉽게 생각했다. 어떤 때 보면 인생을 나비처럼 가볍게 산다. 실질적인 어려움은 신경 쓰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게 아버지의 인생철학이었다.
- 나는 ‘죽기 살기로 공부하자’며 저돌적으로 덤비는 것보다 슬슬 도전해 보는 편을 택했다.
- 순환 학습에서 성공하는 핵심은 자의적 판단을 멈추고 헷갈리는 상황을 용인하는 것이다. 현재 내 자아는 어린 시절과 비교해 세 가지 큰 강점을 갖췄다. 하나, 나는 똑똑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둘, 내가 멍청할 때도 있다고 인정한다. 셋, 어느 쪽이든 나는 존재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 만약 가시덤불을 헤쳐 나갈 자신이 없다면 남들 앞에 버커니어로 모습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 6학년 때 만난 베드린 선생님처럼 우리 아버지도 대화할 때 나를 어른처럼 대우했다.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에게 나는 마음의 문을 열었다.
- 내가 펼치고 싶은 재능을 원하는 사람이 소수여도 내겐 그 몇 사람만으로 충분하다.
- 그토록 갈망한 뛰어난 두뇌가 내게는 없는 듯 했지만 그래도 난 믿었다. 내게 분명 숨겨진 재능이 있을 거라고. 그래! 그게 무너지 아직 모를 뿐이야. 뭔가 해 보면 그 재능이 터져 나올지도 몰라. 나는 그걸 찾아 헤맸다.
- 그럼 뭣 하러 해? 뭐가 됐든 왜 하냐고. 몹시 갈망한다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내게는 아무런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 기대치는 내가 ‘아는’ 나의 능력이다. 포부는 내가 ‘바라는’ 나의 능력이다. 내가 나의 기대치에 못 미쳤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딘가 삐끗한 것이다. 포부는 언제나 기대치보다 높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파괴를 경험하게 된다. 결국 기대치는 내게 건전하고 정상적인 영역에서 결정된다.
- 기대치가 너무 높으면 무리한 항해를 하게 된다. 반면 포부가 너무 낮으면 항해를 하다 말기 때문에 많이 배우지 못한다. 따라서 지적 몰입은 기대와 포부 그 ‘중간 지대’ 에서 생긴다.
- 좋은 선생님이나 유능한 관리자는 학생이나 직원이 계속 자극을 받도록 기대치를 조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 버커니어들은 이런 방법을 혼자 터득해야 한다.
- 이런 일화를 스스로 말하다 보면 또 다른 교훈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바로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순간은 앞으로 10초 안에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 내 이름을 브랜드로 띄우려면, 다수가 이해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더라도 뭔가 고집하는 게 있어야 한다.
- 애플사에 오기 전, 나는 내가 기본적으로 게으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또 애플사에 오기 전에는 소중한 팀원으로서 남들과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없었다. 이후 몇 년 동안 나는 내가 1주일에 85시간씩 활기차게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단 조건이 있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필요한 존재이고 그들로부터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야 했다.
- 애플사에서 우리는 대졸 신입 사원을 업계에 유용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들로 취급했다. 우리는 이들이 읽고 쓸 줄 아는 능력 정도만 갖췄다고 봤다.
- 이런 내 질문들을 끌어낸 진정한 문제는 무엇인가? 바로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였다.
- 한편으로 우리 버커니어들은 종종 다른 사람의 잣대에 따르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의미로 악역을 맡는다. 기존 틀을 깨는 시도도 한다.
- 기억해 둘 사실은, 성공적인 버커니어라고 해서 통속적 의미의 부를 언제나 누리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버커니어에게 성공이란 평생 자아 발전 프로젝트에 즐겁게 몰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전 정신으로 자신의 기대치를 뛰어넘어 포부를 실현할 때 몰입을 느낀다. 이런 야심찬 버커니어에게 기대치와 포부를 조율하는 일은 필수다. 심해에 뛰어들지 않은 채 육지에 적응하려 애쓰는 젊은 버커니어가 흔히 보이는데, 이들은 자아 정체성 때문에 혼란을 겪는 미운 오리 새끼와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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