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로 살아가기
<예술가로 살아가기 / 출처 – 오세용>
 

[읽게 된 동기]


 
 
따뜻한 커뮤니티 STEW 의 독서소모임 지정도서.
예술 카테고리의 책을 처음으로 펼쳤다.
 

[한줄평]


 
 
이상과 현실 사이를 자세하게 풀어낸 책. 예술가로써의 이상. 그리고 아들, 딸 또는 아버지 어머니 의 역할 사이에서 자신의 꿈을 현실화 해가는 예술가들의 이야기.
 

[서평]


 
 
연애, 결혼 등을 포기하는 시대에 과연 ‘예술’ 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기껏 한다는 문화생활은 ‘영화 관람’ 정도이고, 박물관이나 예술 작품 등은 기사로도 접하지 못한다. 경제, IT 등 정보도 살아남기 위해 강제로 습득해야 하는 시대니까 예술기사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
 
언젠가부터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했고, 그때부터 인듯싶다. 가만히 있는 것이 죄를 짓는거라 느껴진게.
 
주말 오후 느긋하게 가만히 있다가 문득, 죄를 짓는 듯 해 이 서평을 적어본다.
 
오랜만에 철학 이야기 좀 나눠볼까?
 

<인문학, 창의력, 노오력.>

 
언제부턴가 메스컴에서는 ‘인문학, 창의력’ 등을 논한다. 잡스 같은 인재를 ‘키워 낸다.’ 고 하고, 그렇게 되지 못하는것은 스스로의 책임이니 더욱 노오오력 하라고 한다.
한 세기에 한 명 나오는 천재라며,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쏘더니만 고작 18살 아이 송유근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쪼개가며 ‘인성’ 이니 ‘학자의 자질’ 따위를 논한다. 과연 천재를 고작 ‘빠른 습득’ 으로 정의 할 수 있는 것인가? 꼭 빠르게 많은 것을 최정상 급으로 뽑아내야만 하는건가? 천재들이 그렇게 뽑아내면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고 박수만 치면 되는 것인가?
 

인터뷰를 마치고 담당 매니저가 회사를 소개한 다음 이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나는, “네, 여기선 모두가 웃고 있네요” 라고 대답했다.

 
IT 를 하는 사람으로써,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편이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아니,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행동해야 성공한 삶이고 어떤 것을 얻어야 행복한 삶인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결국은 철학>

 
나는 사람을 대하는 나름의 철학이 있다. 일단, 그 사람이 어른이냐, 어른이 아니냐로 판단하는데, 그 기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정적으로 자립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눈다. 꿈을 꾸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멋진 일이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실제로 실천하는 이들은 굉장히 멋진 사람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을 등골을 뽑아가며 자신의 자아실현을 한다? 이건 어른이 아니라고 본다.
 

1980년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처음으로 가진 직업은 초상화 화가와 인테리어 장식가였다. 두 일거리 모두 전화번호부에서 찾았다. 목표는 일주일에 사흘 일하면서 하루에 200불을 버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집세를 내고 일주일에 나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쉬는 날은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면 다음은 철학이다. 과연 나 스스로가 ‘철학’ 을 논할 자격이 있느냐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내가 내 철학을 논하는데 무슨 자격이 필요하느냐고’.
스스로가 철학이 없다면 무너진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등의 명언을 쏟아내진 못하더라도 스스로가 믿고 행동하는 나름의 기준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문학, 창의력 따위의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안다. 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과 뭔가 달라야 한다고. 왜? 다른 사람들보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하니까. 돈은 많이 벌길 원하면서 그다지 튀지 않길 바란다? 그런 요행을 바라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과연 그게 가능 할 것 같은지?
 

거의 모든 예술가가 경제적 걱정 없이 작업하고 싶은 꿈을 꾼다. 하지만 그 꿈은 곧 현실에 부딪히고 만다.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생활에 필요한 돈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지난 20년간 언제나 궁지에 몰린 느낌으로 살았던 것 같다.

 
요즘은 정말 빨리 사회에 나와도 스물 다섯. 보통은 서른 즈음에 사회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곤 부딪친다. 재정적인 궁핍에, 끊임 없는 사회적 책임에, 가장의 의무에. 결국은 스스로 철학이 없다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많이… 외롭겠지만. 견뎌야지 뭐.
 

<예술가? 철학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나의 경우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내겐 스스로의 성장이 큰 의미가 있고, 이런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들이 있다. 멋진 친구들과 함께하려면, 내가 먼저 멋진 사람이 되는 것 보다 중요한게 있다. 그들이 멋진 친구라는걸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만난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다보니 어느새 깊은 대화를 하게 되고, 모두가 철학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친한 친구들과 가족은 내가 스튜디오에서 은둔하고 쪼그리고 앉아 작업하는 것을 이해해주었다. 좀 야박한 것 같지만 나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빼앗는 사람과는 점점 거리를 두었다. 지인들은 몇 달 간, 심지어 해가 지나서 만나도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했다.

 
누군가는 나를 두고 ‘기회주의자’ 라고 했다. 글쎄, 나와 다른 사람과 억지로 인연의 끈을 잡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인생은 꽤나 짧고, 내 시간은 한정되어 있거든. 나는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이런 내 철학을 두고 누군가는 ‘자기합리화’ 라고 하겠지. 세상은 원래 이면이 있는게 아닌가?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건 아무 것도 없다.
각자의 이념이 다르고, 철학이 다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인간적인 면이 좋다.
 

지난 7년간 예술가로 살아가며 어떻게 가족을 부양할 것인지 고민했다. 지금도 여전히 해결 방도를 찾고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알아낸 사실은 두 가지 모두를 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언가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대 며칠간 아주 나쁜 엄마가 되어도 괜찮다며 내 자신을 설득한다.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이 자신의 철학이고,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을 깨닫는 것. 이것이 철학적 수양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을 위해 중요치 않은 것을 포기할줄 아는 사람이 바로 철학가다. ‘자발적 포기’ 는 철학가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다시 한 번 철학>

최근 글로벌 뉴스와 국내 뉴스에서 정치적 이야기가 많이 오고간다. 나 또한 조금 더 공감이 가는 쪽이 있지만 섣불리 내 의사를 표현하고 싶진 않다. 그저 누군가의 이념 싸움으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SNS 상에서 여러 친구들을 팔로우하고 있다. 크게 분할되는 양측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기 위해서인데,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고개를 갸우뚱 할 때가 있다. 중립적인 위치에서 글을 읽다보니 생각보다 양측의 논리가 그럴싸 했다. 그런 글들은 대부분 ‘박사’ 학위 정도의 고학력자들의 이야기였으며, 막무가내 식의 억지도 많지만 의외로 논리 정연한 글도 있다.
 
철학이 굉장히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느날 나는 미스테리한 욕망에 이끌려 집 지하실로 달려갔다. 나는 지하실에서 석고 반죽이 스며든 삼베를 철조망에 둘러 싸서 커다란 작품을 만들었다. 그때 고등학생이었고, 예술가의 삶이 어떤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번 이러한 몽환적인 경험을 겪자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가로 살아가기. 이 책에서 언급되는 모든 예술가들은 철학가다. 자신이 예술을 하고 있는 이유가 있으며, 그 예술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술을 위해서. 이보다 더 철학적인 직업이 있을까 싶다.
 

<예술가로써의 길을 앞둔 지금>

 
나는 IT 시장에서 4년을 일했다. 그리고 내년 1월 1일이 되면 새출발을 계획하고 있다.
 
어떤 일들이 내게 펼쳐질지,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럼에도 그 경험들이 기대되는 것을 보면 나는 탐험가적 기질이 있는 것 같다. 모르지 또, 금새 멘붕이 와서 ‘아차!’ 싶을지도.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나의 창의력과 노력을 다른 사람의 작업에 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1년 반 만에 스튜디오를 나왔다.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나만의 길을 걷겠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무려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웠고, 이 속에서 많은 것을 얻었지만 가슴 한켠엔 늘 “나만의 길 “이 ‘송곳’ 처럼 솟아 있었다. 뭐, 가끔 그 송곳이 튀어 나오기도 했었지.
그동안 나의 철학을 단디 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집을 떠나 살며 나만의 시간을 많이 가졌던게 큰 축복이였고, 그런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많은 친구들, 부모님. 그렇게 정제된 이야기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기적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예술가의 창의력은 삶의 장애물을 극복하고 꾸준히 달려감으로써 힘을 얻는다.
 

이 책에 소개된 40명의 예술가이자 철학가들은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나만의 길을 내딛는 것에 큰 힘을 주었고, 읽는 내내 내게 말했다.
 
“쫄지마 임마. 달려.”
 
 
 

[인상 깊은 문구]


 
 

  • 예술가의 창의력은 삶의 장애물을 극복하고 꾸준히 달려감으로써 힘을 얻는다.
  • 인터뷰를 마치고 담당 매니저가 회사를 소개한 다음 이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나는, “네, 여기선 모두가 웃고 있네요” 라고 대답했다.
  • 거의 모든 예술가가 경제적 걱정 없이 작업하고 싶은 꿈을 꾼다. 하지만 그 꿈은 곧 현실에 부딪히고 만다.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생활에 필요한 돈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지난 20년간 언제나 궁지에 몰린 느낌으로 살았던 것 같다.
  • 언제나 시간과 돈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어렵다. 시간과 돈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최대한 간접비용을 줄여야 했다. 나는 기질상 재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싫어하기 때문에 정규직을 택했다.
  • 내가 풀타임으로 직업을 가졌을 때의 수입과 가끔씩 팔리지만 작품 판매 수입이 거의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직장을 관뒀다. 대신 언제까지 작품이 지속적으로 팔릴지 알 수 없기에 판매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 나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일주일에 7일 일하고, 아주 드물게 하루 정도 쉰다. 하지만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가의 삶을 좋아하고 스튜디오에 남아 작업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오전 9시부터 오후3시까지 학교에 다녔고, 오후 4시부터 밤 11시까지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백화점에서 일했다. 자정부터 새벽4시 사이에 작업 활동을 했다.
  • 어느날 나는 미스테리한 욕망에 이끌려 집 지하실로 달려갔다. 나는 지하실에서 석고 반죽이 스며든 삼베를 철조망에 둘러 싸서 커다란 작품을 만들었다. 그때 고등학생이었고, 예술가의 삶이 어떤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번 이러한 몽환적인 경험을 겪자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강의가 없는 날 아침에는 미루어두었던 글을 쓰거나 온갖 창의적이지 않은 일을 한다. 그래야 오후와 저녁 시간에 온전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는 스튜디오에서 야간 작업을 한다.
  • 집세나 기타 나가는 비용을 줄여야 했고, 판매가 계속 줄어들어 급기야 집을 나가야 하는 상황에 몰릴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월세가 여섯 달이나 밀려 집주인이 나를 재판정에 세우려 했다.
  • 예술가는 일종의 자영업자이기에 매일 일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 쉽다. 하지만 나는 너무 소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요일은 휴일로 정해 놓고 작업도, 집안일도, 청소나 빨래도 하지 않는다. 먹고, 영화도 보고, 빈둥대며 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하면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일요일을 기다리게 되고,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월요일을 기다리게 된다.
  • 누군가 내게 작품이 갤러리에 소개 되어도 정기적으로 수입원이 되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줬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 이후 예술 세계의 50퍼센트 정도는 교묘한 속임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술가로 성공한 다음에도 여전히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배신감마저 들었다.
  • 예술가가 어떨 땐 작품을 혼자 관리하기 때문에 사무직 직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교적 안정적인 시기라도 미리 나를 홍보하고 인적 관계망을 쌓아야 한다. 프로젝트를 이해하려면 물리적, 시간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창의적인 사람들과 연합해야 한다.
  • 지난 7년간 예술가로 살아가며 어떻게 가족을 부양할 것인지 고민했다. 지금도 여전히 해결 방도를 찾고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알아낸 사실은 두 가지 모두를 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언가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대 며칠간 아주 나쁜 엄마가 되어도 괜찮다며 내 자신을 설득한다.
  • 나는 무작정 카메라를 집어 들고 나가거나, 엉덩이를 부치자마자 바로 창작을 시작하지 못한다. 본격적으로 창의적인 작업을 하기 전에 모든 생각을 잊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나 자신을 내려놓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창작할 수 있다.
  • 1980년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처음으로 가진 직업은 초상화 화가와 인테리어 장식가였다. 두 일거리 모두 전화번호부에서 찾았다. 목표는 일주일에 사흘 일하면서 하루에 200불을 버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집세를 내고 일주일에 나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쉬는 날은 없었다.
  • 나는 학생들이 비난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을 극복하여 예술이라는 작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
  • 친한 친구들과 가족은 내가 스튜디오에서 은둔하고 쪼그리고 앉아 작업하는 것을 이해해주었다. 좀 야박한 것 같지만 나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빼앗는 사람과는 점점 거리를 두었다. 지인들은 몇 달 간, 심지어 해가 지나서 만나도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했다.
  • 작품을 만들 때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튜디오 밖의 세상과 교류해야 한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오면 학생을 가르치는 일, 전시 오프닝이나 강연을 가는 일, 지역사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일 등을 한다.
  • 나의 영혼에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변화도 두렵지 않다.
  • 가족이 생긴다는 것은 두 배의 삶을 산다는 의미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메기와 나는 성년의 시기를 함께 보내면서 경쟁보다 돕고, 협력하고, 격려하는 방법을 배웠다. 메기가 수업이 있는 날이면 나는 스튜디오로 가서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캔버스를 만들어주거나 도구를 정리해준다. 나는 종종 작업을 하다 삼천포로 빠지는데 그럴 때마다 메기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해준다. 우리는 서로에게 능숙하고 정확한 비평을 해주며 솔직하고 잘난 체 하지 않는다.
  • 뒤돌아 생각해보면, 아이들을 피해 학교 뒷길에 있는 자연보존 구역으로 도망간 일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나의 창의력과 노력을 다른 사람의 작업에 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1년 반 만에 스튜디오를 나왔다.
  • 창의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내는 나의 개인적인 삶과 학업과 예술가로서의 삶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 뉴욕의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일은 임대로, 재료비, 제작, 관리비, 어시스턴트 고용비 등을 고려해보았을 때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같다.
  • 만약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것만을 목표로 생각하는 예술가가 있다면, 저는 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최종 목표인지 되물어요. 이상하게도 그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야기 하죠.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야” 라고 말입니다.
  • 컬럼비아 대학교에 다니는 예술 학도들이 졸업 후 곧바로 커다란 갤러리에 소속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1년 안에 갤러리에 소개되지 않는 사람들은 실패자로 낙인된다고 하더군요.

 
Domin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