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SaaS라는 키워드로 검색했던 것 같다. 우연히 어떤 네이버 블로그에 방문했다가 내공이 느껴지는 콘텐츠를 읽었다. 해당 블로그에 몇몇 글을 읽다보니 저자가 궁금해졌다. 개발자 출신 중소기업 사장. 심지어 사장으로 일하며 코딩을 놓지 않았다니. 추구하는 회사가 월급이 밀리지 않으며, 스트레스가 없는 회사라니. 왠지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아 반가웠다. 그런데 나보다 20-30년은 앞선 선배였다. 심지어 그동안의 과정을 정리한 책을 냈다니,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조금 다른 출발, 그리고 비슷한 니즈

저자는 환갑을 넘긴 시니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개발자로 살았으니 말 그대로 개발자 인생이라 칭하기 부족함이 없다. 심지어 창업을 해서도 스스로가 명명한 ‘오너 프로그래머’로서 살았으니 이정도면 뼛속까지 개발자라 불러도 되겠다.

나는 컴퓨터를 좋아해서 컴퓨터학과에 갔고, 스마트폰에 관심이 생겨 모바일 개발자가 됐다. 내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인데,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니 잘하는 것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겠다.

반면 저자는 소프트웨어 개발만 할 뿐 컴퓨터 자체를 좋아하진 않는데, 심지어 컴퓨터를 전공하지도 않았다. 작은 기업에 들어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대기업에 들어갔으며, 우연히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는 부서에 배치돼 그때부터 개발자가 됐다니. 그런데 천직이라 생각할 정도로 잘 맞는다는 건 저자가 개발자가 될 운명이었나보다. 어쨌거나 나와 저자는 출발은 다르지만 개발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지난 13년 동안 IT 업계에서 일하며 많은 개발자와 일했다. 특히 저자가 말하는 ‘프로 프로그래머’의 정의를 보며 성향이 비슷한 개발자라 느꼈는데, 생각보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일 잘하는 사람의 기준이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일을 잘한다’는 기준 자체에 관해 고민해본 적이 없고, 극단적으로는 일을 잘할 생각 자체가 없다. ‘일을 잘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보통 어떤 ‘책임’을 지려는 사람들인데 이런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보통 저자가 말하는 ‘프로 프로그래머’가 된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일하며 가장 프로페셔널하다 느꼈던 어떤 회사 기술 이사님이 생각났다.

프로 프로그래머는 상업용 소프트웨어 제품을 정해진 기한 내에 개발 인력에 상관없이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개발자는 보통 시니어가 되면 선택을 해야 한다. 10년 전보다는 선택지가 넓어졌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관리 역할을 해야 하며, 이 역할을 하기 싫다면 프리랜서의 삶을 살게 된다. 프리랜서가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잘 맞지 않는다면 정말 불행한 말년을 보내기 쉽다. 그리고 나는 그런 프리랜서를 많이봤다.

개발자가 할 수 있는 선택 중 다소 극단적인 선택 중 하나가 창업이다. 저자가 창업했던 시기보다는 최근 창업 시장이 심리적, 사회적 진입 장벽이 훨씬 낮아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창업은 소수의 개발자가 하는 극단적인 선택 중 하나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굉장한 책임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개발자 출신 창업자가 갖는 부족함은 초기 기업에게 때론 치명적이다. 저자 역시 이 부족함을 느꼈고 감사하게도 무척이나 솔직하게 책에 적었다.

엔지니어 마인드, 비슷한 뇌구조

내 첫번째 창업은 5년 차 개발자 시절에 했는데 당시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만들었다. 내 서비스를 이용하던 한 기획자가 내 창업 소식을 듣고 미팅을 요청했는데, 내 이야기를 듣던 기획자는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만들고자 하는 엔지니어 성향이 무척 강하시네요.

나는 당시에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당황했다. “아니 그럼 누가 만들어?” 첫 번째 창업 내내 이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후 다시 취업해 일하면서도 그 생각을 떨치지 못했고, 지난 회사에서 개발 부서장을 하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닫게 됐다. 제품의 핵심 기술은 조직이 내재화 하면 되는 것이지 꼭 창업자 스스로가 내재화 할 필요는 없다. 안타깝게도 ‘내가 만들겠다’는 이 엔지니어 마인드는 창업자의 모든 역할에 방해가 된다.

저자는 심지어 ‘오너 프로그래머’라는 단어를 만들며 일반적이지 않은 포지션임을 인정했다.

프로그래머 딱지를 떼지 못한 오너는 생존에는 유리하나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는 데에는 제약이 된다.

모든 것에는 이면이 있다. 주니어 시절 일을 잘 하는 사람이 꼭 좋은 시니어가 되는 건 아니다. 서로 요구하는 능력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많은 똘똘한 개발자가 형편없는 개발 팀장이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뛰어난 엔지니어, PM 등이 형편없는 CEO가 되는 건 굉장히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내 두번째 창업인 유자랩스를 지난해 창업하며 1년 동안 부족한 CEO로서 살았다. 정말이지 초기 기업 CEO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모든 과목에서 단 하나라도 낙제점을 받을 경우 회사 성장에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그리고 내게 낙제 기준 선은 너무도 높았다. 하지만 내가 처음 접한 모든 과목을 최소한 한 사이클씩은 경험해야 훗날 해당 포지션 직원을 잘 뽑아서 일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냥 되는 게 정말 하나도 없었다.

전문가에게 맡겨도 다 알아서 해주지 않는다.

나보다 엔지니어 성향이 더 강한, 전형적인 엔지니어인 저자는 내가 지난 1년동안 겪은 것을 30년 전에 겪었고, 심지어 그 모든 경험을 다 이겨내고 안정적인 기업. 그리고 스스로가 만든 월급이 밀리지 않고 스트레스도 없는 철학을 지킨 조직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저자의 여러 이야기를 읽으며 언젠가 나도 후배들에게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는 상상을 했다. 저자가 10-10 사업을 성공했다고 판단한 10년의 시간을 훨씬 더 앞당겨야겠다는 또 다른 목표도 세웠다. 이렇게 엔지니어 성향의 CEO들이 양지로 나오는 건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다.

똑같은 회사는 없다

1년 전 유자랩스를 창업하며 주변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려 다녔다. 유자랩스 창업 동기를 듣고 추구하는 바를 들으며 하나 같이 이렇게 말했다. ‘신기하다’고. 어떻게 그런 창업 구조가 되느냐고.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함께 일하며 우리만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아쉬웠다. IT 창업이 수면 위로 올라온지 꽤 됐는데, 많은 창업자가 자신의 스토리를 공유하지 않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 스토리들을 들어야 후배들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우리 세대가 살아있는 한 자본주의가 지속될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창업자들은 더욱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상을 하고, 리스크를 감수하며 가능성에 배팅하는 창업자들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너무도 필요한 존재들이다. 때문에 이런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선배 세대에게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창업을 해보니 이게 공유하기가 참 어려운 걸 이해한다.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지만, 단지 내 가려움을 긁는 것이 가져올 청구서가 두려웠다. 어줍잖게 이야기 했다가는 그게 자랑으로 느껴지고, 비즈니스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입을 벌리기 어려워졌다. 때문에 이렇게 공유해주는 창업자들이 더욱 고맙다.

자유를 꿈꾸는 엔지니어들이 참 많다. 특히 조직 내에서 뛰어난 편에 속하며, 좀 더 자유를 원하는 인재라면 지금보다 더 많이 가능성에 배팅했으면 한다.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데, 저자의 10-10 사업이 리스크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오너프로그래머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사업 모델로 ‘10-10 사업’이 있다. 10-10 사업은 단일 아이템이 안정 단계에 들어섰을 때 다음의 조건을 가진다. 연간 순매출 10억 원 내외, 직원 10명 이내

10-10 사업의 아이템이 생산(개발)과 유통(판매)의 안정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생존에 성공하기까지, 보통 약 5년의 기간과 약 5억 원 이상의 자금이 드는 아이템이 좋다. 그래야 자금력이 넉넉하지 못한 후발 주자는 생존 단계를 넘지 못할 확률이 높다.

나는 이를 해외에서 유명한 Micro SaaS 컨셉과 비슷하다고 본다. 유자랩스는 Micro SaaS를 주요 제품 유형로 하며 비즈니스를 이어가고 있다. 이 측면에서 앞서 이 모델로 비즈니스를 성공시킨 저자의 스토리가 큰 경험치가 됐다.

가능하면 저자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싶다.

한줄평

  • 시니어 엔지니어의 창업 성공 스토리

인상 깊은 문구

  • 한 번 실패하고 나서 ‘거창한 것은 쓸데없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싸가지 없는 회사가 되었다. 없는 4가지는 비전, 사훈, 투자, 차입이다.
  • 내 지인들이 우리 회사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어떻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크기가 작으냐?’와 ‘그럼에도 망하지 않는 게 신기하다’이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내가 그릇이 작아서 그렇다’와 ‘적게 먹고 적게 싸면 오래 산다’이다.
  • 직업은 크게 ‘가’자가 붙는 것고 ‘자’자가 붙는 두 가지가 있다. ‘가’는 한자로 집 가자가 말해주듯이 직업이 가문을 이룰 정도에 이른 사람으로 사업가 또는 자본가라고 하며, 증여와 상속을 통해 부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한자로 놈 자를 쓰는 ‘자’는 직업이 가문을 이루지 못하고 개인의 밥벌이 정도인 사람으로 기술자 또는 노동자라고 하며 부가 상속되지 않는다. 제법 성공한 기술자는 판사, 검사, 세무사, 의사, 약사처럼 ‘사’로 부르는데 당대에는 조금 편하게 살아가지만 그의 자손은 다시 맨땅에서 시작해야 한다.
  •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슘페터는 기업가가 혁신을 선도하는 사람이라면 사업가는 혁신을 모방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기업가와 사업가를 구분했다.
  • 기업의 핵심 가치는 기업 구성원의 공통된 가치관이자 신념이며 존재 이유이다. 이 핵심 가치관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기업은 영혼이 있는 기업과 영혼이 없는 기업으로 나뉜다. 영혼이 있는 기업은 전 사원이 주체의식을 가지고 기업의 영혼을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해서 공동의 발전을 이루어나가는데, 영혼이 없는 기업은 그 회사 사람들에게 단지 개개인의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일 뿐이다.
  • 평범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재산이 자기보다 10배 많으면 헐뜯고, 100배 많으면 두려워하고, 1,000배 많으면 그의 심부름을 하고, 10,000배가 많으면 그의 종이 되는데, 이것이 만물의 이치다.
  • 결론은 더 많은 돈을 더 적은 이자로 빌릴 수 있다면 투자한 돈에 비해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빌릴 수 있는 돈의 크기와 이자율은 그 사람의 재산, 직장, 신용 등으로 결정된다. 이것을 한마디로 그 사람의 능력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지렛대의 크기도 정해진다.
  • 경험상 우리나라에서 기업용 소프트웨어 제품 하나를 만들어 꾸준히 팔리기까지는 출시 후 대개 5년 이상 걸린다. 여기에 드는 개발 비용은 최소 5억 원 이상이고, 일반적으로 10억 원 이상이 든다. 작은 업체가 감당하기에는 큰 액수다. 돈이 있다고 해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외주 개발 용역에 눈을 돌리고 솔루션을 쌓게 된다.
  • 프로 프로그래머는 상업용 소프트웨어 제품을 정해진 기한 내에 개발 인력에 상관없이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 아마추어는 어떤 일에 재미와 즐거움이 사라지면 그만두지만 프로는 하기 싫은 일도 끝까지 해낸다는 차이가 있다. 프로그래머의 경우에도 어떤 제약이나 난관이 있어도 원하는 제품을 끝까지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프로’가 붙었다.
  • 프로 프로그래머는 수많은 실전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대부분 경력 10년은 넘어야 한다.
  • 오너프로그래머는 말하자면 CEO, CFO, CTO 등 온갖 C 레벨 임원의 역할을 다하고, 거기에다가 모든 개발 과정의 일을 다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말이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창업 초기에나 가능한 얘기고 사업이 안정되면 당연히 프로그래머보다는 오너의 역할을 수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 우리나라에서 순수한 소프트웨어 단일 제품으로 한 회사에서 연간 1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이 그리 흔치 않다.
  • 프로그래머 딱지를 떼지 못한 오너는 생존에는 유리하나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는 데에는 제약이 된다.
  • 결론적으로 오너프로그래머보다는 프로그래머를 잘 이해하는 오너가 되어야 직원 20명을 넘어 작은 회사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이상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로 비상할 수 있다.
  • 한번은 두 직원이 이틀을 꼬박 입력한 데이터를 내가 한 순간의 실수로 백업도 없이 모두 날려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 사업계획서가 정부 지원을 받는 심사를 통과할 수준이 아니라면 창업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정부에서 창업에 쏟아붓는 돈이 얼만데 자기 돈 써서 창업하는 건 실력이 없는 사람이나 하는 거라는 얘기도 한다.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그런 식이면 세상에 창업할 사람 몇 없다. 그리고 하려는 사업이 남이 알아봐주지 않더라도 정말 확신이 있다면 자기 돈을 투자할 수 있어야 올바른 자세다. 혹시나 눈먼 나랏돈 좀 먹어볼까 하고 덤빈다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 차라리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골치 아픈 사업계획서는 작성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대신에 나 스스로 다짐하고 마음에 새길 창업 출사표를 적어 보는 건 어떨까? A4 용지 한 장짜리 창업 점검표라고 할까?
  • 여러 연구와 창업자들의 경험에 의하면 직원 10명 정도일 때 스트레스가 가장 심하다가 20명이 넘어서면 줄어든다고 한다.
  • 할 수 있다면 투자받지도 말고 남에게 빌리지도 말고 자기 돈도 들지 않는 창업이면 더 좋다. 좀 오래 걸리더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 말이다. 이른바 무자본 창업이다.
  • 무슨일이든 성과를 내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성과로 연결시키려는 끊임없는 노력, 즉 실행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 현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무폼에서 아이템을 찾는 게 좋다. 폼이 안 나도 괜찮고 아는 사람이 보면 살짝 폼 나는 아이템이 좋다. 획기적으로 이른바 블루오션은 생각하지 말고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레드오션에서 비교적 유행에 덜 민감한 아이템을 찾는다.
  • 대박이나 중박 아이템은 오너프로그래머의 힘으로 만들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대부분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고 성공 확률도 높지 않다. 설령 능력이 탁월하고 운도 따라주어 개발에 성공했다 해도 안정 궤도에 오르는 데 난관이 많으며, 시장이 크다는 것이 노출되면 큰 기업에서 뛰어들 수도 있다. 그래서 소박 아이템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 소박 아이템 중에서 오너프로그래머 혼자 또는 그의 영향력 밑에 있는 조직의 힘으로 80%(100%면 더욱 좋다) 이상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을 찾는다. 나머지 20%도 외부 인맥의 충분한 조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오너프로그래머의 힘이 미칠 수 있는 아이템이어야 한다.
  • 개발하고 유지하는 데 오너프로그래머 외에 3명 정도로 충분하다고 보면 수익률이 그리 나쁘지 않은 소박 아이템이다. ‘애걔, 이게 무슨 아이템이야? 이런 껌값 벌자고 창업하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소박한 아이템이 좋다. 잘만 구축하면 프로그래머로서 하고픈 일 하면서 웬만한 큰 기업의 임원급 연봉을 평생 벌 수 있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 좋은 생각이 떠올라 쓸 만한 아이템이다 싶어 알아보면 이미 남들이 하고 있는 것이 많다. 이럴 바에야 아예 처음부터 남이 하는 것 중에서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는 게 빠르다.
  • 전국의 모든 할인 판매 정보를 알려주는 사이트가 있다고 하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할인 정보만 알려주는 사이트를 만들거나, 폐업하여 헐값에 처분하는 정보만 전문으로 알려주는 사이트를 만드는 식이다.
  • 소박 아이템의 생존 기간은 3년 이내가 좋고 최대 5년을 넘지 않는 게 좋다. 너무 길면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생존이 어려워지고 결국 실패한다.
  • 특히 오너프로그래머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사업 모델로 ‘10-10 사업’이 있다. 10-10 사업은 단일 아이템이 안정 단계에 들어섰을 때 다음의 조건을 가진다. 연간 순매출 10억 원 내외, 직원 10명 이내
  • 10-10 사업의 아이템이 생산(개발)과 유통(판매)의 안정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생존에 성공하기까지, 보통 약 5년의 기간과 약 5억 원 이상의 자금이 드는 아이템이 좋다. 그래야 자금력이 넉넉하지 못한 후발 주자는 생존 단계를 넘지 못할 확률이 높다.
  • 어떤 사업이든 그렇겠지만, 10-10 사업은 인건비의 비중이 높으므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어떻게 적시에 사람을 뽑고 필요한 일에 적절히 투입하느냐가 자금 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 전문가에게 맡겨도 다 알아서 해주지 않는다.
  • 기장 대리의 가장 큰 문제는 재무 상태나 손익을 비롯한 주요 경영 지표를 실시간으로 확인해볼 수 없다는 점이다. 한 달 이상의 자료를 모아서 처리하니까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자금 계획이라도 세우려 하면 따로 엑셀 자료를 만들어야 하고 금전출납부 같은 것도 기록하고, 창업자가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여러 가지 자료를 만들어 쓰게 된다.
  • 10-10 사업 초기에는 영업과 마케팅에 돈을 쓰지 말 것을 권고한다. 얼마가 팔리든 돈이 들지 않는 방법으로 하는 게 좋다. 직접 판매만으로 초기에 살아남을 수는 없다.
  • 현실에서 윈윈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그래서 위탁 판매도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 나는 지금까지 유지보수 계약을 맺어본 적이 별로 없다.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유지보수 계약 없이 지내다가 일터지면 무작정 해결해 달라는 식이었다. 결국 이유 없이 욕먹고 관계가 나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 나는 제품의 소스코드를 제공하고, 이를 이용하여 외주 개발을 수행하는 업체로부터 5년 정도 기술료를 받기도 했다.
  • 우리 회사는 현재 외주 개발 용역은 하지 않고 자체 상품만 팔거나 서비스하고 있다. 하지만 창업하고 10년간은 자체 상품이 있었음에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외주 개발로 먹고 살았다.
  • 완성된 제품이 있다면 이것을 해당 프로젝트의 필요 소프트웨어로 포함시킬 수 있다.
  • 우리 제품을 이미 만들어져 있는 구입해야 하는 품목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처음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 번 인정받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 당연한 관행으로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 나는 우리 몫이 5억 원이 넘는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수많은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손해본 적이 거의 없는 데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 이런 쪽 일을 하다 보면 다음 프로제그에서 보상하겠다는 말로 이번에는 싸게 해달라고 하거나, ‘전략적 제휴’나 장기적으로 볼 때 ‘win-win’이라는 등으로 공짜나 단가를 낮출 것을 제의받을 때가 있다. 나는 이런 요구에 한 번도 응해본 적이 없다. 시야가 좁아서인지 몰라도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 시장에서 ‘다음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예전에 어느 회사에서 20억 원 프로젝트를 100원에 덤핑 입찰하여 수주하는 걸 보았다. 후속으로 2차, 3차가 이어질 프로젝트라서 처음은 공짜로 해주더라도 결국 실적도 쌓고 이득이라는 논리였다. 결과가 궁금해 눈여겨 보았는데 2년쯤 후에 2차 프로젝트는 그 회사가 아닌 다른 업체가 수주했다.
  • 나는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 금액을 투입 인원으로 나누어 보통 1MM당 1천 2백만 원에 미치지 못하면 참여하지 않았다.
  • 10-10 사업에 뛰어들어 생존에 성공하고, 20년 이상 꾸준히 모을 수 있는 돈은 20억 원 내지 30억 원 정도다. 적어도 100억 원 이상의 재산이 있어야 세간의 부자 대열에 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10-10 사업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 차라리 다들 웅크리고 있을 때 작게나마 내 사업을 일군다면 평생직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 잘되도 문제, 안되도 문제인 지금 회사는 접고 진짜 당신 회사를 만들어라. 그동안 들인 동과 시간은 비싼 수업료를 낸 셈치고 이제부터 진짜 창업을 해라. 첫째는 투자받지 마라. 그런 아무도 이해 못할 사업계획서로는 더군다나 요즘같이 어려운 시절에는 어림없다. 빌리지도 마라. 당신이 기획한 사업이 진짜 된다고 확신한다면 당신 집이라도 팔아서 해라. 남의 돈으로 사업하려는 얄팍한 생각을 버려라. 둘째는 친정에 찾아가지 마라. 대기업 출신이 창업하면 친정인 전 직장에 찾아가 일거리를 구걸한다. 거기에 당신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이 대감댁 머슴으로 있다가 머슴살이 벗고 주인 행세하려는 당신을 옛 동료 머슴이 반길 거라 믿지 마라. 도와주지 않는다. 그들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서 부를 때까지 먼저 찾아가지 마라. 이제부터 한 사람씩 정성들여 사업 인맥을 새로 만들어라. 그렇게 창업해서 5년을 버티고 살아남아 나를 찾아오면 그때는 내가 투자해주마.
  • 가장 우울했던 건 후배하고 둘이서만 다시 창업하기로 하고, 첫 창업에 같이했던 친구에게는 취업을 권유한 일이다. 친구는 같이 하고 싶어했으나 내가 가진 돈으로 두 사람을 먹여 살릴 자신이 없었다. 아쉽지만 친구는 곧바로 외국계 회사에 들어가서 얼마 뒤 호주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했다.
  • 1999년, 20세기말 현재의 회사를 창업할 때 사업계획서와 같은 그럴듯한 어떤 문서도 만들지 않았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회사가 생존할 수 있을 지만 생각했다. 그것도 멀리 볼 것 없이 5년만 버티자 했다. 필요하면 간단한 메모만 하고 의미 없고 터무니없는 숫자놀음에 부로가한 문서 만드는데 시간을 쓰지 않았다. 특히 비전이나 미션, 사훈, 핵심가치, 미래 목표 선언 등과 같은 폼 나는 의식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회사를 만들 것인지 두 가지만 정했다.
  • 첫째는 월급 밀리지 않는 회사, 즉 임금 체불 없는 회사다. 둘째는 스트레스 없는 회사, 즉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회사다.
  • 다른 사장님한테 일반 직원을 뽑는 좋은 방안에 대해 들은 게 있다. 그건 바로 4년제 대학 졸업자를 뽑지 않는 것이다. 보통 중소기업의 4년제 대졸자 연봉으로 전문대나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자 중에 학과에서 1, 2등 하는 사람을 뽑으라는 것이다.
  • 사장은 사업을 지속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굴러가게 해야 한다. 벌어들이는 게 가장 중요하고, 모자라면 자기 돈을 투입하든 투자를 받든 은행이나 남한테 빌리든 지속해야 한다. 어찌되었든 돈이 있으면 회사는 굴러간다. 그래서 사장은 ‘돈을 책임지는 자리’다.
  • 일시적인 사업부진이나 신규 아이템 개발 등을 감안하여 2년 이상 매출이 거의 없어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유보금이 쌓일 때까지가 창업자의 열정페이 기간이라 생각했다.
  •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면 성공은 운에 맡기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