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갈림길에 서 있다. 선택을 해야 하는데, 미루고 있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이른 것인지 늦은 것인지 모르겠다. 딱히 선택의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미룸을 선택한 것일지도.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새집은 하자가 많아 부동산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요구했다. 대부분 하자를 수리해줬지만, 온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런대로 살만했다.
몇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중 하나는 싱크대였다. 굉장히 낡았고, 악취도 났다. 막히거나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많은 하자 중 우선순위가 밀렸다. 불편해도 그냥저냥 무시했다.
그러던 중 싱크대 호스가 끊어졌다. 음식물 찌꺼기가 새어 나왔고, 굉장히 불쾌했다. 경비실에서는 노후된 거라 교체 시기가 된 거라 했고, 부동산에 요구해 교체 의사를 물었다. 그리곤 곧장 업체에서 방문해 싱크대 전체를 교체해줬다. 그렇게 낡은 싱크대는 새것이 됐다.
작은 흉이 커졌고, 이에 마음이 흔들렸다. 딱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도 쉽게 흉은 해결이 됐고, 심지어 길이 됐다. 과연 이 상황에 내가 노력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길이 흉이고, 흉이 길이다.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게 있고, 노력하지 않아도 얻는 게 있다.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디에 두어도 상관없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얼마 전 만난 친구에게 요즘 고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딱히 고민이 없다고 한다. 그럴 것 같았던 친구이기에, 그럴 것 같았다 말했다. 그러니 그 친구가 말한다.
해결될 것은 해결될 것이니 고민하지 않고, 해결되지 않을 것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니 고민할 필요가 없다.
뭔 도인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저 그러하니 그러하다고 하니. 아등바등 고민하는 내 모습이 처량해 보이더라.
얼마 전 만난 또 다른 친구는 그저 나와 함께해서 좋다고 하더라. 이런저런 고민이 있다만, 그냥 나와 함께하는 게 좋다고 한다. 다 큰 어른이 그냥 내가 좋다 하니, 그 또한 좋더라.
외로움에 새로운 취미를 들였다. 그 소식을 여기저기 알리니 또 다른 친구들이 내 취미를 돕더라. 외롭다 했더니, 외롭지 않게 모여든다. 이 또한 흉이 길인 것 아닌가.
그래서 그렇고, 그러니 그런 거라면. 뭔가 지금까지 방향과 다른 곳으로 가보고 싶단 생각도 든다. 길이 흉이고, 흉이 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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