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4일 일요일 오후 4시. 부산과 수원의 역사적인 FA컵 결승전이 열렸다. 장소는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 무려 1천여명의 수원 서포터즈가 KTX 열차를 타고 원정 응원을 떠날만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결승전!

또한 작년에 이어 또다시 결승에 오른 부산이었기에 (작년 리그컵 준우승) 이번에는 기필코 우승컵을 들어올리겠다는 열정을 보여주었던 황선홍 감독. 후반기 엄청난 도약을 보여주던 윤성효 감독. 그들의 대결은 KBS 지상파에서 생중계되었다.

전반전. 이름값 하는 수원.

전반 1분. 수원은 김두현의 인터셉트 후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결승전의 열기를 끌어올렸다. 이어 15분 유기적인 패스플레이와 24분 또 다시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을 보여준 김두현에 힘입어 전반 26분 염기훈의 날렵한 중거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만든다.

염기훈이 왜 국가대표로 뽑혀야 하는지. 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염기훈이 또 다시 국가대표에 뽑혀야 하는지. 왜 허정무가 염기훈을 뽑을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증명했다. (염기훈 포스팅 ‘월드컵의 내가 아니다. 염기훈‘)

이어 전반 43분 홍순학의 정직한 중거리 슈팅, 46분 김두현의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까지. 부산의 수비에 완벽히 막힌 신영록의 뒤에서 수원의 2선은 폭발했다.

신영록, 염기훈, 김두현, 황재원 등 국가대표 급 선수진으로 구성된 수원. 말 그대로 ‘이름 값’ 했다.
 
‘수원’ 이라는 K리그 명문 구단의 ‘이름 값’ 또한.

후반전. 부산의 열정 < 수원의 노련함.

전반 4분. 부산은 좋은 패스플레이 후 마무리까지 이어가며 후반전 자신들의 총 공세를 알렸다. 이어 교체된 한상운이 왼쪽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를 보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한상운은 FA컵 4경기 연속골을 뽑으며 부산의 결승행을 이끈 장본인이다.

또한 부산은 전반 12분, 24분, 31분, 35분, 39분, 44분 등. 날카로운 플레이로 수원을 압도적으로 밀어 붙였다. 반면 수원은 후반 20분 신영록을 빼고 호세모따를 투입하며 불안한 1점차 리드를 더욱 벌리려 애썼다. 21분 투입되자마자 호세모따가 오버헤드킥을 날리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여전히 분위기는 부산의 몫이였다.

하지만 수원은 특유의 노련함으로 부산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는 곽희주(29), 황재원(29), 최성환(29), 리웨이펑(32), 문민귀(29), 김두현(28), 홍순학(27) 등 경험 많은 선수들로 스쿼드를 꾸린 윤성효 감독의 전술이 적중한 것이다.

하지만 황선홍의 부산은 열정 하나만으로 밀어 붙였다. 아쉽게도 우승컵은 열정만으로 거머쥘 수는 없었다.

결국 황선홍 감독의 부산은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스스로 무너진 부산. 그 중심엔 박진섭이…

1977년생. 33살의 노장. 국가대표 출신의 박진섭은 울산, 성남을 거쳐 2009년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올해 부산의 주장을 맡게 되면서 황선홍 감독의 기대를 받았다.

노장 풀백. 당연히 언론의 관심을 받는 위치가 아니다. 하지만 박진섭은 결승전에서 한 팀의 당당한 주장이였다. 감독은 선수단 전체를 다스리는 카리스마를 지녀야 하고 자신의 전술을 선수들에게 맡겨야 한다.

하지만 주장은 경기장 위에서 감독의 전술을 선수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감독의 전술을 완벽히 읽고 선수들을 다스려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주장은 그런 역할을 맡아야 한다. 오늘 만큼은 주장 박진섭이 날라다녔어야 했다.

박진섭은 오늘 주장으로써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0-1로 끌려가던 후반. 종료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부산의 선수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주 심하게… 노련한 수원 수비진의 파울 유도에 너무도 쉽게 넘어갔고 또한 그런 상황에서 너무도 쉽게 흥분했다. 흥분한 선수는 경기에 집중할 수 없다. 계속해서 조금 전의 플레이가 생각나고 보복성 파울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정성훈(31)마저 팔꿈치 가격으로 경고를 받는 등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선수들 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장 박진섭은 오버래핑시 파울을 범한 뒤 흥분하여 심판에게 대들며 수비 위치로 늦게 돌아오는 등 황선홍 감독을 애타게 했다.

하지만 오늘 부산의 패인은 노장의 흔들림 뿐만이 아니다.

스타의 부재.

부산에는 스타가 없다. ‘용병’ 박희도가 있고 국가대표로 승선했던 정성훈이 있긴 하지만 오늘 그들의 날카로움은 볼 수 없었다. 한가지 의아한 점은 발빠른 이승현을 투입하지 않은 점이다.

오늘 부산은 날카로움이 없었다. 후반 39분 청소년 대표 출신 김창수가 자신의 존재를 알렸지만 너무 늦었다. 수원의 이상호와 염기훈 같이 수비진을 흔들어 줄 선수가 없었다. 이승현이 그럴 능력이 있는 선수인데 투입하지 않은 점이 너무 아쉽다.

수원은 전반에 김두현과 염기훈이 날카로움을 보여주었고 결국 염기훈이 마무리를 지었다. 부산은 결정을 지을 만한 스타가 없었다. 즉, 위기 상황에서 ‘믿을맨’ 이 없던 것이다.

물론 부산의 전력이 심하게 부족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팀 전체가 포기할 때 실력으로 팀 전체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선수. 말 없이 동료들의 신임을 얻는 선수. 그래! 저 선수와 함께라면… 이라는 생각을 갖게하는 선수. 그런 스타가 없는 것이다.

2009년 떠난 안정환이 생각나는 경기였다. 만약 안정환이 있었다면… 안정환 같은 스타가 있었다면 오늘의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부산은 돈이 필요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준우승. 우승의 문턱에서 황선홍 감독은 연속해서 좌절한다. 황선홍은 잘했다. 리그에서는 두자리 수 순위를 유지하곤 했지만 토너먼트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며 감독으로써 희망을 보였다.

많은 축구 팬들은 오늘의 경기에서 부산의 우승을 응원했다. 수원은 명문 구단이다. 오늘 져도 내일이 있고 내일 져도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실력과 선수와 팬이 있다.

하지만 부산은 이번 기회를 놓쳤으니 언제 또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젊은 황선홍 감독이 너무도 쉽게 무너져 버릴 수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지금 부산은 돈을 써야 할 시기이다. 스타 선수를 데려와야 한다. 또한 황선홍 감독을 조금 더 믿어 주었으면 한다. 황선홍 감독은 정성훈 선수와 박희도 선수를 앞세워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산이 결승전에 오른 것은 황선홍의 전술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승자는 수원이다. 수원은 1천여명의 원정 팬들에게 보답을 했고 이로써 이번시즌도 체면을 살렸다. 수원은 우승컵을 거머쥘 만하다.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축구의 또 다른 묘미를 보여준 좋은 결승전이었다고 생각한다.

Dragon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