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말부터 꾸준히 Sleep Cycle 앱으로 수면을 측정했다. 어느새 1443일을 측정한 귀중한 자료다.

지난 11월 5일, 번아웃임을 인지하고 휴식에 돌입했다. 커피를 끊은 지 한 달이 넘었고, 수면시간을 6~7시간에서 1시간 늘린 7~8시간으로 바꿨다. Sleep Cycle 기준 수면 품질이 60% 초반에서 70% 초반으로 약 10% 올랐다. 1시간 수면이 굉장한 것을 바꿨다.

잦은 한숨이 줄었다. 어떤 행위를 마친 뒤 나도 모르게 내쉬는 한숨은 주변 사람도 지치게 했다. 몽롱하던 머릿속이 정리된 기분이고, 이제 새로운 일을 구상하는데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는다. 번아웃 종료를 선언한다.

생각해보니, 번아웃 중에도 나는 계속 회사 일을 했고, 글을 쓰고, STEW를 운영했다. 내가 바꾼 거라곤 3가지다.

11월 초부터 12월 초까지, 수면 품질이 10% 올랐다.

내가 적용한 번아웃 솔루션 세 가지

첫째, 커피를 끊었다. 카페인은 각성제로 뇌를 쉬지 못하게 한다. 커피를 끊고 효과를 봤다는 지인 이야기에 나도 따라 했다. 물론, 녹차 등 카페인도 끊었다. 처음 며칠은 처음 겪는 두통을 만났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었는데, 평소 두통이 없었기에 그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라고 생각했다. 두통이 끝나고 우연히 커피를 끊으면 두통이 있을 수 있다는 글을 봤다.

둘째, 수면 시간을 늘렸다. 1시간 늘렸을 뿐이지만, 앱 기준 수면 품질이 10% 올랐다. 얼마나 믿을만한 데이터인진 모르지만, 1,400여 일을 기록한 데이터를 봤을 땐 꽤 괜찮은 데이터다. 내 경우에는 아침 운동을 포기하며 잠을 늘였다. 덕분에 뱃살은 조금 얻었다.

셋째, 개인 약속을 줄였다. 나는 원래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즐겨 마시지 않는다. 롤 등 인기 게임도 즐기지 않는 탓에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나는 꽤 스펙터클하게 산다. 친구들과 소소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날 때도 있었지만, 다음날 피로를 생각해 약속을 잡지 않았다. 새로운 기회를 위한 미팅도 줄였다.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만 진행했다.

세 가지 솔루션을 삶에 적용했지만, 사실 가장 효과가 컸던 것은 따로 있다. 더 잘하려는 마음을 버린 것이다.

솔루션 위의 솔루션…현재 바라보기

나는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손에 쥐고 있다. 회사에서도 본업인 개발 외 개발팀 문화, 고객 관점 리포트, 홍보 등 여러 곳에 신경을 썼다. 누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그러고 싶었다.

내가 만드는 팀 STEW에서도 늘 새로운 것을 위해 신경을 썼다. 넥스트를 생각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스스로 압박했다. 지금 잘 되는 것은 당연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생각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내가 마주한 여러 관계에도 신경을 썼다.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들의 어려움이나, 혹시 모를 가능성을 위해 인맥을 챙기려 했다. 생일이나 이벤트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 했고, 내게 감사를 표하는 것에 만족을 느꼈다.

하지만 가장 신경 쓰인 것은 내 커리어였다. 사회생활을 개발자로 시작해 창업자를 거쳐, 기자 그리고 다시 개발자로 돌아오기까지 내가 원하던 스펙터클을 얻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내 능력이었기보단 ‘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다시 기회를 얻으려면 내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강하게 눌렀다.

결과적으로 내 뇌는 수백 명을 팔로 한 SNS처럼 쉬지 않고 푸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가 언제나 피로했던 이유다.

지난 한 달간은 이 푸시 메시지를 껐다. 욕심을 버렸고, 새로움을 떠올리지 않았으며, 관계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는 욕심도 내려놨다. 커리어 고민도 내려놨다. 그렇다면 난 다 포기한 걸까?

욕심을 부린다고 원하는 걸 얻는 게 아니다.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파악했고, 막연한 욕심은 내려놨다. 그러다 얻을 것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더 최악임을 인정했다. 새로움은 현재가 있어야 올 수 있다. 현재를 단단히 하는 데 집중했다. 내가 애쓰지 않아도 내 주변엔 충분히 좋은 사람이 많았다. 애써야만 얻을 수 있는 관계는 잠시 접었다. 마지막으로 커리어,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능력을 키웠다. 고민 대신 글을 읽고, 코드를 짰다.

고민을 행동으로 극복했다.

새 키보드를 샀다. 사랑스런 해피해킹.

비로소 보이는 내가 원하는 것

욕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더 높은 곳에 가야만, 더 뛰어난 사람이 돼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능한 더 많은 것을 취하려 했다. 그렇게 그 무엇도 취하지 못했다.

온갖 푸시를 끄자, 심심해졌다. 심심해지자 나는 심심해지지 않으려 무언가를 원했다. 욕심을 버린다고 삶의 의지가 꺾이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나는 지속해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새로움, 욕심, 가능성, 걱정 등을 의식해서 밀어뒀다. 그렇게 생긴 공간에 부끄러워 숨었던 내 본능이 올라왔다. 더 나은, 더 진취적인, 더 생산적인 따위의 압박감에 눌렸던 내 본능. 그래, 내가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소박했다. 유튜브로 펭수 영상을 봤고, 내가 좋아하는 Football Manager 게임을 했다. 축구 경기를 보며 치맥을 먹었다. 4년 만에 아이폰을 바꿨고, 언젠가 구매하려 했던 새 키보드를 샀다. 소박한 생활 속에서 안정을 찾았다.

내게 마음의 안정을 준 것은 엄청난 인맥도, 엄청난 가능성도, 엄청난 능력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뭐가 더 중요한 것이겠는가?

마무리

나를 온전히 이해했다 생각할 때면, 번아웃이 찾아오곤 한다. 어쩌면 번아웃은 내가 나를 봐 달라는 외침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그 무엇보다 내 삶에서 필요한 시기이다.

번아웃 시기를 마쳤지만, 언제든 다시 번아웃이 올 것이다. 나는 또 내 본능을 잊을 것이고, 그런 내게 내가 다시 말을 걸 것이다.

이번 번아웃의 가장 큰 수확은, 더 이상 번아웃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