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이라면 2010 남아공 월드컵의 열기를 기억할 것이다.

캡틴 박지성의 이름값, 드라마틱한 박주영, 안타까운 이동국. 하지만 이들만큼 기자들이 관심을 많이 갖았던 선수가 있다. 또한 네티즌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선수.

팬으로써 입에 담을 수 없는 별명을 지어대며 대한민국 모든 축구팬에게 비난을 받은 선수.


<포효하는 염기훈><ⓒ 수원블루윙즈 공식홈페이지 김현정 >

월드컵만으로 계속해서 비난받기엔 너무도 아까운 선수 염기훈이다.

방금 K리그 16라운드 인천과 수원의 경기를 보았습니다. 결과는 2-3 수원의 승리였구요. 염기훈의 활약에 너무도 소름이 끼쳐 참지 못하고 포스팅을 합니다.

없어도 되는 선수? 아니 없어야 되는 선수?


<월드컵에서 염기훈><ⓒ대한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축구팬이라면 분명히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확인했을 것이다. TV로 보았을테고 붉은악마 등을 비롯한 정말 열정적인 팬들은 직접 남아공에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이번 남아공에서 허정무 전 감독은 염기훈을 계속해서 기용했다. 물론 결과부터 말하자면 염기훈을 기용한 것은 실패 사례로 꼽히는 분위기다. 특히 아르헨티나전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날린 염기훈에게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고 그 결과 우루과이전에는 선발로 나오지 못했다.

허정무 감독이 염기훈을 데리고간 가장 큰 이유는 왼발잡이이기 때문이다. 그냥 왼발잡이가 아니라 코너킥, 프리킥에 능한. 즉, 우리나라에선 왼발을 가장 잘 다루는 선수 중 한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왼발을 잘찬다 쳐도 그것만 보고 어찌 선수를 데려가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대표팀은 그당시 곽태휘, 이정수를 타깃으로 하는 코너킥, 프리킥 상황에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남아공으로 가기 직전 곽태휘가 부상으로 안타깝게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그렇다 해도 이정수가 있기에 좋은 키커가 있다면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득점을 할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우리 대표팀은 오른발을 잘 쓰는 선수가 두명 있다. 바로 기성용과 박주영이다. 기성용은 그리스전 이정수의 헤딩골을 프리킥으로 도왔고 박주영은 나이지리아전 프리킥 골을 뽑아냈다.

하지만 오른발만 가지고는 반쪽 밖에 되지 않았다. 때문에 박지성과 이청용이 있는데 왜 또 윙어를 데려가느냐는 비난에도 허정무 감독은 염기훈을 데려간 것이다. 세트플레이에서의 장점을 극대화 하기 위하여.

허정무 감독의 선수 발굴 능력은 꽤나 탁월한 편이다. 박지성을 올림픽 대표에 처음 뽑은게 허정무이고 이근호, 곽태휘를 계속해서 기용하며 스타로 만든 것도 허정무다. 또한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골키퍼의 교체는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에 남긴 가장 큰 흔적 중 하나이다.

안타깝게도 염기훈은 월드컵 4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때문에 허정무 감독은 없어도 되는 선수를 왜 넣느냐는 비난에서 없어야 되는 선수를 왜 자꾸 기용하느냐며 팬들의 항의를 들었고 결국 염기훈의 기용은 허정무 감독의 가장 큰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돌파하는 염기훈><ⓒ 수원블루윙즈 공식홈페이지>

사실 월드컵에서 염기훈이 받은 비난 정도면 어지간한 연예인은 대인기피증 등의 이유를 들며 분명히 방송을 몇년간 접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축구 선수들은 이정도 비난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자동문이라 불리었던 조용형을 보자. 그 많은 비난을 이겨내고 해외진출을 하지 않았는가?! 고등학생 신분으로 K리그는 느리다는 발언을 했다가 완전히 땅속으로 묻히는가 했던 경남의 윤빛가람은 어느새 땅속을 뚫고 올라와 대표팀에 승선했다. 이는 어지간한 정신력이 버텨주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염기훈 또한 그런 정신력으로 소속팀으로 돌아와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내고 있다. 현재 6경기 6도움 1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염기훈. 6경기 7공격포인트(6경기 연속 공격포인트) 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염기훈이 갑자기 잘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갑자기 잘하는게 아니다!

염기훈이 갑자기 잘하는 이유는 첫째로 갑자기 잘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바로 그거다 축구팬의 머릿속에는 염기훈의 앞뒤가 없다. 단지 월드컵만 있을 뿐. 축구를 볼때는 한 경기, 찬스 한번만 봐서는 안된다. 월드컵에서 찬스를 놓친 이동국이 말했듯 공격수에겐 세번의 찬스를 줘야한다. 세번의 찬스에 한번 골을 성공시키면 꽤나 좋은 공격수라고 말할 수 있다.

염기훈은 2006년도 데뷔하여 2009년도 까지 총 91경기 출장 21득점 12도움을 한 선수다. 2006년 데뷔해 신인상을 탔던, K리그에선 알아주는 측면 자원이였다. 최근에는 스트라이커로 뛰고 있지만 어쨌든 염기훈은 원래 잘하는 선수였다.

월드컵에서 보여주지 못해 너무도 아쉽지만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측면 돌파와 이어지는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는 분명 국가대표에 승선할만한 가치가 있는 능력이다. 조금전 인천과의 경기에서는 열장면이 넘는 좋은 장면을 만들어 냈다. 안재준의 자살골을 만들어냈고 이현진의 결승골을 도왔다. 특히, 경기 내내 좌우를 오가며 인천 수비진을 흔들었고 백지훈과 몇차례 주고받는 2:1 패스는 인천 수비진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앞으로의 수원은 백지훈, 염기훈 두 선수가 공격을 이끄는 장면이 많이 나올듯 싶다.

왼발만 잘 쓰는게 아니다!

염기훈은 원래가 윙어였다. 때문에 윙어 특유의 스피드와 개인기. 그리고 날카로운 크로스를 지니고 있는게 염기훈이다. 오늘 인천 경기에서만 다섯차례 넘는 날카로운 크로스를 선보였다. 특히, 65분 왼쪽 측면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자 신영록이 다이빙 헤딩 슛을 한 장면은 송유걸 골키퍼의 선방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명장면으로 꼽힐만한 장면이였다.

오늘 수원은 중원의 백지훈, 조원희를 거쳐 염기훈에게 연결되는 공격라인이 무조건 통하다시피 하였다. 후반 황재원의 부상으로 조원희가 오른쪽 풀백으로 내려가자 백지훈은 전방의 염기훈과 중원을 장악했다.

오늘처럼 월드컵에서 해주었다면 대표팀은 충분히 8강행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월드컵의 부담감도 있을 것이고 시차 적응 등 선수가 제 기량을 발휘하기에는 너무도 먼 원정길이였다는 것은 알지만 오늘 염기훈의 활약을 보고 있자니 월드컵이 너무도 아쉬웠다.

동정심을 호소하는게 아니다!

몇일 전 요즘 뜨는 축구 기자인 김현회 기자의 칼럼에 많은 비난이 달렸다. 김현회 기자의 칼럼에 그토록 많은 비난이 달린건 처음봤다. 칼럼의 주제는 염기훈이였고 김현회 기자 또한 최근 염기훈의 비상에 참지 못하고 키보드를 두들겼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그랬으니깐.

분명 비난의 댓글을 단 팬들은 염기훈의 최근 경기를 보지 않은 팬들일 것이다. 만일 오늘 경기를 봤다면 결코 그런 댓글들을 달 수 없다.

어쨌든 윤성효 감독 취임 후 수원은 전반기 승점을 이미 뛰어넘었다. 짧게나마 본 수원은 너무도 달라졌다. 일단 가장 큰 성과는 패턴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기존 타깃형 스트라이커를 이용한 공중볼 다툼을 중용하던 전술에서 염기훈을 필두로 백지훈이 받치며 패스 플레이로 풀어나가는 전술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염기훈은 현 수원 공격진의 핵이다. 물론 신영록도 돌아왔고 이현진이 새로운 득점라인으로 뜨고 있지만 어쨌든 현재 염기훈의 무게감은 못된다. 필자는 결코 염기훈이 지금 조금 잘하니 월드컵에서 못한거 잊어버리고 응원해달라는 주장이 아니다.

지금 염기훈이 멋진 활약을 보여주니 이 활약을 함께 감상 해보자는 것이다. 축구 팬이라면 멋진 개인기 장면이라던가 기가막힌 프리킥 골을 본다면 함께 나누며 감탄하고 싶어하는게 아닌가?

지금의 염기훈. 이게 원래 염기훈이다.

Dragon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