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사회에 나온지 만 7년이 됐다. 그동안 3가지 메인 직업을 가졌고,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늘 다음 스테이지로 향하고자 달렸고, 때론 높은 허들을 만나 주춤 했지만, 언제나처럼 다음으로 향했다 자부한다. 헌데 이번 번아웃은 좀처럼 나아지지가 않는다. 꽤나 높은 허들이다.
현재의 포지션은 꽤나 역동적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접점이 많으니 다양한 곳의 이야기가 비동기로 이뤄진다. 그럼에도 새로운 연결을 찾아 나서야 한다. 모두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해야 한다.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이다.
나는 늘 모호한 포지션에서 살았다. 학교도 그랬고, 군대도 그랬고, 프로젝트도 그랬고, 친구관계 심지어 연애도 그랬다. 늘 어중간한 영역에 끼어 모호한 포지션에서 살았다. 명확함을 추구하는 내 성격 덕분에 모호한 영역에서 나는 늘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쩌면 프로그래밍을 할 때 가장 편안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명확하니까.
성장은 편안한 곳에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편안함은 스스로를 머무르게 해 나태함을 만들고, 나태함은 도태됨을 뜻한다 생각했다. 성장을 위해선 늘 역동적인 전장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장이 곧 내 인생의 이유라 생각했다.
신입 개발자 시절, 늘 무언가에 쫒기는 스스로가 싫었다. 무엇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노력만큼 얻지 못한다 생각했다. 늘 빠르게 일처리 하면서도 여유를 갖는 선배를 보며, ‘여유는 실력에서 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실력이 없는 나는 여유를 즐길 자격이 없다 생각했다.
언젠가 읽었던 글이 기억난다. ‘사자가 동물의 왕인 이유는 적진 한 가운데서도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라고’ 실력이 있으니 무방비 상태에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라고. 실력이 없는 나는 누구에게도 무방비 상태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늘 견제하고, 숨기고, 달렸다. 누구나 내게는 적이었다.
당연히 모두를 적으로 생각하면 피곤하다. 집에만 오면 널부러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슬픈 것은 내가 널부러질 수 있는 이유가 집이 편안해서가 아닌 것이다. 널부러질 수 있는 이유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내 널부러짐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할 자신이 없다.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할 자신이 없다.
지금 내 일은 거절이 일상이다. 그럼에도 늘 제안해야 하고, 들어갈 틈을 찾아야 하고, 어떻게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면, 다음 틈을 찾아야 한다. 한 템포 끊어갔으면 하는데, 그 여유를 즐길 자신이 없다. 타인에게만 보이지 않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도 싫더라. 내가 널부러진 모습이.
스스로가 생각하는 ‘만족’이란 잣대가 뭔지 모르겠다. 현재에 살면서도 미래를 쳐다보는 성격이 지금으로 나를 이끌었지만, 가끔은 현재에 머무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마치 호리병 속 아몬드를 잔뜩 웅켜쥐고 손이 빠지지 않는다며 울먹이는 아이같다. 무엇이 자존심이고 무엇이 아집인지 구분할 수 없는 성인이 돼 버렸다.
때로는 욕심 없는 사람이 가장 부럽다. 욕심을 놓은 뒤 언젠가 후회할 스스로가 두려워 놓지도 못하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포지션은 어쩌면 매번 스스로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절이 일상인 요즘. 내 욕심을, 내 두려움을, 내 미련함을, 내 아집을 거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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