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톨라니 투자총서 두 번째 시리즈. <투자는 심리게임이다>를 읽었다. 좋은 부분이 너무도 많았지만 안 좋은 부분부터 이야기 하고 시작해 보자.
첫 번째 시리즈인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를 너무 재밌게 봤는데, 번역 품질이 너무 달라 이상했다. 아쉽지만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 번역가가 다르다. 편집자는 적혀있지 않은데 편집자도 다른 게 아닌가 싶다. 띄어쓰기 오류를 비롯해 어색한 문장이 너무 많다. 이는 번역은 물론 편집에서도 실수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서평]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나는 굳이 양장본을 사진 않는다. 애초에 책에 왕창 형광펜을 칠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가볍고 막 다룰 수 있는 책이 좋다. 그럼에도 구버전이 아닌 2023년에 나온 신버전 책을 구매한 건 구버전보다 번역이 보완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굳이 비싼 신버전을 살 필요가 없었다.
굳이 양장본으로 보관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50% 저렴한 구버전을 추천한다.
돈이란 무엇인가
조지 버나드 쇼가 말했다.
“돈이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이 많은 것은 좋다.”
최근 내 관심사는 온통 ‘돈을 버는 것’이다. 내가 마주하는 모든 곳에서 ‘돈돈돈’ 하고 있다. 얼마 전 부모님과 대화하면서 ‘특정 지점까지는 돈돈돈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보며 내가 생각하는 특정 지점은 정확히 얼마일까 싶었다.
얼마 전 유튜브 ‘지식한입’ 채널에 ‘대한민국 평균’을 주제로 한 영상이 올라왔다. 소득구간별 비율을 보면 무려 57%가 월 급여 300만 원 미만이다. 흔히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 숨만 쉬어도 월 100만 원은 우습게 나간다. 여기에 식대 등을 포함하면 월 200만 원이 사라진다. 만약 학자금을 비롯한 대출 등이 있다면 어떨까? 아마 저축은 꿈꾸지 못할 것이다. 즉,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삶이 대한민국의 절반 이상이다.
만약 가정을 꾸렸다면 외벌이는 어려울 것이다. 부모 모두가 일을 하니 체력적으로 힘들고 저축도 못 하는 재정 상황에 미래를 위해 자기투자를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당장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생존을 위해 그저 모든 것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유지’ 한다는 것 자체가 그저 힘겨운 사투다.
사실 월 400만 원, 500만 원을 번다 해도 그다지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2023년 연봉 실수령액 표를 보면 꿈의 연봉으로 불렸던 1억 원의 실수령액은 650만 원이 안 된다. 때문에 요즘 연봉 1억 원을 넘기는 직장인을 보고 꿈의 연봉이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연봉 1억 원은 대단한 고소득이다. 하지만 1억 원을 받는 게 삶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 주변의 연봉 1억 원 이상 고소득자들은 모든 것이 행복하진 않다더라고.
다시 내가 생각하는 ‘특정 지점까지 돈돈돈’ 해야 하는.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특정 지점’을 말해보자면. 흔히 파이어족이라 불리는 이들처럼 자본 수익만으로 삶이 가능한 수준을 말하고 싶다.
최근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3.5%다. 앞서 서울에서 자취를 하려면 월 2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2인 기준 400만 원을 잡아보자. 여기서 자녀는 제외다. 월 400만 원을 사용하려면 연 4800만 원. 그럼 원금이 얼마가 필요할까?
챗GPT 계산에 따르면 약 13억 7천만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순수 자본이 약 13억 7천만 원이 있으면 하루 벌어 하루 먹지 않아도 된다는 최소한의 자본이 나온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는 인당 월 200만 원을 사용한다는 가정이다. 그리고 여전히 월세에 살고 있으며 숨만 쉰다는 가정이다. 물론 기준금리 3.5%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낼 자신이 있다면 금액이 달라질 수 있겠다.
약 13억 7천만 원이 있으면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 솔직히 나는 이 돈이 있어도 일을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때는 돈에 연연하지 않고 좀 더 내가 원하는 방향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좀 더 가치를 느끼는 방향으로 말이다.
나는 저 돈이 있어도 일을 할 테니 일단 우리 가족만큼은 일을 안 하게 해주고 싶다. 때문에 나는 13억 7천만 원에 달하는 최소 비용을 달성하기까지는 ‘돈돈돈’ 할 계획이다.
물론 위 계획에서 이자 세금을 제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대략적인 계산이다. 이 계산을 보고 커뮤니티 스튜 친구는 ‘베트남에서 살면 되죠’라는 답을 했다. 그러네. 13억 7천만 원이 모이면 서울보다 물가가 낮은 곳에서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물론 서울에서 차도 사고 집도 사려면 순자산 20억 원은 있어야겠다.
35세에 경제적 자유를 얻은 아재는
이전 시리즈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워렌 버핏보다 코스톨라니의 삶에 더 매력을 느낀다. 아니 그 정도 돈을 벌었는데 버핏은 왜 맥모닝을 먹는가. 나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른 다섯의 나이에 이미 나의 첫 번째 경력은 끝났으며, 그때 나는 내 자본만 가지고도 수입이 들어왔기 때문에 은퇴를 결정할 수 있었다.
코스톨라니는 35세에 자본 이자만으로 삶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래서 은퇴를 했단다. 세상에 파이어족이라며 너도나도 자본 소득만으로 살아가겠다는 유행이 퍼진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코스톨라니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이를 현실화 했구나.
하지만 그 뒤로 우울증에 빠진 코스톨라니는 의사와 상담을 통해 ‘글을 쓰세요’라는 처방을 받았다. 덕분에 이 책을 비롯해 많은 글에서 코스톨라니를 만날 수 있다.
프랑스어로 내가 쓴 첫 번째 책은 7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이것이 증권시장이다>라는 제목으로 1960년 헨리 고버트에서 발간되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난 뒤 <캐피탈>잡지의 칼럼니스트를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나는 울적해본 적이 없다.
이미 내 나이에 은퇴를 했다는 지점에서 참 부럽다.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거머쥔 버핏의 삶은 딱히 부럽지 않은 걸 보면 나는 코스톨라니의 삶에 큰 매력을 느낀 게 틀림없다. 코스톨라니의 화법은 브레이크가 없다. 학교에서 교수를 앉혀놓고 까는 그에게 고작 글쓰기 따위가 두려움을 줄리 없다. 심지어 이미 은퇴도 한 마당에 뭐가 무서울까.
한편으로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하고서도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는 게 우리네 삶이란 거다. 결국 이런 사람들이 ‘돈이 전부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거다. 즉, 돈이 있으니까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거다.
35세 이후의 코스톨라니 삶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나는 35세 이전의 코스톨라니 삶의 지점에 있는 것 같다. 일단은 경제적 자유를 위해 달려야 하는 시점이랄까. 그런데 나는 코스톨라니처럼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심지어 이 정도 투자자의 안목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35세에 내 삶을 만드는 아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느끼게 해준 지점들이 있긴 하다.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 유치한 것들은 제외하면 많진 않지만 그래도 굵직한 몇몇 지점이 꽤 떠오른다. 시간이 흘러 2023년, 잠깐 떠올려도 올해는 누군가에게 ‘부럽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해다. 아직 절반밖에 안 지났는데 말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2023년은 내가 커리어를 시작하고 가장 수입이 적은 해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며 부럽다고 한다. 자신보다 수입이 훨씬 적은 나를 보며 그들은 왜 그런 말을 건낼까.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24시간 먼저 옳다면, 그는 그 24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어리석다고 여겨진다.”
재밌는 것은 그들 중 몇몇은 한때 내 상황을 보고 불쌍하다 말했던 사람이다. 내 행보를 비웃고 때로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부럽다니 이걸 내가 뿌듯해해야 하나 싶다.
사람은 꼭 부자일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자유로워야 한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내 자유로움을 가장 부러워하는 것 같다. 양껏 손에 쥐고서 주저앉은 그들이 빈손으로 뛰어다니는 나를 보며 부럽다 하는 게 정말 부러운 게 맞나. 결국 나는 그들이 양껏 손에 쥔 무언가를 찾아 뛰어다니는 건데 말이다.
나는 곧 85세가 된다. 늙은이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도 나의 인생을 다시 한번 결산해 볼 이유는 충분히 있다. 잔고가 얼마나 될까? 만족할 수 있는 정도인가? ‘예스’일 수도 있고, ‘노’일 수도 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노’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야망은 오직 물질적, 지적 독립을 성취하는 것이었으므로 ‘예스’이기도 하다. 나는 이 야망을 이미 달성했으며 지금 이렇게 즐기고 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좋아. 이렇게 살아야 돼. 그 누구의 주인도 아니고, 그 누구의 하인도 아니다!” 이것이 나의 성공인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들과 내가 서로 그대로라는 것이다. 삶에 관한 가치관을 유지하며 누군가는 ‘부러워하는 삶’을 누군가는 ‘부러운 삶’을 살게 됐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도 부러움이 성립되지 않는 걸 보면 나는 썩 내 삶이 마음에 드는 것 같다.
따라서 투자자가 군중 히스테리를 떨쳐 버리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을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믿지 말아야 하며 조금은 건방진 면이 있어야 한다. “너희들은 모두 바보야. 나 혼자만 뭔가를 알고 있지.” 또는 “어쨌든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약간의 교육이 필요하다. 그것들이 결코 훌륭한 특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 그리고 부득이한 조건 하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주 유익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증권시장에서 단지 소수만이 성공적으로 투자를 하게 되며, 대다수는 손실을 보는 쪽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결국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삶도, 앞으로 걸어갈 삶도 역시 자신이다. 걸어온 삶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에게 현재는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앞으로 걸어갈 삶을 설계하는 이에게 미래의 삶은 기대될 수밖에 없다. 그게 건방진 거라면 나는 앞으로도 쭉 건방지련다.
어쩌면 투자처럼 인생도 심리게임 아닐까?
한줄평
- 투자처럼 인생도 심리게임 아닐까?
인상 깊은 문구
-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야. 하지만 70년 동안의 경험이 나를 비관론자로 만들었어. 투자자로서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정확한 암시라고 여겨지는 것들과 정반대로 행동함으로써 자주 돈을 벌었거든.
- 오랫동안 숙고를 거듭한 끝에 나는 비로소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개인 또는 대중의 보다 깊은 심리적 동기들 및 특정 상황에서의 그들의 반응은 사실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개개인이 내리는 결정들이 모였을 때 그 합계의 강도, 즉 대중의 심리적 반응의 강도와 시점들을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경험 있는 증권인이라면 실제로 ‘예측’ 할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빗나갈 수도 있는 ‘예감’ 또는 ‘추측’은 할 수 있다.
- 어느 특정 사건이나 금융 정보, 또는 풍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때로는 나 자신도 추측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 “돈이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이 많은 것은 좋다.”
- 어떤 부자는 아름다운 것들과 비싼 것들을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것들을 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살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 어떤 사람은 현금을 만질 때면 언제나 성적인 욕구를 느낀다고 내게 고백했다.
- 나는 가끔 지식인, 교수, 또는 의사가 일 년 내내 이어지는 긴장과 연구의 대가로 받는 연봉의 액수가 증권인들의 일순간의 착각이나 실수로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 남자는 돈을 벌기 위해 창조되었고, 여자는 돈을 보유하기 위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만약 남자가 부지런한 새이고 여자가 구두쇠라면 가족 전체를 위해서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다.
- 투자자는 절대로 빚으로 투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빚을 지지 않은 사람만이 자신의 생각에 온전히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 단기적으로 볼 때 경제 상황은 증권 시세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 다만 몇몇 투자자들이 보다 먼 미래의 문을 열 때에만 금리와 산업부문 경기가 영향을 미친다. 주식 매수자가 매도자보다 더 강한 물질적 또는 심리적 압박상태에 있을 때만 시세는 상승한다. 그리고 증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증시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응이 증시에 영향을 준다.
- 그러나 장기적 추세를 놓고 볼 때, 심리학은 이제 더 이상 그렇게까지 근본적인 요소가 되지 못한다. IBM, 지멘스, 다임러. 벤츠 등은 만약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기본적인 요인들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처럼 주가가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 기업들의 주가를 그렇게 높인 것은 결코 심리학이 아니다.
- 일반적 경기변동과 특히 산업부문 경기가 주식의 질과 미래 수익을 결정한다. 따라서 한 산업부문의 발전을 몇 년 앞당겨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는 사람은 큰 돈을 벌 수 있다.
- 내 견해로는 다음의 두 가지 기본요소들이 증권시장의 시세를 결정짓는다. 그 나머지 요소들은 결국 이 두 가지 요소에 포함된다. 1. 통화량과 신주 발행 2. 심리적 요소(낙관주의 또는 비관주의 등), 즉 미래에 대한 예측
- 모든 사건들, 모든 정치적∙금융적 수단들이 의미가 있든 없든, 결국 그것들은 이 두 가지 사실에 접하게 된다. 나는 이 이론을 이미 오래 전에 다음과 같이 하나의 수학 공식으로 나타냈었다. 이것은 증권시장의 시세를 결정하는 기본 원칙이다. “시세=돈+심리”
- 사람들은 결과에서 원인을 추론하는 귀납적 추론 없이도 이러한 판단으로부터 앞으로의 전개상황을 끌어낼 수 있다. 왜냐하면 ‘저평가 또는 고평가’라는 판단은 결코 산술적인 것이 아니고 심리적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 상대적 평가이기 때문이다.
- 이처럼 경직되고 일방적인 견해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는 적자를 보는 회사의 경우 가장 잘 보여준다. 우리는 애널리스트들을 따라서 가치평가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가격. 이윤 비율’의 이론에 따르자면 그 가치는 항상 마이너스 상태에 놓여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지는 주식은 적자상태에 있는 회사의 주식이다. 적자상태일 때 주식을 샀는데 그 회사가 회복세에 들어서게 되면 시세는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 사람들은 결국 목표에 도달하지만 그렇다고 꼭 반듯한 길 위로 가는 것은 아니라네!
- 자네는 원유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그랬지. 얼마 전에 원유주식을 산 국제투자자들 역시 주가가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 주식들이 어떤 기본적인 요소의 변화로 오르기 시작하는 순간, 수많은 투자자들은 어서 빨리 효과를 보기 위해 보유한 주식들을 곧바로 처분하려 하지. 그 결과 그 주식들은 아주 적게 오르거나 또는 전혀 유르지 않게 되어 버린다네. 자신들이 기대했던 가격 상승이 나타나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안달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또 팔아버리게 된다네.
- 그러니까 매도와 매수가 단지 근본적인 이유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일세.
- 시세의 변화는 특정한 사실에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
- 내 생각으로는 개별 주식이 아니라 전체 증권시장의 시세를 놓고 볼 때, 더욱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근본적인 사실보다는 환상과 돈이라는 요소이다.
- 한 주식의 정확한 가치와 시세가 절대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주식의 시세는 언제나 그 가치보다 높거나 또는 낮다. 그렇다면 주식의 가치라는 것이 정확히 측정 가능한 것인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한 제조회사의 정확한 가치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증권시장이 존재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하나의 주식값을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 우리는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로 증권시장 추세를 예측하고자 하는 모든 실험들이 좌절을 맛보는 것이다.
- 전체 증권시장의 추세를 평가하고자 할 때도 이러한 것들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마지막으로 증권시장의 분위기는 증권시장 참여자들간의 타협에 달려 있다. 그들의 과반수가 낙관적인지 또는 비관적인지에 대한 타협 말이다.
- 하여튼 분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선 꼭 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 분위기라는 것은 미래보다는 현재와 더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나하면 이론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조차도 마지막 순간에는 군중심리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각을 바꾸고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라고 말하며 군중의 물결에 휩쓸리고 만다. 그러나 이번에도 자신의 결정이 최선책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 따라서 투자자가 군중 히스테리를 떨쳐 버리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을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믿지 말아야 하며 조금은 건방진 면이 있어야 한다. “너희들은 모두 바보야. 나 혼자만 뭔가를 알고 있지.” 또는 “어쨌든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약간의 교육이 필요하다. 그것들이 결코 훌륭한 특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 그리고 부득이한 조건 하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주 유익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증권시장에서 단지 소수만이 성공적으로 투자를 하게 되며, 대다수는 손실을 보는 쪽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 존 트레인은 만약 누군가 투자에서 확실하게 성공하려면,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잘못되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금융계에서 어떤 일치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성공적인 투자자들은 즉시 그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은 잘못되기 마련이므로 이제 그 성공적인 투자자에게는 사냥감이 풍부한 사냥터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 한 단계에서 언제 다른 단계로 넘어갈 것인가를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은 없다.
- 자신의 생애에서 적어도 두 번의 파산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투자자’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 컴퓨터가 실행하는 모든 것들은 금융매니저들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사람들이 부패한 생선을 먹어 탈이 났다면, 그걸 먹는 데 사용된 포크나 나이프를 탓할 것인가?
- 그들은 생각할 줄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학에서 경제학만을 공부했지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 투자자로서 70여 년을 보낸 오늘날 나는 장기투자자이며,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순환과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그리고 장기적 관점 하에서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울게 되었다. 프로그램 매매자는 이윤을 낼 수도 있으며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결국에 가서는 파산하게 된다.
- 시카코에서 거래되고 있는 지수 계약은 일정한 컴퓨터 신호에 따라 수십 억이 팔린다. 이때 일초라도 심사숙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이 컴퓨터를 통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사람들이 밤새 잠 못 이루어 가며 무엇을 할 것인가 골똘하게 생각하고 심사숙고한 다음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히스테릭하게 일어난다.
- 지수선물거래의 개선에 대한 나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지수계약의 선물거래를 아예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뉴욕 증권시장이 열리고 있는 동안에 진행되는 거래를 금지시키자는 것이다. 증권시장이 마감된 후에, 그리고 모든 공급과 수요가 충족된 시점에서 하루에 하나의 고정된 시세로만 거래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이는 하나의 고정된 가격에 매일 단 두 번만 모든 주문을 교환하는 영국 금시장의 경우와 똑같은 것이다.
- 컴퓨터 프로그램 매매인도 빠른 매수와 매도를 수행할 수는 있다. 그러나 투자자는 사색가여야 하며, 미친 군중과 컴퓨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 전쟁 전에 독일에서도 매우 성공적으로 공연되었던 줄 로멩의 작품 속의 돌팔이 의사 코노크 박사의 말과 같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실제로는 환자이다. 단지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 하늘의 별이라도 따온다고 허풍을 떨어대는 ‘도사’들 중에 한동안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던 로버트 프렉터가 있었다. 30대 중반에 불과했던 그는 벌써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증권시장의 도사로 여겨졌었다. 1월에 한 기상학자가 8월 15일에는 섭씨 25.4도가 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온도를 예언하는 것처럼, 1987년 8월에 그는 1988년에는 다우존스 지수가 정확히 3,686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그러다가 10월에 대폭락이 발발하자 그는 즉시 다우존스지수를 1,300포인트에, 그리고 몇 주 지난 뒤에는 400포인트에 갖다 맞추었다. 증권시장은 1000포인트만큼 오르거나 또는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예언은 어리석음의 극치와 다름없다. 오늘날과 같이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도사’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다.
- 사람들은 이러한 모든 점괘와 예언들에 대해 아주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또한 이들에 대해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중들은 빠르게 잊어버린다. 투자금액이 크면 클수록 더욱 더 진지하게 거기에 빠져들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곳에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예언가들을 원하며, 누군가가 한 두 번 정확한 예측을 하면 그를 증권시장의 도사로 떠받든다.
- 진정한 프로는 단기간의 변동, 아랍의 독재자, 또는 실업률 따위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1925년 이래 보통 주식들의 주가가 수백배로 뛰었으며 우량주들의 시세는 그보다 25배가 더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 베르트 브레히트는 “배부르고 나서야 윤리도 있다”라고 말했었다.
- 내가 그 채권을 살 때는 명목가치의 극히 일부, 즉 싼 가격이었지만, 이제 되돌려 받게 될 총액은 음악을 위해 뭔가 유용한 일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되면 내 이름도 어딘가에 황금으로 조각될 수 있을 것이고, 재단의 이자로 코스톨라니 상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백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매년 작곡가 한 명에게 코스톨라니 상이 수여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얼마나 고귀한 감정인가?
- 어느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경솔한 말 한마디를 하면 크고 작은 수천 명의 투자자들이 ‘사기’위해서 또는 ‘팔기’위해서 달려 나간다. 심사숙고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 1977년 여름, 어느 누구도 이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블루멘탈 미국 재무부 장관과 헬무트 슈미트 독일 수상은 같은 시기에, 앞으로 경제적인 이유로 달러화를 평가절하하는 데 자신들은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함으로써 그들은 이미 개입한 셈이 되었고 더욱이 그것은 완전히 경제적 동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러 시세의 급락에 일조했다.
- 그러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이러한 바보 같은 또는 성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수많은 방법들과 가능성들이 있다. 따라서 정치가, 재무부 장관 또는 중앙은행장은 언제나 투자자 출신을 자문역으로 두어야 하며, 그럴 경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큰 성공을 거둔 투자자는 대부분 총명하고 정치적인 분석가이며, 뛰어난 군중심리학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는 정치적 사건들과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응이라는 두 개의 퀴즈를 동시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 증권시장에 행복감이 넘쳐나는 시기에 사람들은 별장에서의 저녁식사 중에, 칵테일 파티 중에, 또는 의회의 대기실 등 모든 곳에서 오로지 투자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정보들을 교환하고 특정 주식에 대해 분석한다. 이 때 ‘증권인’이라는 직업은 존경의 대상이된다. 그러나 주식투자가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는 바로 그 시점에서 투자자들은 무조건 하차해야 한다.
- 그 좋은 예가 1961년과 1962년 겨울이다. 월스트리트는 날마다 축제가 열렸고 투자자들은 아름다운 삶을 구가했다. 당시 미국에서 증권시장의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사랆들은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 많은 것을 공부할 필요가 없었으며, 단지 오늘 사서 내일 팔거나, 내일 사서 모레 팔기만 하면 되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새로 발행된 따끈따끈한 주식을 붙잡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행운이었다.
- 미국 증시에서 자본금을 날렸던 은행들은 이 모든 것이 순전히 심리적 요인에 의한 현상이라는 것과, 이러한 버블장세가 끝나는 시점을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계속해서 대중들에게 매수할 것을 권했다. 물론 그들의 의도는 자신들의 재고창고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세미나에서 언제난 이 말을 반복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은행의 충고를 따르지 마시오.”
- 그런데 더 이상한 사람들은 황소와 곰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론적 게임가처럼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부류는 단지 생각만으로만 매수하고 매도한다. 또 머릿속에서만 이윤과 손실을 장부에 기입한다. 그러나 지갑은 아무것도 느끼질 못한다. 이러한 게임가들은 이론상으로 이윤을 얻게 되면 행복감을 느낀다.
- 경건한 유대인들도 다음 속담을 통해 그런 생각을 드러냈다. “기왕에 돼지고기를 먹으려면 기름이 흠뻑 든 부위를 먹어라.”
- 모든 증권시장 동물들은 다음 두 가지 기본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1. 비관론자, 고리대금업자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 구두쇠형, 모든 위장병 환자 및 늘 기분이 나쁜 사람들. 이들은 타고난 하락장 투자자이다. 2. 낙관론자, 방탕자, 모험가, 낭비가 및 경솔한 사람, 하늘에서만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는 낭만적인 사람들. 이들은 언제나 상승장 투자자이다.
- 투자자는 사실 서민적인 직업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천직이다. 투자자는 국민총생산에 기부를 하지 않을지라도 그의 경제적 권리를 가지고 자유로운 자본주의 체제에 몸을 바치고 있다.
- 투자자는 얼마나 특이한 인간인가. 아무리 보잘것없는 철학자라도 태어날 때부터 철학자로 태어나듯이 투자자 또한 타고나는 것이다. 투자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히다가는 또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며, 그와 만나는 모든 것들의 이득과 손실을 따진다. 그는 이로부터 내린 결론을 토대로 해서 어떤 주식을 사거나 판다. 만약 그의 생각이 맞았다면 그는 증권시장으로부터 돈을 받는다. 만약 틀렸다면 그는 증권시장에 벌금을 낸다. 이것이 투자의 본질이다.
- 투자자는 거의 무의식중에 더하고, 빼고, 또한 곱한다. 작가 한 사람이 그의 작품에 대해서 여러 번 원고를 고쳐 쓰듯이, 또 음악가 한 사람이 그의 음악에 온 심혈을 기울이듯이, 투자자는 그의 생각에 공을 들인다.
- 투자자는 결코 백과사전이어서는 안 된다. 그는 다만 올바른 순간들의 관련을 알아야 하며 이에 맞춰 행동을 해야 한다. 절대로 많은 것을 알아서는 안 된다. 단지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으면 된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투자자는 거의 대부분 미신을 믿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투자자는 모든 관점에서 논리적이고 그것을 기초로 가장 확실한 논증을 위한 논제를 세우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투자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냥 “운이 없었어.”라고 말해버린다. 그렇게 실패를 불운으로 돌릴 때 그는 이미 미신을 믿는 사람이 된다.
- 좋은 행운이 나와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그것으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낸다. 얼마 전에 에쎈의 세무사협회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택시를 잡아 쾰른 공항으로 출발하려고 했을 때 참석자 한 사람이 나를 그의 차로 모시겠다고 제안했다. 그것이 첫 번째 행운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나는 좌석을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륙 20분 전에 우연히 매진된 비행기에서 자리 하나를 얻었다. 바로 두 번째 행운이었다.
- 세 번째 행운도 곧 뒤따라왔다. 내 옆자리에는 놀랍게도 아주 친한 친구 칼 찜머리가 앉아 있었다. 그도 뮌헨으로 가는 중이었다. 우리들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그는 방금 전에 어떤 특정 주식을 샀다고 말했다. 그것으로 나의 행운은 절정에 다다랐다. 나는 뮌헨에는 거의 가지 못하기 때문에, 나도 역시 그 친구를 통해서 무수주문을 냈다. 지금까지도 그 주식은 내게 행운을 가져다주고 있다.
- 우상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변하지만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반드시 신봉자들을 실망시킨다는 것이다.
- 분석이 학문적일수록 그는 더욱 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 대중들은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뭔가 있는 것이 틀림없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차트를 통해 사람들은 어제가 어떠했고, 오늘이 어떠한지를 가장 확실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다. 오늘까지의 가격곡선은 진실이다. 그러나 내일부터의 가격곡선을 앞당겨 그린다면 그것은 좋건 나쁘건 허구이다.
- 나는 증권시장에서 차트 분석가로 성공을 했다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한 그들은 모두 망했다. 옛날 빈에서 사람들은 차트사들을 “젊어서는 증권인, 늙어서는 거지”라고 불렀다.
- 나는 절대로 실제 시세를 관찰하지 않는다. 나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에는 흥미를 갖지 않는다.
- 미친 사람에게 최대의 불행은 그가 게임시작과 동시에 돈을 땄을 때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는 그는 미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 도스토예프스키가 그의 소설 <노름꾼>에서 표현했던 것처럼 “룰렛게임에서 만약 구슬이 이미 열 번이나 빨간색에 머물러 있다면, 그 누구도 더 이상 빨간색에 걸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증권시장 참여자들도 ‘검은색 시리즈’가 오래 지속되면 ‘검은색 시리즈’는 당연히 끝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그들이 생각하기에 시세가 오랫동안 너무 높았다면 반드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통계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개별적 경우에 즉 증권시장의 아주 특정한 날에 사람들은 시세가 오를 것이다, 또는 내릴 것이다 라고 결코 사전에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만약 사람이 한 번 증권시장 전염병에 감염되면 그렇게 간단하게 치유되지 않는다. 만약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시세가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고, 만약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시세가 올라갈까 봐 불안해한다.
- 나는 그 날 매수했다가 같은 날 매도하는 거래인, 즉 증권시장의 기생충들을 경멸한다. 그러나 그들 없이는 어떠한 증권시장도 증권시장이 아니라는 것과 증권시장 없이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은 결코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바이다.
- 그렇기 때문에 또한 나는 확신한다. 사람들이 주식과 증시에 대해 정말 역겨움을 느끼게 만드는 증시침체 후에는 언제나 과거의 모든 상처들을 다 잊어버리고 불나방같이 증권시장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시간들이 반드시 다시 온다는 것을.
- 나는 ‘건달’과 증권시장에 빠진 사람들을,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다음날 뉘우침 속에서 다시는 단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는 술주정뱅이와 비교한다.
- 나는 60년 전에 자주 만났던 그리고 그때 이미 80세였던 주식투자자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증권시장에 대해 그가 아는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종합하였으며,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그 말을 들려준다. “모든 증권 시세는 단지 주식들이 바보들보다 많은지, 또는 바보들이 주식들보다 많은지에 달려 있다.”
- “박식한 바보가 알지 못하는 바보보다 더 큰 바보”
-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24시간 먼저 옳다면, 그는 그 24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어리석다고 여겨진다.”
- 사람들은 증권시장에서 이익을 볼 수 있으며,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 더욱이 물론 부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로 증권게임을 통해 연간소득을 고정된 몇 퍼센트로 확정지을 수는 없다.
- 나는 곧 85세가 된다. 늙은이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도 나의 인생을 다시 한 번 결산해볼 이유는 충분히 있다. 잔고가 얼마나 될까? 만족할 수 있는 정도인가? ‘예스’일 수도 있고, ‘노’일 수도 있다!
-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노’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야망은 오직 물질적, 지적 독립을 성취하는 것이었으므로 ‘예스’이기도 하다. 나는 이 야망을 이미 달성했으며 지금 이렇게 즐기고 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좋아. 이렇게 살아야 돼. 그 누구의 주인도 아니고, 그 누구의 하인도 아니다!” 이것이 나의 성공인 것이다.
- 서른 다섯의 나이에 이미 나의 첫 번째 경력은 끝났으며, 그때 나는 내 자본만 가지고도 수입이 들어왔기 때문에 은퇴를 결정할 수 있었다.
- 프랑스어로 내가 쓴 첫 번째 책은 7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이것이 증권시장이다>라는 제목으로 1960년 헨리 고버트에서 발간되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난 뒤 <캐피탈>잡지의 칼럼니스트를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나는 울적해본 적이 없다.
- 나는 참석자들에게 증권시장의 정보를 절대로 주지 않는다. 정보란 털어버릴 주식을 갖고 있거나 또는 수수료를 챙기기를 원하는 은행과 브로커들의 일이다. 그러나 내 ‘학생’들이 나를 통해 생각하고, 분석하고, 끝까지 자기의 생각을 고수하게 되는 법을 배운다고 나는 확신한다. 더욱이 그들 자신도 성공적이라는 것을 그들이 나에게 보낸 감사편지에서 나는 알 수 있다.
- 기자들은 내가 그 많은 시간을 커피숍에서 버내는 것에 가끔 놀라움을 표시한다.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증권시장이든 커피숍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나의 본업에 전념할 수 있다.” 결국 생각은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이다!
-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는 유대인들을 악독한 투기꾼이라고 몰아붙였다. 정말 그들 중에 일부분은 투기꾼들이었다. 유대인들은 돈 거래에 종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다른 직업들이 열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은 고리대금을 금지한다. 따라서 그들은 가끔 이 부분에서 거의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 작가로서 받는 10퍼센트의 인세가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열 배의 돈을 내고 내 생각에 동참하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이 나는 반갑다. 존경을 받게 된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없이 스스로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준다.
- 사람은 꼭 부자일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자유로워야 한다.
- 물질적 자유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리고 특히 나를 좋아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괴테를 인용할 수 있는 정신적 자유를 나에게 주었다. 이러한 경우에 많은 질투자를 갖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것에 나는 괘념치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한 사람보다는 차라리 나를 질투하는 천 명의 사람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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