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주제로 풀어낸 다큐멘터리 <명견만리>. 독서모임에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종종 읽고 있다. 넓고 다양한 주제를 다뤄 흥미를 끌기에는 적절한 책이다. 다만 지면의 한계인지 얕은 깊이로 다소 불편한 결론을 마주하는 맥락을 보자면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나 싶다.

하지만 이 불편함이 이 시리즈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6장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는 꽤 충격적이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이를 풀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놀랐고, 나는 이 부분을 국가에 전혀 기대하지 않는 점도 놀랍더라. 국가 단위로 확장돼야 하는 주제라면 언제쯤 우리나라에서 만나볼 수 있을까 싶었다.

9장과 10장은 꽤 흥미로웠다. 나는 IT인으로 오프라인과 다소 멀다 보니 평소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에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9장과 10장을 보는 시야를 다른 장에서도 느낀 독자라면 이 책이 꽤 재밌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이 책을 여는 1부 불평등은 내게 불편할 따름이었다. 내가 불편했던 1부와 흥미로웠던 2부, 4부를 나눠본다.

불평등

내가 불편하게 느꼈던 1부 ‘불평등’이다. 공존을 위해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건 알겠다만 기득권이 아닌 내 입장에서 불편했다면 이 책을 결코 잘 풀어냈다고 할 수 없겠다.

“국회의장이 본회의장에서 두드리는 망치와 목수가 못을 박으면서 두드리는 망치의 가치가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아이들도 꿈을 다양하게 가질 수 있다.”

이해가 되는가? 국회의장의 망치와 목수의 망치가 어떻게 같은 가치가 될 수 있을까? 이 책 1장에 나온 이야기다.

국회의장의 망치가 결정할 수 있는 일과 책임져야 하는 일. 그리고 목수가 결정할 수 있는 일과 책임져야 하는 일. 이 둘의 가치를 같다고 말하는 피디의 근거는 뭘까? 20년 넘게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는 피디가 편집 시 누르는 엔터키의 가치와 20년 넘게 편의점 알바를 한 알바생이 누르는 엔터키의 가치가 같을까?

장 사이사이 담당 피디 의견이 들어있는데 불편했던 ‘교육’ 이야기도 1장과 같은 피다가 썼더라.

“한편 서울대학교는 2005년에, 출신 고등학교 교장의 추천을 받은 학생을 대상으로 수능 점수가 다소 낮더라도 발전 가능성을 보고 선발하는 지역균형선발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2005년 당시 특수목적고 학생 중심의 특기자 전형, 지역균형선발 전형 그리고 일반 전형으로 입학한 서울대 학생들의 4년간 학점을 추적 조사했는데, 입학했을 때는 지역균형선발 전형 학생들이 특기자 전형 학생들보다 학점이 낮았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시점부터 역전하기 시작해 졸업할 무렵에는 지역균형선발 전형 학생들이 가장 높은 학점을 유지했다. 이 자료가 의미하는 바는 수능 시험에서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는 성적을 냈다고 해서 그 학생들만이 진짜 인재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잠시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서울대 출신이라고 한다. 그 사람을 두고 ‘그래요? 몇 학점 받았어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는가? 수석이나 차석 등 의미있는 결과를 낸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학점을 묻지는 않는다.

서울대는 서울대다.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는 학벌이다. 수능이라는 전쟁에서 서울대라는 타이틀은 ‘승리’를 뜻하며, 그 이후는 또 다른 전쟁이다. 즉, 서울대생은 이미 한 번 승리한 병사다.

서울대 학사를 졸업하고 석사, 박사를 밟는다면 학점은 중요하겠다. 하지만 학사 이후 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한다면 학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학점이 높다는 것 따위가 모든 분야에 잣대가 되지 않는다. 피디는 이걸 몰랐을까?

수능 점수가 인재를 결정짓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2년 뒤 학점이 역전되는 현상으로 인재를 논한다. 애초에 문단 자체에 오류가 있는 것이다. 입학 점수로 인재를 논할 수 없는데, 이후 학점으로 인재를 논하는 근거는 또 무엇인가? 수능 점수는 안 되고, 학점은 되나?

학점이 높으면 승리자인가? 학점이 높은 사람이 승리자라는 근거는 어디있나? 그 뒤의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는데 인재를 논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을 짚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풀어내는 방식 자체에 공감하지 않는다. 수능 점수가 다소 낮더라도 발전 가능성을 보고 선발했다면 그 이유가 고작 ‘높은 학점’인가? 학점을 더 잘 받을 수 있으니 수능 점수가 낮아도 뽑아야 한다는 것인가?

그래서 졸업 후 두 그룹의 행보는 어떻게 됐는가? 학점이 낮아서 성공 가도를 달리지 못했나? 학점이 높아서 성공 가도를 달렸나? 인생에 수능 점수는 중요한 건 아닌데, 학점은 중요했던 것인가? 피디가 말하고 싶은 게 학점을 잘 받자인가?

그런데 더 충격적인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은 무려 3장의 제목이다. 바로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면 같은 돈을 받자”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심지어 3장을 쓴 피디는 다른 피디다. 명견만리 팀 자체가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듯싶다. 3장을 쓴 피디는 김밥천국과 신라호텔 레스토랑에서 같은 값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같은 시간을 할애해 만든 음식에 관해 말이다.

3장을 쓴 피디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같은 시간을 할애해 편집한 초등학생이 만든 영상과 같은 가치를 지니는가? 아니, 조금 더 할애해 편집한 초등학생이 만든 영상보다 가치가 떨어지나?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결과를 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며 감성적인 글로 3장을 마무리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가장 낮은 수준의 출산율을 매년 경신하는 대한민국에 오늘날 가장 필요한 것은 보통 사람들의 희망이라는 것을.

과연 보통 사람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들은 훌륭한 성과를 낸 사람과 비교해 어떤 결과를 낸 것인가?

세금으로 풀자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세금은 어디서 회수하는가? 재벌 따위를 옹호하는 말이 아니다.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굉장히 불편함을 감수하며 읽었다. 심지어 나도 혜택을 받아야 하는 약자 입장인데 말이다. 과연 이런 논리가 스스로 강자가 됐을 때도 유지될지 싶다. 감성에 호소하는 글은 주관적인 감성일 뿐이다. 기준이 될 수 있도록 숫자에 기반한 주장을 했으면 한다.

병리

빈약한 근거로 나열된 글을 읽으며 불편한 마음을 누르기 쉽지 않았다. 어쩌면 앞선 1부를 통해 ‘화병’이 도졌는지 싶다.

보고서에 따르면, 17 ~ 25세 영국인의 43퍼센트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며, 75세 이상의 영국인 중 30퍼센트는 외로운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외로움이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주변과 공유하고는 있을까?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외로움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런 외로움이라는 사회적 전염병이 영국 경제에 매년 360억 파운드(약 46조 원)가 넘는 피해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3부 ‘병리’는 보다 이해할 수 있는 글로 쓰였다. 다행히 앞서 비판했던 피디와는 다른 이름이었다.

나도 올해 참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고, 나는 이해받고 싶었다. 진지하게 정신과 상담도 고려했다. 앞서 상담을 받았던 친구에게 물어 병원을 찾아보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 정도만으로 나는 위로가 됐다. 내 질문에 친절히 답해줬던 친구도 고마웠지만 정작 내가 치유된 건 내 행동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진심을 보였던 스스로에게 치유가 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그저 스스로를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외로움과 우울증이 영국 경제에 매년 46조 원 피해를 준다는 건 어떤 계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국자 차원에서 접근해 국민의 우울증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간단히 해결될 수 없는 남과 북, 좌와 우, 남과 여로 나뉘어 싸우는 동양의 한 나라와 비교하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노력을 보인다는 건 꽤 부러웠다.

세대별로 느끼는 외로움을 조사한 결과, 예상외로 20~30대 청년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낀다고 답했다. 은퇴를 하고 사회적으로 고립에 빠지기 쉬운 50~60대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가 나왔다.

청년은 외롭다. 젊으니까 괜찮아라는 말에 많은 것을 참게 되고, 젊으니까 나중에 보상받는다는 말에 미래를 기다려야 하나 싶다. 젊으니까 지금이 제일 좋을 때라는 말에 도대체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하나 싶다.

이 글에 어떤 말을 쓴다 한들 변화할까 싶다. 그저 내 주위에 더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좀 더 힘을 주고, 나 역시 한 번 더 힘을 내는 것으로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낮춰보련다. 미래는 그저 보통 사람이 아닌 ‘청년’에게 있어야 한다. 그리고 청년은 마음이 늙지 않은 모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30대에 들어 두 차례 이사를 하며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오프라인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전부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이 각박한 세상에 내 한몸 뉘일 곳이 있는 게 감사하다. 한편으로는 이마저도 힘든 사람들을 떠올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사회를 만든 기득권에 강한 불만을 토로한다.

사람은 이익을 좇는 동물이다. 나는 이를 부정하며 온갖 사탕발림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위정자와 기득권층을 혐오한다. 그들 스스로도 이익을 좇기 위해 행동하면서 왜 대중은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가. 스스로 더 큰 이익을 보기 위함 외 다른 이유가 있는가?

아파트에는 아궁이 대신 입식 부엌, 재래식 화장실 대신 수세식 화장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의 동네에는 없던 공원과 놀이터, 주차장, 경비실, 복지관, 쓰레기장도 함께 들어섰다. 아파트 단지는 그 자체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새 동네’였다. 결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집만이 아니라 깨끗하고 안락한 동네까지 ‘구매’하게 했던 것이다. ‘새 동네’ 만드는 일을 맡은 대형 건설사들은 공사뿐 아니라 설계와 분양까지, 노다지를 떠안게 되는 셈이니 정부의 정책을 두 손 들어 반겼다. 많은 학자가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를 ‘건설사와 정부의 이해가 만든 합작품’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국가가 공공예산으로 마련해야 할 분을, 시민이 직접 구매하도록 떠넘겼다는 것이다.

꽤 명쾌한 이 문단에 현 국가 문제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단지를 지나가지 못하게 출입을 막고, 단지 사이사이 벽을 치는 등 사유지를 활용해 도시를 개선한 후폭풍은 오로지 서민의 몫이다. 건설사를 배불리며 성공한 정책으로 경력을 포장한 이들은 여전히 행복한 오프라인 삶을 살고 있을 테다.

아파트 단지의 역사가 수십 년에 이른 지금 그곳에서 태어나 성인이 된 세대가 등장하면서 아파트 단지라는 공간이 우리의 심성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기적인 사람이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 사는 동안 이기적 심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결국 이 구조는 각자도생 DNA를 만드는 것으로 우리를 진화시켰다. 결국 이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인의 이득을 더욱 더 찾아먹는 것 뿐이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선 어떤 할리우드 영화처럼 지구를 초기화하는 것뿐인지 싶다.

마무리

현실을 보고 싶은대로 본 1부 ‘불평등’을 읽으며 불편함을 느꼈고, 그래도 함께하고자 노력하는 3부 ‘병리’를 읽으며 조금은 따뜻했다. 하지만 4부 ‘지역’을 읽으며 이미 썩은 시스템을 봤고 결국은 각자도생뿐인가 싶다.

이 책이 대중에게 불편함을 주고 어떤 시야를 만드는 것이라면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1부 ‘불평등’은 정말이지 잘못 됐다. 어떤 사상 따위를 공영방송에서 전파하는 게 올바른 일인지 검토가 필요하겠다.

정말이지 믿을 게 하나 없는 세상이다.

한줄평

결국 결론은 각자도생이다.

인상 깊은 문구

  • 구성원 간의 배려, 신뢰와 같이 공동체의 협력을 촉진시킬 수 있는 것이 사회적 자본이다.
  • 전국시대 <사기>의 ‘이사열전’에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모든 것을 포용해야 비로소 크고, 넓고, 깊어진다는 의미다.
  • <21세기 자본>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해서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른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럴수록 엄청난 소득 불평등을 초래해 전 세계에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피케티 지수’를 발표했는데, 전체 자본을 국민소득으로 나눈 이 지수가 높을수록 근로소득보다 자본소득이 더 많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피케티 지수는 8.28로, 4.1인 미국과 4.12인 독일의 두 배가 넘는다. 이미 노동의 가치보다 자본의 가치가 더 커져버린 대한민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패감을 느낀다.
  • 핀란드는 범칙금도 소득수준에 비례해 부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두 똑같은 범칙금을 낸다면 고소득자에게는 처벌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루 수입을 기준으로 벌금을 매기는 일수벌금제는 1921년부터 생겨난 사회적 합의이자 규칙이다. 경찰차 안에 있는 컴퓨터로 국세청에서 최신 과세 정보를 받아 소득수준에 다라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 핀란드의 백만장자인 핀리틸라 그룹의 야르 바르 회장은 지난 2009년 과속으로 엄청난 벌금을 냈다. 제한속도보다 1킬로미터를 초과한 탓에 그가 낸 벌금은 우리 돈으로 자그마치 2억 원이다.
  • 한 가구가 버는 소득 중에서 국가로부터 직접 받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공적이전 비중을 보면 OECD 평균적으로는 21퍼센트다. 덴마크나 핀란드,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소득의 30퍼센트 가까이를 나라로부터 받는다. 그런데 한국은 국가로부터 받는 몫이 소득의 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 국제학력평가(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는 1968년 스위스 제네바에 세워진 비영리 교육재단인 IBO에서 만든 교육제도다. 우리나라나 일본의 대학 입시인 내신과 수능이 학생에게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IB는 지식과 사고 과정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본다. 마치 암기 능력을 테스트하는 듯한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교육방식인 셈이다.
  • 19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당신은 중산층입니까?’라는 질문에 우리 국민의 80퍼센트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2013년에는 20퍼센트만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여겼다. 20여 년 만에 4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 한편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중산층은 총 가구 중 소득 순위가 정확히 가운데 있는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50~150퍼센트 사이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가구를 뜻한다. 4인 가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2018년 중위 소득은 월 452만 원이다. 그러므로 4인 가구는 소득이 226만 원에서 678만 원 사이에 들어야 중산층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중산층의 범위에 속하는 사람은 2016년 기준 65.7퍼센트에 이른다.
  • IMF에서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상위 10퍼센트의 소득집중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소득의 약 44.9퍼센트를 차지해 47.8퍼센트인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소득 격차가 큰 국가로 나타났다. 1995년에는 우리보다 소득 격차가 컸던 영국, 일본, 프랑스가 이제 모두 우리나라보다 아래 순위에 있다.
  •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가장 낮은 수준의 출산율을 매년 경신하는 대한민국에 오늘날 가장 필요한 것은 보통 사람들의 희망이라는 것을.
  •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금융감독원 소속이던 공무원들이 국내 5대 로펌으로 얼마나 이직했는지를 조사했다.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법률 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5대 로펌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개된 직원들의 프로필을 확인한 결과 공정위 출신 61명, 국세청 출신 85명, 금감원 출신 74명 등 총 220명이 퇴직 후 5대 로펌에 재취업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 이스라엘의 재벌개혁은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았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들은 조사와 보고서 작성에 1년 반, 국회 토론에 1년 반, 총 3년에 걸쳐 투자했기에 모두가 동의하는 개혁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재벌개혁 담당자는 “지금이 위기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 국민의 투표 결과가 제대로 의석수에 반영됐는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정당 드표율과 실제 의석 비율의 차이가 커 ‘불비례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비례성 수치가 클수록 국민의 의견과 선거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대한민국은 세계 36개 주요 민주주의 국가 중에 최하위를 기록했다.
  •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경쟁적인 환경에서 높은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을 밖으로 드러내 이야기하는 것에 서툴다는 점이다. 고통을 잘 감내할 줄 알아야 성숙한 인격이라고 인정해주는 문화가 사회적 편견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우울하고 답답해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유의 정신의학적 증후군인 ‘화병’을 가진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 우리나라 성인 인구 네 명 중 한 명은 평생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정신과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에게 치료를 받은 비율은 22.2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는 정신건강 선진국이라 불리는 캐나다, 미국, 호주의 절반 수준이다. 그 이유는 이른바 ‘F코드’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여기서 F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국제질병분류에서 정신질환 앞에 붙는 알파벳이다. 우울증은 F32, 공황장애는 F41처럼 질환의 분류를 위해 사용하는 코드다.
  • 보고서에 따르면, 17 ~ 25세 영국인의 43퍼센트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며, 75세 이상의 영국인 중 30퍼센트는 외로운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외로움이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주변과 공유하고는 있을까?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외로움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런 외로움이라는 사회적 전염병이 영국 경제에 매년 360억 파운드(약 46조 원)가 넘는 피해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 세대별로 느끼는 외로움을 조사한 결과, 예상외로 20~30대 청년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낀다고 답했다. 은퇴를 하고 사회적으로 고립에 빠지기 쉬운 50~60대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가 나왔다.
  • 처음 이 아이디어를 낸 알렉산드라 호스킨 씨는 생후 4개월 된 아이를 안고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다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움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와 육아의 고단함이나 삶의 힘듦을 나누고 싶은데, 갓난쟁이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때 근처 커피숍에 홀로 앉아 있는 노부인과 몸이 불편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호스킨 씨의 눈에는 그 두 사람도 자기처럼 외로워 보였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저 너무 외로워요”라고. 그렇게 만난 세 사람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화하며 서로의 외로움을 나눌 수 있었다. 호스킨 씨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수다카페’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 스웨덴은 세계에서 ‘현금 없는 사회(Cashlees Society)’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나라다. 스웨덴의 현금 사용률은 2016년 이미 1.4퍼센트로 떨어졌고, “2020년이면 0.5퍼센트까지 떨어질 것”으로 스웨덴 왕립공과 대학은 전망했다.
  • 현금 없는 사회는 스웨덴뿐 아니라 세계적인 트렌드다. 덴마크는 2017년 1월부터 화폐의 제작을 중단했고, 현금 결제를 거부할 수 있는 상점 주인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했다.
  • 프랑스와 포르투갈은 1000유로, 그리스는 1500유로, 스페인은 2500유로, 벨기에는 3000유로 이상의 현금 거래를 금지하고, 위반 시 수십 배의 과태로를 부과한다.
  • 각 연령대별 신용대출 현황을 살펴보면 은행 대출을 받는 세대는 60대가 가장 많고, 20대가 가장 적다. 반면 고금리의 제2, 제3 금융권을 이용하는 비율은 20대가 가장 높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청년들이 가장 위험한 부채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 2016년 기준 전체 1669만여 호 가운데 1003만 호가 아파트다. 무려 60퍼센트를 넘는 수치다.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파트 관리비로 걷히는 돈만 연간 12조 원에 달한다.
  • 아파트에는 아궁이 대신 입식 부엌, 재래식 화장실 대신 수세식 화장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의 동네에는 없던 공원과 놀이터, 주차장, 경비실, 복지관, 쓰레기장도 함께 들어섰다. 아파트 단지는 그 자체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새 동네’였다. 결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집만이 아니라 깨끗하고 안락한 동네까지 ‘구매’하게 했던 것이다. ‘새 동네’ 만드는 일을 맡은 대형 건설사들은 공사뿐 아니라 설계와 분양까지, 노다지를 떠안게 되는 셈이니 정부의 정책을 두 손 들어 반겼다. 많은 학자가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를 ‘건설사와 정부의 이해가 만든 합작품’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국가가 공공예산으로 마련해야 할 분을, 시민이 직접 구매하도록 떠넘겼다는 것이다.
  • 모든 집이 사회와 접속하는 경로가 단 하나뿐인 동선 구조를 건축 용어로는 ‘나무형 구조’라고 한다.
  • 아파트 단지의 역사가 수십 년에 이른 지금 그곳에서 태어나 성인이 된 세대가 등장하면서 아파트 단지라는 공간이 우리의 심성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기적인 사람이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 사는 동안 이기적 심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 미국의 레드핀이라는 부동산 업체는 미국과 캐나다의 도시들을 대상으로 도보환경지수를 측정해 걷기 편한 도시 순위인 ‘워크스코어’를 발표한다. 워크스코어가 높을수록 살기 좋은 동네, 머물고 싶고 걷기 좋은 동네로 꼽힌다. 길을 걷다가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장도 보고, 이웃과 수다도 떠는 그런 일상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곳이 걷기 좋고 머물고 싶은 곳이라는 뜻이다.
  • 자동차 한 대가 달리기 위해서는 사람이 걷기 위한 면적보다 무려 75배나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 독일은 16개 주 가운데 사람이 가장 많은 주의 인구 집중도가 21.7퍼센트에 불과할 정도로 인구가 비교적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 독일 헌법인 기본법 제28조는 ‘기초지자체에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지역공동체의 모든 사안을 자기의 책임으로 규율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밖에도 독일 헌법에는 지방자치와 관련된 조항이 40퍼센트가 넘는다. 이에 반해 우리 헌법은 총 130개 조항 중 단 두 개 조항만이 지방자치를 실시한다는 원칙만을 언급하고 있다.
  • 독일 정책의 핵심은 젊은이들이 살 만한 지방을 만드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교육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고, 문화와 스포츠 등 여가생활을 즐길 시설과 시스템이 구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