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을 읽다 보면 수천, 수만 년을 사는 ‘드래곤’이 나온다. 판타지 소설 내 세계관마다 다르지만, 인간으로 변신해 인간 세상을 즐기는 드래곤을 종종 볼 수 있다. 흔히 드래곤의 ‘유희’라고 한다.

즐겁게 놀며 장난함. 또는 그런 행위.

– 네이버

내가 만약 수천, 수만 년을 살 수 있다면 인간이라는 하등생물 사회에 그저 ‘즐기기’ 위해 100년 정도 보낸다면. 그 100년이 인간으로 따지자면 고작 1년이라면. 나는 인간 세상에서 뭘 하며 즐길까?

내가 바라는 유희

내 수명 1%를 투자해 인간 세상 시간 100년을 살 수 있다고 가정해보겠다. 그렇게 얻은 100년으로 보낼 유희를 세 가지 꼽아본다.

◆ 하나, 권력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재밌게 읽었던 게 기억난다. 무려 9년 전에 읽은 신이 되기 위한 후보생의 이야기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행성 하나를 맡아서 시뮬레이션해 보는 시험이었다. 반복해서 시험하지만 인류는 비슷하게 진화해서 비슷하게 멸망했던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세상을 내 뜻대로 움직이는 유희를 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권력이 필요하다. 미국 대통령 정도면 가능할까? 어느 쪽으로 치우칠진 모르겠지만, 어느 쪽으로든 상관없겠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유희하고 싶다.

◆ 둘, 명예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맥북 프로, 내 분신 아이폰, 왼쪽 팔에 애플 워치. 비즈니스 분야 최고 명예를 내게 꼽으라면 스티브 잡스를 꼽겠다.

“소비자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 말했던 스티브 잡스. 그 자신감과 그를 따르던 수많은 팬. 막대한 부 역시 가졌지만, 내게 있어 스티브 잡스는 명예다.

내 행보에 세상 사람이 집중하는 유희를 해보고 싶다.

◆ 셋, 축구 스타

축구를 좋아한다. 경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역시 ‘골’. 과정이 어떻든, 어떻게든 결과를 낼 수 있는 그래서 그의 움직임에 기대감이 생기는 그런 스타.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갖춘 축구 스타로 유희를 해보고 싶다.

즐긴다는 것

내 수명 3%를 투자해 원하는 유희를 보내고 나면, 나는 그 뒤엔 어떤 삶을 살까? 충분히 즐겼으니 그다음 삶은 그저 흐르는 대로 살 수 있을까? 어떤 노력을 한다면, 나는 뭘 위해 노력하며 살까? 이미 즐길 만큼 즐겼다며, 삶을 마감할까? 삶은 즐기기 위함일까?

욕심이 많다. 그런데 그 욕심이 어디를 향한 것인지 모르겠다. 좋은 동료, 좋은 친구, 좋은 연인, 좋은 리더, 좋은, 좋은, 좋은. 그렇게 다 좋아지면, 나는 뭐가 되는 걸까? 나는 좋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게 맞는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면, 그래서 얻은 자가 되면, 그다음은 뭘 얻어야 할까? 뭘 얻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얻는 것이 삶의 이유가 아닌 걸까? 그렇다면 삶의 이유는 뭘까? 삶에 이유가 있을까?

즐김은 시점이 있고, 시점은 벗어나게 마련이다. 즐기는 시점을 벗어났을 때의 시점을 즐기지 못한다면, 그건 온전히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온전히 즐긴다는 건 뭘까?

얻음에서 즐긴다면, 얻지 않음에서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얻지 않음에서도 즐길 수 있다면, 얻음에서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 즐거움은 얻는 것 자체가 아닌, 얻는 과정에서 가질 수 있겠다. 권력을, 명예를, 스타를 얻는 과정에서 즐길 수 있을까?

즐기지 못하는 요즘

얻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돈을 투자하고, 시간을 투자하고, 마음을 투자한다. 얻기 위해서다. 역시 얻기 위한 과정은 즐기지 못하고 있다.

과정이 즐겁지 않다면 즐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즐김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과정을 찾는 과정을 시작해본다.

그 과정이 즐겁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