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뒤면 커리어를 시작한 지 만 8년이 된다. 만 8년쯤 됐을 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진 않았다. 그저 만 10년이면, 부모님 생활비를 드릴 수 있을 만큼 풍족해지지 않을까 막연한 꿈만 꿨다.

모든 것을 취할 순 없겠지만, 꽤 다양한 것을 취하려 노력했다. 한 분야에서 깊이를 더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분야를 취하는 게 더 즐거웠다. 굵직하게 보면 지금은 다섯 번째 커리어라고 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 개발자, 창업자, 프리랜서 개발자, 기자 그리고 다시 개발자.

지금은 무슨 개발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백엔드 개발을 하러 온 지 어느새 6개월인데, 개발에 집중한 것은 이제 고작 3개월째다. 3개월 중 대부분을 프론트엔드 개발에 할애했고, 이번 달에야 백엔드를 보고 있다. 프론트엔드, 백엔드의 아주 깊이까지 하지 않으니 그냥 소프트웨어 개발자라고 부르는 게 맞겠다.

그동안 5가지 포지션을 경험하며, 나름 단단해졌다. 그럴 것이 적응해서 퍼포먼스를 낼만 하면 포지션을 바꿨다. 포지션을 바꾸는 가장 큰 기준은 ‘배움’이었다. 언제나 더 배울 수 있는 환경으로 움직였고,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개발자 커리어를 가장 길게 보냈고, 창업자와 프리랜서 시기를 그다음으로 길게 보냈다. 기자는 가장 짧게 보냈지만, 임팩트는 매우 컸다. 다시 개발자로 돌아올 때도 그랬지만, 내가 지나온 어느 커리어로 지금 다시 돌아간다 해도 적응할 자신이 있다. 어떻게든 생존할 자신이 있다.

힘든 시기도 있었다. 특히, 적응 기간이 괴로웠다. 지금 포지션으로 옮기고 보름 동안 무척 괴로웠고, 기자를 시작할 때, 창업자, 프리랜서, 첫 커리어 모두 괴로운 시기였다. 물론 지금도 조금 괴롭다.

괴로움의 공통점은 손에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았을 때다. 맨손으로 처음부터 퍼포먼스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어느 정도 자원이 쥐어졌을 때 힘을 내는 편이다. 아군이든, 익숙한 무기든, 뭐든 손에 쥐어져야 싸울 게 아닌가? 한데, 새로운 포지션을 시작할 땐 아무것도 없다. 그 처음이 가장 어렵다.

지금 조직은 6개월이 돼 가지만, 조직 내에서 계속 포지션을 바꿨다. DB 설계, API 가이드 작성, 테스터, 프론트엔드, 백엔드까지. 조직 자체에는 적응했지만, 업무가 계속 바뀌니 퍼포먼스가 늘 제자리인 것 같아 조급하다. 퍼포먼스가 생각만큼 나지 않을 때는 뭐랄까, 물 속에서 펀치를 날리는 것 같달까?

새로운 포지션에 적응할 땐 늘 내가 원래 가진 무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 8년간 커리어를 보내며 내가 쌓아온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약간의 무언가가 손에 쥐어지면, 퍼포먼스가 폭발할 것이라 생각한다. 늘 그래왔고, 늘 잘해왔다.

무척 피로한 요즘. 스스로를 좀 더 믿고 싶다. 무기는 사라지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