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용의 에세이 #11] 덜어내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잠시 찾아보니 성서에 나온 구절이라 한다.

내가 창의력이 고갈돼 그런지, 요즘 마주하는 콘텐츠에서 다른 것과의 연관성이 눈에 띈다. 영화도, 책도, 웹툰도 세상에 없던 것이 아닌 이미 알고 있는 어떤 것과 함께한다. 물론 그렇게 새로운 것이 되긴 하지만.

보통 RPG 게임에서 다음 레벨로 가려면, 현재 레벨보다 더 많은 경험치를 요구한다. 높은 레벨이 될수록 다음 레벨로 가기 위한 경험치를 더 많이 요구한다. 더 많은 경험치를 얻기 위해선 더 높은 레벨이 필요하다. “레벨이 높을수록 더 많은 경험치를 얻는다.”

높은 레벨로 가기 위한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다. 한 분야에서 높은 레벨이 되는 방법도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고른 레벨을 갖는 방법도 있다. 낮은 레벨을 보완해줄 아이템을 갖는 것도, 나와 다른 차원의 동료를 갖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고른 레벨을 갖는 방법을 선호했다. 이는 내가 근성이 부족한 성향도 있지만, 시야가 좁고, 경험이 부족하고, 환경이 아쉬운 것도 한몫했다. 시야가 넓어질수록, 경험이 늘어날수록, 환경이 나아질수록 더 나은 것이 보였다. 남의 떡이 커 보이기 때문도 있지만, 내가 점차 성장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내 기본기가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낮은 레벨에서는 기본기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얕은 기술이 생존에 큰 도움이 된다. ‘기본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높은 레벨에서 차이를 보인다. 최근 월드클래스의 모습을 보이는 축구선수 손흥민이 아버지와 기본기를 강하게 훈련한 것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높은 레벨에서는 기본기가 차이를 만든다.”

“시작이 반”이라고 한다. 일단 하는 것은 안 하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언제나 묵묵히 노력하는 것이 답이 되진 않는 것 같다. 명확한 목표와 방향성이 없는 노력은 안 하느니 못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그저 멋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이것 찔끔, 저것 찔끔 따라 했던 내게 서서히 벽이 다가왔다. 그들의 벽과 달랐던 내 벽이다.

당연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는 없다. 책 읽기, 글쓰기, 개발, 기획, 리더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당한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 다음 레벨로 향하기 위해서 절대적인 물리적 시간이 필요해졌다.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 다다른 것이다. “전략이 필요하다.”

새로운 벽을 만나는 것은 분명 한 단계 올라선 것을 의미한다. 이전에 없던 벽이니, 나아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단지 그 사실에 기뻐할 수는 없다. 내 목표가 현재 만난 벽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 새로운 것을 만들 필요는 없다.

“레벨이 높을수록 더 많은 경험치를 얻는다.” 앞으로 만나는 경험은 그동안의 경험보다 더 높은 경험치를 줄 것이다. 물론 더 위험하겠지.

“높은 레벨에서는 기본기가 차이를 만든다.” 기본기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어떤 영역을 선택하든 ‘읽고’, ‘쓰는’ 능력은 계속 다져야 한다.

“전략이 필요하다.” 더하기보다 덜어내기가 중요한 시점이다. 그 어느 때보다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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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Domingo

오세용 Domingo

글쓰는 감성개발자 오세용입니다. IT, 책, 축구, 커뮤니티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