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용의 에세이 #10] 뜻을 잃은 시기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제품을 만들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전하고, 사람을 모으고, 에너지를 만드는 내가 하고 싶던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비결? 그냥 열심히 했다고 하면 될까? 운이 좋았다고 할까? 얻어걸렸다고 하면 될까? 무작정 했는데, 이미 궤도에 올랐다. 정신을 차리니 생각보다 속도가 빠르다. 겁 없이 밟았는데, 겁이 난다. 엑셀을 발에서 떼었지만, 속도는 여전하다. 브레이크를 밟는 건 사실 좀 무섭다. 브레이크가 가져올 부작용 때문일지, 다시 엑셀을 밟을 자신이 없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잘 모른다고 하고 싶다.

막연히 앞 사람을 보고 달렸는데, 가끔은 그들 옆에 서기도 했다. 그들은 다시 더 앞으로 나갔지만, 나는 제자리인 것 같다. 출발선에서 멀리 떨어졌지만, 출발선이 내 기준은 아니다. 앞선 사람은 늘 많기에, 앞선 사람이 기준선이 되면 안 된다. 그럼 뭘 보고 달려야 할까?

일단 해

따라갈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어디든 가기만 하면 괜찮았다. 어디든 가도 앞서가는 것이었다. 정체 구간에 들면 다른 곳을 팠다. 어디든 파면 의미가 있었다. 일단 하는 것이 가치를 만들던 시기였다.

사람들도 주변에 많이 모였다. 때로는 분위기를 이끌기도 했다. 잘하는 게 많아졌다. 선순환이 생겼다. 새로움이 새로움을 낳는 식이었다. 욕심이 능력이었다.

묵묵했어야 했나? 앞선 사람이 기준인 나는 앞선 사람이 되자 눈이 멀었다. 절벽 끝에 선양 발을 뻗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오른발잡이였던가?

하지 마

내 뒤에 선 사람들이 나를 민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데, 뒤에서 마구 민다. 어쩌다 앞장서긴 했다만, 앞이 보여서 선 것은 아니다. 누가 그러더라고. 앞에 좋은 게 있다고.

선글라스를 챙겼어야 했다. 도통 앞이 보이질 않는다. 내 뒤에 선 사람들이 묻는다. 앞에 뭐가 보이냐고. 눈을 감은 채 내게 묻는다. 네 눈에 뭐가 보이냐고. 글쎄, 네 눈에 내 눈은 어떻게 보이니.

내 뒤에 선 사람 중 눈을 뜬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눈을 감은 것을 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 뒤에 섰다. 여전히 내 뒤에 선 사람에게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뭐가 보여?

응, 뭐가 보여.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들이 내 옆에, 뒤에 서 있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나는 무슨 뜻일까?

지나온 시간만큼 커진 것은 뭐가 있을까? 커진 것은 무슨 뜻일까? 지나온 시간은 무슨 뜻일까? 시간은, 무슨 뜻일까?

엉망으로 흐트러진 날에도 그저 ‘어떤 뜻’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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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Domingo

오세용 Domingo

글쓰는 감성개발자 오세용입니다. IT, 책, 축구, 커뮤니티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