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용의 에세이 #9] ‘열심히’라는 마법이 벽을 만날 때

친한 형이 당구를 가르쳐줬다. 당구 큐 잡는 방법을 배우고, 당구 매너와 길을 배웠다. 30이 50이 되고, 50이 80이 될 때. 잠자리에 누우면 네모난 천정이 당구 대로 보이는 현상이 생긴다. 열심히 할수록 잘하게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프로그래밍에도 마법 같은 순간이 있다. for 문을 이해하고, 함수를 이해하고, C언어 포인터를 이해했을 때 막막하던 벽을 뚫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 몇 개를 만들며 결국 데이터를 주고받는 큰 맥락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벽 위에 오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열심히 할수록 잘하게 되는 마법 같은 시기다.

운전에도 마법 같은 순간이 있다. 밟았던 클러치를 떼는 속도로 엑셀을 밟을 수 있을 때, 좌회전 깜빡이를 켜면서 좌우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를 볼 수 있을 때, 고개를 뒤로 돌리지 않고 주차를 할 수 있을 때.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어디든 갈 수 있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열심히가 익숙함이라는 마법을 얻는 시기다.

열심히가 오만함을 만날 때


3~4년 차 대리급은 어느 회사든 선호한다. 말귀를 알아듣고, 다소 편하게 굴릴 수 있다. 몸값도 싸니, 이보다 더 적절한 일꾼은 없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다소 오만할 수 있다는 점.

4년 차 개발자가 됐을 때 일이다. 내가 그랬다. 십수 개 안드로이드 앱을 만들었더니, 요령이 생겼다. 이제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마법을 얻은 것이다.

오만함이 극에 달해 다른 분야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이 바닥에서는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조직을 나와 독립을 선언했다. 통장이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보름 만에 오만함을 깨달았지만, 출사표를 번복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열심히’ 뿐인데, 열심히로는 안되는 세상이었다.

내가 가진 열심히는 오만함보다 약했다.

오만함이 꾸준함을 만날 때


나를 짓누르는 오만함을 떨쳐내고 싶었다.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 ‘열심히’를 시전했다. 잠을 줄이고, 발품을 팔았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무기가 생겼다. ‘겸손함’이었다.

열심히로 따라갈 수 없는 물리적 한계를 만났다. 열심히가 필요 없는 종족들을 만났다. 세상은 그런 종족의 것으로 생각했고, 그들이 두려웠다.

재밌는 것은, 그 종족들은 내 열심히에 관심을 뒀다. 그들과 어울리며 ‘겸손함’이 늘어갔다. 그들과 친해지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내 열심히 뒤에 숨겨진 무기를 찾아줬다. 꾸준함이다.

꾸준히 읽고 쓴 서평 블로그. 꾸준히 배우고 나눴던 친구들. 꾸준히 쳐다본 자바 코드. 꾸준히 선망한 리더들.

내가 가진 꾸준함이 오만함을 치웠다. 열심히라는 마법이 꾸준함을 만들었다.

꾸준함이 월등함에 무릎 꿇을 때


열심히와 꾸준함은 내 오만함을 견제했다. 강한 견제에 열심히의 함정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8년 차.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며 여러 무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무기가 생각보다 날카롭지 않다.

다양한 무기를 활용한 내 변칙 전술이 읽히기 시작했다. 무엇을 꺼내도 놀랍지 않은 단계에 올라섰다. 다양한 무기를 펼쳐두고 숫자를 헤아렸다. 무기를 담을 가방이 모자랄 정도다.

꾸준함이 만난 벽은 내가 가진 무기보다 강도가 높다. 강도 높은 무기가 필요한 시기엔 강도 낮은 무기 여러 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월등히 높은 강도의 무기가 필요해졌다.

지치도록 때려도 벽은 굳건했다. 다행인 것은 움직이지 않는 벽이라는 것.

내가 가진 무기를 다시 쳐다봤다.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이 무기로 월등함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월등함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오만함’을 만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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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Domingo

오세용 Domingo

글쓰는 감성개발자 오세용입니다. IT, 책, 축구, 커뮤니티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