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때가 있다고 한다.

창업시절 ‘어차피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은 누군가가 만든 것 뿐야’라며 잡스옹의 마인드로 살고자 했다.

어차피 누군가가 한 것 뿐, 새로운 누군가가 내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는 전투적인 마인드.

아이러니하게도 그 2년간의 과정 속에서 나는 더 높은 현실을 마주했고, 그 누군가가 어쩌면 나와 정말 다른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경험치를 무시하지 않게 됐고, 레거시의 무게감을 알게 됐다.

문득 떠오른 개발자로서 배운 문장 ‘다~ 깊은 뜻이 있는 법’


다 때가 있다고 한다.

그래, 20대에 창업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해봤다. 손에 쥔 것을 놓았을 때 세상이 뒤집어질듯 말했던 사람들.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선택이었고, 다시 돌아간다면 그 상태로는 뛰어들지 않겠지만. 뭐 어떠냐? 그때는 그게 옳다고 생각했는 것을.


다 때가 있다고 한다.

나는 2011년부터 4년간 매 년 한 번씩 응급실에 갔다. 입사 후 첫 주말에 과도한 긴장으로 장이 멈춰서, 입사후 첫 여름휴가에 긴장이 너무 풀려 뇌압이 상승해서, 신종플루로 장염으로 온갖 병에 걸려 응급실을 드나들었다.

4년간 앓고 나서야 운동을 꾸준히 시작했고, 그 뒤로 지금까지 응급실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병을 달고 산다. 장염, 감기, 식중독. 체해서, 머리가 아파서, 몸이 찌뿌둥 해서.

1주간 장염을 앓다가, 나을때 쯤 감기에 걸려 갤갤거렸다. 그리곤 잊었던 무언가를 떠올린다.


다 때가 있다고 한다.

언젠가 스스로의 최대 단점을 ‘실천’이라 생각해 무언가 떠오르는 즉시 행하기로 했다.

별거 없었다. 운동을 해야겠다 생각하면 무슨일이 있어도 헬스장을 갔고, 갑자기 군고구마가 먹고 싶으면 군고구마를 파는 상점을 찾아 꼭 먹고 마는 행위였다.

놀랍게도 그 행위가 지속되자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행하려는 것은 행하게 됐다.

하지만 특이사항은 어쩔 수 없더라. 몸이 아프거나 우선순위가 높은 큰 사건이 생기면, 그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렇게 몇 년간 지내며 타인을 이해하는 스킬도 늘었다. 뭔가 큰 일이 있나봐 몸이 안좋은가봐.

몇 차례 아프고 나서였을까? 나는 크게 화를 내는 횟수가 줄어갔다. 그러려니 하는 스킬도 생겼고, 딱히 엄청 화가 나지 않았다.

아쉬운 것은, 엄청 기쁜 일도 없어졌다는 것.


다 때가 있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 일어나는 일들 모두가 적절한 때에 일어난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몸이 안좋으니 체력을 비축하려 최우선순위에 집중한 만큼 주위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다시 돌보게 된다.

몸이 안좋으니 체력을 비축하려 불필요한 행동을 줄이게 된다.

몸이 안좋으니 체력을 비축하려 행하기 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어쩌면 지금은 이럴 때인지도 모른다.


다 때가 있다고 한다.

내 올해의 단어는 ‘초심’이다. 메신저 대화명으로 해놓고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단어 ‘초심’

어쩌면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내가, 초심을 잃었기에 다시 출발선에 서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월요일의 차분한 오후.

빨리 나으라며 내게 마음을 보내준 사람 김재인 철학자님이 보내준 커피를 마시며,

지금은 이럴 ‘때’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