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인생학교 : 혼자 있는 법 ★★☆☆☆

[ 읽게 된 동기 ]


커뮤니티 STEW, 2018년도 두번째 도서.

인문 분야의 발제자가 정한 철학 도서.

 

[ 한줄평 ]


고독을 꼭 이렇게 무겁게 풀어야만 했을까?

 

[ 서평 ]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어른은 무엇이며, 우리는 꼭 어른이 돼야 할까?

 

이런 주제는 우리에게 참 익숙하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담은 ‘피터팬’은 물론, 많은 애니메이션과 글감으로 활용되는 주제다.

 

나는 2011년 11월 개발자로 조직에 들어오며 재정적, 물리적으로 독립했다. 그 후로 6년이 흘렀고, 나는 여전히 독립해있다.

 

성인에게 독립이란 매우 특별하다. 부모로부터 물리적으로 독립 해야만 비로소 성인이라 인정 하는 사람도 있고, 서른이 넘도록 독립하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비관하고 자책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일정부분 동의한다. 나 또한 독립 후 굉장히 많은 변화를 겪었으며, 이제 다시는 부모님의 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됐다. 혼자 사는 것은 외롭지만, 분명 매력적이다.

 

우리는 왜 함께 사는가?

호모사피엔스가 사회적 동물임은 중학교 과목에서 배웠을 것이다. 우리는 무리를 지어 살고, 무리 안에서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 또한 크다. 우리가 무리를 지어 살 수 있는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설명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영장류들은 하지 않는 한 가지 특별한 행동을 한다. 바로 조직적인 사냥이다. 언어의 발생 기원을 집단 사냥에서 찾는 가설이 끊임없이 제기돼왔으며, 다양한 인류학 및 고고학적 증거들이 인간 사회가 수렵・채집인 무리였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이는 내가 2017년 올해의 책으로 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의 내용과 같다.

 

우리는 왜 함께 사는가?

사실, 이런 류의 사색은 지금 내 상황에서는 ‘참 한가하다’ 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조직에 들어와 적응하며, 이런 류의 한가한 질문과 고민은 스스로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물론, 나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조금은 정리해뒀기에 이렇게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또한 나는 함께 사는 것이 홀로 사는 것 보다 더 좋다. 여기서 ‘함께’ 와 ‘홀로’ 는 사회 생활을 의미한다. 인간이 사회를 만들고, 이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본능이자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미 이런 사회가 형성 돼 있음에도 이를 거부하는 것보다 순응하는 것이 내 성향에 맞다.

오히려 이 사회에 기여를 하고,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가 사회를 부정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크다.

 

최근 포지션을 옮기며, 모든 부분에서의 새로움을 맛보는 내게 현재는 매우 밝은 편이다.

배움은 내게 밝음을 선사했고, 덕분에 요즘의 내 삶은 무척 즐겁다.

 

불쾌한 책의 구성. 

귀한 주말을 할애한 오늘, 저자 사라 메이틀랜드는 내 기분을 망쳤다.

 

최근 들어 ‘loner(외톨이)’는 대중매체를 통해 ‘정신병적 대량 살상범이나 섹스광’의 약칭으로 애용된다.

 

저자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어두운 측면을 일반화했다. 이는 책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는데, 읽으면서 굉장히 불쾌할 정도였다.

 

나는 이 책을 반대로 쓰기로 했다. 이런 종류의 ‘핸드북’은 책의 주제와 관련한 모든 영광과 기쁨으로 시작해서 독자들에게 기분 좋은 기대감을 불어넣은 뒤 문제점과 좀 더 부정적인 세부 사항으로 옮겨가는 것이 유용하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했다. 비록 나 자신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이 고독을 더 즐기기를 바라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고독이 약간 반문화적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은 생략하고 고독의 장점과 그것이 주는 즐거움을 우선으로 삼아 고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기쁨으로 충만한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저자는 위와 같은 말을 하며 책을 마무리 했다.

글쎄, 이게 과연 독자를 배려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효과를 기대했다면 차라리 어떤 주제에 대해 어두운 면을 먼저 설명한 뒤, 그보다 더 밝은 면을 부각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생각보다 절반 가량의 어두운 면은 내게 불쾌했다.

 

이상하게도 혼자 있는 수많은 방식 중에 대단히 위험한 단독 모험이 비난을 가장 적게 받는다. 설선雪線*으로부터 몇 킬로미터 위, 혹은 태평양 한가운데 조그만 배 위에 혼자 있기로 한 사람은 영웅 대접을 받는 반면 편안한 자기 집에서 혼자 있기로 결심한 사람은 괴짜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또한, 저자는 스스로의 주장과 반대되는 측면은 어줍잖은 이유로 비꼬았다.

방 구석에 혼자 있는 것과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을 비교한다. 이는 비교 자체가 잘못됐다. 방 구석에 혼자 있는 것이라 함은 머무르는 것이고, 배 위에서 홀로 여행을 하는 자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행위다.

단순히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따위로 판단할 것이 아니다. 이런 터무니 없는 상황으로 스스로의 주장을 뒷받침 하다니. 도대체 이 문장을 왜 쓴걸까?

 

게다가 저자 스스로도 ‘고독’ 이란 단어의 정의 자체가 모호하다.

고독을 단순히 혼자 있는 것으로 정의 했는지, 사회에서 떨어진 것으로 정의 했는지, 사회에서 떨어졌지만 온라인 등으로 접촉할 가능성은 열어둔 것인지.

 

스스로 혼자 사는 것은 주말마다 아들이 찾아오고, 간혹 친구들이 찾아오며, 저술 활동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성 안토니우스 이야기에서는 그가 20년간 완전히 고립된 삶을 살았음에도 멀쩡했다고 했으며, 인터넷 기기에 숙달된 노인은 양로원에 가도 원할 때 마다 사회에 접촉할 수 있다 말했다.

여기에 느닷없이 1인가구 비율을 들먹인다.

 

스스로도 정제되지 않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억지로 정보를 끼워 맞췄다.

책이라기 보다 한 블로거의 시리즈 칼럼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왜 혼자 사는가?

저자는 스스로가 던진 주제에 대해 독자를 납득시키지 못했다. 독자로서 이렇게 좋은 주제를 왜 이렇게 밖에 풀지 못했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무려 책으로, 해외 번역서로 출판했는데 말이다. 혹, 번역의 탓일까?

 

독립한지 7년째를 맞이하는 1인 가구 청년으로서 이 주제에 아쉬움이 크다.

이대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진 않다. 짧지만 스스로의 1인 라이프의 밝은 면을 적어보려 한다.

 

첫째, 사색노트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사색노트’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

나는 에버노트에 ‘사색노트’ 를 적는데, 현재 약 400개의 노트가 있다. 2011년부터 작성된 이 노트는 내가 어떤 큰 이벤트를 겪은 뒤 느낌을 적곤 한다. 어떤 성과를 냈다거나, 큰 좌절을 겪었다는 등의 이벤트 뒤의 감정을 기록한다.

 

이는 혼자 있을 때 할 수 있다. 누군가 옆에서 내 노트를 본다면, 결코 적지 못할 것이다. 또한 나를 의식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스스로에게 집중하기가 매우 거슬린다.

결국 사색은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하다.

 

나는 가끔 혼자 여행을 떠난다. 그때 숙소에 들어가 꼭 하는게 있는데, 이 사색노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과 2년, 3년 뒤의 마음가짐. 퇴사 할 때의 생각, 창업 후 겪었던 많은 일들. 내 커리어 상의 큰 이벤트마다 느낀 내 감정을 고스란히 읽어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이 역시 혼자 있을 때 가능하다.

 

둘째, 여유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일과를 시작한다. 주 3-4회는 운동을 하고 있다. 매일 하는 것이 꼭 몸이 좋지도 않거니와 사회인이 회식 자리를 피하긴 쉽지 않기에, 적당히 유동적으로 운영한다.

그렇게 시작된 일과는 보통 밤 10-12시 사이에 귀가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간혹 야간에 업무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본업 외의 여러 일을 꾸미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여러 일을 꾸미기에 주말 역시 내겐 업무의 연장이다.

모임을 만들거나, 세미나, 컨퍼런스 등에 참석한다. 가족과 만나기도 하고, 편한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는 내게 소비적인 활동이다.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에너지가 충전되는 만남도 물론 있지만, 소비 없는 충전은 없다. 때문에 모든 활동에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아쉽게도 내 경우엔 코어 에너지가 바닥나면 움직이지 못한다.

이는 내 10여년의 관찰 끝에 내린 결론이다.

 

사람을 만났을 때 말과 행동을 활발히 하는 편이기에, 에너지 관리는 무척 중요하다. 만약 만남에서 내가 활발하지 못하면, 무슨 일 있느냐로 시작해 더욱 피로함을 만든다.

결국 내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의 에너지 관리가 중요하다.

 

스스로 사색하며 연구한 결과 내 코어 에너지 중 일정 부분은 홀로 있을 때 충전된다.

축구 게임을 하거나, 치킨을 먹을 때 충전 되기도 하고, 양껏 수면을 취할 때 충전 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내가 가장 즐겨하는 시간은 여러 일정을 정리할 수 있는 카페에서의 시간이다.

 

나는 크롬 탭을 늘 10개 이상 열어두는 편이다. 내용이 무거워 열어둔 것도 있고, 영어라 시간이 필요해 열어둔 것도 있다. 또, 기술적 내용을 찾을 때, 경영 콘텐츠를 발견하면 일단 열어둔 뒤 나중에 읽는 편이다.

이런 읽을 거리는 주로 업무 외 시간에 읽는다.

 

또, 본업, 자기계발, 책, 커뮤니티 기획 등. 다양한 일을 꾸미는 나로서는 늘상 정신이 없다. 때문에 스케쥴을 관리하는 시간이 별도로 필요하다. 결국 카페에 앉아 이 사람, 저 사람 연락하기도 하고 A 업무를 하다가, B 업무를 하는 등. 자유롭게 업무의 스위칭을 가져갈 수 있는 시간이 내게 무척 필요하다.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여러 일을 스위칭하며 일을 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 심지어 난 이런 시간이 여유롭다 느낀다.

역시 이런 여유는 혼자 있을 때 가능하다.

 

셋째, 생각 정리.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나는 시간을 두고 생각을 정리하는 편을 선호한다. 감정에 치우쳐 말을 뱉으면 늘 결과가 좋지 않았다.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라, 감정에 치우치기 쉽다. 이런 스스로의 성향을 알 수 있던 것 또한 혼자만의 시간 덕이다.

 

어떤 사건을 마주 했다면, 나는 답변을 미룬다.

많은 이슈는 시간이 해결해주며, 이는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축적 됐냐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 해결 되곤 했다. 물론 사안에 따라서는 생각 자체가 안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이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단숨에 결정해야 할지를 판단하기 위해선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축적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

 

결국 훗날 더 중요한 결정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선, 어렸을 때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역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분명 저자는 이런 식으로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하며 글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

좋은 주제를 선정한 것은 감사하나, 글의 구성과 필체 모두 불만족이다.

 

좋은 일이 생기려나…

왜이리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어…

 

[ 인상 깊은 문구 ]


  • 영양가 없고, 만족스럽지도 않으며, 의미도 없고, 무가치한 관계지만 그들이 없는 것보다는, 혹은 혼자인 것보다는 낫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확신이 안 선다.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해보고 싶지만 그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까봐 걱정이 앞선다.
  • 상대적으로 번영을 누리는 발전된 세계,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자율성과 개인의 자유, 성취, 인권,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주의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문화적 시기에 살면서 어쩌다 우리는–그토록 자율적이고 자유롭고 자기 실현적인 개인들은–혼자인 것을 두려워하게 됐을까?
  • 통계는 없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대부분 누군가가 혼자 있는 것이 일회성인 경우, 특히 그 사람이 평소에는 누가 봐도 사교적이거나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혼자 그 일을 하는 경우에는 그가 혼자 있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 듯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삶의 대부분을 혼자 지내면서 자기만의 이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경우다.
  • 정신적으로 건강하려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혼자이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틀림없는 착각이다.
  • 최근 들어 ‘loner(외톨이)’는 대중매체를 통해 ‘정신병적 대량 살상범이나 섹스광’의 약칭으로 애용된다.
  • 로마 제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놀랄 정도로 응집력 있는 문화였다. 그들의 문화는 애국심에 대한 독창적인 공화주의 기풍, 시민정신, 시민의 책임에 뿌리를 두었다. 심지어 이런 가치들은 기원전 27년 공화정이 무너지고 카이사르Augustus Caesar가 황제에 오른 뒤에도 그 중심에 남아 있었다.
  • 우리는 누구나 혼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모두가 위험에 처한 셈이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든든하게 보호해줄 친척도 없고, 인맥도 없으며, 여유 자금도 없고, 페이스북 친구도 없다.
  • “혼자 있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시험을 통해 입증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유효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대단히 큰 규모의 통제 집단을 추적 조사해야 하고,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작위 요소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집사회에 여가가 가장 많았고,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손실 중 하나가 바로 ‘휴식 시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심지어 중세 유럽의 소작농도 오늘날 중간 정도의 봉급생활자보다 휴일이 훨씬 많았다.
  • 번식이라는 문제 때문에 사실상 어떤 동물도 전적으로 혼자일 수는 없지만 동물들의 사회성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영장류들은 하지 않는 한 가지 특별한 행동을 한다. 바로 조직적인 사냥이다. 언어의 발생 기원을 집단 사냥에서 찾는 가설이 끊임없이 제기돼왔으며, 다양한 인류학 및 고고학적 증거들이 인간 사회가 수렵・채집인 무리였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 우리 시대에 만연한 고독에 대한 두려움의 원인 중 하나가 머릿속에 저장해놓은 소재가 부족해 의지할 만한 연결점이 없다는 두려움 때문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다.
  • 이상하게도 혼자 있는 수많은 방식 중에 대단히 위험한 단독 모험이 비난을 가장 적게 받는다. 설선雪線*으로부터 몇 킬로미터 위, 혹은 태평양 한가운데 조그만 배 위에 혼자 있기로 한 사람은 영웅 대접을 받는 반면 편안한 자기 집에서 혼자 있기로 결심한 사람은 괴짜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 ‘모험’이라는 단어는 대단히 사적이다. 행운이 충분히 따를 경우 용감하고 결단력 있는 당신이 전에 해보지는 않았지만 해낼 수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 모험의 정의다.
  • 우리는 아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거나 혼자 있는 것이 자기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거나 고독을 즐기도록 격려하는 데 노력을 거의 들이지 않는다.
  • 우리는 이제 혼자 있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창의성과 자아감 고취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폭넓은 경험을 할 기회를 주려 애쓰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젊은이들이 위험을 평가하는 능력과 회복력, 앞으로 힘든 일을 겪더라도 강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를 바란다. 풍부한 상상력과 뛰어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마음껏 자유롭게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즐기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은 혼자 있는 능력과 이따금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
  • 혼자 있는 것을 체별 형태(“네 방으로 가”)로 사용하지 마라. 그러면 아이는 혼자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대신 나쁘고 불행한 것으로 연상하게 된다. 대신 아이만의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상으로 그 공간에서 놀 수 있는 ‘타임아웃(휴식)’을 제공하라.
  • 모든 사람은 적어도 가끔은 진정한 자아가 들려주는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삶에 충분한 고독이 필요하다.
  • “대화는 이해의 질을 높이지만 고독은 천재를 위한 학교다.” 에드워드 기번의 말이다. 하지만 사실 이 말은 좀 이상하다. 앤서니 스토가 썼듯이 “예술은 소통이다. (……) 명시적이든 혹은 암묵적이든 고독 안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누군가를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더 어린 시인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결국 필요한 것은 (……) 거대한 내면의 고독이라네. 몇 시간이고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고 내면의 길을 걷는 것. 그 자체로 작품이자 지위이자 직업인 거대한 고독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세계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인간이 달성해야 할 목표라네.
  • 하지만 자유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자유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가령 가난이나 고통, 두려움같이 당신이 싫어하는 것, 당신을 옭아매고 제한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다. 다른 하나는–나는 이 두 번째 자유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더 즐겁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자유freedom to’다. 자유를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과 ‘행복 추구’라는 의미로 나누어 다루려는 최초의 시도는 아마 미국의 독립선언이었을 것이다.
  •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작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 개인의 자유가 제한됨을 의미한다. 아무리 좋은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그 사실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 저 사람들은 즐겁지 않아. 저 사람들이 즐겁지 않으면 나는 즐거울 수 없어. 내가 그들을 즐겁게 해줄 수 없다면 그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 않을 거야.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즐겁지 않아. 힘든 일이니까. 그들이 즐겁지 않은 이유를 알아내는 것은 재미있을지 몰라. 그들이 즐겁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는 데서 재미를 찾으면 안 돼.
  • 마지막으로 다시 앨리스 콜러의 말을 들어보자. 고독을 즐긴다는 것은 혼자 잘 지낸다는 의미다. 자기 스스로 선택한 일에 호사스럽게 몰두하고, 다른 사람들의 부재가 아닌 당신 자신의 존재에서 충만함을 깨닫는 것이다. 고독은 성취이기 때문이다.
  • 나는 이 책을 반대로 쓰기로 했다. 이런 종류의 ‘핸드북’은 책의 주제와 관련한 모든 영광과 기쁨으로 시작해서 독자들에게 기분 좋은 기대감을 불어넣은 뒤 문제점과 좀 더 부정적인 세부 사항으로 옮겨가는 것이 유용하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했다. 비록 나 자신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이 고독을 더 즐기기를 바라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고독이 약간 반문화적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은 생략하고 고독의 장점과 그것이 주는 즐거움을 우선으로 삼아 고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기쁨으로 충만한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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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Domingo

오세용 Domingo

글쓰는 감성개발자 오세용입니다. IT, 책, 축구, 커뮤니티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