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피엔스 ★★★★★

[ 읽게 된 동기 ]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책. 지식인들의 극찬을 받은 책.

큰 마음 먹고 구입하고, 1년간 읽은 책.

 

[ 한줄평 ]


 

내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 인기 교양과목.

 

[ 서평 ]


 

매일 지하철 9호선 급행을 타고 출근한다.

알 사람은 알 것이다. 출근길 9호선 급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저히 책을 읽을 수가 없어 E-Book Reader 를 구입했다.

맥북으로는 E-Book 을 많이 봤지만, 리더기로 읽은 첫 책.

구입 후 너무 오래 묵혀 둔 책이라 후딱 읽어보려 했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해주게 한 책.

사피엔스다.

 

 

우리는 누구인가?

 

 

꽤 긴 시간동안 이 책을 읽었기에,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까지 ‘교양/인문’ 카테고리에 이 책이 들어가는게 맞는지도 모르겠고, 역사나 과학 혹은 미래학 카테고리에 넣어도 될지도 잘 모르겠다. 경제학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고, 정치문제는 물론 전쟁 이야기도 다루고 있으니 그야말로 인류에 대한 ‘교양’ 을 모두 다룬 책이다.

 

보통 별점에 대한 이야기는 서평의 끝에 하지만, 이 책은 서평의 시작에 적어두고 싶다.

사피엔스를 일회독 했지만,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에 별점 5개의 만점을 준 이유는

그래, 잘 쓴 책이어서가 아니라 알아야 할 ‘교양’ 이기 때문이랄까?

 

올해 읽은 책들은 특히나 내 ‘시야’ 를 넓히는데 큰 역할을 해줬는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과연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토록 방대한 이야기를 설명해준 책은 처음이었다.

 

 

흔히 사피엔스를 소개하는 설명들은 ‘인지혁명’ 에 대해서 많이 다뤘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책의 주된 주장이다. 더 나아가 이 같은 협동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믿을 수 있는 독특한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상상’ 할 수 있는 능력.

이 능력은 사피엔스 종이 협동하게 만들었고, 종교, 국가 등 하나의 정의 아래에 수많은 개체가 협동할 수 있는 종은 사피엔스가 유일하다고 한다.

 

난 이 설명에서 ‘자본주의’ 에 대한 설명이 가장 충격이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살 때 내미는 ‘카드’ 또한 마찬가지다. ‘카드’ 는 곧 ‘돈’ 을 의미하고, ‘돈’ 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살 수 있는 무언가다. 우리는 ‘돈’ 을 보며 이것을 ‘상상’ 하고, 모두가 같은 것을 ‘상상’ 하기에 ‘자본주의’ 라는 것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 사피엔스이기에 ‘자본주의’ 가 가능한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가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까지의 일들을 핵심만 뽑아서 훑어준다.

마치 시험 전 핵심 키워드를 훑어주는 느낌이랄까? 이거 시험에 나와! 외워! 하는 느낌으로 어쩜 이리 설명을 잘 해뒀는지 모르겠다.

 

지하철 내 스마트폰 만을 쳐다보는 콩나무들 사이에서 유발 하라리의 역사 수업을 들으며, 참 묘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사피엔스도 지구의 종 중의 하나이고, 저자의 주장대로 ‘상상’ 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른 종과 사피엔스의 가장 큰 차이라면… 만일 이 ‘상상’ 하는 능력이 개나 고양이, 사자 등에게 갔더라면.

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고, 다른 이들과 같은 것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면.

 

사피엔스의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현재의 발걸음 속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위치인가? 나는 누구인가 등의 원천적인 질문을 땅을 쳐다보다 다음 정차역에서 우루루 움직이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던지며.

내가 하는 모든 일과 생각들이 하찮아짐을 느끼며.

스스로의 보잘 것 없음을 느끼며.

 

눈 앞의 사료를 먹어치우는 돼지 우리 속의 돼지와 나와의 차이점을 애써 찾아보며.

그저 본능만 남아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와 나와의 차이점을 애써 찾아보며.

어디서 생겨난지도 모르겠는 하루살이와 나와의 차이점을 애써 찾아보며.

 

내가 꼭 필요하다는 사람들과 내 덕이라는 사회의 사탕발린 정치 사이에서

과연 이 시점에 내게 이런 내용의 책이 찾아온 것은 어떤 이유일지 생각해보며.

 

나는, 우리는 누구인지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 아니, 어디로 가고 싶은가?

 

 

지난 6년간 360여개의 사색노트와 함께 나름의 사색을 즐긴 편이라 생각했다.

6년간의 커리어 뒤 새로운 커리어로의 변경을 고민하며 참 많은 생각들을 해왔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등의 질문보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에 대한 답이 훨씬 어려운 스스로를 보면서.

도대체 언제쯤 성숙한 스스로가 될지 고민하면서.

유발 하라리와의 대화는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개발자로 일하면서. 수만, 수십만의 사용자들의 시간을 아끼는 일을 하면서 처음엔 꽤나 자부심을 가졌다. 하지만, 수만, 수십만의 사용자가 아닌 내 고용주와 특정 고객들을 위한 일임을 깨달으면서.

결국 내가 하는 일도 상사를 위한 ‘일을 위한 일’ 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많이 일할 수록 더 많이 일하게 된다는 경험을 유발 하라리식 논리에서 발견하면서.

 

아니길 바랬던 이 사회의 어두운 면이, 결국은 역사의 흐름에서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피엔스의 역사가 굉장히 부끄러워짐을 느꼈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 계획은 그랬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지금처럼 해가는 것이 맞을까?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하긴,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하는 역사조차 결국 ‘승자’ 의 기록들이 아니던가?

 

 

결국은 행복. 

 

 

우리는 왜 살까?

과연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가 명확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최근 커리어적 갈림길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결국 우리네 인생이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태어날때부터 인생이 정해져있다면.

그것보다 재미없는 삶이 어디있을까?

 

개인이 각자의 삶의 길을 결정하는 데 전례 없이 큰 힘을 누리게 되면서, 우리는 남에게 헌신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와 가족이 해체되고 다들 점점 더 외로워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동시대에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혼자서 행복을 느낄 수 없고, 특히 나는 그렇다.

하지만, 요즘의 세상은 너무도 생각없이 움직이는 행위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온라인 상에서 내뱉는 말은 참 책임없는 행동들이 많은데, 이는 스스로의 업에 회의감을 줄 때도 있다.

사람과 사람을 편하게 연결하는 것에 큰 의미를 느꼈던 내게 하찮고 무의미한 연결을 만들어대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과연 그들은 그 행위들에서 행복을 느끼는걸까?

아니, 행복을 원하는 욕구가 잘못 표출된걸까?

 

행복은 정말로 자기기만에 달려 있는 것일까?

 

행복을 찾는 과정은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이 기억되려면 행복하지 않은 것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 말이다.

 

 

그래서 내 이야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 교수의 베스트셀러 사피엔스를 읽으며,

그 안에 담긴 거대한 이야기를 내 삶에 빗대어 보며.

어쨌든, 별 5개의 이 책을 제대로 뽕 뽑지 않았나 싶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다음이다.

 

결국 사피엔스는 ‘상상’ 하며 ‘다음’ 을 만들어왔다.

‘상상’ 하지 못하면, ‘상상’ 하지 않으면 ‘사피엔스’ 가 아니다.

우리는 결국 그 힘으로 지구의 지배자가 된 것이다.

 

마찬가지다.

나를 ‘상상’ 하고 이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내가 아니고 내 인생이 아니다.

결국은 내가 상상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게 내가 사피엔스임을 증명하는 길 아니겠는가?

 

 

[ 인상 깊은 문구 ]


 

  • 하지만 최근 우리는 죽음이 기술적인 문제라고 재정의하였다. 매우 복잡한 문제이긴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과학은 모든 기술적 문제에 모종의 기술적 해결책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예수나 부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전통적으로 죽음은 사제와 신학자의 전공이었지만 오늘날 이 분야를 공학자들이 넘겨받았고, 실험실의 괴짜 연구자 두 명이 이를 해결해낼 수도 있다. 2년 전 구글은 ‘캘리코’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는데, 그 회사의 목표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자궁에서 나올 때, 말하자면 유약 발라 구운 도자기 같은 상태로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든 재성형하려면 긁히거나 깨질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인간은 용광로에서 막 꺼낸 녹은 유리덩어리 같은 상태로 자궁에서 나온다.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게 가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아이를 교육시켜 기독교인이나 불교도로도, 자본주의자나 사회주의자로도, 호전적 인물이나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사실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인간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많은 시스템이 덜 발달된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갓 태어난 망아지는 곧 걸을 줄 알고, 고양이는 생후 몇 주만 지나면 어미 품을 떠나 혼자 힘으로 사냥에 나선다. 그에 비해 인간의 아기는 무력하여, 여러 해 동안 어른들이 부양하고 지키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 이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
  • 지난 1만 년간 호모 사피엔스는 유일한 인간 종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다른 가능성을 그려보기가 어렵다.
  • 그리고 가장 그럴싸한 해답은 바로 이런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언어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었다.
  •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 유인원과 원숭이의 모든 종을 비롯한 수많은 영장류는 목소리를 사용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녹색원숭이는 여러 종류의 울음소리로 의사소통을 한다. 동물학자들은 그중 한 울음소리의 뜻이 “조심해! 독수리야!”라는 것을 밝혀냈다. 조금 다른 경고 소리는 “조심해! 사자야!”라는 뜻이었다. 과학자들이 원숭이들에게 처음의 소리를 녹음해 들려주었더니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공포에 질려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두 번째 소리를 들려주었더니 다들 급히 나무 위로 피신했다.
  • 아마도 뒷담화이론과 ‘강변에 사자가 있다’ 이론은 둘 다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사람이나 사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는 사피엔스뿐이다.
  •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결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의 크기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이런 집단이 가능하려면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서로 만난 적도, 싸운 일도, 상대의 털을 골라준 적도 없는 두 침팬지는 상대가 믿을 수 있는 존재인지, 서로 도울 가치가 있는지, 둘 중 누구의 서열이 높은지 알지 못할 것이다.
  •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해서 이 결정적 임계치를 넘어 마침내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아마도 허구의 등장에 있었을 것이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면 성공적 협력이 가능하다.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모두가 공통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신화는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 실제로 이런 법적 상황 탓에 기업가 정신이 위축되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서 경제적 위험을 떠안는 데 겁을 냈다. 집안이 완전히 거덜 날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는 사업은 드물었다. 사람들이 ‘유한회사’를 집단적으로 상상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쪽에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 비슷한 이유에서, 원시인류는 어떤 혁명도 시도하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한, 사회 패턴의 변화, 새로운 기술의 발명, 새로운 주거지에의 정착은 문화가 개시한 일이라기보다는 유전자 돌연변이와 환경의 압력에 따른 결과였다. 인류가 이런 단계를 거치는 데 수십만 년이 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부족사회에서 두 낯선 사람이 서로 교역을 하고 싶다면, 공통의 신, 공통의 신화적 조상이나 토템 동물에게 호소함으로써 신뢰를 구축할 것이다. 만일 그런 픽션들을 믿는 원시 사피엔스가 조개껍데기와 흑요석을 교역했다면, 이들은 정보를 주고받는 교역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럼으로써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여타 원시인류가 활용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밀도 있고 폭넓은 지식망을 창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사피엔스가 발명한 가상의 실재의 엄청난 다양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행동 패턴의 다양성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했으며, 그 멈출 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 우리는 여전히 동물이며 우리의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능력은 여전히 DNA에 의해 결정된다.
  • 사피엔스는 픽션을 창조하는 능력 덕분에 점점 더 복잡한 게임을 만들었고, 이 게임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더욱 발전하고 정교해진다.
  • 별 볼 일 없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으며, 물품을 배달하거나 조립라인에서 단순노동을 하면서 그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
  • 건강에 유익한 음식을 다양하게 먹고, 주당 일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으며, 전염병도 드물었으니, 이를 두고 많은 전문가는 농경 이전 수렵채집 사회를 ‘최초의 풍요사회’라고 불렀다.
  • 수렵채집 사회에서 전쟁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일부 학자들은 고대 수렵채집 사회는 평화로운 천국이었으며 전쟁과 폭력이 시작된 것은 사람들이 사유재산을 축적하기 시작한 농업혁명 이후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고대 수렵채집 사회가 특히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두 주장은 모두 공중에 지은 누각에 지나지 않고, 이들을 지상과 연결하는 줄은 가늘다. 빈약한 고고학적 증거와 오늘날의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만 있을 뿐이다.
  • 이전에도 인간은 획기적인 적응과 행태를 조금 보여주었지만, 그것이 환경에 끼친 영향은 무시할 만했다. 다양한 서식지에 침투해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서식지를 극적으로 바꿔놓지는 않았다. 반면에 호주 정착민들, 보다 정확하게는 정복자들은 현지 생태계에 적응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생태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꿔버렸다.
  • 인류의 이런 진격전은 호모 사피엔스의 뛰어난 창의력과 적응력을 증언한다. 다른 동물은 이토록 극단적으로 다양한 서식지들에 사실상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상태로 그토록 빨리 이주한 예가 전혀 없다.
  • 이런 작업을 하면 더 많은 과일과 곡물과 고기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간이 생활하는 방식의 혁명, 즉 농업혁명이었다.
  • 한국이 가르쳐주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기술은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고, 마침내 사람들이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 실상을 말하자면 커다란 뇌는 자원을 고갈시키는 밑 빠진 독이다.
  •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우리의 언어가 바로 이런 목적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 오늘날 풍요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평균 40~45시간 일하며 개발도상국에선 평균 60시간, 심지어 80시간씩 일한다
  • 우리 조상들이 잡거나 채취했던 수천 종의 동물과 식물 중에 농업과 목축업에 맞는 후보는 몇 되지 않았다. 이들 종은 특정 장소에 살았고, 그 장소들이 바로 농업혁명이 일어난 지역이다.
  •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기본적 기준에 따르면 밀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식물이 되었다.
  • 곡류를 중심으로 하는 식단은 미네랄과 비타민이 부족하고 소화시키기 어려우며 치주조직에 해롭다.
  • 만일 한 종이 많은 DNA 복사본을 뽐낸다면 그것은 성공이며 그 종은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1천 벌의 복사본은 언제나 1백 벌보다 좋다.
  •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 계획은 그랬다.
  • 초기 농부들이 예측하지 못한 것이 또 있었다. 아이들에게 모유를 덜 먹이고 죽을 더 많이 먹이면 면역력이 약해져 영구 정착촌이 전염병의 온상이 되리란 사실이었다. 그들은 또한 단일 식량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가뭄에 더욱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또한 풍년에 넘쳐나는 창고는 도둑과 적을 유혹할 것이며 이를 방비하려면 성벽을 쌓고 보초를 서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예견하지 못했다.
  • 좀 더 쉬운 삶을 추구한 결과 더 어렵게 되어버린 셈이었고, 이것이 마지막도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중 상당수는 돈을 많이 벌어 35세에 은퇴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유수 회사들에 들어가 힘들게 일한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거액의 주택 융자, 학교에 다니는 자녀, 적어도 두 대의 차가 있어야 하는 교외의 집, 정말 좋은 와인과 멋진 해외 휴가가 없다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들이 뭘 어떻게 할까? 뿌리채소나 캐는 삶으로 돌아갈까? 이들은 노력을 배가해서 노예 같은 노동을 계속한다.
  • 사람들은 가장 공격적이고 통제가 어려운 양을 제일 먼저 도축했다. 가장 순종적이고 마음에 드는 양은 오래오래 살면서 번식하도록 허락했다. 그 결과 가축화되고 순종적인 한 떼의 양이 생겼다.
  • 이들의 진화적 ‘성공’은 무의미하다. 아마도 좁은 상자 안에 갇혀서 살을 찌우다가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가 되어 짧은 삶을 마감하는 송아지보다는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한 야생 코뿔소가 더 만족해할 것이다. 만족한 코뿔소는 자신이 자기 종족의 마지막 개체라는 데 아무 불만이 없다. 송아지의 종이 수적으로 성공한 것은 개별 개체들이 겪는 고통에 그다지 위안이 되지 못한다.
  • 수렵채집인의 생업경제에서 장기 계획을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수렵채집인들은 그 덕분에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자기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일을 걱정해봐야 무의미했다.
  •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 진화는 평등이 아니라 차이에 기반을 둔다. 모든 사람은 얼마간 차이 나는 유전부호를 가지고 있으며, 날 때부터 각기 다른 환경의 영향에 노출된다. 그래서 각기 다른 특질을 발달시키게 되며, 그에 따라 생존 가능성에 차이가 난다. 따라서 ‘평등한 창조’란 말은 ‘각기 다르도록 진화했다’는 표현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 어떤 사회의 질서가 군사력에 의해 지탱된다고 말하는 순간, “군대의 질서는 무엇이 유지하는가?” 하는 의문이 당장 떠오른다. 오로지 강요에 의해서만 군대를 조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소한 일부 지휘관과 병사는 신이든 명예든 조국이든 남성다움이든 돈이든 뭔가를 진심으로 신봉해야만 한다.

  • 역대 대통령과 의원 대다수가 인권을 신봉하지 않았다면, 미국 민주주의는 250년간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투자자와 은행가 대다수가 자본주의를 신봉하지 않는다면, 현대 경제 시스템은 단 하루도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 고대 이집트의 엘리트들은 피라미드를 짓고 자신의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데 재산을 썼지만, 누구도 바빌론에 쇼핑하러 간다거나 페니키아에서 스키 휴가를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늘날 사람들이 휴가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를 진정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다.
  • 다양성을 권하는 낭만주의는 소비지상주의와 꼭 들어맞는다.
  • 주관이란 한 개인의 의식과 신념에 따라 존재하는 무엇이다. 해당 개인이 그의 신념을 바꾸면 주관은 사라지거나 변화한다.
  • 역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인 중 다수가 상호 주관적이다. 법, 돈, 신, 국가가 모두 그런 예다.
  • 하지만 농업혁명에 뒤이어 유달리 복잡한 사회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정보가 중요해졌다. 바로 숫자다.
  • 30년 전에 쓰인 문제의 밀밭 관련 증서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찾아낸단 말인가? 찾는다 해도 30년 전의 문서가 문제의 밭과 관련된 가장 최신 문서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
  • 문자체계가 인간의 역사에 가한 가장 중요한 충격은 정확히 이것, 즉 인간이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과 세계를 보는 방식이 점차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자유연상과 전체론적 사고는 칸막이와 관료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 모든 사람이 능력을 배양하고 가다듬을 기회를 동등하게 누리는 것은 아니다.
  • 1958년 미시시피 대학교에 지원한 흑인 학생 클레넌 킹은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었는데, 판사가 미시시피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흑인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판결했기 때문이었다.
  • 진실을 말하자면,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라는 우리의 관념은 생물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서 온 것이다. ‘자연스러움’이란 말의 신학적 의미는 ‘자연을 창조한 신의 뜻에 맞는다’는 뜻이다.
  • 생물학이 아니라 신화가 남녀의 역할, 권리, 의무를 규정하기 때문에, ‘남성성’과 ‘여성성’의 의미는 사회에 따라 크게 달랐다.
  •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없다.

  • 제국의 엘리트들은 정복에 따른 이익을 군대와 성채에만 쓰지 않았다. 철학, 예술, 사법제도, 자선에도 썼다. 아직 남아 있는 인류의 문화적 성취 중 상당한 몫은 제국이 피정복민을 착취한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
  • 이슬람교나 불교처럼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종교는 보편적이고 선교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종교가 그렇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실상 대부분의 고대 종교는 지역적이고 배타적이었다. 신자들은 국지적 신과 영혼을 믿었으며, 인류 전체를 개종시키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이 살해한 기독교인은 몇천 명을 넘지 않았다.1 이와 대조적으로 이후 1,500년간 기독교인은 사랑과 관용의 종교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기독교인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 1933년의 과학 지식 수준을 고려하면, 나치의 믿음이 한계를 넘었다고 보기 힘들었다. 각기 다른 인종이 존재한다는 것, 백인이 우월하다는 것, 이 우월한 인종을 보호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서구 엘리트 대부분이 갖고 있던 믿음이었다.
  • 인간의 행동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호르몬, 유전자, 시냅스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펴는 과학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 그러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 하지만 더 많은 관찰이 곧 더 많은 지식은 아니다. 우주를 이해하려면, 관찰들을 연결하여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 필요가 있다. 과거의 전통에서는 보통 이야기를 써서 이론을 꾸며냈지만, 현대 과학에서는 수학을 사용한다.
  • ‘지식’의 진정한 시금석은 그것이 진리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주느냐의 여부다.
  • 제한된 자원을 끌어오려면 우리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무엇이 좋은가?”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만 한다.
  • 이런 인종차별 이론은 수십 년간 명성과 존경을 얻었지만, 이제는 과학자와 정치인 모두에게 극단적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 근대 경제사를 알기 위해서 정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다. ‘성장(growth)’이란 단어다.
  • 은행은 자신들이 가진 1달러당 10달러를 빌려주는 것이 허용된다. 그 말은 우리의 은행계좌에 있는 모든 예금의 90퍼센트는 이에 대응하는 실제 화폐가 없다는 뜻이다.
  • 빵집이 없으면 케이크를 구울 수가 없고, 케이크가 없으면 돈을 벌 수 없으며, 돈이 없으면 도급업자를 고용할 수 없고, 도급업자가 없으면 빵집도 없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결과 경제는 얼어붙어 있었다.
  • 은행과 정부는 돈을 찍어내지만 궁극적으로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과학자들이다.
  • 신용등급은 그 나라가 부채를 갚을 가능성을 가리킨다. 순수한 경제적 데이터 외에도 정치, 사회, 심지어 문화적 요인을 고려해서 매겨진다.
  • 이것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옥에 티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윤이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지거나 공정한 방식으로 분배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 고무를 수집하는 아프리카 촌마을 사람들에게는 점점 더 많은 할당량이 주어졌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게으름’을 이유로 잔인한 벌이 주어졌다. 팔을 절단해버리는가 하면 어떤 때는 한 마을 전체를 학살하기도 했다.
  • 인간의 모든 활동과 산업에서 매년 소비하는 양은 5백 엑사줄 가량으로,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90분간 받는 양에 불과하다.
  • 고아로 만든 새끼들은 필요한 모든 영양을 제공받았음에도 성장한 후 정서장애가 생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원숭이들은 원숭이 사회에 결코 적응하지 못했고, 다른 원숭이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높은 수준의 불안과 공격성에 시달렸다.
  • 부자의 지상 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다.
  • 마침내 1880년 영국 정부는 영국의 모든 시간표는 그리니치를 따라야 한다는 법률을 제정했다.
  • 바람 없는 달 표면에 지워지지 않을 발자국을 남겼던 닐 암스트롱은 3만 년 전 쇼베 동굴에 손자국을 남겼던 이름 모를 수렵채집인보다 더 행복했을까?
  • 개인이 각자의 삶의 길을 결정하는 데 전례 없이 큰 힘을 누리게 되면서, 우리는 남에게 헌신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와 가족이 해체되고 다들 점점 더 외로워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 니체가 표현한 대로,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은 한창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찍한 시련이다.
  • 행복은 정말로 자기기만에 달려 있는 것일까?
  • 부처가 권하는 것은 우리가 외적 성취의 추구뿐 아니라 내 내면의 느낌에 대한 추구 역시 중단하는 것이다.
  •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책의 주된 주장이다. 더 나아가 이 같은 협동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믿을 수 있는 독특한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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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Domingo

오세용 Domingo

글쓰는 감성개발자 오세용입니다. IT, 책, 축구, 커뮤니티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