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게 된 동기 ]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 한줄평 ]


그가 왜 문재인 대통령이 되었는지를 보여준 소설같은 실화.
 

[ 서평 ]


 
대통령.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대통령’ 은 어떤 존재일까? 어떤 존재라 해야 할까?
과연 어떤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고, 우리는 그에게 어떤 것들을 기대해야 하는 걸까?
대통령은…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일까?
 
사람 셋이 모이면 ‘정치’ 가 이뤄진다고 할 만큼,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 우리는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치’ 가 필요하다. 능력만 뛰어나다고 해서 사회에서 인정받거나, 행복한 인생을 사는건 아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약자에 속한다면 ‘정치’ 는 필수다. 누군가에게 원하는 얻어내는 것 또한 ‘정치력’ 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있어 ‘정치’ 는 꼭 필요한 능력치고, 마냥 어린아이처럼 ‘나는 정치 싫어’ 라며 칭얼댈 일이 아니다.
그런데, 2017년 우리 대한민국의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가 싫었다고 했다.
 

“제가 정치를 잘 모르니, 정무적 판단능력이나 역할 같은 것은 잘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리원칙을 지켜나가는 일이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을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를 쓰십시오.”

 
원리원칙을 지키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문재인 변호사는 그렇게 정치에 입문했다.
 
 

내가 봤던 문재인 대통령.

 
나는 조부모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의 학창시절 돌아가셨다고 했고, 외할머니는 내가 말도 못하는 애기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때 돌아가셨는데, 학교를 꽤 오래 안갔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 또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뒤 돌아가셨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셨던 토마토를 나눠주셨던 기억. 토마토를 담았던 접시에 남은 달달한 국물을 내게 양보하셨던 기억.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 대신 날 돌봐주셨던 할머니와의 기억은 남아있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두 분 모두 60대에 돌아가셨던걸로 기억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1953년 1월생. 나의 아버지보다 다섯살 많은 그는, 만 64세의 그는, 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당시 그쯤의 나이다.
문재인 대통령. 그는 단지 외모적으로 내게 흐린 기억 속의 ‘할아버지’ 를 연상시키던 정치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탈락했던 2012년 후보시절. 회사 앞에서 찍었던 연설중인 문재인 후보 | 2012.12.17>

 
2012년. 당시 여의도에서 일했던 나는 점심시간에 우연히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만났다. 저때만 해도 ‘문재인’ 이란 사람을 잘 몰랐다. 어머니는 내게 ‘노무현 대통령’ 의 최측근 이라고만 말해주셨다. 그땐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 뭐 그리 대단한거냐며 반문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내게 문재인 후보는 그냥 이미지 선한 정치인이었다.
그만큼 갓 졸업한 20대 중반의 나는 정말이지 정치에 너무도 무지했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내 앞가림 하기도 벅찼고, 정치는 그저 나와는 먼 ‘어른’ 들의 일이라 생각했다. 물론, 투표권이 주어지고 투표엔 늘 참여했지만 투표시 얼마만큼의 시야로 후보자를 선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20대의 내게 정치는 관심 밖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후보자를 말할 때 ‘노무현 대통령’ 을 언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내게 ‘대통령’ 은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문재인을 알려면, 노무현을 알아야 했는데 나는 노무현 대통령도 몰랐으니 문재인 대통령도 몰랐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보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 시대를 살았으면서 그를 모른채 보냈다는 것에 안타까움이 더 컸다.
최근 대통령 탄핵과 아니, 벌써 1년이 흘렀구나. 최근 정치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이 커지고, 온라인상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나 또한 정치에 전보다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난 18대 대선과 19대 대선은 후보자들의 TV 토론을 챙겨봤고, 여러 칼럼을 읽고 친구들과 의견도 나눴다. 그 과정에서 ‘문재인’ 이란 사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많은 것들을 바꿔가고 있다. 그런의미에서 이 책은 현 대한민국 대통령이 왜 대통령이 되었는지, 왜 되려고 했었는지, 왜 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책이다.
 
그래서, 문재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청년 문재인

 
젊은이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특수부대 출신, 변호사 출신, 노무현의 친구, 만화 원피스의 명왕 으로 알려져있다.
 

<네이버TV, YTN플러스 ‘대선 안드로메다’>
 
청년이었던 대통령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내게 대통령은 너무도 먼 존재였기에 앞서 말했듯 그동안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또한, 대통령이란 존재는 가장 권위있는 어른이기에 지금처럼 SNS 가 발달하기 전에는 가벼운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개 웃는상이고, 차분한 말투와 단정한 옷을 입으며 늘 정도를 따르는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정치인은 이미지 그대로를 믿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나가는 말 조차도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정치적 행위’ 일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할 줄 알아야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정치적 능력을 지닌거라 생각한다.
 

“나는, 내가 인권변호사를 하겠다거나 그걸 목표로 삼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사건들이 올 경우에 피하지는 않을 겁니다.”

 
헌데, 책 속의 그는 정말이지 바른생활 사나이 그 자체였다.
그가 지냈던 대학생 시절은 나의 대학생 시절과는 너무도 달라서 상상이 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자신의 몸을 버려가며 사상을 알렸는지. 시위를 하며 눈을 잃기도 하고, 미래를 잃기도 했는데 왜 그시절 대학생들은 굳이 앞에 나서서 소리쳤는지. 바른생활 사나이로 청년 시절을 보냈던 그가 그들 중에서도 굳이 시위에 앞장섰던걸 보면, 나서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그런 역할들을 했던걸 보면 이유는 두가지다.
정말 그럴 운명이던가, 아니면 사실은 그걸 즐기던가.
 
스스로가 믿는 것에 대한 신념과 자신감 이면에는 스스로를 던지는 다소 무모함도 있었다. 자신을 던지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다만, 나 또한 내가 정말 아니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는 뭐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런 면을 가지지 않았나 싶다. 즐기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저 몸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때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생각이 변함없다”고 버텼다. 그러고는 최종 합격자 발표 때까지 그렇게 대답한 것을 후회했다.

 
세상에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저런 말도 안되는 면접을 보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신의 직장에 합격하는 마지막 면접에서 자신의 행동을 뉘우쳐야 합격시켜준다는 말을 듣곤 자신의 신념을 고집할 수 있는 청년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청년 문재인은 아버지가 돈을 못벌어 어머니가 고생하며 가족을 꾸렸던 것을 봤기에, 출세하여 가족을 돕고 싶었을텐데도 스스로의 신념을 꺾지 못한다.
글쎄, 내가 봤을땐 타고난 리더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꼭 필요한 존재다.
 
좋은 인품과 강한 신념. 엄청난 두뇌와 선한 이미지. 원리원칙 주의자이며, 청렴함과 정직함도 지녔다.
그는 꽤 훌륭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가졌다. 하지만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능력치 중 앞서 말한 것들보다 지금 말할 이 능력치가 가장 우리 시대에 필요한 능력치라고 본다.
 

나는 아버지의 삶과 죽음이 너무 가슴 아팠다. 돌아가시는 순간의 이야기를 듣고는, 나는 아버지가 삶에 너무 지쳐서 생명이 시나브로 꺼져간 것 같이 느껴졌다.

 
공감능력.
자신의 아버지에게 공감하는건 당연하지 않느냐 물을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고 한다. 이는 앞으로 스스로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뜻한다. 가장 큰 보호자가 사라졌음을 말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걱정하는 말이다.
헌데, 문재인 대통령은 아버지의 삶과 죽음이 너무 가슴 아팠다고 했다. 자신의 미래보다 아버지, 당신의 삶을 먼저 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었다.
원리원칙을 따지지만, 그로인해 타인이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해야만 하는 자리라면, 그 자리를 피했다. 피할 수 없는 자리라면 너무도 아파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이러한 감성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도 상처가 많으니까 말이다.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앞서 말했듯, 나는 문재인을 새로이 안 것 보다 노무현을 몰랐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스스로 앞가림 하기가 너무도 벅찬 우리나라. 모든게 엮여버린 세계이기에, 어느 하나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우리나라. 이 나라를 운영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대통령은 정파관계를 떠나 너무도 어려운 위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모든 대통령은 참 고민을 많이 하며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잘못한 것이 있다면, 분명 잘 한 것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이는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뿐만 아니라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어쨌든 그 리더들이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약한 우리나라가 잘 살고 있는게 아닌가?
하지만 그 중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는 기분이 참 이상했다.
 

노 변호사는 그렇지 않았다. 경계가 없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그대로 실천하고 행동했다. 후일 정치인 노무현도 같았다.

 
물론 노무현의 최측근인 문재인이 글을 썼기에, 그의 좋은점에 포커싱 해서 썼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없는 이야기는 쓸 수 없는 법. 노무현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줬던 일들을 차분히 적어갔다.
나 또한 친구들과 작은 팀을 만드는 팀장으로써, 학창시절 작은 팀이라도 늘 리더를 해왔던 나로써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들이 너무도 공감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참 외로웠을 그의 인생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늘 그런식이었을거다. 다 자기 탓이고, 자신은 다 잘해야만 하고. 늘 깊게 사색하고, 공부하며 부족함을 채워야 했고. 언젠가부터 주변의 사람들이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것을 보며, 스스로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뒤 더욱 자신을 옥좼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역량이 다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역량이 최고치였고, 때문에 스스로를 희생하는 선택을 늘상 해왔을 것이다. 아쉽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때문에 그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존경을 그를 싫어했던 사람들은 증오를 보내며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을 것이다.
더 슬픈것은 아마도 그가 그러한 것들 또한 스스로가 부족한 탓이라며 누구도 탓하지 않고 조용히 공부하고, 노력했을 거라 생각되는 것이다.
 

내가 한번은 궁금해 하자 대통령은 “문 수석도 자기 일이 되면 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내 담당분야만 내 일이지만, 대통령은 회의에서 논의되는 모든 내용이 당신 일이라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그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했던 사람이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왜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그토록 중요했던 사람인지, 떠난 그가 왜 아직도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지. 문재인이 쓴 문재인의 책이면서, 노무현의 책이기도 한 이 책은. 읽고나서도 참 깊은 여운이 남는다.
 
 

그런데 정치는.

 
그가 쓴 그들의 이야기이기에 다소 편향된 부분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기 위해 SNS 상의 다양한 사람들을 팔로우 해뒀다. 물론 극단적인 사람들은 최대한 피하려 하는 편이다.
 
그동안 지켜본 결과, 생각보다 ‘극우’ 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논리적이었다. 내게 극우보수는 전형적인 꼰대에 그들과 다른 모두를 핍박하고 그저 그들만의 리그를 지키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조건 그들의 이익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극단적인 사람들은 제외)
물론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들도 한다. 최근에는 아직 유죄 판결을 받지도 않은 우병우를 왜 죄인 취급 하느냐? 법꾸라지라니? 답정너 라는 것이냐? 유죄판결이 없는데, 유죄인것이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너무 없다. 등의 이야기를 보기도 했다. 이 말들에 크게 동의하거나, 크게 반박하려는 이유로 팔로우를 하는건 아니다. 그저 나와 다른 세상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헌데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와 똑같은 텍스트를 사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는데 있어 예우가 너무 부족했다던지, 너무 과한 측근수사가 이뤄졌다던지. 이 역시 이들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텍스트 상으로 봤을땐 현재의 상황과 비슷한 면이 많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말하는 사람들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말하는 사람들.
물론, 그들이 너무도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언론의 말을 100% 믿을 수 없다. 분명 그들은 이해관계 당사자 중 하나이고, 때문에 그들은 내가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정보를 보이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들 로만 모든 결정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정치 상황들이 조금은 혼란스럽다.
 

그런데 대법원에선 다른 쪽 이야기를 듣고 대통령의 뜻을 잘못 이해했는지, 그만 전통적으로 해오던 연공서열 방식으로 후보를 제청했다. 제청된 분도 전통적 기준으로 보면 매우 훌륭한 분이었지만, 다양성이란 시대적 요구 때문에 큰 반발이 생겼다.

 
참여정부에 대한 이야기 중 몇몇 사건들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과연 다양성이란 무엇인가? 연공서열 방식으로 후보를 제청하는 것은 다양성을 침범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다양성의 목적은 무엇인가? 더 나은 후보자를 선택하는게 최선이자, 원칙이 아닌가? 다양성을 지키는 것은 다양성에 편승해 이득을 취하는 적폐가 아닌가? 나는 다양성을 지키는 것과 후보자를 전통적 기준으로 보는 것이 나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인사는 더 나은 사람을 선택하는게 아닌가?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책 말미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진보진영이 참여정부에게 신자유주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반대쪽에서 참여정부에게 ‘친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과 그 속성에서는 매한가지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힘들었던 것은 이 이유다. 정치판 모두를 적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사실상 힘이 있는 사람을 적으로 돌리고, 힘이 없는 모두를 위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선 결국 스스로가 슈퍼맨이 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물론,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내가 감히 알 수는 없겠다.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그 시대를 그리워했던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의 경험과 아픔을 만회해보라며, 그를 다시금 청와대로 보낸게 아닐지 싶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결국은 문재인 대통령도 문재인이 아닌, 그저 대통령이 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닐지…
그들이 원한건 그저 대통령이 아닌, 문재인 대통령일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는 겁이 많다. 글을 쓰고, 코딩을 할 때 완벽주의자 성향이 조금씩 묻어나는 것은 내가 겁이 많기 때문이다. 혹여나 오타가 있을까? 혹여나 버그가 있을까? 다양한 측면에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글과 코딩에서는 좋은 능력치가 된다.
하지만, 리더로써 이러한 가능성은 끝도 없는 고통을 의미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한정 가능성을 열게 되면, 결국 그 고통은 고스란히 리더의 몫이다. 나는 리더로써 늘 고통에 시달렸고, 뜻밖의 문재인과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속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을 짊어지기로 했다.
분명 인간은 한계에 달할 때 초인적인 능력이 생기긴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살아남았을 때의 일이다. 내가 아무리 그 고통을 이겨낸다 해도, 그 끝에는 오직 나 혼자만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함께 가는 것에 큰 의의를 두는 나로써는 끝까지 홀로 가는 것은 무의미 하다.
결국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이고, 그 최선들이 쌓여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믿기로 했다. 사람이 많이 모였을 때 최고의 선택이란 없다. 모든 것은 이면이 있기에,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있다. 모두에게 좋은 최고의 선택이란, 없다.
 
그래서 정치는 참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를 하고 싶은 생각이 지금은 없다. 훗날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꿈꾸는 미래에서 정치는 내 목적지가 아니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할 때도 사회생활을 할 때도 정치는 필요하다. 생각보다 지금까지는 정치를 너무 밉지 않게 잘 해온 편이고,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안에서 의견이 갈렸을 경우 리더로써 결정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 찾아오곤 했다. 나는 늘 나를 희생해서 최고의 선택을 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지난 경험을 빗대어 봤을때 결과는 내가 선택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최선의 선택을 할 뿐, 결과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더라.
 
앞으론 정치계의 정보에도 좀 더 관심을 기울여볼 생각이다. 기회가 되면 그들이 쓴 책도 읽어보고, 해외 정치인들의 이야기도 말이다. 결국 우리는 한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술을 한 잔 마시면 가끔씩 옛날을 추억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히 많이 규정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좋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너무 많아서다.

 
여러 이야기를 들었고,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도 느꼈지만 결과적으로 문재인이란 사람의 인생은 참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무려 스스로도 그저 ‘운명’ 이라 부를 수 밖에 없는 인생이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부럽기도 하다. 임기를 마치고 그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땐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이 서평을 몇 해 뒤 내가 읽었을 땐, 문재인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인상 깊은 문구 ]


 

  • 유신(維新) 1972년 10월17일 대통령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단행한 초헌법적 비상조치. 기존의 모든 민주주의 제도를 정지시키고,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장기집권 독재체제를 구축한 토대

  • 업무를 전문화해서 사무실을 키워나가고 싶다는 비전도 얘기했다. 서울의 로펌에서 받았던 솔깃한 제안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끌렸다.

  • 모두가 하는 관행을 혼자 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 “나는, 내가 인권변호사를 하겠다거나 그걸 목표로 삼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사건들이 올 경우에 피하지는 않을 겁니다.”
  • 하지만 한때 수입이 괜찮았던 노 변호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입이 준만큼 생활비를 줄여야 했을 테니, 누구보다 권양숙 여사님이 마음고생 많았을 것이다.
  • 그런 일들을 통해 재판과 수사의 잘못된 관행을 많이 고치게 했다. 그런 노력이 시국사건에서 결실을 이루면, 그것이 금방 일반 사건에까지 확산됐다. 지금은 그런 관행들이 거의 사라졌다.
  • 노 변호사는 그렇지 않았다. 경계가 없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그대로 실천하고 행동했다. 후일 정치인 노무현도 같았다.
  • 노 변호사의 경우 너무 열심히 한 것이 나중에 후배 변호사들에게 부담이 될 정도였다.
  • 너무 헌신적인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6월항쟁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사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아야 할 운동으로 생각하고 있다.
  • 노 변호사 변호인 수는 무려 99명이었다.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 변호인단이었다. 그중 부산 변호사들이 91명이었다
  • 그런데 노 변호사는 그곳을 택하지 않고,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 동구에서 출마하겠다고 했다.
  • 그러나 영광도 컸지만, 좌절과 고통도 많았다. 나는 그의 좌절과 고통을 볼 때마다 그의 정치 입문을 찬성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도 힘들 때는 ‘당신들이 정치로 내보냈으니 책임지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늘 행복했다.
  • 대책위의 성명서가 모든 성당과 신도들에게 배포됐다. 특별강론도 행해지고 모금도 이뤄졌다. 우리 인권운동사에서 대단하게 평가받아야 할 일이다.
  • 개인적 불이익도 마다않는 원칙의 정치인. 국민들은 그를 높이 평가했지만, 현실 속에서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 그냥 그는 그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을 해나갔고, 나는 나대로 내가 보람 있다고 여기는 일을 해나갔다.
  • “우리가 쭉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겪어봤지만, 역시 어려울 때는 원칙에 입각해서 가는 것이 가장 정답이었다. 뒤돌아보면 늘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땐 힘들어도 나중에 보면 번번이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노 후보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다
  • 불행했던 삶이 불쌍했고, 내가 잘되는 모습을 조금도 보여드리지 못한 게 참으로 죄스러웠다. 뒤늦게 내가 잘된다 해도 만회가 되는 일이 아니어서 평생의 회한으로 남아 있다.
  • 그런 개인적 경험 때문에 요즘 무상급식 논쟁을 관심 있게 본다.
  • 가능하면 혼자서 해결하는 것, 힘들게 보여도 일단 혼자 해결하려고 부딪혀 보는 것, 이런 자세가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가난이 내게 준 선물이다.
  • 독서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되고 인생을 알게 됐다. 사회의식도 생겼다.
  • 노 변호사는 변론을 위해, 수십 권의 서적을 깡그리 독파했다.
  •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아들이 군복무를 할 때 아내와 함께 면회를 갔다.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이었는데, 부대 상급자들이 나를 알지 못하도록 각별히 신경 써서 면회를 했다
  • 군복무를 좀 더 늦게 했다면 나도 역사를 거스르고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역할에 동원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 나는 아버지의 삶과 죽음이 너무 가슴 아팠다. 돌아가시는 순간의 이야기를 듣고는, 나는 아버지가 삶에 너무 지쳐서 생명이 시나브로 꺼져간 것 같이 느껴졌다.
  • 나는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마지막 순간 배신이 5·18 광주항쟁•에서 광주시민들로 하여금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르도록 했다고 생각한다.
  • “그때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생각이 변함없다”고 버텼다. 그러고는 최종 합격자 발표 때까지 그렇게 대답한 것을 후회했다.
  • 그 사건을 처리하면서 사람을 처벌하는 일이 내 성격에 맞지 않다고 느꼈다.
  • 나를 변호사로 되게 한 그 모든 과정들이, 결국은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미리 정해진 운명적 수순처럼 느껴진다.
  • 정말 고마운 분들은 부담 줄까봐 또는 내가 바쁠 것을 배려해 연락을 삼갔다. 반면 뭘 어떻게 도왔는지 알 수 없는 분들이 오히려 공치사를 하며 만나자고 했다.
  • “제가 정치를 잘 모르니, 정무적 판단능력이나 역할 같은 것은 잘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리원칙을 지켜나가는 일이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을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를 쓰십시오.”
  • 당시 민변 부회장이었고 나중에 회장까지 역임한 이석태 변호사는 인권변호사로 오래 활동한 선비 같은 사람이었다
  • 그는 인사검증 결과를 민정수석인 나에게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
  • 당선인의 여성관은 진취적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어느 여성의 능력이 남성과 비슷하다면, 그 여성은 훨씬 더 능력 있다는 생각이었다.
  • 내 경우엔 변호사 수입보다 적었다. 더 아껴 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나마 조금 있던 저축을 다 까먹었다. 그러니 고위공직자라고 해도 업무 외의 생활이야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 내가 한번은 궁금해 하자 대통령은 “문 수석도 자기 일이 되면 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내 담당분야만 내 일이지만, 대통령은 회의에서 논의되는 모든 내용이 당신 일이라는 것이었다.
  • 나는 첫 1년 동안 치아를 10개쯤 뽑았다. 나뿐 아니라 이호철 비서관과 양인석 비서관을 비롯해 민정수석실 여러 사람이 치아를 여러 개씩 뺐다.
  • 그때까지 검찰의 전통은 후배기수가 선배기수를 추월해서 승진하면 추월당한 선배들은 모두 옷을 벗는 것이었다. 동기 중에 한 사람이 검찰총장이 되는 경우에도 나머지 동기들은 모두 그만두고 나갔다.
  • 우리 쪽의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겪으면서도 검찰수사의 독립성과 중립을 보장해 줬다.
  •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순식간에 과거로 되돌아가 버렸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한꺼번에 퇴행해 버린 것이 어이없고 안타깝다.
  • 검은 권력비자금이 사라지면서 ‘권력산업’이 붕괴되고, 접대비 상한선제도 등으로 ‘접대산업’이 붕괴하고, 성매매특별법 도입으로 ‘섹스산업’이 무너졌다는 얘기였다.
  • 장기 국책사업들이 미제일 수밖에 없었던 건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권이든, 잘해야 본전이다.
  •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노동 분야에 있어서 참여정부 개혁을 촉진한 게 아니라, 거꾸로 개혁역량을 손상시킨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 실제로 미 일각에서 북폭(北爆) 얘기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한 등급 낮춘 일도 있었다.
  • 청와대 내부, 그리고 부처 사이의 의견이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했던 것, 그리고 다양한 의견 사이의 기탄없는 토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했던 게 참여정부 강점이었다고 생각한다.
  • “최도술은 약 20년 가까이 저를 보좌해왔고, 최근까지 저를 보좌했습니다. 수사결과 사실이 다 밝혀지겠지만 그 혐의에 대해 제가 모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잘못이 있으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국민여러분들께 사죄합니다. 아울러 책임을 지려합니다.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해 그 동안 축적된 국민들의 불신에 대해 재신임을 묻겠습니다.
  • 그러나 나는 민정수석을 하는 것만 해도, 원래 내 삶에서 너무 벗어난 것 같아 벅찼던 터였다. 더 나아가 정치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차라리 민정수석을 그만둘 생각을 했다.
  • 그런데 대법원에선 다른 쪽 이야기를 듣고 대통령의 뜻을 잘못 이해했는지, 그만 전통적으로 해오던 연공서열 방식으로 후보를 제청했다. 제청된 분도 전통적 기준으로 보면 매우 훌륭한 분이었지만, 다양성이란 시대적 요구 때문에 큰 반발이 생겼다.
  • 대통령은 반 총장 선출소식을 듣고 아주 반가워했다. 축하전화로 따뜻한 덕담을 건넸다. 그게 전부였다.
  • 당청분리 상황에서 당과의 관계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 한나라당은 별 탈 없이 그대로만 가면 차기 정권은 자기들 몫이라고 생각해서 변수가 될 만한 것은 무조건 피하려고 했다. 자신들이 집권하면 자신들부터 혜택을 보게 되는데도 그랬다.
  • 대통령의 이런 기조 때문에, 우리 협상팀은 밀고 당기는 숨 가쁜 과정에서 일관되게 ‘오늘 밤 미국 협상팀이 돌아가도 좋다. 우리는 답답한 게 없다’는 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심지어 협상이 깨질 상황을 대비해 준비한 몇 개의 양보카드도 있었는데, 그걸 쓰지 않고도 협상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
  • 땅값은 서울에 비하면 아주 저렴했지만 건축비 때문에 은행 대출을 받아야 했다. 대출금 상환은 대통령이 퇴임 후 책을 쓰거나 강연활동을 하면 충분히 갚아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 경제적 사정도 있었다. 원래 저축해 놓은 게 많지도 않았지만 청와대 있는 동안 다 까먹었다
  • <민주주의 2.0>사이트를 개설했다. 수준 높은 민주주의 의식과 진보적 담론을 놓고 토론하는 공간을 만들어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어 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 촛불시위의 배후로 우리를 의심했다는 얘기 역시 한참 후에 알게 됐다. 정말 놀라운 상상력이고 피해의식이었다.
  • 오죽 힘들고 미안했으면 유서에 그 마음을 담았을까.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 관련법을 만든 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전직 대통령이 퇴임 후 얼마든지 자신의 재임 중 기록을 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다 가져가버릴 테니 반드시 필요하다고 만든 법이다
  • 대통령은 우리를 보는 일조차 민망해 하고 면목 없어 하셨다. 내게 그런 심정을 직접 토로하기도 했다.
  • 그렇게 길고 긴 5월23일 하루가 넘어갔다. 내 생애 가장 긴 하루였다. 그날만큼 내가 마지막 비서실장을 했던 게 후회된 적이 없다. 시신확인에서부터 운명, 서거 발표, 그를 보내기 위한 회의주재까지. 나 혼자 있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했다.
  • 대통령 서거로 인해 격앙된 민심 앞에 벌벌 떠는 게 눈에 보였다.
  • 술을 한 잔 마시면 가끔씩 옛날을 추억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히 많이 규정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좋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너무 많아서다.
  • 진보진영이 참여정부에게 신자유주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반대쪽에서 참여정부에게 ‘친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과 그 속성에서는 매한가지다.
  • 솔직히 참여정부는 그런 것 없이 정권을 맡았다. 대통령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준비를 갖추고 있었을 뿐, 정당이든 연구소든 이쪽 진영 어디에서도 그런 준비를 한 곳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