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다. 현대에는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뜻으로 통하며 때가 되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사실 이 단어를 ‘어떤 시절 동안에만 인연이 닿는 사람’을 뜻하는 줄 알았다. 시절을 마치면 내게서 떠나가는, 그런 슬픈 단어라고 이해했다. 본 뜻은 조금은 다른 것 같지만.
사회 생활을 하며 어떤 벽을 만났을 때면 생각을 깊이 하는 편이다. 초기에는 생각만 많은 사람이었고, 생산적이지 못한 사람이지만, 여기저기 파 놓은 구덩이가 이제는 썩 유용한 생각 주머니로 활용되고 있다. 여러 구덩이를 파기까지 참 많은 방법을 썼다. 책을 읽는 것은 물론, 앞서간 선배들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도움도 많이 받았고. 이제는 나가지 않는 종교의 힘을 빌려보기도 했다. 그만큼 절박한 시기가 종종 있었거든.
그런데 종종 불교를 만나곤 했다. 스토아철학도 그랬고. 만약 내가 그 시절에 있었더라면 스토아 철학자나 스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창업을 하고 참 많은 사람을 새로 만났다. 감사한 고객사 직원들은 물론 파트너사 직원들. 동료 창업자들, 선배들. 청창사 친구들. 대학원 사람들. 주고 받은 명함만 몇백 장이 되니 아마도 스쳐 지나간 사람은 수천명은 되지 싶다. 운명을 믿는 편이기에 이들과의 마주침이 가볍지 않다.
반면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다. 의도적으로 거리를 만든 사람도 있고, 자연스럽게 멀어진 사람도 있고. 억지로 붙잡아도 결국 놓쳐버린 사람들도 있다. 무던해질 줄 알았는데, 경험이 쌓이고 연결이 늘어날 수록 어째 이별은 더 힘든 거 같다.
그간 오고 간 사람들을 단지 ‘시절인연’이란 단어에 담기엔 내 마음이 충분치 않다. 종종 읽는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처럼 그런 운명을 거스르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람을 만나고, 내 옆에 머무르게 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흐물텅 거리는 마음이 언제쯤 단단해질까 싶다가도, 언제라도 흐물텅 거렸으면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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