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났다. 이번 연휴는 꼭 해야할 미션 한 가지를 정했다. 오픈클로(Openclaw) 세팅이었다.

오픈클로 설치를 위해 기기 조정이 있었다. 여러 방법을 고민했는데, 역시 맥 미니에서 돌리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왜 맥 미니를 사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맥 미니를 안 샀다. 나는 맥북 프로 M5를 샀다. 그리고 기존에 사용하던 맥 미니를 초기화 하고 오픈클로를 설치했다.

이동 시 사용하던 내 맥북 에어 M1이 요즘 버벅이기도 했고, 깡통이라 256GB 하드도 다 찼고. 마침 인공지능 학과로 대학원을 가게 돼 겸사겸사 맥북 프로 M5를 데려왔다. 신상 맥북 프로를 설치하니 오랜만에 두근댔다.

오픈클로를 맥 미니에 설치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보안이었다. 나는 내 개인 계정과 회사 계정을 오픈클로에 물리고 싶지 않았다. 이를 위해 새로운 지메일과 애플 계정을 만들었고, 초기화된 맥 미니에 설치했다. 중간에 텔레그램 설정이 꼬였는지 계속 안 되길래 오픈클로를 다 날리고 다시 설치했다. 결국 설치 완료.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생각하며, 내 왕국을 만든다는 컨셉을 잡았다. 오픈클로에게 어떤 캐릭터를 심어줄까 했는데, 조선의 설계자로 불리는 삼봉 정도전을 골랐다. 그렇게 내 오픈클로는 ‘삼봉 선생’이 됐다.

내가 오픈클로로 세팅 후 하려던 건 정말 오픈클로를 활용하면 ‘딸깍’이 가능한지였다. 그러니까 단순히 채팅 지시만으로 웹서비스를 만들고, 정기 업무를 수행하고 나아가 알아서 업무를 할 수 있는지다.

연휴 마지막날 하루 동안 여러 업무를 지시했는데, 정말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삼봉 선생은 나를 왕으로 모시며 코드를 짜고, 정기 업무를 만들고, 위키를 만들고, 이를 관리할 웹서비스를 만들었다.

1/ 대시보드 웹서비스 : 앞으로 내가 만들 왕국의 업무 지시와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대시보드를 만들라고 했다. 특별히 언어와 아키텍처를 제시하지 않았더니 알아서 설계해서 만들었다. 업무보드 탭은 트렐로와 같이 만들라고 했는데, 외부에서 내가 텔레그램으로 지시하면 업무 카드를 만들고, 오픈클로가 카드를 옮기며 작업하는 형태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가져온 거다.

2/ 정기업무 : 두 번째는 정기업무다. 주변 대표자들과 함께 이커머스 정보를 다루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었다. 이 채팅방에 올릴 이커머스 뉴스를 큐레이션하는 정기업무를 지시했다. 어떤 콘텐츠를 올릴지부터 컨셉과 포맷을 제안해보라고 했고, 괜찮은 유형을 골라서 매일 아침 7시에 작업해서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테스트로 내일 보낼 내용을 지금 만들어서 텔레그램으로 보내보라고 했다. 함께 운영하는 대표들에게 보여줬더니 퀄리티가 괜찮다고 한다. 이제 매일 아침 일어나 텔레그램 텍스트를 복사해서 카카오톡에 붙여넣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 업무를 대시보드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정기업무별로 정리하고, 각 정기업무의 수행 이력을 볼 수 있도록 만들라고 했다.

3/ 위키 : 연휴에 하나 더 들여다본 게 있는데 ‘옵시디언’이다. 나는 2010년부터 에버노트를 쓰다가 2019년에 노션으로 변경했는데, 이후 워크플로위 등을 사옹해봤으나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이후 노션은 노트앱이 아닌 워크스페이스로 확장하며 원하지 않는 기능이 너무 많이 붙었고, 계속해서 나를 유혹했던 앱이 옵시디언이었다. 어쨌든 옵시디언을 오픈클로 용도로 하나 더 만들어서 앞으로 대화하는 내용을 나중에도 확인할 수 있도록 위키에 정리하라고 했다. 그리고 몇몇 데이터는 대시보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도록 위키 탭을 만들어 넣어두라고 했다.

4/ 서브 에이전트 : SNS를 보면서 내가 가장 FOMO가 왔던 지점이 AI 에이전트를 팀으로 만들어서 서로가 대화하며 알아서 작업하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만약 정말 이 구조로 의미있는 결과물이 가능하다면, AI 컴퓨팅 자원만 공급하면 정말이지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삼봉 선생에게 우리 왕국의 관직 체계를 만들라고 한 뒤 매일 정기업무인 이커머스 정보를 만들 부하를 ‘두식’이로 만들었다. 이어서 AI 에이전트 사업 아이디어를 정리할 부하를 ‘무진’이로 만들었다. 삼봉 선생은 나와 대화하며 두식이와 무진이 등 앞으로 생길 부하들을 잘 관리하라고 했고, 각자 업무를 잘 기록해두고 매주 한 일을 보고하라고 했다. 그리고 무진이에게는 한주 동안 진행할 업무를 미리 보고하라고 했다. 무진이는 ▲AI 자동화 대행 에이전시 ▲AI 세일즈 코칭 마이크로 SaaS. ▲AI 콘텐츠 자동화 SaaS 등을 조사해서 가져온다는데 이 퀄리티가 실행 가능하면 또 한명의 부하를 만들어서 실행시켜보려 한다.

하루 동안 삼봉 선생과 대화하며 느낀 것 세 가지를 정리해본다.

첫째, AI 에이전트 기술은 방관자로 쳐다만 볼 게 아니라 직접 일을 지시해봐야 하는 시점이 됐다. 솔직히 지난해까지는 얼리어답터들의 몫이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알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클로드 코드가 출시된지 이제 딱 1주년이 됐고 지난 1년 동안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해봐야 하는 시점이 됐다. 아마 올해는 이를 활용한 다양한 비즈니스 시도가 ‘출시’ 될 것 같다. 사업가로서 이 흐름에 너무 늦게 올라탄 게 아쉽다.

둘째, 업무를 잘 지시하는 자의 가치가 대폭 오를 거 같다. 지난 15년의 커리어를 돌아보면 업무 환경이 엄청나게 변화하고 그 과정에서 평가가 극으로 갈라졌던 시기가 있다. 코로나 시기다. 이 시기에는 대면으로만 업무를 지시해왔던 사람들의 평가가 대폭 하락했다. 그러니까 업무를 텍스트로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업무를 명확히 지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올해는 이보다 큰 변화가 벌어지지 싶다. 나는 협업 도구에 관심이 많고, 협업 문화에 관심이 많다. 각자가 어떻게 일해야 큰 시너지가 나는지에 관심이 있고, 이를 위해 각자를 지켜보고, 분석하는데 관심이 있다. 그런데 AI 시대에는 내가 원하는 캐릭터를 찾고, 분석하는 게 아니다. 원하는 캐릭터를 만들면 된다. 이는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에디터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업무를 잘 지시하고, 구조화할 줄 아는 자의 가치가 대폭 오른다. 어쩌면 훗날에는 모두가 이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셋째, 수요를 읽는 자의 가치가 대폭 오를 거 같다. AI의 발전은 결국 실행 비용이 지속 하락한다는 거다. 문제는 뭘 실행해야 하는지인데, 결국 모든 행위는 수요로 이어져야 가치가 생긴다. 혼자서 생산하고 혼자서 만족하는 혼자만의 취미 생활이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가치를 평가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수요와 연결 돼야 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오픈클로를 설치하고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지난 1월 맥 미니 대란이 있었다더니, 그 사이 맥 미니 중고 거래가 늘고 있다. 결국 뭘 해야 할지 찾는 자의 가치가 올라간다.

위 세 가지는 ▲실행력 ▲업무 구조화 ▲수요 발굴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추진력 ▲조직 관리 ▲사업 기획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즉, 이는 모두 창업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누군가는 AI를 두고 ‘딸깍’이라 말한다. 마치 마우스 클릭 소리처럼 ‘딸깍’ 한 번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의미로 여러 상황에서 쓰인다. 비록 아직은 오픈클로 설치도 진입 장벽이 있고, AI 비용도 큰 진입 장벽이 되지만 이는 점차 해결되고 비용 측면에서도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5년 뒤, 10년 뒤. 현재를 돌아봤을 때면. 마치 2010년 모바일 시대 초기처럼. ‘아! 그때 왜 그 생각을 못했지?’라며 크게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정말이지 큰 변화 속에 들어온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