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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주 새로운 스노우볼을 만들고 있다. 스노우볼이 굴러갈 것을 상상하자니 절로 기분이 좋은지 가족들이 좋은 일이 있느냐며 묻기도 했다. 그러게, 기분이 좋은 거면 좋은 일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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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커리어 중 가장 이상한 것을 고르라면 IT 기자라 하겠다. 개발자 6년 하다가 갑자기 기자가 됐으니 이력서만 보자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다. 하지만 나와 일을 해본 사람들은 ‘그래 그것도 어울린다’며 잘 해보라고 했다. 이상한 짓이 이상하지 않다니, 꽤나 이상한 커리어를 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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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IT 기자 커리어가 내 커리어 중 가장 큰 무기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미디어라는 게 블랙박스와 같아서 들어가서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게 참 많다. 별 것도 아닌데 벌벌 떠는 지인들을 보고 있자면, 답답함이 몰려와 알려주곤 했다. 그들에겐 너무도 신기한 능력치겠지만, 내게는 그저 지나온 이야기일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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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계획서를 쓰고, 발표를 하면 꼭 듣는 질문이 ‘차별성’이다. 당신의 차별성은 뭐냐. 다른 회사와 뭐가 다르냐. 아니, 사업계획서 양식을 맞추라는 둥. 너무 튀지 말라는 둥. 필요한 내용은 담아야 한다는 둥. 그렇게 똑같이 만들어놓고는 왜 다르지 않느냐며 지적하는 심사위원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창업자를 수십명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말 다 다르더라. 생각해보면 개발자 수백명을 만났지만 그들도 다 달랐다. 어쩌면 이제야 나도 이 블랙박스 안에 들어왔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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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볼을 만들겠다 선언하자 놀랍게도 주위에서 도와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그저 이 스노우볼을 만들고 싶었고, 내가 만들고 싶고, 꼭 갖고 싶다 했을 뿐인데. 정말로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도움을 받게 됐다. 인생 별거 없다고 하고 싶은 거 하라던 사람들이 무슨 마음이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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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볼을 굴릴 작은 눈덩이가 만들어졌다. 내 생각보다 단단하게 만들어져서 이거 꽤 기대가 된다. 이거 굴리느라 한동안 또 고통 받겠지만, 5년 뒤, 10년 뒤에 돌이켜보면. 어쩌면 IT 기자보다 더 이상한 짓으로 생각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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