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프디 창업 후 2년이 조금 넘었다. 틈틈이 기록해두자는 생각이 어느새 50번째 창업기다. 사회에서 내 가치를 올리기 위해 무한히 고민하며 뽑아낸 내 장점은 꾸준함이었다. 꾸준함을 무기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것도 10년을 넘어가니 무시 못할 무기가 되는 것 같다. 왜, 이소룡이 그랬지 않나. 만 가지 킥을 연습한 사람은 안 무서운데, 한 가지 킥을 만 번 연습한 사람은 무섭다고.
2/
성공한 사람이 ‘저는 운이 좋았어요’라고 말하는 게 참 싫었다. 비법을 알려주지 않으려고 둘러대는 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성공한 사람들의 강연을 오프라인에서 듣기도 하고, 기자가 돼 그들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기도 하고, 정말 우연히 유명인을 만날 기회도 있었다. 이제는 안다. ‘저는 운이 좋았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솔직한 사람이었다는 걸.
3/
지난 2년 동안 참 막막했다. 처음 상상했던 사업 구조가 생각보다 오래걸린다는 걸 1년쯤 지나서 깨닫고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엄청난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 시기에는 내게 불신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이 참 많았고, 스스로도 방향을 잃었다. “당신은 개발자로만 살았지 않느냐. 무슨 근거로 마케팅 제품을 만들겠다는 거냐. 우리 쇼핑몰을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거냐.” 끝 없는 물음에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이 모습에 내게 등 돌리던 사람들을 보자면 참 마음이 아팠다.
4/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나는 그동안 아무런 결과도 만들지 못했을까? 그동안 내가 보낸 시간은 가치가 없었을까? 나는 이런 역할을 감당할 자격이 없는걸까? 글쎄. 나는 여전히 할 수 있는 게 남았고, 작지만 세상에 없던 결과를 여럿 만들었고, 그 시간은 내게 참 가치가 있었고, 그래서 나는 더 견딜 수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더 믿기로 했다.
5/
놀랍게도 그 시점부터 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떠날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몇몇 사람은 어느 때보다 더 내 사람이 됐다. 내가 나를 믿자, 새롭게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때로는 누군가의 소개에 의해서, 때로는 다소 거리가 있던 사람이 다가오면서, 때로는 내 관심에 의해서, 때로는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도 했다. 문득 생각했다. 아, 이런 게 운이 좋다고 말하는 거구나.
6/
성향 탓도 있지만, 그래도 10년을 개발자로 살았던 터라 어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파악하게 된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타인이 원하는 노력으로 타인이 원하는 그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그림을 만들고 싶었다. 그것도 내가 잘 하는 것으로. 그것도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그러다보니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7/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니 내 인생도 꽤나 어두워졌다. 훌쩍 2년이 흘렀는데,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원하는 성과가 나지 않았다. 원하는 성과가 나지 않으니 열심히라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가끔은 다 그만 두고 싶기도 했고, 가끔은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아 견디기 꽤나 힘들기도 했다. 이 시기를 견뎌낸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부럽고 질투 났다.
8/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열심히인데, 이거 정말 의미가 없는 게 맞나? 여전히 할 수 있는 게 남았는데, 지금까지처럼 아무런 성과가 이어지지 않는 게 당연한 건가? 혹시 모르지 않나? 마지막에 노력이 결과로 이어질지? 내 노력을 꼭 결과로 인정 받아야 하나? 노력이 없는 결과도 있지 않나? 노력은 노력으로, 결과는 결과로 나눠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9/
사업은 상대적인 것 같다. 뛰어난 지능을 타고 났다던가, 뛰어난 네트워크가 있었다던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더라면 사실 내가 해온 노력따위는 필요 없을 거다. 애초에 노력으로 가질 수 없는 걸 가졌는데, 노력이 뭔 소용이 있을까? 2년쯤 지나니 내가 갖게 된 결과에 놀라움을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더라. 어떻게 그런 기업을 고객으로 데려왔느냐. 어떻게 그 사람을 알게 됐느냐. 어떻게 그 기업과 친해졌느냐. 나는 솔직히 말해왔다. 어쩌다 보니 알게 됐고, 먼저 인바운드로 찾아줬고, 누군가의 소개를 받았다고. 상대는 갸우뚱 한다. 아마도 내가 속인다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내가 노력하지 않은 성과에 칭찬 받는 게 부끄러웠는데, 어쩌면 그 과정에서 내 노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상대평가’로 더해져 내가 잘한 게 돼 버리는 것 같다.
10/
인생은 절대적인 것 같다. 세상은 돈이 전부라지만, 지난 2년 동안 나는 번 것보다 쓴 게 많다. 그동안 살면서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을 썼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내 삶에 자존감은 가장 높다. 누군가는 내 환경을 갖게 되면 큰 불만을 느끼겠지만, 나는 이게 좋다. 내가 상상한 그림을 만들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가끔 놀라운 연결이 생기고, 꿈꿨던 자리에서 상상한 멘트를 뱉고 있다. 그래서 그게 큰 돈이 됐냐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라 하겠지만,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 돈으로 만날 수 없는 경험이 아닌가. 세상의 대부분이 원치 않는 환경임에도 내가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고, 대부분 웃으며 지낼 수 있는 건. 아마도 나만의 ‘절대평가’로 내가 원하는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인 것 같다.
11/
이제는 안다. 판타지 속 어떤 퀴즈를 푸는 것처럼, 절대적인 인생을 살다 보면 상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것. 어디선가 나는 상대평가를 받겠지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의 절대평가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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