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단위 회고는 종종 했는데, 분기 회고는 처음이다. 계획 대부분이 그렇듯 모든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물론, 모두 달성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세 달은 짧기도, 길기도 한 시간이다. 작심삼일을 넘어 세 달 간 유지한 목표가 있는가 하면, 전혀 달성하지 못한 목표도 있다. 분기 회고는 잘해온 목표는 칭찬하고, 어긋난 목표는 바로 잡는 역할이다.

구글이 사용한다는 OKR 기법을 적용했다. 책을 읽고 적용한 것은 아니다. OKR을 읽고 쓴 STEW 멤버 서평을 읽었고, OKR을 비슷하게 사용하는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적용했다. OKR을 정확히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없었다. 그저 하기 전보다 조금 나아지면 그걸로 됐다.

먼저, 내 목표는 크게 ▲기본기 ▲소프트웨어 ▲경영 등 세 가지로 나눴다. 여기서 기본기는 또 ▲영어 ▲읽기 ▲쓰기 등 세 가지로 나눴다. 기본기를 다지는 게 올해 큰 목표 중 하나다. 이렇게 내가 정한 1/4분기 목표는 총 5가지였다.

  1. 영어에 관한 두려움을 이겨낸다
    • [O] Grammar in Use 주 5 Unit 외우기
  2. 지식인으로서 교양을 쌓는다.
    • [O] STEW 독서소모임 지정도서 3권 읽기(인생수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아주 작은 습관의 힘)
    • [O] 기술서 2권 읽기(처음 만나는 자바스크립트, 러닝 자바스크립트)
    •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1권 읽기
  3. 쌓인 내공을 글로 증명한다.
    • [△] STEW 매거진 출판
    • [O] 채널예스 칼럼 3개 쓰기
  4. 웹 프론트엔드 중급 개발자로 도약한다.
    • [X] 기술 포스트 3개 쓰기
    • [O] Vue.js 중급 강의 듣기(6시간 30분)
    • [X] Vue.js 완벽 가이드 듣기(10시간)
  5. STEW 첫 파티 무사히 개최한다.
    • [X] STEW 파티 1회

5가지 목표에 따른 각 행동을 정리했다. 이 목표는 1월 12일에 작성했고, 3월 30일인 오늘까지 달성한 것(O)과 달성 중인 것(△) 그리고 전혀 달성하지 못한 것(X)을 각 행동 앞에 표시했다. 적어둔 목표를 보니, OKR스럽지 않은 목표도 있고, 각 항목의 무게감이 적절히 분배되지 못한 것 같다. 특히 5번은 뭘 위한 행동인지 명확하지 않다. 왜 저렇게 작성했을까.

현재 내 중요도에 따라 소프트웨어와 기본기 그리고 STEW 순서로 회고를 적어본다.

소프트웨어, 50점

실망스럽다. 지난해 5월, 1년여 기자생활을 마치고 다시 개발자로 돌아왔다. 6년여 일했던 안드로이드 개발자가 아닌 웹 개발자로 포지션 변경을 해야 했고, 1년여 놓았던 코딩을 다시 해야 했다. 다소 불안감은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었고, 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내 의지로 선택한 것이다. 난 기술적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적응이 더뎠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API 문서를 만들고, QA 역할도 맡았다. 덕분에 팀에 편히 녹아들었고, 도메인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문제는 벌써 한 해가 가버렸다는 것이다.

12월이 되자 무척 다급해졌다. 분명 뭔가 계속했는데, 생각보다 기술적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원래 기술력이 뛰어난 개발자는 아니었지만, 일정에 문제가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웹 개발은 내게 익숙하지 않았기에 생각보다 더 속도가 나지 않았다. 스트레스였다.

정말 초심으로 돌아갔다. 나보다 한참 경력이 적은 동료에게 참 많이 물어봤다. 동료들은 나를 무시하거나 깔보지 않았지만, 그런다고 내 자존심이 고개를 빳빳이 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퇴근 후 남아서 책을 펼치고, 강의를 켰다. 그렇게 앵귤러(Angular)로 만든 홈페이지 유지보수를 할 수 있게 됐고, 뷰(Vue)로 어드민 페이지를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정확히 두 달 만에 일이다.

초급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기까지 기다려준 우리 팀 CODEF와 뷰 영상을 선물해준 장기효 캡틴판교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

Vue.js 중급 강좌 – 웹앱 제작으로 배워보는 Vue.js, ES6, Vuex – 인프런

어쨌든 그렇게 두 달을 보내며 기술서 두 권을 읽고, 서평을 썼다. 나름의 기술서 서평 포맷도 만들었고, 자바스크립트에 꽤 익숙해졌다. 뷰 중급 강의도 들었다. 문제는 3월이었다. 조금 익숙해졌다고, 마음이 풀려버렸다.

막막했던 프론트엔드 코드가 조금씩 보인다며, 긴장을 풀었다. 기술 포스트 주제도 잡아놓고는 귀찮다며 안 적었다. 월 1개는 내게 그다지 무거운 목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목표로 잡은 글 3개 중 단 하나도 안 쓴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뷰 완벽 가이드 영상도 안 들었다. 세상에 공부할 환경이 갖춰졌는데, 역시 변명의 여지가 없다.

3월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해져 사회가 전반적으로 어지러웠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준 것도 아니다. 목표달성 한 행동만 추려도 절반의 성공 이상의 평가는 어렵겠다. 게다가 프론트엔드 개발에 썩 자신이 생긴 것도 아니다.

2/4분기에는 좀 더 높은 도약이 필요하다. CODEF 서비스는 프론트엔드보다 백엔드 기술이 더 깊다. 향후 플랜은 백엔드 중심이다. 이 상태로라면 팀에 기술적으로 도움이 되기는커녕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1/4분기에 미비한 부분은 물론, 소프트웨어적으로 더 높은 목표와 행동이 필요하겠다.

기본기, 80점

기본기라 적었지만, 영어 비중이 매우 높다. 나는 매해 한 해를 아우르는 단어를 정하는데, 2019년에도 2020년에도 English다. 개발자로서 영어는 무척 중요함에도, 나는 늘 소홀히 했다. 기자 생활을 할 때도 영어는 늘 발목을 잡았다. 에스토니아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지고 동시통역이 멈췄을 때 허망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답변을 못 알아듣는 기자라니, 형편없지 않는가?

그동안 나는 영어에 꽤 돈을 투자했다. 책도 많이 샀고, 화상 영어 수업도 듣고, 학원도 다녔다. 결과는 늘 그대로였다. 공부를 안 한 거다. 아마 내 인생 중 2020년 1/4분기는 가장 영어 공부를 많이 한 시기는 아니더라도, 가장 꾸준히 한 시기일 것이다. 거의 빼먹지 않고 평일 아침에 1시간씩 영어 공부를 했다.

프랑스어를 전공한 동생의 권유로 가장 쉬운 Grammar in Use 책을 골랐다. 이 책에는 115 Unit이 있는데, 1 Unit 당 10 문장을 뽑아 외웠다. 오늘까지 444개 문장을 외웠다. 매일 같이 문장을 외우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동생과 매일 문장을 외운 뒤 녹음해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STEW 멤버 오형진에게도 보냈다.

동생과 나누는 파일은 서로 공부 결과를 확인하는 용도이고, STEW 멤버 오형진은 내 발음을 듣고 피드백을 줬다. 그리고 주말에 동생과 전화로 약 50문장을 테스트했다. 그렇게 약 400문장을 외웠다. 매일 공부했음에도 문장이 꽤 모자란 이유는 3주마다 외운 문장을 복습했다. 어떤 프로그램에 따른 것은 아니고, 내가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 어쨌든 이 방법은 내게 꽤 잘 맞았고, 생애 처음으로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할 수 있게 해준 동생과 STEW 멤버 오형진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OKR 기준 이 행동은 내게 영어에 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결과는? 글쎄, 행동은 잘 지켰지만, 영어에 관한 두려움을 이겨내진 못했다. 그저 이렇게 꾸준히 하면 이겨낼 수 있겠지 믿을 뿐이다.

나는 2015년부터 STEW 독서소모임에서 꾸준히 책을 읽었다. 한 달에 한 권 읽는 것은 내게 당연한 것이기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그냥 읽어야 해서 읽었고, 써야 해서 썼다.

HBR(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STEW 경영소모임에서 읽고 있는데, 2월에 모임을 하려 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연기했다. 내일 온라인 미팅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2월엔 시간이 촉박해 발제문에 해당하는 아티클 위주로 읽었다. HBR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참 좋은 매거진이지만, 당장 큰 도움은 안 된다는 점에서 다소 우선순위가 낮다. 아쉽지만, 다음 분기엔 한 권을 다 읽는 것으로 해야겠다.

1년간 진행한 채널예스 칼럼을 마쳤다. 내 이름을 건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가 되는 건 꽤 즐거웠다. IT/모바일 분야 책을 읽고 내 의견을 썼는데, 매번 약 7천 자 이상 칼럼을 썼다. 덕분에 5천 자 정도 되는 글은 꽤 편하게 쓴다. 일어나지 않고 2시간여 글을 쓰는 것도 꽤 자연스러워졌다. 얻은 게 많은 기고였다. 아쉽지만 채널예스 칼럼은 1년을 끝으로 마쳤다. 또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 다시 칼럼을 쓰고 싶다. 언제든 내게 기회를 달라!

오세용의 IT 이야기 | YES24 문화웹진 채널예스

유일하게 아쉬운 것은 STEW 매거진이다. 심지어 매거진 교열이 다 끝났고, 마지막 디자인 작업에서 한 달이 넘도록 지연되고 있다. 내가 부족한 탓이니, 누굴 원망할 생각은 없다. 2/4분기에는 열심히 다듬어 둔 원고로 POD 출판을 할 거다. 꼭, 할 거다.

경영, 0점

개발자로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 내 비즈니스를 만드는 꿈을 꾼다. 내 아이디어와 기술이 내 고객에게 도움이 되고, 나는 경제적 자유와 명성을 얻는 아주 행복한 꿈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개꿈이다. 갈 길이 멀다.

0점을 준 이유는 너무도 처참한 시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내 부족한 능력이 시작이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제대로 한몫했다.

먼저 목표부터 잘못됐다. 사실 경영 파트는 STEW라고 이름을 붙일까 싶기도 했다. 내게 STEW는 중요한 조직이고, 나는 이 조직을 경영한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게 키우고 있다. 하지만 몇 년간 유지한 독서소모임과 경영소모임에 문제가 생길 줄 몰랐다. 단순히 책과 매거진만 읽으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경영 파트에 관련 행동이 없다. 시작부터 자만한 것이다.

독서소모임은 3월 모임을 취소했고, 4월 모임은 온라인 미팅을 하기로 했다. 경영소모임은 한 달을 미루다 온라인 미팅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고, 아직도 온라인 미팅을 어떻게 진행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모임을 운영함에 있어 멤버들의 시선과 행동을 보지 못한 채 진행하는 것은 내게 불가능하다. 어떻게 분위기를 유지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상태다.

여기에 아비랩도 크게 흔들렸다. 주제를 아세안에서 확장하는 것으로 결정한 뒤 와레버스라는 이름으로 바꿨지만, 멤버들에게 동기부여를 못 하고 있다. 나조차 방향이 모호한 상태니, 경영 파트에 0점을 주기 결코 아깝지 않다.

whatevers

마지막으로 공식모임이다. 소모임이 모두 모이는 파티 형태를 구상했는데, 이후 진행된 것이 전혀 없다. 역시 운영진들의 동기부여를 하지 못한 내 탓이다. 어쩌겠는가, 나조차 적절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데 누가 그림을 그리는가? 내 탓인 것이다.

더해서, 3월 중순에는 이 모든 우울감이 몰려와 결국 무너졌다. 나를 경영하는 것조차 실패한 것이다. 역시 0점이 맞다.

경영 파트는 파트를 재정의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총평, 43점

나는 욕심이 많다. 욕심을 버리는 것보다 쥐는 것이 편하니 어쩌겠는가. 더 노력하고 머리를 굴리는 게 차라리 편하다. 역시 평생 고통받을 팔자인가보다.

세 가지 파트 점수를 평균 내면 43점이다. 점수를 보니 다소 충격적이라 경영 점수를 조금 높일까 싶지만, 스스로 무너져버린 지난 2주를 생각하면 쌤통이다 싶다.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한다.

파이팅이 넘치는 시점이라 다소 과하게 점수를 준 경향은 있다. 박한 점수지만, 1/4분기에 잘 한 것도 있다.

어쨌든 팀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으며, 꼭 해야 할 것들은 해내며 지냈다. 누군가에게 내가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영감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표들이 내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좋은 지표는 좋은 지표일 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싶진 않다.

2/4분기는 더 높은 잣대를 내게 보일 것 같다. 계획한 모든 것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계획하지 않았을 때에 비하면 탁월한 결과다. 역시 측정해야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내 1/4분기는 비록 43점이지만, 43점을 받기 위해 애써준 뽀모도로나, 타이밍 앱 등 다양한 도구를 시간 내 소개하겠다. 43점이라니… 오늘 밤엔 일찍 자야겠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