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게 된 동기

STEW 독서소모임 6월 지정도서. 생전 처음 보는 세계 역사 책.

한줄평

어벤저스-엔드게임을 봤더니 세계질서 따위 하찮아 보였는데, 세계질서를 보고 나니 내 인생이 하찮아 보이는. 일희일비하지 말고 즐겁게 살아도 될 것 같다.

서평

2015년 시작한 STEW 독서소모임은 지금까지 책을 수십 권 읽었다. 나는 운영진으로서 책을 꼭 읽고, 서평을 썼다. 100% 참석도 힘들었지만, 모든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은 그보다 더 힘들었다. 서평도 100%를 목표로 했지만, 그동안 딱 한 권 포기했던 책이 있다. 징비록이었다.

징비록은 류성룡이 임진왜란에 대해 쓴 책으로, 책을 읽고 있자면 도대체 내가 왜 이 책을 읽는 것인지에 대해 큰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왔다. 결국 독서소모임을 운영하며 유일하게 포기한 책으로 남았다.

그리고 오늘, 내가 포기한 두 번째 책일 뻔했지만 결국 디펜스한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를 소개한다.

뭔진 모르겠지만, 어려운 분야다.

정말 쉽지 않았다. 최근 커리어를 변경하며 전과 다르게 앉아서 일하는 업무 형태로 돌아왔다. 몸이 쑤시고, 소화가 잘 안 되고, 자주 졸음이 쏟아지는 것도 힘들었지만 정적인 업무 자체가 쉽지 않았다. 고작 1년 3개월 기자 생활을 했을 뿐인데, 다시 업무 패턴을 돌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을 읽기도 쉽지 않았다. 대중교통 이동 시간도 줄었고, 업무 시간도 줄었지만, 퇴근 후 집중이 정말 쉽지 않았다. 특히 책장을 넘겼음에도 전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들춰보기 일쑤였다. 저자가 친절하지 못해 구글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럼에도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게 이른바 정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나는 정책이 제기될 때마다 국가 이익을 정책의 지도 원리로 삼아 최선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답해 줄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저자도 책에 나오는 어떤 정의에 대해 단순하고 명쾌하게 소개하지 못했다. 그만큼 이 분야가 모호하고, 어려운 분야인 것 같다. 읽는 도중 하도 답답해 내가 왜 이 책을 소화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대항해시대> 게임 외 세계 역사에 대해 훑어본 적이 없었다. 스페인 여행, 중국 여행 중 가이드가 소개했던 내용이 전부였다.

“이과 -> 공대 -> 개발자 -> IT기자” 테크를 탄 내게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뒷부분에서 기술 이야기가 나오자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마치 내 잠자리에 누운 양 “편-안” 했다.

익숙치 않은 분야, 원래 어려운 분야, 편치 않은 번역 여기에 저자 스타일이 친절치 않았다. 정말 꾸역꾸역 읽었다.

내게 질서란?

나는 행복하지 못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핑계가 많지만 어쨌든 또래집단에 흡수되지 못했고, 주말만 기다리며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아가면 결코 그렇게 살지 않을 자신이 있다.

책을 읽으며 내 한 몸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육체적 힘이 부족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내 몸을 지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사실이 나 스스로에게 참 미안하다. 대학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나는 군대에 가서야 나를 지키는 법을 배웠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학창시절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았다면 나는 지금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정복왕 메흐메드 2세는 15세기에 초기 형태의 다극 체제를 시험하고 있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을 상대로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당신들은 20개의 국가입니다. 당신들은 서로 의견이 다릅니다. 세상에는 하나의 제국, 하나의 신앙, 하나의 주권만 존재해야 합니다.”

학창시절 나는 이슬람처럼 나 이외 모든 것을 부정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힘이 없었기에 모두에게 나를 부정당했다. 나는 내가 모두를 부정했다 생각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그저 또래 집단에 흡수되지 못했을 뿐이다.

나를 지키는 법을 깨닫고, 내 힘을 기르고, 사회에서 내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절대 순탄치만은 않았다. 다행히 사회에서 좋은 선배들을 참 많이 만났고, 순박했던 내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줬다.

19세기의 영국 정치가 파머스턴 경은 이 개념의 기본 원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할 뿐이며, 그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내 이익을 내가 추구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내 이익을 챙겨주지 않는다는 너무도 당연한 것을 군대에서 깨달았다. 그리고 내 이익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어떤 방법이 있는지 나와 함께해준 여러 엉아들이 알려줬다.

사회에 나온 지 어느새 7년이 흘렀고, 이제는 함께할 동료, 친구 그리고 내 분야와 무기도 생겼다. 어지러운 사회에서 내 한 몸 지키는 게 어쩌면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내 편안함을 찾는 어려운 과정을 지나, 내 마음의 질서를 찾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참 많은 것을 해냈지만, 그럼에도 완벽한 질서는 찾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질서’를 유지하는 피곤한 일을 해야 한다.

하찮은 고민, 중요한 것은.

최근 포지션과 조직을 바꾸고, 거주지도 바꾸고, 큰돈을 쓰는 경험도 했다. 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큰 결정 앞에서 나는 작아졌고, 선택한 뒤에는 <좋은 선택>으로 만들어야만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감에 절대 즐겁지 않았다. 피로도와 압박감에 눌리니 그 어떤 사건들도 가볍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 중 하나는 타인과 나의 비교였다. 그 누구도 나와 비교하지 않았지만, 나는 자꾸 누군가와 나를 비교했다. 한 단계, 한 단계 그리고 또 한 단계 높은 타인과의 비교는 끝이 없었다. 하지만 비교를 멈추면 내 성장이 멈출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아시아는 베스트팔렌 체제의 가장 의미 있는 유산 중의 하나로 등장했다. 역사적으로 종종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오랜 역사를 지닌 민족들이 각자 주권 국가를 수립하고, 각 국가들은 지역별 그룹으로 조직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자니, 내 고민이 굉장히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내가 하는 선택은 잘못됐을 경우 대부분 내가 수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고른다. 큰 결정에 있어 보수적인 성격이기에 가족과 내 주위 사람들은 내 결정을 대부분 믿어주는 편이다. 큰 무리도 없고, 주위 사람들도 나를 믿어주니 부담감을 놓아도 되련만, 쉽사리 편안한 마음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편히 생각하련다. 너무 사소한 선택에 에너지를 다 쏟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게다가 하수의 장고는 악수라지 않는가?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던 시점에 적절한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좀 더 시야를 넓히고, 대범한 선택을 해보도록 해야겠다.

인상 깊은 문구

  • 우리 시대에 질서로 통하는 것은 약 400년 전 서유럽에서 구상되었다.
  • 세계 질서라는 개념은 그 시대 정치인들에게 알려진 지리적 범위까지만 적용되었다.
  • 황제는 정치적, 문화적 위계질서의 정점에 위치한 인물로, 특별하고 만능일 뿐 아니라 세계의 중심인 중국의 수도로부터 나머지 모든 인간에게까지 빛을 발하는 인물이었다. 나머지 모든 인간은 부분적으로 한문의 숙달 정도와 문화적 제도에 따라 다양한 등급의 야만인으로 분류되었다.
  • 유럽과 중국 사이의 지역에서는 이슬람의 또 다른 보편적인 세계 질서 개념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계를 통합하고 평화를 안겨 주는, 신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지배 체계를 세웠다고 생각했다.
  • 이슬람교가 확대되면 결국 전 세계가 예언자 마호메트의 메시지로 화합되는 단일한 체계가 된다고 생각했다. 유럽은 여러 국가로 이루어진 질서를 구축했기 때문에, 터키를 본거지로 삼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단일한 정통 지배에 대한 요구를 부활시켜 아랍의 심장부와 지중해 지역, 발칸 반도, 동유럽가지 패권을 확대했다.
  • 정복왕 메흐메드 2세는 15세기에 초기 형태의 다극 체제를 시험하고 있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을 상대로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당신들은 20개의 국가입니다. 당신들은 서로 의견이 다릅니다. 세상에는 하나의 제국, 하나의 신앙, 하나의 주권만 존재해야 합니다.”
  • 미국식 세계 질서에서는 미국이 자국 통치에 대해 발언권을 갖듯 다른 국가들도 똑같은 원칙을 기초로 발언권을 갖는다면 평화와 균형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아주 오래된 적대감이 무시될 것이었다.
  • 실시간 통신이 이루어지고 혁명적인 정치 변동이 발생하는 시대에는 특히 그렇다. 어떤 세계 질서 체계든 지속 가능하려면 지도자들뿐 아니라 시민들도 그 체제가 공정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두 가지 진실을 반영해야 한다. 첫째는 자유 없는 질서는 일시적 고양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그 질서와 균형을 이루는 세력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진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질서 체계 없이는 자유를 보장허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 우리 시대에 세계 질서를 추구하려면 지금껏 대체로 독립적인 현실을 살아온 여러 사회의 인식들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극복해야 할 미스터리는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미스터리, 즉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가치를 어떻게 공통의 질서로 만들 수 있는가이다.
  • 유럽은 결코 단일한 통치 체계나 통일되고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적이 없었다.
  • 그 세계관에서 기독교 세계는 보완적인 두 권력이 운영하는 단일한 사회였다. 그 두 권력은 바로 현세의 영역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카이사르의 계승자’인 시민 정부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구원의 원칙들을 따르는 베드로의 계승자인 교회였다.
  • 이렇듯 대단히 복잡한 논의 과정을 통해 탄생한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은 실제로 협정의 조건들을 구체화한 조약이 하나도 없는데도 유럽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외교 문서일 것이다. 대표자들은 한 차례의 총회를 통해 조약을 채택한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이 평화 조약은 각기 다른 시간에 다른 도시에서 서명된 세 개의 보완적인 협정을 합해 놓은 것이다.
  • 베스트팔렌 개념은 다양성을 체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각 사회를 현실로 인정하면서 다양한 다수의 사회들을 공동의 질서 추구 작업에 끌어들였다. 20세기 중반 무렵 이 국제 체계는 모든 대륙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체제는 현재 국제 질서의 기반으로 남아 있다.
  • 19세기의 영국 정치가 파머스턴 경은 이 개념의 기본 원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할 뿐이며, 그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 “사람들은 내게 이른바 정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나는 정책이 제기될 때마다 국가 이익을 정책의 지도 원리로 삼아 최선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답해 줄 수 있을 뿐이다.”
  • 처음으로 등장한 국가 이성과 ‘국익’의 개념들은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힘의 사용을 합리화하고 제한하려는 시도를 의미했다.
  • 국가 간의 영역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세계 주권이 존재하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어떤 것도 설립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국제 관계는 자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무질서했다. 따라서 각 국가는 힘이 가장 중요한 요인인 세상에서 자국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해야 했다.
  • 실제로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된 이후에 유럽에는 두 가지 세력 균형이 등장했다. 영국이 수호자 역할을 하는 전체적인 균형은 전반적인 안정을 지켜 주었고, 기본적으로 프랑스가 조종한 중유럽의 균형은 유럽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는 통일 독일의 등장을 막는 것을 목표로 했다.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두 균혀은 30년 전쟁 때처럼 유럽이 산산조각으로 나뉘는 결과를 막아 주었다. 이 두 균형이 전쟁을 막은 것은 아니었지만, 전면적인 정복이 아니라 균형이 목표였기 때문에 전쟁의 영향을 제한할 수 있었다.
  • 한 국가의 외무장관이 다른 국적의 군주를 위해 일할 수 있고(1980년까지 모든 러시아 외무장관은 해외에서 뽑았다.) 어떤 지역이 혼인 협정이나 우연한 상속으로 소속 국가가 달라질 수 있는 세상에서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동의 목적 의식이 반드시 필요했다.
  • “프랑스는 자유와 평등을 거부하거나 포기하면서 군주와 특권 계급을 보호하거나 기억하거나 대접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취급할 것을 선언한다.”
  • 나폴레옹은 거대한 군대를 지원할만한 자원이 충분치 않은 스페인과 러시아로 진출하고 싶은 유혹에 무너지고 나서야 패배에 직면했다. 1812년에 과욕을 부린 탓에 러시아에서 처음 패배를 맛본 그는 유럽의 나머지 국가들이 뒤늦게 베스트팔렌 원칙들을 지키기 위해 힘을 합쳐 그에게 맞서자 다시 한 번 무릎을 꿇어야 했다.
  • 그는 베스트팔렌 원칙뿐 아니라 스스로의 불안감 때문에도 파멸하고 말았다. 샤를마뉴 이후로 유럽의 가장 강력한 정복자였던 나폴레옹은 자신에게 맞선 국제 질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에 패했다.
  • 동쪽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로마제국을 경험하지 못했고 기독교지만 로마보다는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정교에 종교적 권위를 의지한 러시아는 공동의 문화적 어휘를 공유할 정도로 유럽에 가까웠지만 유럽 대륙의 역사적 추세와는 영구적으로 어긋나 있었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러시아는 두 대륙에 걸쳐 있지만 결코 어느 쪽에서도 편치 못한 특이한 ‘유라시아’ 강국으로 남게 되었다.
  • 17세기 중반 러시아 황제 알렉세이 때의 외무장관 나시초킨은 러시아의 외교 정책을 규정해달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설명했다. “모든 방향으로 국가를 확대하는 것, 이것이 외무부의 할 일이다.”
  • 북극해와 태평양 외에 자연 국경이 없던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카프카스 지역, 발칸 지역, 동유럽, 스칸디나비아, 발트해로 차례로 진출한 뒤, 급기야는 태평양과 중국, 일본 국경까지 진출하면서 수백년 동안 이러한 충동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러시아는 해마다 다수의 유럽 국가들을 합친 영토보다 더 넓은 영토를 확장했다.
  • 크림 전쟁이 끝난 뒤 10년이 지나기 전에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독립 국가로서 독일을 지켜 주던 오스트리아의 역사적 역할을 거부함으로써 독일 통일 작업을 시작했다. 여기에도 러시아의 묵인이 작용했다. 오스트리아는 국제 문제에서 믿을 수 있는 국가라는 평판이 전술적으로 영리함을 발휘하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자산임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 한때는 유럽 내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훌륭하게 통치되는 국가로 손꼽히던 오스트리아가 이제는 공격받기 쉬운 입장에 처하고 말았다. 유럽의 한가운데 위치한다는 사실은 유럽이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마다 오스트리아 역시 들썩인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 정치학의 위대한 원칙은 모든 국가의 진정한 이익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 정책은 가등성의 예술이고, 상대성의 학문이다.
  • 디즈레일리는 1871년에 이루어진 독일 통일을 “프랑스 혁명보다 더 중대한 정치적 사건”이라고 부르면서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고 결론 내렸다.
  • 영국이 “영광의 고립(splendid isolation)” 정책을 포기하고 1904년 이후 프랑스, 러시아와의 평화 협정에 가담하면서 유연성의 마지막 요소가 사라지고 말았다.
  • 제 1차 세계대전은 정치 지도자들이 각자의 전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발발했다.
  • 비스마르크는 “전쟁이 시작할 때만큼 끝날 때도 설득력을 유지하는 참전 논거를 내놓지 못한 정치가는 화를 입으리라.”고 경고한 바 있다.
  • 이슬람교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570년에 메카에서 태어난 마호메트는 40세에 신의 계시를 받았다. 그 계시는 약 23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 계시를 받아 적은 것이 코란으로 알려졌다.
  • 이 세계적인 체제를 수립하는 전략은 지하드(jihad)라 불려는데, 이는 투쟁을 통해 이슬람교를 전파해야 하는 이슬람교도의 의무를 말한다.
  • 이슬람교 역사 초기에 등장한 법률 판결은 다음과 같았다. 조약은 영원할 수 없다. 이슬람교도들이 적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곧바로 조약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 이슬람 국가 내부에서 적용하는 원칙들은 신이 정했기 때문에 비이슬람 국가들에게는 정당하지 않았다. 이슬람 국가들은 결코 그들을 동등한 상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평화로운 세계 질서는 서로 경쟁하는 세력 간의 균형이 아니라 단일한 이슬람 국가를 세워서 확장시킬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었다.
  • 전체적으로 냉전 시대의 이슬람 세계와 비이슬람 세계 간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세력 균형에 기초한 베스트팔렌 방식을 따랐다. 이집트, 시리아, 알제리, 이라크는 대체적으로 소련의 정책을 지지하고 소련의 지도를 따랐다.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모로코는 미국을 지지하고 안보 문제에서 미국의 지원에 의존했다.
  • 그들은 외세의 침략이나 국제 위기가 없을 때, 국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행복을 증진시켜 줄 의무를 가진 대상으로서 국가를 점점 더 생각하는 국민을 어떻게 동원해야 할지 알아내지 못했다.
  • 전 아랍 세계는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뛰어난 군사력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치욕스럽게 생각했다.
  • 이스라엘은 베스트팔렌 체제의 관례에서 벗어나 자신을 유대국가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공식적 의미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속성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토상의 승인뿐 아니라 종교상의 승인 또한 의미하기 때문이다.
  •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전통적인 아랍-이슬람 왕국이다. 즉 부족 왕국인 동시에 이슬람식 신권 정치 국가이다. 8세기부터 서로를 지우너하면서 하나로 합친 대표적인 두 가문이 사우디 통치 체제의 핵심을 형성한다. 알 사우드 일가 출신의 국왕이 정치적 계층 체계를 이끄는데, 이 일가는 상호 충성심과 의무라는 구식의 관계를 기초로 한 부족 간의 복잡한 관계망에서 수장 역할을 한다. 종교적 계층 체계는 대 무프티와 종교 지도자 회의가 이끄는데, 대부분 알 알 샤이크 가문 출신이다. 국왕은 ‘성스러운 사원 2개의 수호자’ 역할을 다함으로써 권력의 두 부분 사이의 간격을 메우려고 노력한다. 사우디 국왕의 역할은 ‘신앙의 옹호자’ 역할을 한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생각나게 만든다.
  •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는 식민주의에 참여하는 행위자가 아니라 식민주의가 시행한 국제 질서의 희생자였다.
  • 아시아는 베스트팔렌 체제의 가장 의미 있는 유산 중의 하나로 등장했다. 역사적으로 종종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오랜 역사를 지닌 민족들이 각자 주권 국가를 수립하고, 각 국가들은 지역별 그룹으로 조직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 일본은 자신들이 동등하다고, 가끔은 우월하다고 주기적으로 주장하면서 위계적인 중국 세계 질서의 가장자리에서 맴돌았다.
  • 일본군의 전진은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확고한 해상 저항력을 조직하여 히데요시의 공급선을 괴롭히고 침략군이 해안선을 따라 전투를 벌이도록 유도하면서 주춤했다.
  • 일본 국민들은 2011년에 일본 북동부를 강타한 지진과 해일, 원전 위기 때도 서로 도와주고 단결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면서 위기에 제대로 대처했다. 세계은행 추산에 따르면 그들이 겪은 자연재해는 세계 역사상 가장 피해가 큰 사건이었다.
  • 중국을 포함하여 다수의 아시아 국가들은 북한의 정책이 안정을 해친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의 붕괴 또한 더 큰 위험이라고 간주한다. 남한측은 국내에서 점점 더 커지는 통일에 대한 압박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 일부 주요 기구들에는 미국이 포함되어 있고, 경제 기구를 포함한 일부 기구들은 아시아 국가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공이 들어간 의미 있는 기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다.
  • 아시아의 조직화는 세계 질서에 본질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하나의 체계로서의 세력 균형보다는 국익을 중시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주요 국가들의 성향으로 인해 이미 발달한 질서의 메커니즘이 형성되었다.
  • 중국 외무부는 19세기 중반이 돼서야 설치되었는데, 서방의 불법 침입자들을 처리하는 데 필요해서였다.
  • 자신들의 방침이 인류의 운명을 형성한다는 확신에 찬 미국은 역사 내내 세계 질서에서 자기모순적인 역할을 해 왔다.
  • 일본의 근대화에 감탄했지만, 그는 아마도 일본의 근대화 때문에 팽창주의적 일본 제국을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지를 위협할 존재로 간주하기 시작했을 것이며, 일본이 언젠가는 하와이 제도를 요구할지 모른다고 결론 내렸다.
  • 한국 전쟁의 기원은 미국을 상대로 한 중국과 소련의 음모라기보다는 공산주의 국제 질서 내부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삼자 간의 작전이었다.
  • 모든 시대에는 중심 사상이 있다. 중세의 중심 사상은 종교였다. 계몽 시대의 중심 사상은 이성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역사를 동기 요인으로 보는 관점과 결합된 민족주의였다.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개념은 과학과 기술이다.
  • 철학자와 시인들은 오래전부터 정신의 범위를 정보, 지식, 지혜의 세 요소로 구분해 왔다. 검색 엔진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의문들을 엄청난 속도로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저으로 정보가 지나치게 많으면, 지식을 얻기가 힘들어지고 지혜가 전보다 더욱 멀어질 수 있다.
  • 책에서 지식을 얻으면 인터넷과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독서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을 용이하게 하는 데는 문체가 중요하다. 모든 책을 전부 읽는 것은 물론, 특정 주제를 다룬 모든 책을 완벽히 읽을 수는 없고 자신이 읽은 내용을 전부 쉽게 정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개념적 사고를 중요시한다. 이는 비슷한 데이터와 사건을 알아보고 미래에 유형을 적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 세계의 정치 구조는 지금도 민족 국가에 기초하고 있는 반면, 국제 경제는 세계화된 상태이다.
  • 어떠한 다자간 활동으로부터 지지받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성취하려는 일은 무엇인가? 이러한 목표들은 국가 전략의 최소한의 목적을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