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게 된 동기 ]
기자가 쓴 책이라 관심이 갔는데, 가격도 싸서… 샀다.
[ 한줄평 ]
건조한(dry) 글이 모여 책이 됐다?
[ 서평 ]
어느새 기자가 된지 반년이 됐다.
내 주 업무는 소프트웨어 전문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이다. 때문에, 직접 기사를 쓰기 보다는 적절한 소프트웨어 원고를 쓸 수 있는 사람을 찾는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지난 반년간 많은 기사를 쓰진 않았다.
그럼에도 100개가 넘는 기사를 썼고, 두 권의 잡지를 출판했다. 현재 세 권째 잡지를 편집 중인데,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텍스트를 읽게 된다. 개발할 때는 출, 퇴근 길에 책을 읽는게 힘들지 않았는데, 요즘은 글을 쳐다보는게 주 업무라서 쉬는 시간에 또 글을 보고 싶지 않더라.
때문에 올해 열 한 번째 책은 얇은 책으로 골라봤다.
세용아. 드라이하게(dry) 써야지
개발자에서 기자로 입사 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다.
‘드라이(dry)’ 라는 단어를 머리 말릴 때 빼고 처음 들은 것 같다. 도대체 드라이하게 쓰라는게 뭐야… 라며 dry 의 정의를 다시 찾아보기도 했고, 드라이하다는 글을 찾아서 읽어보기도 했다.
주로 글을 쓰는 기자도 아니고, 고작 반년간 했을 뿐이기에 ‘드라이하다’는 말의 뜻을 100% 이해했다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으니 아직 안짤리고 일하는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반년 정도면 이 일에 적응했다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ㅎㅎ
드라이하게 글을 쓴 다는 말을 알고, 반년만에 이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드라이한 글 그러니까 기사 같은 글에 대한 내 생각은 ‘읽고 지나면 끝’ 이었다. 딱히 깊이 남는게 없고, 두고두고 읽기에 적절하지 않아 그다지 선호하는 형식이 아니었다.
반면, 가독성이 뛰어나고, 불필요한 수식어가 없어 핵심만 볼 수 있다는 것은 쉽게 버릴 수 없는 장점이기도 하다. 때문에 기사에 적절한 글이지만, 나는 선호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드라이한 형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글쓰기.
나는 2009년부터 블로그를 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는 당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휴식기라 K리그 선수를 소개하는 글로 글을 썼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하면 몇가지 선택지 앞에서 결정장애가 온다. 글의 어투를 ‘습니다’로 할지 ‘다’로 할지. ‘나’라고 할지 ‘필자’라고 할지. 문장과 문단을 엔터 두 번으로 나눌지, 한 번으로 나눌지 등.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굉장히 고민되는 것이다.
그리고 10년간 블로그를 하며,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했다. 반년만에 기자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또한, 꾸준히 서평을 써온 것도 도움이 됐다. 내 그동안의 서평을 보면 알겠지만, 책을 요약하는 것보다 책을 읽은 내 생각을 기록하는 형식을 택했다. 이는 ‘정리’가 아닌 ‘창조’다.
소프트웨어 전문지를 만들며, 수십명의 저자가 쓴 글을 편집했다. 같은 내용임에도 풀어내는 형식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매일 느끼는 중이다. 또한, 글을 좀 더 맛깔나게 수정하는 능력이 얼마나 큰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지도 느끼고 있다.
뭐… 좋게 생각하면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힘든일이니… 좋은건가!??!
그 중 드라이한 유형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 같다.
한 번은 내가 쓴 글이 재미없다며 선배들이 다시 쓰라고 했다. 계속 고통받던 나는 ‘아니, 드라이하게 쓰라고 해서 드라이하게 쓴건데…’ 라고 했더니, ‘재미가 없다니까? 드라이하게 써서 재미없는게 아니야.’
그렇다. 글쓰기는 말이나 글로 가르칠 수 없다.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써야 한다.
전달자로서의 글쓰기
인류가 다음 세대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자’ 덕분이다. 만약 문자가 없어, 1세대가 한 시행착오를 그대로 행한다 생각하면 얼마나 답답할까?
이 책은 철저히 정보 전달에 집중됐다.
사실 6년 전인 2012년에 출판된 책이고, 내가 몸담고 있는 IT분야 내용이기에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본문에서 대단하다 표현하는 ‘임정욱’은 이미 한국 스타트업 업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 됐고, 호창성, 문지원 대표 역시 여전히 한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했지만, 본문의 드라이한 형태는 부차적인 내용을 스킵해 빠른 독서를 도왔다. 그럼에도 정보를 모두 전달했다는 것은 핵심만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쉽게 말이다.
쉽게 말하고, 쉽게 쓰는 것이 어렵다는 것. 이는 모든 영역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기사를 쓰며 느꼈지만, 쉽게 쓰려면 ‘핵심’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핵심을 이해 하기까지 관련 글을 무수히 많이 읽어봐야 한다. 글을 다듬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운데, 그렇게 쓰여진 글이 너무 딱딱해 재미가 없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자가 되기 전에는 별 생각 없었지만, 최근 기사에 달리는 악플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착잡하다. 분명 기사를 보면 쓰기까지의 기자의 고통이 보이는데, 논점에서 벗어난 이야기나 무작정 욕설만 뱉는 댓글은 이게 과연 의미있는 일인가 싶을 때도 있다.
내가 쓴 기사가 아님에도 그렇다.
전달자로서의 글쓰기는 그래서 어렵다. 접근 가능한 모두를 독자층으로 봐야하고, 그 중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하는게 기사다. 기사는 대부분 무료기에 가격으로 장벽을 칠 수도 없다.
때문에 기사는 그저 기사로 머무른다는 생각을 해왔다. 헌데, 이 책의 저자 김상훈 기자의 글을 읽으며 드라이한 글의 새로운 확장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도 읽을 수 있는 글
신기술을 다루는 전문지를 만들다 보니, 과월 호의 가치에 대한 고민이 있다. 가령, 블록체인 기술을 다룬다고 하면 한 달은 커녕, 일주일만 지나도 무의미한 글이 되기 쉽다.
이런 빠른 바닥에서, 글을 쓴다는건 무척 고민이 된다. 이 글을 쓰는게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 책을 읽으며 에어비앤비, 페이스북, 소셜비즈니스 등 이미 아는 내용을 보면서도 ‘아, 맞아 그랬지’, ‘응 이 사람 지금은 더 유명해졌지’, ‘아하, 이때 이런 일이 있었구만?’ 하며 과거를 훑고 있었다.
이미 아는 내용이, 지난 글이 의미있게 읽히는 순간이었다.
아마 많은 기자들, 그리고 현재 레거시 미디어들의 고민일 것이다. 한정된 리소스로 모든 영역을 다룰 수 없으니, 어제 그리고 지난 주, 지난 달 쓰여진 콘텐츠도 소비될 수 있게 유도하는 것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글을 보다 드라이하게 쓰고, 핵심을 제대로 짚어냈다면 시간이 지나도 읽히겠다 싶더라.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책 쓰기도 관심이 있다. 아직 책을 내지 못한 내게 저자는 아주 큰 힘을 줬다. 나도 언젠가 책을?! 흐흐흐…
[ 인상 깊은 문구 ]
- “제2의 경제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한 세기 동안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주는 가장 중요한 엔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번영은 줄지 몰라도 이런 경제는 직업은 주지 못한다. 따라서 번영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결국 나는 제2의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어떻게 번영을 만들어내느냐보다 어떻게 번영을 나눌 것인가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 개발사인 IBM은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그 설명 사이에는 늘 한 문장이 생략돼 있다.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을 이해할 만큼 열심히 공부한다면)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일은 없다”는 얘기다.
- 최근 10년 동안 가장 수요가 줄어든 산업 분야는 기술 가운데에서도 중간 단계에 머문 기술들이었다.
- 바꿔 말하면 지금의 비효율을 수정하면 수요도 3분의 2가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 “내가 내 일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이냐면 내가 정말로 잘할 수 있는 일, 내가 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보고, 내 능력을 그 방향에 집중해서 개발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내가 정말 못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 전문가라서 승진했더니 전문적인 일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고, 해보지 않은 일을 끊임없이 떠안기는 게 현대 기업의 문화다.
- 가족이나 친구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정확하게 브랜드의 이름을 집어내지 못한다. 기업의 마케터들은 그들의 브랜드가 분명히 차별화되어 있다고 열변을 토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 한인텔이 생각하는 거래의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는 손님 사이의 신뢰이기도 하다.
- 강요할 수는 없지만,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는, 뭐랄까, 좀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나요?
- 19세기 초만 해도 인류는 ‘모르는 얼굴’을 만나면 낯설고 놀라워했다. 200년이 지난 지금,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아는 얼굴’을 거리에서 만나면 놀라워한다.
- 더 이상 신용만이 재산이 아니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에 신뢰가 추가되기 시작했다.
- 기술은 그 스스로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일부일 따름이다.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라 출현하는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건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 잊혀질 권리란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당신이 알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과연 우리가 타인에게 뭔가를 알지 못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가? 그런 건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