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틱낫한 (명진출판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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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시기 – 2010년 1월

읽게 된 동기

도서관에 가야하는데 시간 없어서 책꽂이 구석에 있는 책을 집어들었다. 적당한 굵기. 하늘색 표지. 틱낫한 이라는 생소한 이름. 책표지 윗부분에 ‘노벨평화상 후보자’, ‘세계 불교계의 상징적 인물’ 이란 문구를 보고 냉큼 집어들어서 읽기 시작했다.

책 리뷰

틱낫한(1926- ) 베트남의 승려이자 시인, 평화운동가. 열여섯의 나이에 불가에 입문하여 평생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나는 가톨릭 신자다. 나름 학창시절부터 열심히 성당을 다녔다. 성당에서 학생회장을 지냈고, 현재 청년회 간부로 일하고 있다. 부족하지만 교리교사를 했던 경험도 있기에 평범한 신자들보다는 가톨릭 교리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안다고 말할 수 있다.

학창시절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목사님이였다. 때문에 서로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려했고, 서로 민감하기에 서로의 종교를 존중해주었다. 그때의 버릇때문에 나는 개신교, 불교 등 가톨릭이 아닌 종교를 비난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중해준다.

그렇다고 가톨릭 교리도 부족한데 다른 종교의 교리를 공부했을리 없다. 때문에 ‘틱낫한’이라는 스님은 당연히 처음 들어보았다.

화. anger. 이 책은 솔직히 읽고 싶어서 읽은 책은 아니다. 책을 읽어야 하는데 집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은 책이여서 새로운 것을 찾다가 집어들었던 책이기 때문이다.

딱딱하다. 심오하다. 어렵다. 뭔소린지 모르겠다. 그렇다. 이게 이 책이다.

확실히 매일 명상을 하고 철학적으로 엄청난 사람이 하는 생각을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도 부족한것 같다.

내 판단이 옳다고 100% 장담하지 마라.

고개를 들어 태양을 보자. 태양이 보이는가? 그게 과연 현재의 태양일까? 아니다. 현재 보이는 태양은 8분 전의 태양이다.(태양의 빛이 지구까지 닿는데 약 8분이 걸린다.) 마찬가지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을 때 우리는 지금 그 별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실은 그 별은 이미 오래 전에 천년이나 2천년 전에 사라진 별일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 뭐 이런 말과 비슷한 내용이 아닐까?

나는 참 생각이 많다. 특출나게 지혜롭고 현명하다는게 아니다.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이 많은 것 뿐이다. 물론 생각이 많다보니 내 생각에 자신이 생긴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남들보다 훨씬 생각을 더 많이 하는데. ‘삼(三)사일언?’ 나는 ‘백(百)사일언’은 된다.

때문에 나는 자존심이 무지 세다. 한번 판단하면 그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물론 자질구래한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때나, 상당히 무게있는 결정이라면 난 내 판단을 전적으로 믿는다. 나는 나를 존중하고 믿는다.

‘내 판단이 옳다고 100% 장담하지 마라.’ 맞는 말이다. 세상 그 어떤 누가 100% 정답의 판단을 내리겠는가. 좀 더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백(百)사일언’을 넘어 ‘천(千)사일언’ 까지 실천해야 할 것이다.

화를 내뱉는 것은 에너지 낭비다.

화가 난 상태에선 아무것도 하면 안된다. 화가 난 상태에서 대화를 하지 말고 호흡과 보행으로 수련한다. 화는 아기와 같다. 잘 보살펴야 한다.

화가 나면 그것을 발산해 버리라고 권고하는 치료사들이 있다. 그러한 행동에서 일시적인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그 같은 행동은 매우 해로운 부작용을 낳으며, 더 큰 고통을 불러올 수도 있다. 휴식을 취하고 배불리 먹고 났을 때 누군가가 화의 씨앗에 물을 뿌리면 이전보다 훨씬 더 사나와지더라는 것이다. 화를 예행연습 함으로써 그 뿌리가 그새 더 튼튼해졌기 때문이다.

TV 프로그램을 봤다. 부부관계를 개선시켜주는 프로그램이였는데 거기서 역할극을 시키고 인형을 때리게 했다. 그걸 보면서 ‘아, 저렇게라도 화를 풀어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헌데 이 책에선 그렇게 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한다.

학창시절 남학생들은 종종 유리창을 주먹으로 치곤 한다. 자신의 화를 못이겨서 그러는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리조각들이 손에 박히게 되고 큰 상처를 입게 된다. 남학생들은 그걸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자신을 학대하며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는 참으로 바보같고 무식한 방법이다.

화는 무슨일이 있어도 내뱉으면 안된다고 한다. 욕을 해도 안되고, 인형을 때려도 안되고, 소리를 질러도 안되고. 틱낫한은 화를 내뱉으면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말한다. 어떻게 해서든.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남을 사랑할수 없다.

나의 고통이 곧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이다.

화에서 벗어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통찰하는 것이 가장 깊은 위안을 얻기 위한 최선의 길임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맞다. 어제 나는 근 1년간 지내왔던 생활 중에서 최고로 화가 났었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화가 나는 일이다. 나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또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화가 났다. 너무도 화가 났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폭력을 사용하거나 욕설을 내뱉지는 않았다. 나는 그럴 수 없는 위치에 있고, 또한 그 위치가 아니여도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이였다.

어제 나는 이 책을 반절 정도 읽었었고 화가 나는 순간 틱낫한이 떠올랐다. 그의 말처럼 호흡을 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심호흡을 크게 했다. 5번. 10번. 20번. 화가 잊혀지질 않는다. 침대로 가서 누웠다.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눈물이 났다.

틱낫한의 말대로 아직 수련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나는 나만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냥 잤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려고 계속해서 노력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조금은 나아졌다. 아까의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자 이제는 내일이 아닌듯 생각된다. 물론 상대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또 화가 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틱낫한의 방법과 나의 방법을 조합해서 화를 내지 않고 벗어났다.

우리는 화와 맞서 싸워서는 안된다. 화가 바로 나 자신이고 내 일부이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화를 내면 안된다. 그게 타인을 위해서도 좋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위해서 좋다.

한 사람씩 화를 참으면 전쟁도 막을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전쟁이 터진 다음에야 그것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을 한다. 참다운 수련자로써 우리는 전쟁이 터지기 전에 사태를 주시해야 하고, 전쟁이 터지는 것을막기 위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딱 들어맞는 속담이 아닐까?

헌데 어쩌겠는가 사람들은 소를 잃어야 외양간의 보수가 필요했다는걸 깨닫는 것을.

만약 잃기 전에 외양간을 보수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다. 너무 앞서간다고 생각해 주위에서 견제를 하기 때문이다.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 또한 비슷한 예가 아닐까?

그래도 그런 참다운 수련자들이 있기에 지금의 세상이 있는것 아닐까?

인생에서 ‘관계’ 보다 중요한 건 없다.

학위를 얻는 데는 누구나 6년이나 8년이란 시간을 기꺼이 들인다. 그런데 어찌해서 관계를 개선하고 유지하는 데는 시간을 들이지 않는가?

사람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의 답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 이라고 한다. 다른사람이 뭘 먹는지, 뭘 입는지, 뭘 좋아하는지, 뭘 위해 사는지. 그게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관심있는 일이라고 한다.

‘관계’ 당연하다. 중요하다. 사람은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한다. 그게 ‘나’ 일 수도, ‘너’ 일 수도, ‘우리’ 일 수도 있다.

책 총평

★★★★☆

심오한 책이다. 10쪽을 넘게 읽었는데 도대체 내가 그동안 뭘 읽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 책이다. 난 책을 빨리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속독 따위의 스킬은 익히지 않았다. 대충대충 읽으 려고 하는 것은 아닌데 읽고 나면 대충 읽은 듯한 느낌이 든다.

‘화를 내면 안된다.’ 이 책의 핵심은 이거다.

내가 군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그리고 배웠던 것 중 가장 큰 배움이. ‘화를 내봤자 좋을거 하나 없다’ 이다. 참는게 최고다. 헌데 틱낫한은 참아도 안된단다. 화를 참아도 안되고, 화를 내뱉어도 안되고. 도대체 어쩌라는건지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한 번 읽어서는 도저히 내용의 절반도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일단 이번에는 ‘화를 내면 안된다’ 까지만 이해하는걸로 해야겠다.

Dragon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