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마지막 날이다. 12월 내 미루고 미뤘던 2019년 회고를 해본다.
2019년은 참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다. 기자로 시작해 개발자로 마친 2019년은 어쩌면 내 커리어에서 가장 예측 불가했던 한해로 기억될 것 같다.
회고에 앞서 이미 일주일 전 커뮤니티 STEW에서 한해를 리뷰하는 영상을 찍었다. 이 글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남겨볼 생각인데, 먼저 STEW에서 꼽았던 2019년 잘한 것 3가지와 아쉬운 것 3가지를 적어본다.
2019년 잘한 것 3가지
- 내 자리라고 생각한 개발자 포지션으로 다시 돌아온 것
- 회사에서 STEW에서 일상에서 여전히 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는 것
- 크게 아프지 않은 것
2019년 아쉬운 것 3가지
- 영어 공부 안 한 것
- 기술적으로 빠르게 올라오지 못한 것
- 비즈니스적 시도를 하지 못한 것
2019 올해의 단어는 English였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커뮤니티 STEW에서 올해의 단어를 정한다. 한 해 버킷리스트를 정리하고, 이를 아우르는 단어 하나를 올해의 단어로 꼽는 것이다. 올해는 지속해서 날 괴롭히던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려는 목적이었다. 이에 대해선 0점을 줘도 될 만큼 어느 시점 이후로는 신경도 못 썼다.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나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했고, 그 선택을 옳은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올해 한 선택 중 되돌리고 싶은 선택은 없다. 아직까지는 옳은 선택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내가 2019년에 해온 일 중 큰 카테고리 3개를 소개한다.
◆ 글 쓰는 감성 개발자…무게 중심은 글 쓰기에
올해는 참 많이 읽고, 많이 썼다. 2018년을 기자로서 살았기 때문에 글쓰기에 관한 두려움이 없어진 상태였다. 영어도 이렇게 되려면, 영어로 일하면 될까?
개발자로 돌아왔지만, 부끄럽게도 코딩보다 글쓰기가 더 편하다. 어쩌다 이런 혼종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개발자로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 많은 글을 쓰고 있지만, 내 정체성은 개발자다.
→ 아세안 비즈니스 랩, 아비랩
아비랩은 사실, 영어공부를 강제화하려는 시도로 시작됐다. 영어를 공부하려는데, 좀처럼 꾸준히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나름 노력을 했다. 올해 초 기자 때는 개인 사무실을 빌려서 출근 전, 후로 영어공부를 했다. 3달 정도 했던 것 같은데, 개발자로 복귀하며 사무실은 접었다.
그러다 떠오른 게 STEW 내 영어공부 소모임을 만드는 거였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조직에 발휘되는 내 리더십과 책임감을 믿었다. 결과적으로는 그 리더십이 과했다. 어느새 아비랩은 7명이 글쓰기에 고통을 받고 있다.
우선 아비랩 초기 멤버 4명을 모았고, 영어를 잘하고 글쓰기에 능한 멤버로 구성했다. 영어 콘텐츠를 읽고, 한국어로 정제하는 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주제를 잡다 보니 실리콘밸리는 너무 흔했고, 중국은 이미 레드오션인 것 같았다. 그렇게 마냥 블루오션이라 생각한 아세안이 들어왔다.
아세안을 선택하고, 아세안 비즈니스 영어 콘텐츠를 한국어로 정제하자는데 합의했다. 그렇게 아비랩이 만들어졌다.
아비랩은 지금 7명이다. 우리는 그동안 단신과 기획 기사를 합쳐 75개 글을 썼고, 몇몇 글을 묶어 책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아비랩을 운영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기본적인 스탯과 스스로의 최소 퀄리티가 높은 사람들이 만나 시너지를 내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했다. 나보다 똑똑한 멤버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떤 캐릭터가 돼야 하는지도 배웠다.
감사한 것만큼 괴로움도 있었다. 잘 모르는 분야를 공부해서 정리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주제를 잡기 위해 웹페이지 수십 개를 읽고, 주제를 잡은 뒤엔 웹페이지를 백여 개 읽는다. 당연히 대부분 영어 콘텐츠지만, 늘 촉박하다 보니 일단 번역기로 훑고, 중요하다 싶은 문장만 다시 영어로 본다. 생각보다 영어 공부는 안 된다.
애초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지만, 꽤 괜찮은 팀을 만들었다. 올해 어떤 글을 썼냐고 물으면, 단연 아비랩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아비랩은 요기서 읽어보자 -> http://aseanbizlab.com/
→ 채널예스 <오세용의 IT 이야기>
대학생 때 블로그를 시작했다. 당시 서평과 K리그 칼럼을 썼는데, 내 글이 K리그 팬들에게 알려졌다. K리그 다음 카페에서 내 닉네임을 딴 칼럼 게시판을 만들어줬다.
채널예스는 예스24가 운영하는 미디어다. 책 이야기가 주로 올라오는데, 우연한 기회에 채널예스에 글을 쓸 기회를 얻었다. 내 이름을 딴 칼럼 <오세용의 IT 이야기>다.
올해 4월까지 IT 기자로서 매일 같이 뉴스 큐레이션을 했다. 이를 묶어 정리하면 월 1회 칼럼은 그리 어렵지 않겠다 싶었다. 막상 그렇게 진행하니, 요구조건이 달랐다. IT/모바일 분야 책을 소개해달라는 것이었다.
IT/모바일 분야 책은 대부분 기술 서적으로 칼럼을 쓰기 적절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한 달은 짧았고, 몇몇 마감일은 아슬하게 맞췄다. 그렇게 올해 9개 칼럼을 썼고, 굉장히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언젠가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곤 생각했다만, 내가 기자가 되고, 정말 칼럼니스트가 될 줄은 아니,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다. 비록 내가 글을 쓰는데 걸리는 시간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IT 분야 주제를 잡고, 글을 써나가는 데 두려움은 없어졌다.
앞으로 어떤 기회가 연결될진 모르겠지만, 이런 류 글은 좀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내게 기회를 주고 싶은 사람은 연락해달라… ㅎ
<오세용의 IT 이야기>는 요기서 읽어보자 -> http://ch.yes24.com/Article/List/2774
→ 오세용닷컴
올해도 역시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매달 서평을 써야 하는 STEW 독서소모임이 좋은 가이드가 됐다.
올해 읽고 서평까지 쓴 책은 14권, 여기에 책을 읽고 쓴 <오세용의 IT 이야기> 칼럼이 8개. 그럼 총 22권이다. 오랜만에 20권이 넘는 책을 읽은 한 해다.
서평을 쓴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바뀐 거라면, 글이 꽤 정제됐다는 것. 글 쓰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 등이 있겠다. 그리고 올해는 발췌독을 시작했다는 것도 수확이다.
언젠가 한 멘토님의 책장을 보며 그 많은 책을 언제 다 읽냐고 물었더니, 자꾸 읽다 보면 내용이 겹치는 것들이 나오고, 그러다 보면 발췌독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나도 이제 그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쓰기 위한 독서에서는 발췌독이 필수다. 모든 콘텐츠를 읽으면 더 좋은 글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내년엔 더 많은 책을 발췌독하지 않을까?
올해는 오세용닷컴에 새로운 콘텐츠도 만들었다. <오세용의 에세이>다. 언젠가 책으로 묶을 글을 쓰고 싶었는데, 몇몇 작가들이 페이스북에 쓴 글을 묶는 걸 보고 따라 했다. 작년에 4개 정도 썼고, 올해 17번째 에세이를 썼다. 페이스북에 휘발성 글을 쓰는 것보다는 훨씬 만족스럽다.
STEW 독서소모임 멤버 서평은 요기서 읽어보자 -> http://stew.or.kr/
◆ 커뮤니티 STEW…안정적인 조직으로
STEW는 내게 늘 많은 것을 준다. 많은 배움을 주고, 많은 고통을 준다. 정말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조직이다.
5년간 유지했던 5개 공식모임을 드디어 개편하게 된 한해다. 지속해서 새로 들어오는 신규 멤버들이 끊긴 지 몇 해가 흘렀고,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본업과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며 커뮤니티 전체를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많은 친구가 도왔지만, 임계점을 넘기지 못했다.
8년여 STEW를 운영하며 가장 힘들었던 해이기도 하다. 크게 도움을 주던 멤버가 잠시 이탈했고, 나 역시 순탄치 않은 한 해를 보내며 기운이 빠졌다. 아마 STEW에서는 역대급으로 내가 힘들다고 징징댔던 한 해였을 것이다.
다행히 멤버들이 새로운 방향성에 공감했고, 내년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시작될 것 같다. 더 멀리 볼 땐, 이 방법이 맞다. 새로운 STEW에는 더 많은 친구를 초대하고 싶다.
◆ 30대 초반 안녕…삼땡이여 오라
나는 빠른 년생으로 늘 애매했지만, 서른이 넘고 나서는 한, 두 살 때문에 불편했던 적은 없다. 빠른을 만든 행정가들에 불만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한편으로는 1년 더 빠르게 경험치를 쌓을 수 있어 만족스럽기도 하다.
내일이면 33살이 된다. 받침에 시옷이 생기면, 중반이라던데 서른셋. 이제 서른 중반에 접어드는구나. 스물셋이 됐다며 어색해 하던 게 기억에 남는데, 언제 10년이 흘렀을까.
올해는 여러모로 몸을 무겁게 한 해다. 월세에서 전세로 바꿨고, 차도 생겼다. STEW에서 더 많은 멤버들과 리더로서 시간을 보냈고, 어느새 본업에서도 마냥 주니어라고 할 수 없는 시기가 됐다. 몸을 가벼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 스스로 몸을 무겁게 한 걸 보면,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나 보다.
STEW인의 밤에서 나는 올해 내게 60점을 줬다. 이 글에서는 60점보다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니, 적고 보니 나 좀 열심히 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2020 내 올해의 단어는 2019년과 같이 English로 할 거다. 2020년에는 꼭 영어에 관한 두려움을 떨쳐내겠다. 개발자로서 정착하는 데도 힘을 쓸 생각이다. 글쓰기를 코딩보다 더 잘하는 개발자라니, 너무 끔찍한 혼종이지 않은가? 이를 위해 STEW는 큰 모험을 줄이고 안정화에 들어간다. 그래야 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에 집중할 수 있겠다.
◆ 함께 하는 인생
연말이면, 공중파 시상식이 인기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들의 수상소감에 흥미를 잃었다. 고마운 사람이라며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정말 고마운 사람이 많더라. 욕심을 낼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 감사해야 했다. 혼자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내가 열심히 할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꽤 괜찮은 인생, 꽤 복 받은 인생이라 생각했다.
지루한 시상식일지라도, 언젠가 내가 큰 상을 받게 되면 한참을 감사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 전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감사한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겠다.
글쓰기에 집중이 된 2019년이었지만, 어쩌면 이 역시 내가 바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는 인생을 사는 것에 바라는 것이 있는 인생을 사는 것에 나로서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2019년 즐거웠던 한 해 회고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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