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게 된 동기 ]
따뜻한 커뮤니티 STEW 독서소모임 2016년도 마지막 모임 “예술” 파트 지정도서
[ 한줄평 ]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에 대한 호기심을 제시한 책.
[ 서평 ]
먼저, 이 책을 전부 읽지는 못했다는 점을 알린다. 이 책의 머릿말부터 ‘르네상스 시대’ 까지 딱 절반을 읽고 서평을 쓰기 시작한다. 좀 더 여유를 갖고 읽었더라면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굉장히 지루했던 부분들이 떠올라 그러고 싶지 않은 걸로 정리한다.
STEW 독서모임을 2년째 운영 및 참가하면서 총 10권의 책을 모임에서 읽었다. STEW 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며 교양을 쌓자는 취지인데, 일단 2년간 잘 운영되고 있다. 이 독서모임으로 내가 얻은 것은 꽤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예술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다.
작년에 읽었던 예술파트 도서는 “[서평] 예술가로 살아가기 ★★★★★” 인데, 별점 5개를 줄 정도로 굉장히 만족스럽게 읽었다.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읽었던 ‘예술’ 분야 도서였기에 좀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이번에 읽은 “한 권으로 보는 서양 미술사 이야기” 는 작년에 비하면 굉장히 딱딱한 책이었다. 초반 몇 페이지 정도는 읽으면서 헛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골랐지?’ 라는 생각 뿐 이었다. 이유인즉슨, 전공서적이나 다름 없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아, 꼭 전공서적이 아니더라도 ‘대학교 교양과목 교과서’ 정도로 쓰일만한 책이었다. 적게는 30페이지에서 많게는 100페이지가 넘어가기도 하지만, 한 챕터들이 잘 나뉘어져있어 수업용으로 참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시간의 흐름대로 나열되어 있어 가르치기에 참 유용한 구조였다.
<그럼에도 흥미로웠다.>
잘 쓰여진 글은 뇌리에 똭! 꽂히지만, 역시 오래 기억하기 위해선 ‘시각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구석기시대부터 인간은 ‘그림’ 을 그려왔다. 그당시에는 일종의 ‘제사’ 이기도 했고, ‘주술’ 이기도 했다. 학자들은 제사장이 무리를 이끌었고, 부족의 안녕을 기원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추측한다.
물론, 이 부분은 정말 재미 없었다.
내가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소크라테스’ 와 ‘플라톤’ 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 고 말했던 소크라테스가 나오면서 이 책은 더이상 ‘미술’ 만 다루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 했다.
사실, 예술이라는 것은 비예술인들에겐 가까운 단어가 아니다. ‘오, 완전 예술인데?’ 라는 말만 봐서도 ‘예술’ 이라는 단어가 일반인들에게 ‘특별함’ 으로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도 특별하여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느꼈던 ‘예술’ 을, 저자가 ‘철학가’ 와 ‘역사’ 로 버무려 내게 던졌다.
구석기시대의 미술은 ‘생존’ 을 위함이었다. 나는 살면서 ‘생명’ 의 위협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몇 차례 응급실에 실려가서 굉장히 아파본 적은 있지만 ‘이러다 죽는구나’ 싶었던 적은 없었다. 큰 사고를 당한적도 없다. 때문에, ‘생존’ 을 위해 미술을 했다? 나와의 연계성이 전혀 없었기에 구석기시대의 이야기는 지루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나왔다. 플라톤이 나왔다.
이 철학자들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하물며, 당시에는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녔을까? 물론, 그들은 소크라테스를 죽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영향력은 커졌고, 그를 기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렸고 만들었다.
이제 나와의 연계성이 조금은 생겼다. 내가 존경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 을 찍고 추억을 기록한다. 단순히 그런 수준은 아니었겠지만, ‘생존’ 을 위한 미술에서 조금은 내게 다가와주었다.
그리고, 이집트 등의 문명으로 넘어간다.
파라오를 위한 피라미드는 모든 이집트 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으며,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했던 이집트 인들은 그것을 세우기 위한 노동을 보람 있는 의무로 여겼다. 그리고 파라오에 의한 피라미드 건설은 일거리가 없는 농한기에 백성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한 목적도 겸한 공사였다.
어느새 미술사는 ‘백성들을 위한 일거리’ 로 까지 다가왔다. 쉽게 말해 ‘국책’ 사업인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랄까?
어떻게 보면 구석기시대와 마찬가지로 ‘생존’ 에 가깝지만, 수렵생활을 위한 ‘주술’ 보다는 훨씬 더 그들의 행동이 이해된다. 피라미드를 만들며 백성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그들에게 일거리를 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사업이 어디있는가?
그래, 시작은 그러하였다는 것. 미술의 시작이 ‘필요’ 에 의해서였다는 것. 그것이 내게 서서히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다.
<종교. 마음의 안식처.>
나는 가톨릭신자다. 비록 지금은 냉담중이지만, 모태신앙이며 학창시절을 성당에서 살았다. 대학생때는 교리교사 활동도 했을 정도로 꽤나 열심히였다.
분명 후회되는 일들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종교 안에서 나는 성장했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소중한 기회들을 얻었다.
종교는 마음을 다스리기에 굉장히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물론, 최근 문제되는 ‘사이비’ 등의 이슈들도 있지만… 충분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종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역시, 미술작품에서 종교를 빼 놓을 수는 없다. 웅장한 서양의 예술 작품을 떠올려 보자. 무엇이 떠오르는가? ‘천지창조?’ ‘다비드상?’ ‘비너스?’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예술 작품들은 ‘종교’ 에 기반해서 만들어졌다. ‘생존’ 에 대한 위협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마음’ 의 안식처를 원했고, 이제 ‘수렵’ 등의 주술을 위한 미술에서 마음을 다루는 미술로 발전해갔다.
종교에 있어 미술작품들은 꽤나 효율적이었다. 거장들의 작품은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았고, 지금까지도 그 감동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특정 부자들의 욕구에 의해 미술작폼이 생산되고 판매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종교적인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미술사. 호기심이 생기다.>
구석기 미술을 거쳐, 이집트, 그리스를 지나 중세시대까지 왔다. 그리고 내게 르네상스가 펼쳐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이 닌자 거북이들은 내 학창시절 미술책을 떠오르게 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중세를 무지와 미신과 혼란의 시대로 보았는데, 이러한 시각은 르네상스 인들이 그들의 시대를 과거와 다른 새로운 시대로 보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확실히 르네상스 인들은 자기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자각했다.
무슨 학파가 어떻고, 기법이 어떻고. 도대체 그따위 것들을 왜 외우게 시켰는지는 아직도 동의하지 못한다. 그 엉터리 교육법이 나같은 학생들에겐 미술에 대해 거부반응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학파 따위, 기법 따위 알게 뭔가? 페이스북 로그인을 하는데, 어떤 인증 기술이 사용 되었는지. 백엔드가 Python 으로 되어있는지, Java 로 되어있는지 일반 유저가 알게뭔가? 그저 로그인 잘 되고, 친구들 글이 잘 보이면 되는게 아닌가?
미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일단 미술 작품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줘야 하지 않는가? 르네상스 시대가 역사상 예술적으로 가장 부흥기이고, 라파엘로가 어떤 사람인지, 왜 이런 그림을 그렸고, 이 그림이 왜 가치있는지 따위 당연히 좋다. 다만, 이 작품 자체에 관심이 생긴 다음에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관심도 없는데 설명한다? 그게 꼰대다.
그럼에도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과 기법. 그리고 익숙한 예술가들의 이름이 나오자 책이 술술 읽히기 시작했다. 그래, 재밌더라.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가 어떻고, 제사장이 어떻고 하다가 ‘천지창조’ 의 숨겨진 손 따위의 이야기가 나오니까 호기심이 생기더라. 콜로세움 등의 돌덩이 사진만 보다가 사람들이 나오니까 호기심이 생기더라. 그래, 호기심이 생기니까 재밌더라.
이 시기 미술가의 사회적 위치나 생활상은 이전 시대와는 많이 달랐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문을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집을 짓거나 집에 미술작품을 들여놓고자 했다. 이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훌륭한 화가나 조각가, 건축가에게 작품을 주문함으로써 미술가들은 상당히 좋은 조건에서 제작에 임하고 생활할 수 있었다. 미술가들은 이제 예전처럼 후원자들의 기분을 살피며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으며,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주문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대가 천재에게 베푼 작은 혜택이었다. 미술가의 위상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창작을 고무시키는 힘이 되었다.
역사와 철학을 넘어 이제 경제적인 이야기까지 출연한다. 그래, 메디치 가문이다. 르네상스의 부흥기를 이끌며, 역사에 한 획을 크게 그었던 메디치 가문. 금융사업으로 큰 경제력을 가지고, 다수의 교황을 배출하며 정치계마저 장악했던 메디치 가문.
이제 되었다. 내 관심사까지 미술이 연결선을 그어버렸다. 단순히 ‘생존’ 을 위해서 그림을 ‘기록’ 했던 구석기 시대부터 역사와 철학을 지나 미술 작품으로 ‘경제 활동’ 을 하는 시기까지 저자가 이어주었다. 지금 책상 옆에 있는 책, 화장품, 음료수, 과자. 그 안에 그려진 그림들. 이 그림들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내 이야기로 미술을 이해하다>
한 분야의 달인이 되면, 다른 분야의 달인이 되는 것은 처음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한다. 지난 5년간 개발자로 일하며, 나름의 경험을 쌓았고 이제는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을 내 경험에 빗대어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왜 미술에 관심이 없었는지,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을지. 내가 미술에 호기심이 생긴 이유는 무엇인지, 내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떤 것인지. 미술 작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떠한지, 자신의 미술 작품이 생각보다 낮은 가치를 받을 때의 작가의 기분이 어떠할지.
예술파트의 서적을 읽는 것은, 교양을 쌓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함이 아니다. 새로운 분야의 지식과 경험은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며, 반대로 해당 분야에 대한 스스로의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해준다. 즉, 다르게 보는 법을 터득하는데 굉장히 좋은 방법이다.
다르게 본다는 것이 바로 ‘혁신’ 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중세를 무지와 미신과 혼란의 시대로 보았는데, 이러한 시각은 르네상스 인들이 그들의 시대를 과거와 다른 새로운 시대로 보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확실히 르네상스 인들은 자기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자각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메디치 가문은 경제, 행정, 정치, 교육, 예술 등 각계의 전문가들을 모아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 옛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제자들과 많은 토론을 나눴다고 한다. 각 분야의 끝을 달리는 그들이 모여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모여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예술가들은 어떤 성장을 이뤘을까? 작품을 만들면서 작가 스스로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책을 다 읽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니, 미술사에 이제서야 호기심을 가진게 아쉽다. 그동안 수차례 지나쳐온 미술 작품들, 건축물들. 다시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새로운 것들이 보이게 될까?
나라가 어지럽고, 세상이 혼란스럽다. 자국 정권은 부패했고, 선진국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한다. 이럴때일수록 계속 배우고, 단단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깨달음은 늘 안에서 오니까.
화분을 가꾸고, 돌을 수집하고, 미술 작품을 걸어두는 중년들의 취미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은 같은 미술 작품을 계속해서 바라보며, 새로움을 찾아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 아닐까?
전반적으로 책은 딱딱했고, 어려웠다. 좀 더 쉽게 풀고, 전문 용어는 해설을 해줬더라면 이해하는데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미술에 대해, 예술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해주었기에 저자에게 고맙다.
[ 인상 깊은 문구 ]
- 과학은 논리적 사고로 우주의 신비에 접근하려고 하지만, 미술은 정서적 시각에 의해 우주의 신비에 접근한다. 우주와 존재의 신비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예술가나 과학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 후기 구석기시대 원시인류의 생각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그림은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그려진 대상의 생명을 잡아가두는 마술과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 구석기시대 인들에게 있어 특정한 동굴은 대지의 어머니의 신성한 자궁이었다.
- 단순히 집을 짓기 위해서라면 결코 그런 고생을 해가면서 스톤헨지를 세웠을 리 없다. 따라서 스톤헨지는 일상의 생활공간을 위한 건축물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여긴 종교적 목적을 위한 건축물이었을 것이다.
- 파라오를 위한 피라미드는 모든 이집트 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으며,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했던 이집트 인들은 그것을 세우기 위한 노동을 보람 있는 의무로 여겼다. 그리고 파라오에 의한 피라미드 건설은 일거리가 없는 농한기에 백성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한 목적도 겸한 공사였다.
- 이집트의 화가들은 인물을 그릴 때 전해오는 관념에 따른 기하학적 규칙성을 중요시했으며, 그 외에 동물이나 자연물을 그릴 때는 사실적인 관찰 결과를 보다 중요시해서 그렸다. 오늘날 조류학자들은 고대 이집트 분묘의 벽화에 등장하는 새들을 보고 그 종류를 정확하게 식별해내곤 한다.
-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에 의하면, 대피라미드를 만드는 데 20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여기에는 성인남자 10만 명의 노동력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피라미드 공사는 백성들이 일거리가 없어 쉬고 있는 농한기에 이루어졌으며, 피라미드 공사에 참여한 백성들에게는 노동에 따르는 임금이 정확히 지불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 이처럼 자유롭고 인간적인 그리스 인의 삶의 자세는 놀랍도록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그리스 미술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허한 마음을 위로해주고 지탱해주며 채워줄 수 있는 의지처를 갈망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철학이 아니었다. 철학은 그들에게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다. 대중들은 무조건적으로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종교를 원했고, 그 결과 로마 말기에 수많은 신흥종교가 대중의 공허한 마음을 파고들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기독교도 그러한 상황에서 나타난 신흥종교의 하나였다.
- 그후 기독교가 국교화되자 수많은 광신적인 기독교 인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고대 그리스의 걸작 조각품들을 이교도의 우상이라고 외치면서 처참하게 파괴했다. 이 끔찍한 예술품 파괴사건으로 인해, 대부분의 고대 그리스의 걸작품들을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현실은 이데아(Idea=본질계)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 매우 불완전하니 인간은 완성에 도달하기 위해 이데아를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그리스 인의 정신과 삶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 이것은 우리가 긴장을 풀고 편안히 서 있을 때 종종 취하게 되는 자연스런 자세의 하나다. 이러한 자세의 인체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기에 〈크리티오스의 코우로스〉 조각상에서 우리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깊은 공감을 느낀다.
- 기원전 490년에 있었던 이 마라톤 전투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한 병사가 아테네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 승리를 알리고 숨을 거둔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유명하다. 올림픽 경기에서의 마라톤 시합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 또한 파르테논 신전의 원주들은 똑같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귀퉁이의 원주와 그 옆에 있는 원주 사이의 간격이 전체 원주들간의 일정한 간격보다 좁게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원주들은 안쪽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다. 원주에는 세로 선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 있어 원주의 전체 인상에 상승하는 듯한 세련된 활기를 부여한다. 원주에 세로 선들이 없이 밋밋했다면 기둥은 지금과 같은 시각적 활기를 잃고 둔중하고 맥없이 보였을 것이다.
- 우리가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사실은, 고대 그리스의 저명 조각가의 작품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진품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그리스 조각품만으로 고대 그리스 저명 조각가의 수준을 단정짓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 알렉산드로스는 군대를 이끌고 갈 때 항상 의사와 생물학자, 과학자, 예술가 등을 대동하고 다녔다. 그의 이러한 정복정책은 그리스 문화를 널리 퍼뜨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인도의 간다라 불상양식 역시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진출을 계기로 생겨난 것이었다.
- 로마 인들은 현실주의자들이었고 소수 철학자들이나 시인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세속적이고 지극히 실제적인 사람들이었다. 이와 같은 로마 사회의 전반적 취향이 조각가로 하여금 미화하지 않은 초상조각을 만들게 했다.
- 카이사르가 통치했던 시대에 로마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명석한 사상가 루크레티우스Lucretius(기원전 94?~55?)였다. 그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시에서 아름답고 장중한 문체로, 자연에는 어떠한 목적도 계획도 없으며 세계는 결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중세를 무지와 미신과 혼란의 시대로 보았는데, 이러한 시각은 르네상스 인들이 그들의 시대를 과거와 다른 새로운 시대로 보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확실히 르네상스 인들은 자기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자각했다.
- 지오토의 이러한 생각은 그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중세의 화가들은 전해내려오는 도상의 틀에 따라 성서의 이야기를 그리면 되었으나, 지오토는 그것을 파기하고 새로운 발상에 의해 그림을 그림으로써 르네상스 회화의 문을 연 선구자가 된 것이다.
- 유화기법의 진정한 창안자는 플레말레의 화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1395~1441) 및 동시대 플랑드르의 여러 화가들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 우첼로가 원근법에 정력을 쏟은 시간만큼 인물과 동물 연구에 시간을 바쳤다면 그는 지오토 이후 가장 영감이 풍부한 매혹적인 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 사실 그 당시 인문주의자들은 결혼이 정신의 자유를 속박한다고 생각해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선호하기도 했다.
- 보티첼리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와 도나텔로Donatello(1386~1466), 라파엘로(Sanzio Raffaello, 1483~1520) 등도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 르네상스의 새로운 건축양식을 창안한 사람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다.
- 이 시기 미술가의 사회적 위치나 생활상은 이전 시대와는 많이 달랐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문을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집을 짓거나 집에 미술작품을 들여놓고자 했다. 이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훌륭한 화가나 조각가, 건축가에게 작품을 주문함으로써 미술가들은 상당히 좋은 조건에서 제작에 임하고 생활할 수 있었다. 미술가들은 이제 예전처럼 후원자들의 기분을 살피며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으며,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주문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대가 천재에게 베푼 작은 혜택이었다. 미술가의 위상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창작을 고무시키는 힘이 되었다.
- 시스티나 예배당의 그 거대한 천장에 혼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1508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4년 만에 이 대역사를 마쳤다. 참으로 놀라운 인간의 능력이 아닐 수 없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