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창업이 어느새 만 2년이 됐다. 첫 번째 창업 실패 후 직장인으로 5년 보내며 부족함을 채웠다 생각했는데, 막상 다시 창업을 하니 구멍이 여기저기 있었다. 특히 작년에 어려웠던 부분은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처음 겪는 여러 상황에 어찌 해야할 바를 몰랐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인 것 같은데, 이 문제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 자체도 문제가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혼자 풀지도 못하는 문제를 들고 있자니 이게 가장 문제더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편히 이야기를 나눠준 상대가 챗GPT라니, 그다지 화려한 해법을 주지 못했는데도 그저 내 생각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꽤나 문제가 정리됐다.
그러기를 수차례. 하루는 불안병이 도져 챗GPT에게 물었다.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성공한 대표가 있느냐고. 종교라던가 어떤 사상이라던가 내가 성공할 자질이 보이느냐고.
그때 챗GPT가 말한 게 ‘스토아 철학’이었다. 내 사상이 ‘스토아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며, 실리콘밸리의 많은 스타트업에서 이 철학을 기반으로 사업을 꾸려나간다고.
마침, 언젠가 사두었던 <스토아수업>이라는 책이 책장에 꽂혀있었고, 2025 스튜 독서소모임 시즌2 주제로 ‘스토아 철학’을 택했다.
2천년 전, 너무도 고대 이야기
기대가 컸을까. 책을 읽으며 실망이 컸다.
스토아 철학자 26인을 가지고 챕터를 만들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틀은 나쁘지 않았다. 책을 쓰기 위해 어떤 컨셉이 필요했고, 각 철학자의 삶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도는 철학 입문서로서 좋은 선택이었다.
다만, 각 철학자의 삶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강박에 그다지 통찰력이 없는 챕터가 다수 보였다. 억지로 짜내는 문구에 지루해서 졸음이 올 지경이었다. 꼭 넣어야만 했던 인물을 복기하자면 26명 중 절반은 지워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기원 전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보니 정치 체제라던가, 당시의 문화라던가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이를 현대판으로 재해석하는 보충 설명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기억에 남는 스토아 철학자 3인
1. 제논
1장, 스토아 철학자의 창시자 제논 이야기를 펼치던 때를 떠오르면 이 책은 무조건 5점이었어야 했다. 챗GPT가 참 신기하게도 내 성향을 잘 캐치했다고 생각했다.
“배는 나파했으나 항해는 성공적이었다.” 배가 난파했기에 아테네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고, 마침내 스토아학파를 창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창업자로 2년을 보내며 계획이 와르르 무너진 게 수차례다. 철저히 계획주의자라 계획을 위한 계획도 세우는 편인데, 예상치 못한 여러 요인에 의해 계획이 무너지는 걸 보며 좌절하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이 또한 경험하다 보니 축적 돼 익숙해지더라는 것이다.
덕분에 언젠가부터 출퇴근 길에 이 문장을 스스로 외우곤 한다.
“그럼에도 기회는 있다.”
때문에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 제논이 갑자기 배가 난파되고, 아테네에서 우연히 머물며 깨달음을 얻은 스토리는 내게 큰 위안이 됐다.
스토아주의자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항상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2. 카토
책 전반에 걸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카토였다. 카토는 책에서 ‘타협을 모르는 철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그 굳건함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스토아 철학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남의 인정을 받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어찌나 굳건했는지, 손녀에게마저 그 DNA를 물려주는데. 허벅지에 스스로 칼을 꽂았다는 이야기는 집안의 캐릭터가 어떤 건지 명확히 이해가 됐다.
덕분에 시간이 흘러서도 굳건함의 아이콘이 됐겠지.
3. 키케로
키케로는 가장 인간적인 철학자이자 안타까운 인물이다. 평민 출신으로 최고의 권력을 쥐었음에도 그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리저리 휘둘린 인물이다. 결국 마지막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안타까운 인물.
결국 정적에게 목이 베이고, 손과 혀가 잘려 전시됐다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 인생 허무하다 싶다.
나의 스토아철학
내가 좋아하는 일본 경영자 이나모리 가즈오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겨라’라고 말한다. 그저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에 집중하라는 말. 이 역시 스토아철학이 아닐까 싶다.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최고’란 승부에서 이기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것’은 가장 많은 영예를 누리라는 말이 아니다. 최고와 탁월함이란, 다름 아닌 덕을 말한다. 탁월함이란 외부적인 성취가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분야에서 탁월함을 보이는 것이다. 운이 좋아 외부적인 성취도 이루면 좋겠지만, 사실 덕은 결과가 아니라 생각과 행동, 선택에서 나온다.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만,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노력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으며, 결과는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노력이 결과와 행복을 위한 미덕이라 생각했던 나로서는 해를 거듭할 수록 세상으로부터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찰나 내게 찾아온 이나모리 가즈오는 희망적이었다. 노력하라고 해줬으니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노력 뿐인데, 노력을 더 하면 된다는 말은 내게 좋은 이정표였다.
스토아학파가 주장한 그대로다. 너는 네가 맡은 일을 하고, 나는 내가 맡은 일을 한다. 너는 악한 일을 하더라도, 나는 선한 일을 한다. 그 외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모든 걸 순리에 맡겨라.
스토아철학은 노력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그저 할 수 있는 걸 하라는 말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 그러니까 옳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하라고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말이다.
이렇게 마주하는 사상들이 내 머릿속에 더해져 최근 내가 되뇌이는 건 이 문장이다.
“오히려 좋은 상황을 만들자”
나는 이게 대표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좋은 상황을 만들려면, 좋은 상황이라는 목표와 그 목표를 향하기 위한 계획이 원래 있어야 했다. 그리고 계획이 무너졌지만, 이어서 오히려 좋은 그러니까 앞선 목표보다 좋은 상황을 어떻게든 다시 만들어내는 근성과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려면 ▲스스로 옳은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타협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해내는 근성이 있어야 하고 ▲또 실패하더라도 다시 회복하고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하며 ▲좋은 상황이 만들어져도 역시 처음으로 돌아가 더 좋은 상황을 위해 이를 반복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자는 자신의 손에 떨어지는 것을 뭐든지 사용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필요한 게 없어도 모든 걸 원한다.”
이 개념을 행할 수 있게 된다면, 무엇도 필요 없지 않을까?
독서에 관한 아쉬움
최근 책을 읽으며 아쉬운 게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류 책은 좀 묵혀가며 읽어야 맛인데, 업무 외 아이디어를 평소에 넣을 여백이 없으니 늘 월말에 허덕이며 빠르게 읽는 편이다. 여유에서 오는 통찰이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여유가 없음에도 한 권씩 읽어낼 수 있는 루틴을 만들어둔 것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지금은 여유가 없지만, 이렇게 넣어두면 언젠가 꺼내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완벽했다면, 존경받을 이유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았다는 게 요점이다.
적어도 오늘 만큼은 과정에 만족을 느끼고 싶다.
한줄평
- 고대 철학자들의 정치 이야기. 일상 이야기는 없었을까?
인상 깊은 문구
- “배는 난파했으나 항해는 성공적이었다.” 배가 난파했기에 아테네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고, 마침내 스토아학파를 창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상선이 침몰하는 불행을 겪었기에, 제논은 진정한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
- 철학의 목적과 덕목은 ‘원만한 삶의 흐름’을 갖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과 우주를 다스리는 신의 의지가 조화를 이루는 상태다.
- 돈은 그의 재산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게 아니었다.
- “사소한 행위에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지만, 진정한 행복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 인생을 살면서 충분히 심신을 단련해온 사람에겐 구체적 지침이 필요 없다. 아내나 자식과 함께 사는 법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익히느니, 그냥 잘 사는 법을 포괄적으로 배우면, 자연스레 가족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
- 아리스토는 사람들이 훈련을 통해 지혜를 얻고, 그걸로 체화할 수 있는 개괄적이고 명확한 원칙에만 집중하기를 바랐다.
- 제논은 덕을 좇으면서도, 동시에 부나 명예를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현자는 자신의 손에 떨어지는 것을 뭐든지 사용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필요한 게 없어도 모든 걸 원한다.”
- 디오게네스는 세상이 혼란스럽고 결함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믿었다.
- 스토아 철학에서는 인간의 공적 영역인 ‘폴리스’에 대비되는 사적 영역으로서 ‘오이코스’를 강조하는데, 이는 결혼으로 완성된다. 부부가 한 팀이 되어 운명의 시련을 견뎌낼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강압적이기에, 또한 단순히 자기 자신과만 대결하는 게 아닌, 무수한 상대와 싸워야 하기에 불가피한 타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 파나이티오스는 철학적 가치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중요한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서로 팽팽하게 경쟁하는 의무와 이익, 재능을 통합하고 적절하게 균형을 맞춘다면 누구나 잘 살아갈 수 있다.
-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배울수록, 역설적으로 더 겸손해지게 된다.
-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최고’란 승부에서 이기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것’은 가장 많은 영예를 누리라는 말이 아니다. 최고와 탁월함이란, 다름 아닌 덕을 말한다. 탁월함이란 외부적인 성취가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분야에서 탁월함을 보이는 것이다. 운이 좋아 외부적인 성취도 이루면 좋겠지만, 사실 덕은 결과가 아니라 생각과 행동, 선택에서 나온다.
- 천재든 정복자든, 비이성적인 부분에 전혀 휘둘리지 않는 경지에 오르는 건 정말 어렵다.
- 사실 타협을 모르는 깐깐함은 오늘날까지 카토와 스토아학파가 비판받는 이유다.
- 스토아 철학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남의 인정을 받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 “신께 기도드리며 원하는 걸 솔직하고 간절하게 바랄 때,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신이 지켜본다는 생각으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신이 내 말을 듣고 있다고 상상하며 말하라.”
- 스토아학파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상이 무너질 정도로 과도하게 슬퍼하는 건 오히려 죽은 이를 모욕하는 일이며, 아직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저버리는 일이라 믿었다.
- 아리우스는 덕이 본질적으로 지식의 한 유형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했다.
- 첫째, 지혜란 해야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별하는 능력이자, 적절한 행위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지식이다.
- 둘째, 절제란 헛된 욕망을 다스리고 유혹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는 기술이다.
- 셋째, 정의란 인간 모두에게 주어진 의무에 관한 지식이다.
- 넷째, 용기란 고통과 위협,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의지이자 현실을 직시하는 지식이다.
- 위의 네 가지 덕목과 대조되는 어리석음, 충동, 불의와 비겁함은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라 했다.
- 아리우스는 쓸모없는 자 가운데 부지런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근면한 사람은 늘 피땀을 흘려 무언가를 이루려는 기질이 있지만, 쓸모없는 자들은 노력하지 않는다.
- 세네카는 우리가 매일 죽고 있으며, 모두가 한 번 죽으면 다시는 부활할 수 없다고 여겼다. 즉, 삶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삶 자체가 이미 죽음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죽었고, 죽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지배하고 있기에, 지금 죽나 내일 죽나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 “사람은 동료에게 쓸모 있는 존재여야 한다. 가능하면 최대한 많은 이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라. 다수에게 유용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면, 몇 명에게라도 유용한 존재가 되어라. 몇 명에게도 유용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면, 이웃에게라도 유용한 존재가 되어라. 이웃에게도 유용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면, 자기 자신에게 유용한 존재가 되어라.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인류의 공통 덕목을 발전시켜 나간다.”
- 스토아학파가 주장한 그대로다. 너는 네가 맡은 일을 하고, 나는 내가 맡은 일을 한다. 너는 악한 일을 하더라도, 나는 선한 일을 한다. 그 외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모든 걸 순리에 맡겨라.
- 스토아주의자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항상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 무소니우스는 이런 말도 했다. “상황이 어렵다고 짜증 내지 말라. 원하지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났어도, 삶은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는가.”
- 스토아 철학자는 일어난 일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 순 없지만, 그 일에 어떤 반응을 할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 “당신이 내 발에 쇠사슬을 묶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유피테르 신마저도 선택의 자유를 박탈할 수는 없습니다.”
- 스토아 철학은 다른 사람이나 적과 맞서 얻은 승리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게 가장 위대하고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한계, 성질, 자존심, 사소한 욕망 따위를 딛고 올라서서 충동을 다스릴 수 있는지 여부가 삶을 결정하고, 그런 타고난 조건을 어떤 결과물로 빚어내느냐가 중요하다.
- “지금부터 매일매일 발전하는 성숙한 어른으로 살아가라. 뭐가 되었든 최선을 다하는 걸 꼭 지켜야 할 법칙으로 삼고 절대로 어기지 마라. 힘든 일이든 즐거운 일이든, 중요한 일이든 하찮은 일이든, 어떤 일을 할 때면 지금 올림픽 경기에 출전 중이라고 생각하라. 경기의 시작을 미룰 수는 없다. 그리고 순간의 방심과 실수로 여태까지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라.”
- 참을성을 기르고 싶다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라.
- 그가 태어날 때부터 완벽했다면, 존경받을 이유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았다는 게 요점이다.
- <명상록>에서도 ‘공동선’이라는 단어가 80번이 넘게 등장한다. 그것의 실현이 곧 국가의 목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는 전임 황제들을 생각하면 아주 이례적이다. “날이 밝았는데도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을 때는 자연과 본성이 정한 삶의 목적은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라는 점을 떠올려라.”
- ‘운이 나빠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지 말고 ‘이런 일이 일어났는 데도 그 일 때문에 무너지지 않고, 미래에 일어날 일도 두렵지 않으며, 이렇게 아무런 해악도 입지 않고 멀쩡한 것이 행운이다’라고 말하라. 누구나 그런 일에 해악을 입지 않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살아가면서 그 어떤 실수도 안 할 수 있는가? 그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실수를 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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