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지인이 쓴 책이다.
6개월 전 지인의 추천으로 한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스튜 독서소모임을 10년 동안 운영해온 터라 그간 다른 독서모임에 참여할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여러 이유를 떠올리며 가입했고, 6개월째 만족하며 참여하고 있다.
도서 <목적이 이끄는 브랜드>는 내가 참여하는 독서모임 <수오재>의 리더 이승오님이 쓴 책이다. 종종 책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나오면 꼭 사인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감사하게도 출판 간담회에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고 드디어 책을 펼쳐보게 됐다.
목적이란 무엇인가
‘목적’이란 단어를 일상에서 사용한 기억이 흐릿하다. 내게 무슨 목적으로 접근했지? 라는 문장 따위가 아니라면 ‘목적’이란 단어를 사용한 기억이 없다. 반면 ‘목표’는 꽤 자주 사용한 것 같다. 우리의 목표, 프로젝트의 목표, 서비스의 목표. 도서 <목적이 이끄는 브랜드>는 제목부터. 아니, 제목의 첫 단어부터 익숙지 않았다.
유니레버, 삼성전자, 네스프레소. 국내외를 대표하는 브랜드에서 브랜딩를 리드한 저자의 이력 탓에. 지난 6개월간 매달 3시간씩 이야기를 나눈 탓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 한 권을 엮는데 들여야하는 에너지의 총량을 알기에 그간 쌓아온 저자의 경험이 기대됐다.
중요한 것은 용어의 완결성이 아니라, 조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선택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는가이다.
목적이 어떤 방향이라면, 과연 조직은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할까? 그리고 리더는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할까? 생각해보면 나도 어느새 커리어의 절반을 리더로서 살아왔다. 커리어 외에도 늘 어떤 조직에서든 리더 역할을 해온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목적’이란 것에 그리 순진하게 접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목적’이란 건 누군가의 어떤 욕심이 담길 수 밖에 없으니까.
이제 브랜드들은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첫 번째는 완전한 저가 경쟁이다. 두 번째는 목적 기반의 차별화다.
저자는 말한다. 이제는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브랜드의 본질은 차별화라고. 그리고 선택해야 한다고. 저가 경쟁이나 목적 기반 차별화 중 하나를.
3년차 조직의 대표로서 참 불편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저가 경쟁은 어렵다. 하한이 정해져있으며 상한은 너무도 낮게 막혀있다. 그럼에도 생존을 위해서라면 저가 경쟁을 피할 수 없다. 멘토들은 해자를 구축하라며 외치지만 해자 구축을 본업인양 삽질만 해대는 게 올바른 선택인지는 물음표다.
그렇다고 목적을 갖는 건 더 어렵다. 본문에서 나오는 도브, 러쉬, 네스프레소, 파타고니아 등이 환경을 위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한들 3년 차 초기 기업이 따라할 수 있을까 싶다. 그들이 가진 네임 벨류와 가치 사슬을 가지지 않았는데 단순히 ‘목적’을 따라한들 그게 먹힐까 싶다.
얼마 전 참여했던 출판 간담회에는 책에 소개된 한국 브랜드 널핏, 119REO, 메이저맵의 대표가 참여했다. ‘간호사는 누가 간호하지?’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널핏. 119에 미쳐있다는 119REO, 학생들의 진로를 찾아주는 메이저맵. 이들의 짧은 이야기에서 사실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과연 나는 무슨 이유에서 링크디라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었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사업계획서를 쓸 때마다 머리가 아팠다. 나는 이커머스에서 일하지 않았고, 마케터로 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플루언서도 아니며, 어필리에이트로 많은 제품을 구매한 고객도 아니었다. 때문에 참 힘들었다. 이커머스를 이해하기도, 마케팅을 이해하기도, 인플루언서와 그들의 고객을 이해하기도. 그 어떤 고객군도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책을 읽고, 고객을 만나고, 기회가 있다 싶으면 달려갔다. 그렇게 조금씩 서비스를 만들어왔다.
그래서인지 ‘목적’이라는 단어가 참 불편했다. 도브나 네스프레소 같이 전세계 누구나 아는 브랜드야 그렇다 쳐도, 업력이 길지 않은 널핏, 119REO, 메이저맵의 이야기는 솔직히 부러웠다. 저들은 저렇게 이 세상의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데, 내가 푸는 어필리에이트 마케팅의 문제는 그다지 사회적 가치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만드는 브랜드가 서비스 링크디가 아니라, 회사 라프디라면. 그러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라프디와 빙그레
빙그레하면 바나나우유가 떠오른다. 가끔 술에 취해 편의점에 가면 바나나우유를 고르곤 한다. 찐득한 바나나우유를 마시다, 조금 남았을 때 힘껏 빨아들여야 하는 그 촉감이 기억 난다. 언젠가 ‘빙그레’라는 이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빙그레라는 브랜드 사명에는 의외로 깊은 역사적 맥락이 담겨 있다. ‘빙그레’는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강조한 ‘민족의 웃음’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도산은 이렇게 말했다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차오?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소.” 여기서 말하는 웃음은 단순한 감정적 표현이 아니다. 슬픔과 혼란 속에서도 서로의 존엄을 지키고 공동체를 지켜내는, 긍정의 힘을 뜻했다. 즉, 빙그레가 이야기하는 웃음은 제품의 즐거움만이 아니라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포함하는 가치다.
내가 창업한 라프디(LAF:D)는 웃음(Laugh)을 소리나는대로 쓴 라프(LAF)와 웃음 이모티콘(:D)을 더해 만든 합성어다. 최초 설립은 OO랩스로 하고 싶어 유자랩스로 만들었는데, 상표권 등록이 안 돼 1년 뒤에 법인명을 바꿔야 할 상황에 놓였다. 당시 우리 회사 5명이 1-2개월을 틈틈이 토론했지만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대표가 정하는 걸로 좁혀졌다.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이 회사에서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고, 주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그러다보니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다 포기하더라도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단 한가지가 뭘까? 나는 그게 웃음이었다. 이 조직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고 싶어서 만들었다. 만약 사업이 잘 돼 큰 돈을 벌고, 승승장구한들 이 회사를 함께 만든 내 사람들이 없거나, 우리가 웃고 있지 않으면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에 웃음을 넣었다. 라프디.
가장 중요한 구분 기준은 목적을 위해 실제로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다. 진짜 목적을 가진 브랜드들은 때로는 단기적 이익을 포기하면서도 자신들의 가치를 지킨다.
나는 우리 회사의 웃음을 위해서라면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 단기적 이익을 포기하면서도 웃음을 지킨 사례는 지난 3년동안 참 많다. 그래서인지 조금 더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나 싶다. 하지만 성장보다 아쉬운 건 내 사람들 몇몇이 이 과정에서 떠난 것이다.
브랜드가 단순히 ‘가치’를 선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가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반발과 도전에 직면할 때, 이를 지켜낼 수 있는지가 진정한 브랜드의 힘을 결정한다.
하지만 나는 대표로서 웃음을 지켰다. 라프디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전히 함께하고 있으며, 우리는 매일 웃으며 일한다. 어쩌면 내가 만든 브랜드는 라프디 회사 자체가 아닐까 싶다.
브랜드를 위한 목적 그리고 오너를 위한 브랜드 그래서 오너를 위한 목적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를 잘 알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파타고니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는 것 외에 뭐가 그리 다른 브랜드인가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다. 기부를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본문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창업주가 지분 100%를 환경 비영리단체에 기부했다는 거였다. 실제로 기사에서 100%를 기부했다고 나왔고 정말 놀라운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리가 없는데, 정말 그렇게 할 수 없을텐데.
조금 더 찾아보니 정확히는 98%를 홀드패스트 컬렉티브라는 곳에 줬고, 나머지 2%는 파타고니아 퍼포즈 트러스트라는 곳이 가졌다고 한다. 파타고니아 퍼포즈 트러스트는 창업주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고. 이게 좀 이상해서 다시 봤더니 98%의 지분은 의결권이 없고, 2%의 지분이 모든 의결권을 갖는단다. 즉, 지분을 넘겼다고 하지만 모든 의결권은 창업주 가족이 가지고 있는 구조다.
파타고니아가 보여주는 행보를 존중하는 건 존중 받아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 행보를 존중하지 않는 것 역시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사에 따르면 파타고니아 창업주는 “지구가 유일한 주주”라고 말했단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주라면 의결권을 가져야 하는데, 모든 의결권은 창업주가 가지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지구가 아니라 창업주가 믿는 방향으로 환경 운동을 하는 거다.
회사를 팔면 새 소유주가 기업의 가치를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데, 창업주의 가족이 기업의 가치를 지키리란 보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업의 가치를 지키도록 정관을 명시하는 게 더 법적으로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은 파타고니아의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어쩌면 파타고니아 창업주는 정말 좋은 ‘목적’을 찾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무리
마케팅 산업에 들어와 일한지 어느새 3년이다. 그간 마케터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공부와 노력을 해왔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참 마케터의 언어는 어렵고, 벅차다.
서평의 마지막에 파타고니아 이야기를 하며 다소 삐딱한 시선을 비췄지만, 그래서 너는 환경에 어떤 기여를 했느냐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런 면에서 비록 개인의 어떤 ‘목적’이 들어간다 한들 타인의 ‘요구’와 적절히 ‘정렬’될 수 있다면. 그 방향을 잡는 것 역시 리더의 역량이겠지 싶다.
한줄평
- 브랜드에게 필요한 건 존재를 위한 목적일까, 홍보에 필요한 목적일까.
인상 깊은 문구
- 앞으로 조직 변화의 중심에는 Digital Transformation을 넘어서는 Purpose Transformation, 즉 ‘목적을 중심에 둔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 중요한 것은 용어의 완결성이 아니라, 조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선택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는가이다.
- 시장의 흐름을 가장 강하게 흔들고 있는 MZ세대는 소비라는 행위를 ‘나의 가치를 선택하는 선언’으로 바라보고 있다.
- 결국 “무엇을 만드느냐”로는 더 이상 차별화가 어려워진 것이다.
- 즉, 브랜드의 본질은 차별화다.
- 이제 브랜드들은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첫 번째는 완전한 저가 경쟁이다. 두 번째는 목적 기반의 차별화다.
- 유니레버의 내부 조사에 따르면, 목적이 명확한 브랜드들(도브, 벤앤제리스 등)의 성장률이 그렇지 않은 브랜드들보다 평균 46% 높았다.
- 119REO의 소방관을 위한 업사이클링 가방은 일반 가방보다 비싸지만, 고객들은 “소방관을 돕는다”는 의미에 기꺼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 단순한 가방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담은 제품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의미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 빙그레라는 브랜드 사명에는 의외로 깊은 역사적 맥락이 담겨 있다. ‘빙그레’는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강조한 ‘민족의 웃음’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도산은 이렇게 말했다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차오?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소.” 여기서 말하는 웃음은 단순한 감정적 표현이 아니다. 슬픔과 혼란 속에서도 서로의 존엄을 지키고 공동체를 지켜내는, 긍정의 힘을 뜻했다. 즉, 빙그레가 이야기하는 웃음은 제품의 즐거움만이 아니라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포함하는 가치다.
- 가장 중요한 구분 기준은 목적을 위해 실제로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다. 진짜 목적을 가진 브랜드들은 때로는 단기적 이익을 포기하면서도 자신들의 가치를 지킨다.
- 이처럼 밴앤제리스의 제품 네이밍은 단순한 말장난을 넘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브랜드의 입장을 유쾌하게 표현하는 하나의 캠페인 도구다.
- 1985년, 이들은 ‘벤앤제리스 재단’을 설립하고, 매년 세전 수익의 7.5% 또는 110만 달러 중 더 큰 금액을 사회 정의와 지역 커뮤니티를 위해 기부하기 시작했다.
- 벤앤제리스는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브랜드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라는 입장이다.
- 2022년 9월, 창립자 이본 쉬나드와 그의 가족은 회사 지분 100%를 환경 보호와 기후변화 드응을 위한 비영리 단체에 기부했다. 그 가치는 약 4조 2천억 원.
- 브랜드가 단순히 ‘가치’를 선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가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반발과 도전에 직면할 때, 이를 지켜낼 수 있는지가 진정한 브랜드의 힘을 결정한다.
- 그는, 불길 속에서 사람을 지키던 폐방화복이 ‘소방관을 위한 기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작은 생각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았고, 그 첫 시도로 방화복을 직접 손으로 뜯고, 세탁하고, 봉제하여 만든 가방과 팔찌를 만들어냈다.
- 119REO는 연간 약 10톤의 방화복을 업사이클하며, 사회적 가치와 환경적 책임을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 그는 바위를 손상시키지 않는 알루미늄 초크를 개발했고, 나중에는 아예 피톤 생산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피톤은 회사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극단적인 선택의 이면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우리가 파괴해서는 안 된다”라는 신념이 있었다.
- 2020년 팬데믹은 모든 기업에게 시험대였다. 어떤 기업은 즉시 직원을 해고했고, 어떤 기업은 끝까지 고용을 유지했다. 어떤 기업은 가격을 올렸고, 어떤 기업은 오히려 무료 서비스를 늘렸다. 위기의 순간, 조직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늘 그 조직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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