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게 된 동기
몇달 전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그저 잘 하고 있다고, 위로받고 싶었다. 누군가 방향성을 제시해 주면 좋겠것만, 내 마음에 드는 조언을 듣기란 불가능했다. 아니, 내 마음의 드는 조언따윈 없다. 내 마음에 드는게 있다는건, 이미 내가 답을 알고 있는 것이니까.
그냥 멋진 사람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내 선택은… 김연아다.
▶ 책 리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피겨의 신은 일본에 천재를 내려주셨고, 한국에는 그냥 직접 내려오셨다.”
자랑스런 우리나라의 보물 김연아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나 또한 김연아 선수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 중 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박지성’ 선수와 결혼을 했으면 했을 정도다. (박지성을 너무도 좋아해서 김연아 선수 정도는 되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소치 올림픽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올림픽 후에도 지금처럼 김연아는 늘 우리에게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든, 못따든 말이다.
소녀 김연아.
1990년 9월 5일생. 김연아는 5살에 스케이트를 신은 뒤 지금까지 20년간 스케이트를 탔다. 그리고 그 후 피겨 여신으로 불리며 세계 신기록을 갈아 치웠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김연아의 전부였다. 늘 바르고 건강한 모습. 많은 자선 활동과 프로로써의 모습에 참 멋진 사람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이 책은 스무살 소녀 김연아의 일기다. 김연아의 어린 모습을 스스로가 담아 내었는데, 문체도 그렇고 문장도 딱 일기다. 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일기라는 것이다.
읽는내내 마치 친한 여동생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속 마음을 적었고, 간간히 욱하는 이야기도 적혀 있다. 책은 전반적으로 참 소녀다운 느낌이다. 조금은 성숙한 소녀랄까?
인간 김연아.
책을 읽기 전 김연아는 세계가 아끼는 자랑스런 우리나라 피겨선수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간의 아픔이 겹쳐보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자랑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하라고 하면 그때처럼 할 수 있을까? 아니, 오늘을 다시 살라고 해도 지나온 날들보다 더 열심히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삶을 살면서 자신있게 김연아처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잠시나마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더 이상 열심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한 시절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멋진 인생일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대학교 4학년 여름을 잠시 떠올렸다. 나는 그 짧았던 여름 동안 내 마지막 학창 시절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 노력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처럼 치열하게 그리고 진실되게 살지 못하고 있다.
늘 그렇게 20년을 살아온 김연아의 내공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김연아도 늘 그만두고 싶어 자신과 싸웠다. 언론에서 TV에서 그랬다고 들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김연아의 문장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마치 그 시절의 김연아가 된 양 나도 아팠다.
완벽하게 짜여져 빠져나올 수 없는 틀에 갇혀 사는 불쌍한 신세인 것만 같았다.
늘 혼자인 기분. 많은 사람들 안에서 홀로 버려진 듯한 그 기분. 수없이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이젠 스스로에게 위안받고 싶지 않은 내 모습. 인간으로써 김연아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 했다.
이 책은 결코 잘 쓰여졌다고 할 수는 없다. 책이라기 보단 그냥 일기장이고,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기에 흥미있을 뿐 그냥 한 소녀의 이야기 일 뿐이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선수로써 자신의 고뇌와 아픔을 공유 할 수 있는 그 용기가 이 책의 가치를 높이는 듯 하다.
내일(2014.2.7) 부터 열리는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후회없는 연기를 기대한다.
▶ 책 속의 좋은 글
– 오늘 이거 안 되면 집에 안 가!
– 지금 하라고 하면 그때처럼 할 수 있을까? 아니, 오늘을 다시 살라고 해도 지나온 날들보다 더 열심히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 무언가를 탓하며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불편하고 험난한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기꺼이 가는 것.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
–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필요하다.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디면서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전지훈련에서 내가 터득한 생존 방법은 ‘식량’ 이었다.
– 완벽하게 짜여져 빠져나올 수 없는 틀에 갇혀 사는 불쌍한 신세인 것만 같았다.
– 왜 하필 저 아이가(아사다 마오)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 데이비드 윌슨의 프로그램은 그 선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 구성되고 완성된다. 그 선수만의 개성과 특징에 따라 음악과 안무가 모두 다르다.
– 친구들은 학교다 학원이다 다들 바쁜데, 나만 멍청히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부러워하던 친구들, 그들도 나름대로 자기 꿈을 갖고 열심히 달리는 중이었다. 그런 친구들에 비해 나만 중도 하한 기분이었다.
– 1위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기쁘고 신나는건 한순간이다. 너무 위로 올라가 버린 게 아닌가 하는 걱정과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 별별 상황들이 다 그려졌다.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항상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자신감에 찬 표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를 정말 자신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다른 선수들에게 불안함 심리 상태를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한편으로는 ‘실수할 수도 있다. 이렇게 잘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줘서 기대치를 낮추고, 내가 조금은 압박을 덜 느끼게 되었으면 싶었다.
– 도무지 연슴에 열중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프로그램 연습 도중에 “야! 연아야, 점프! 점프!” 하고 이름을 부르고 소리를 질러대며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도 했다. 내가 마치 동물원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된 느낌이었다.
– 정신없이 짐을 챙기고 버스에 탔다. 끊임없이 날아오는 문자들. 하지만 확인하고 나니 너무 섭섭했다. 그 많은 문자들 중에 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은메달인데 수고했어’ ‘힘내!’ 라는 말 뿐 ‘축하해’라는 말은 없었다. 내가 일등이 아니라서? 실수를 해서? 아사다 마오 선수한테 져서? 언제부터 내가 일등을 해야만 축하를 받게 됐을까? 나는 이제 일등이 아니면 축하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 건가.
– 체중조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선수생활 빨리 끝내야지’ 하고, 사춘기 시절을 돌이켜보면 ‘이 다음에 코치는 하지 말아야지’ 한다.
Dragon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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