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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모바일 시대가 막 열리던 시기에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해야 할 것도 참 많았다. 사회에 적응해야 했고, 성인으로서 홀로 서기를 꽤나 이른 나이에 시작했다. 힘든 게 많았기 때문에 그게 기회라는 생각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하게 됐다.
몇 년이 흐르고서야 알게 됐다. 내가 열심히 하면 기회가 주어지는 게 당연한 게 아니란 것을. 매년 OS가 업데이트 되고, 모바일 화면 사이즈가 달라지고, 그로 인해 서비스가 먹통이 되는 상황이 많았다. 주니어의 빠릿함이 모든 분야에서 유용하진 않은데, 당시 모바일 시대에는 이게 꽤나 장점이었다. 나는 그게 내가 일을 잘 해서 그런가보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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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해가 흘러 나는 첫 번째 창업을 경험했고, IT 기자를 경험했고, 풀스택 개발을 거쳐 관리자도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노력이 꼭 결과로 나오지 않는다는 걸 수차례 배웠고, 때로는 억울할정도로 풀리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게 다짐했다.
모바일 시대에는 경험이 없어 몰랐고, 비트코인이 500만원이었던 시절 블록체인 취재를 했던 기자였음에도 그게 기회인줄 알아보지 못했다. 코로나 시대에 대면이라는 UX가 모조리 파괴되는 걸 보며 생각했다. 아, 이런 변화가 있을 때마다 큰 기회가 오는구나. 아직도 많은 기회들이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시대에는 우물쭈물하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여러 변화를 지켜봤던 입장에서, 알게 모르게 그 흐름에 올라탔다가 내려와봤던 입장에서. 이번에 온 시대는 어쩌면 내가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그리고 기회를 잡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끔은 정말 태풍에 올라탄 돼지도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제어권을 갖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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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 동안 사업을 만들며 내가 가질 수 있는 특장점은 뭔지 틈틈이 고민해왔다. 그리고 그게 새로운 기회와 정렬되는 것이 없을지 종종 째려보고 있다. 당장 정렬되는 게 없다면, 조금의 노력을 더 해서라도 방향을 틀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새로운 기회 중 하나를 택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좁혔다. 그리고 조금의 노력의 방향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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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달 간 노력의 방향으로 열심히 키를 돌렸다. 새로운 기능을 출시하며, 여기저기 영업을 다니며, 새로운 인연을 만들며, 기존 인연을 다지며. 전보다 무거워진 배의 방향을 바꾸는 건 무겁더라.
할 일이 많았다. 서류도 준비해야 했고, 검색도 참 많이 했다. 여기저기 후기도 많이 찾아봤고, 주변 지인들의 도움도 참 많이 받았다. 생각해보면 창업 초기처럼 정말 신중하게 준비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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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인정하겠지만, AI 시대가 시작됐다. 지금이 모바일 시대의 초기였던 2011년일지, 국내에서 비트코인이 관심을 끌기 시작한 2018년일지, 코로나가 본격 확산된 2020년일지. 정확한 건 시간이 흘러봐야 알겠지만, 그간 내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 문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호들갑 떠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고, 공포 심리를 부추겨 돈을 버는 사람도 언제나 있었다. 나는 그 포지션을 잡으려는 게 아니다.
2011년, 내가 모바일 개발자가 아닌 웹 개발자였다면 나는 여전히 개발자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생각한다. 2018년, 내가 기자가 아닌 개발자였다면 지금 인맥의 대부분이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2020년, 내가 개발자가 아닌 기자였더라면 당시의 여러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창업자가 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다행히 나는 큰 결정을 내렸던 시기마다 운이 따랐다. 그간 경험에 따르면 내년엔 지금까지와는 꽤나 다른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세상을 이루는 여러 측면이 한 곳을 바라보는 시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마치 모바일 시대의 시작인 2011년과 블록체인의 2018년, 코로나의 2020년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알게 모르게 그 안에 들어갔던 과거와 달리, 이를 인지한 상황에서 처음으로 들어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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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은 본격 AI 서비스가 시장에 정착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챗GPT를 비롯해 많은 AI 서비스가 시장에 나왔고, 카카오톡도 챗GPT를 넣었다. 그런데 AI 서비스는 기존의 기회들과는 좀 다를 것 같다.
모바일 시대는 기존에 없던 연결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비즈니스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새로운 기회에 대부분의 영역이 이를 받아들였다.
블록체인 시대는 기득권을 빼앗으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에 방향을 잃어버렸던 것 같다. 블록체인이 미래라며 굉장한 에너지를 쏟다가 좌절했던 사람들을 참 많이 봤다.
코로나 시대는 앞서 두 시대보다 엄청난 불가항력적인 힘을 받았지만, 1년이라는 너무 짧은 시간만에 백신 앞에 끝나버렸던 것 같다.
AI 시대는 모바일 시대처럼 굉장한 기회를 만들어내면서도 미국과 중국의 기술력에 전 세계가 불가항력적인 힘을 받을 것 같다. 마치 코로나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불가항력적인 기회는 굉장히 많은 기득권에게 공격적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 복합적인 시대의 문턱을 작은 조직의 창업자로 맞이하게 됐고, 어떤 선택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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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더 기술적 코어로 들어가는 선택을 했다.
시대의 문턱에서 결정권자들에게는 여러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내 선택은 비즈니스보다는 테크 쪽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는 거다. 이를 위해 전보다 조금은 기술적으로 들어가보려 한다.
국민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대학 인공지능학과로 가게 됐다. 수업이 토요일 전일제로 이뤄져 평일 업무 방해가 최소화 될 거란 것이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특수대학원이 얼마나 기술적으로 깊이를 갖느냐는 의문이 있겠지만, 앞으로 열리는 시대에서는 기술적 포지션과 사업적 포지션 외에는 특수 도메인을 갖지 않는 한 굉장히 애매해지지 않을까 싶다. 둘 중에서는 내 캐릭터에게는 기술적 포지션이 좀 더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너무도 힘겹겠지만, 특수대학원이 갖는 깊이를 보완하기 위해 논문을 정말 열심히 준비해보려 한다. 이미 링크디 서비스로 많은 데이터를 모았다. 이 데이터를 활용해 의미있는 연구를 병행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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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모바일 개발자 커리어, 2016년 첫 번째 창업, 2018년 IT 기자, 2019년 개발자 복귀, 2023년 두 번째 창업처럼. 2026년 대학원 입학은 내게 큰 변화의 선택이 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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