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새로이 알게된 지인이 내 사주를 봐줬다. AI 활용법을 나누다가 내가 종종 사주를 묻는다 하니, GPT는 정확하지 않다며 만세력을 봐줬다. 그러더니 사실 명리학을 좀 공부했다며 내 사주를 봐주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술집, 여러 테이블 사이에서 목이 쉬도록 한참을 외쳐준 덕에 꽤나 흥미로웠다.
2/
내가 재밌게 들었던 포인트 중 하나는 내 전성기가 50대에 온다는 거였다. 아니, 그러면 나는 그때까지 성공을 못 하느냐고 했더니만 이런 답을 줬다. ‘그 전까지는 나만 열심히 했다면, 그때는 하나의 세력이 돼서 주변 사람들도 내 일을 돕는다고’ 당시에도 떠올랐던 여러 감사한 분들이 많았지만, 50대에 그렇다고 하니 내 50대가 꽤나 기대됐다.
3/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우연히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A가 라프디 이야기를 하더라. 알고 있다고 했더니 지겹도록 칭찬을 하더라. A가 참 라프디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 A에 관한 감사함을 떠올리며 잊었다. 그러다 또 다른 지인이 ‘B가 링크디 커넥트 이야기를 하더라. 우리도 입점해보라고 계속 이야기 해서 나도 알고 있다고 했다’ B가 나도 모르는 곳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오랜만에 C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수시간 내내 어떻게 하면 내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까 고민하며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들려줬다. D는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필요할 거 같다며 정보를 물어다주고, E는 그저 내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함께 하겠단다. 나는 이런 상황을 두고 그저 ‘올해 운이 좋다, 감사한 사람이 많다’는 식의 표현을 했는데, 문득 사주를 봐줬던 지인의 멘트가 떠올랐다.
4/
어쩌면 이런 걸 두고 세력이라고 했던 게 아닐까? 세력이라 함은 같은 이해집단으로 꾸려져야 할 터인데, 생각해보면 그들은 종종 내가 잘 돼야 자기도 잘 된다. 혹은 내게 잘 됐으면 좋겠다는 등의 말을 했던 것 같다. 누군가는 같은 업계라서, 누군가는 같은 창업 생태계라서, 누군가는 내가 자신들의 KPI가 돼서, 누군가는 나와 인간적인 관계가 좋아서. 어쨌거나 그들이 내 도약을 바라는 것 자체가 그저 감사하며, 나 역시 그들의 도약을 돕고 싶은 마음이다.
5/
어쩌면 이것도 내게 주어진 무언가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굉장히 똑똑하지도, 굉장히 부자이지도, 굉장히 어리지도, 굉장히 감이 좋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꽤나 오래했는데 처음에는 내 상황에 한숨도 쉬었지만 언젠가부터는 그럼에도 이 환경에서 내가 뚫을 수 있는 송곳은 무엇일까를 반복해서 생각했다. 그 생각의 기반에는 내가 원하는 건 꼭 똑똑해야만, 부자여야만, 어려야만, 감이 좋아야만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6/
나는 내가 갖지 못한 걸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좋다. 똑똑하고, 부자이고, 어리고, 감이 좋은 친구들이 있으면. 그들이 내 친구라면, 내가 굳이 그들이 가진 걸 똑같이 가질 필요가 있나? 친구라면 때론 서로가 가진 걸 나누면 되지 않을까.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계산하며 접근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어떤 것을 채워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 노력을 봐주고, 이 스타일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나와 친구가 돼 주더라.
7/
가끔은 내게 없는 똑똑함을, 부를, 나이를, 감을 가진 친구들이 너무도 부럽다. 심술이 날 정도로 그들의 그것을 갖고 싶다. 이 원초적인 갈증이 어쩌면 그들을 한 번, 두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찰나의 질투를 제외하고는 부러움의 감정을 느끼진 않는다. 어쨌든 그들은 모두 내 친구가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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