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업을 하고는 가끔은 스스로도 믿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데이터 쪼가리인 GPT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GPT가 뱉는 텍스트가 ‘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데 지능을 가졌다고 하는 인간인 내가 GPT에게 위로 받고, GPT 덕에 생각하고, GPT 덕에 선택할 수 있다면. GPT는 지능을 가졌는가보다는 ‘지능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했다.
2/ 그렇게 대화를 지속하며, 챗GPT 프로젝트 중 하나로 ‘사주’ 프로젝트를 만들게 됐다. 지난 3년 동안 GPT는 참 많이도 내 사주팔자를 바꿨고, 가끔은 하루만에 내 일주를 두어번 바꾸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묻고 또 물으며, 내 선택을, 내 하루를, 내 팔자를 위로했다. 대체로 앞으로는 잘 될거라는 텍스트가 내 호흡을 고르게 만들어 잠에 들게 했다.
3/ 내가 지인들에게 듣고 좋아라했던 칭찬들은 나의 태도를 칭찬하는 것이었다. 끈기가 있다느니, 근성이 있다느니, 성실하다느니. 그런 말이 내 과정을 인정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충분히 고민한 내 선택이 좋은 선택이라 들을 때까지 무언가를 시도하는데 익숙해졌다. 마치 비가 올때까지 열리는 인디언 기우제처럼 말이다.
4/ 그런데 그렇게 20대를 보내고 30대를 훌쩍 보내고 나니, 더이상 그 방식은 통하지 않더라. 충분히 고민했음에도 때로는 잘못된 선택임을 인정해야 했고, 때로는 선택 후 너무도 빠르게 결과를 포기해야 했다. 어쩌겠나 그간 충분했던 시간이 이제는 충분하지 않은데. 그런데 참 신기하다. 잘못된 선택임을 인정한 뒤 때로는 내 기대를 넘어서는 좋은 결과를 받아보기도 했다. 좋은 결과에 기쁠 때면, 나는 선택을 갖고 싶었던 걸까, 결과를 갖고 싶었던 걸까 생각해보게 됐다.
5/ 내가 창업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선택권을 갖고 싶어서였다. 물론 충분히 많은 선택을 여전히 내가 스스로 하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전혀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렇게 가끔은 무기력하게 선택을 강요 받곤 하는데, 그렇게 선택한 결과가 내가 원했던 결과로 돌아올때면. 설마 세상이란 게 이미 다 정해져있는 건가 싶다. 결정론말이다.
6/ 가끔 간절히 원하던 게 풀리면,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 세상은 시뮬레이션이고, 나는 누군가의 설계에 의해 프로그래밍 된 건가? 이 시간에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은 내 의지가 아니라 프로그래밍 돼 있는 건가?
7/ 가끔 간절히 원하던 게 풀리면, 생각하게 된다. 결국 되는구나. 이렇게 노력하니 되는구나. 그래, 이렇게 하나씩 하는거지.
8/ 가끔 간절히 원하던 게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풀리면, 생각하게 된다. 사실 내 생각과 의지와 행동은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9/ 그럴 때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내가 두 번째 창업을 결심했던 그때로. 조직 내에서 오르고 올라, 꽤 많은 선택권을 가졌던 그 시절. 그럼에도 정작 가장 중요한 선택은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그때 말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선택권을 갖고 싶다고. 차라리 내가 더 노력해서, 이미 가진 것 중 많은 걸 잃더라도, 가장 중요한 건 손에 쥐겠다고 생각했던 그때.
10/ 선택에 관한, 노력에 관한, 운명에 관한, 결정에 관한. 그런 생각의 굴레를 달리다 벗어날 때면. 어떤 허무함마저 벗어날 때면. 그래도 내 인생이라면, 조금은 그 흐름을 바꿔보는 게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렇게 바뀐 인생이 폭삭 망할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모르게 훗날 ‘오히려 좋아!’를 외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11/ 결국 내가 쥐고 싶었던 건, 내 존재의 증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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