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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디 제품이 나오고 2년이 흘렀다. 그간 제품이 레거시화 됐다는 엔지니어 관점에서 생각을 이어왔는데, 자연스럽게 엔지니어스러운 생각을 하는 걸 두고 누군가는 대표자로서 그러면 안 된다며 나무랐다. 대표가 엔지니어에 머물면 성장을 할 수 없다나. 억울했다. 더 잘해보려, 내가 더 잘하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건데. 그러지 말라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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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많은 사람을 만나며 극단적인 엔지니어 성향의 대표자도 봤고, 그들의 한계점도 느꼈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내게서 이런 극단적인 엔지니어의 모습을 봤다면,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도 우려가 됐다. 10년을 엔지니어로 살았는데, 그렇게 보이는 게 나름 뿌듯하면서도.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면, 어찌해야 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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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서야 영업 측면에서 생각하게 됐다. 생각해보니 내가 영업을 한지 이제 2년 정도 된 거다. 대표가 사수가 어딨나. 그저 부딪치고 깨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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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는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코딩 한답시고 아무 생각 없이 IDE만 켜는 개발자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요즘에야 챗GPT에게 물어본다지만, 정보를 수집해 깊이 고민하며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엔지니어의 멋진 모습 중 하나라 하겠다. 그야말로 100%, 200% 뇌를 풀로 돌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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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영업은 전혀 다른 것 같다. 쉽게 말하면 100%를 하면 안 된다. 정확히는 엔지니어 시절 100%를 하면 안 된다. 나는 엔지니어 시절에도 생각이 많아 혼이 나곤 했다. 너무 생각이 많다고. 그런데 영업도 그렇게 하고 있었으니 액션이 너무 적었던 것 같다. 내가 100%라 하는 건, 메일 하나를 보내더라도 수차례 읽고, 번역기까지 돌려가며 정성을 꾹꾹 눌러 담았다는 거다. 그렇게 내 정성이 전달되길 바랬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더라. 영업은 우선 접점 자체를 늘려야 하는 것 같다. 당연히 고민하고 행동해야겠지만, 마치 아키텍처를 설계하듯 고민하면 안 되는 것 같다. 영업은 엔지니어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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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80이 되면 질렀다. 이런 구조가 가능할 것 같은데, 같이 만들어보자고 했다. 엔지니어로서는 실격인 말일 수 있다. 다 고민해보지도 않고 지르는 게 얼마나 무책임한가? 그런데 영업은 내가 아무리 100을 생각해도 상대가 반응하지 않으면 0이 돼 버린다. 혼자서 100을 만들 수도 있는 엔지니어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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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이란 숫자를 맞추기까지 시행착오가 있었다. 때로는 10정도만 생각하고 던져서 무시당하기도 했고, 100, 150을 가지고 갔지만 0이 돼 버린게 수차례. 100을 만들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다시 시도해야 하는 내가 지쳐버린다는 거였다. 영업에서는 성공의 주체가 오로지 내게 있지 않은데, 내 영역에서 아무리 고민한들 원하는 결과를 받아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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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엔지니어링과 영업 사이 비슷한 점도 있는 것 같다. 아무런 형체도 보이지 않던 것이 100%에 다가갈 수록 급격하게 그려진다. 모듈화 됐던 조각이 하나 둘 모이며, 그제서야 ‘아! 저걸 만들고 있었구나!’라고 말한다. 상상했던 여러 가지가 하나씩 이어지며, 영업자로서도 조금은 레벨업이 됐을까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