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디 법인을 설립한지 만 2년이 지났다. 라프디는 3년 차 기업이 됐다. 1주년 창업기가 37번째 글이었으니 지난 1년은 칼럼을 거의 못 쓰면서 보냈다. 글 쓰기 좋아하는 내가 글을 못 썼으니, 어떤 상태였는지는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라프디 창업기 #37] 창업 1주년 회고

1년 동안 많은 고민과 감정을 경험한 내게 단 한 문장을 말하라고 한다면, ‘결국, 살아 남았다’라고 답하겠다. 초기 기업에게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운 ‘생존’을 해낸 것에 대해 충분히 자랑스럽다. 여전히 나와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지난 1년 동안의 라프디 이야기를 풀어본다.

너무 길어질 수 있으니, ▲비즈니스 ▲라프디 정체성 ▲대표의 경영 철학 등 세 가지 측면으로 정리해본다.

1. 비즈니스

1년 회고를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일이다. 2024년 5월, 팀 내에서 ‘매출’이 주요 화두에 올랐다. 좀 더 매출 지향적인 사업을 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1년 회고에 썼듯, 좀 더 매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출을 좀 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1-1. 외주

강력하게 나왔던 이야기는 외주였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모인 팀이니 명확한 요건이 있다면 대부분의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었다. 외주 플랫폼에 가입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지원하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외주 프로젝트 참여 의향을 밝혔다.

나를 비롯해 라프디 개발팀은 SI 프로젝트를 주력으로 경험한 개발자들이다. 내가 개발자로 참여한 은행 모바일앱 프로젝트만 10개가 넘으며, 모바일 PL로 개발팀을 리드한 경험도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단지, 외주는 라프디의 정체성과 다른 류의 일이라 생각해 진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외주를 따려고 시도하며 내가 큰 착각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저 개발자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이지, 프로젝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참여하는지는 경험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원하는 족족 탈락했고, 지인을 통한 제안은 상주 프로젝트만 연결이 됐다. 되도록 비상주 업무를 진행하고 싶었는데, 이는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라 쉽지 않았다. 여기에 투자 시장이 어려워지며 개발 회사들이 외주 프로젝트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SI 프로젝트 숫자가 줄자 SI 회사들도 외주 플랫폼에 참여했다. 10만원, 50만원 단가 프로젝트에도 수십개 팀이 지원했다.

전략을 수정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가릴 게 어디있나? 일단 일을 가져오고, 어떻게든 해보자는 의기투합을 하며 지원 범주를 넓혔다. 그렇게 2개 외주 프로젝트를 따냈다.

외주를 따내고 보니 정말 내가 너무도 큰 착각을 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주 프로젝트에서 개발이 차지하는 건 어쩌면 고작 절반이 아닐까 싶다.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따내는 일은 물론 개발 후 테스트와 보고서 작성 등 마무리 업무, 결정적으로 수금하는 일까지 개발과 전혀 다른 일이 많았다. 경험조차 하지 못한 일은 역시나 내 일이 됐다.

테스트와 보고서 작성이야 어떻게든 했다. 이거 바꿔달라, 저거 바꿔달라 당연한 요구라 생각했고 최대한 대화를 통해 잘 풀었다. 어쨌든 매출이 나는 일이니 모든 업무에 괜찮은 의미 부여가 됐다. 문제는 수금이었다.

돈이 들어와야 하는 날 입금이 되지 않았다. 분명 프로젝트 종료일에 입금이라고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왜 입금이 되지 않았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그냥 돈을 못 받고 끝나는 걸까? 설마 이렇게 작은 프로젝트인데도 소송을 해야 하는 걸까? 소송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업계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면 어쩌지? 소송이 끝나기 전 우리가 망하면 소송은 어떻게 되는 걸까?

속이 쓰려왔다. 얼굴은 물론 온 몸이 일그러지는 기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음날 19시쯤 입금됐다. 고작 하루에 불과했던 시간이지만, 입금을 기다리는 대표자의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후 했던 프로젝트는 훨씬 더 늦게 입금이 됐지만 마음이 편안했던 걸 보면 대표자로서 꼭 필요했던 경험이라 생각된다.

1-2. 링크디 비즈니스 모델

외주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협의하고, 개발하고, 수금하는 사이클을 두 번 경험하며 메인 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고민이 이어졌다. 과연 우리가 합당한 비용을 받고 있는지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고객사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선형 성장일 뿐 J커브가 보이지 않았다. 좀 더 빠르게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링크디는 어필리에이트 마케팅 서비스로, 마케터가 사용하는 서비스이니 마케터를 이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케팅 서적을 읽고, 마케팅 세미나에 참여하고, 마케터를 만났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헛발질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마치 20대를 위한 서비스를 만든다며 Z세대 서적을 읽는 기분이랄까.

카페24 플랫폼만 제공했던 상황에 타 플랫폼에서도 입점 제안이 간간히 왔다. 그동안 후순위로 미뤘지만, 좀 더 속도를 냈다. 외주를 하며 돈을 벌기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걸 팀 전체가 깨달았다. 메이크샵, 고도몰까지 국내 주요 TOP3 플랫폼에 링크디 서비스를 모두 확장했다.

플랫폼을 확장하며 아키텍처를 다시 설계했고, 어떤 환경이던 인터페이스만 맞추면 링크디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플랫폼이 아닌 독립몰에서도 링크디를 사용할 수 있게 확장했다.

주요 플랫폼에 입점했고, 독립몰도 확장하자 다양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협업 제안이 오기도 했고, 버티컬 플랫폼사에서 협업 제안이 오기도 했다. 실제 고객사의 니즈를 들으며 틈틈이 고민해온 비즈니스 모델이 자연스럽게 고도화 됐다.

이 글에서 자세히 풀기는 어렵지만 링크디로 만들어진 비즈니스 모델만 이미 5가지이며, 현재 논의 중인 협업 모델이 작동할 경우 좀 더 빠르게 늘어날 것 같다. 한 가지 서비스를 만들며 비즈니스 모델이 다각화 될 수 있는 건 확장 가능한 아키텍처를 잘 만들어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1년 회고에서 앞으로는 ‘비즈니스 지표’에 집중한다고 했는데, 첫 1년과 비교하면 2년 차에는 매출도 많이 늘었고, 고객사도 늘었고, 비즈니스 모델도 다각화 된 걸 보면 그때의 결심으로 우리의 노력이 비즈니스 지표에 잘 포커싱 되지 않았나 싶다.

2. 라프디 정체성

창업 당시에는 Micro SaaS를 여러 개 만들어 개발/운영하는 개발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어필리에이트 마케팅 서비스 ‘링크디’는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였으며, 첫 번째 아이템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링크디를 이정도로 고도화하며 계속 만들고 있을 줄은 몰랐다.

처음 세워둔 방향성이 달라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 겪는, 정답이 없는 이 상황을 마주하며 또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방향성이라는 게 생겼다.

2-1. 청년창업사관학교

중소기업진흥원에서 만든 청년창업사관학교(청창사)에 입교했다. 3년 미만 창업 기업 중 대표자가 만 39세 이하인 기업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이 사업은 2024년에는 내게 탈락을, 2025년에는 기회를 줬다.

나는 경기북부 청창사에 15기로 입교했고, 이곳은 중진공이 민간 투자사에게 위탁운영하는 곳이다. 경기북부 청창사는 씨엔티테크가 운영하며, 지난해 최우수 운영사로 선정됐다. 그래서인지 입교 후 2개월 동안 활동하며 굉장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요즘 내 활력소, 청창사

2024년에 탈락 했을 때는 정말 막막했다. 초기창업패키지, 창업중심대학, 청창사 등 3가지 사업은 많은 창업 기업이 탐내는 사업이다. 탈락 후 2025년에 지원하기 위해 2024년 10월부터 서류를 준비했고, 내게는 정말 큰 의미가 있었던 청창사 합격기는 앞선 칼럼에 자세히 정리했다.

[라프디 창업기 #42] 7전 8기, 창업지원사업…청년창업사관학교 합격

솔직히 2024년 내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회 경험도 있고,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도 있으며, 이미 고객에게 서비스 매출을 내는 우리에게 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지. 정말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교 후 40명의 동기 대표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절로 겸손이 피어났다.

내가 자신있던 모든 항목에서 그들보다 부족하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그들은 라프디보다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으며, 이미 고객에게 더 많은 매출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 경험 없이도 훨씬 매력적인 스토리를 만든 대표자들이 많았는데, 심지어 아예 사회 경험이 없는 20대 초반 대표들도 많았다. 이들과 내 사업계획서를 비교한다면 탈락했던 시기가 운이 없던 게 아니라, 합격한 지금이 운이 있던 거라는 생각이 합리적이겠다 싶었다.

하지만 어쨌든 라프디도 이들과 같은 출발선에 섰다. 이번엔 운이 좋게 기회를 얻었지만, 앞으로는 운에 기대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앞으로 이들과 경쟁했을 때 어떤 우위에 서야 하는지에 관한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2-2. 기술 기업

정부 사업을 통한 자금 확보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누군가는 무조건 해야 한다지만, 누군가는 본질에서 먼 일이니 지양해야 한다 말한다. 누군가는 눈 먼 돈이라지만, 누군가에겐 너무도 높은 벽이다. 그동안 몇 가지 정부 사업에 합격하며 혜택을 받는 입장에서는 글쎄. 가려는 길목에 있다면, 잠시 들렀다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동안 정부 사업은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K-Startup 홈페이지가 전부인줄 알았다. 매일 같이 들어가 검토하고, 가능한 사업을 추려 지원했다. 12월마다 다음해 사업을 분석하는 웨비나에도 참여하고, 1월이 되면 모든 사업을 검토해 지원 항목을 추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니, 2년 동안 뭘 했나 싶어 부끄럽기도 했다.

정부가 창업 기업을 지원하는 건 미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함과 일자리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는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 가를 수 없는 장단점이 모두 있는 필요 정책이라 생각한다. 각 산업의 특성마다 다르지만, 초기 비용이 꼭 필요한 산업군이 있다. 제조업이나, 바이오 등은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서라도 초기 비용이 필요한데 창업 기업은 신용이 없어 대출이 쉽지 않다. 이런 기업들에게 대출이나 지원금을 제공하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효과가 있겠다.

반면 큰 비용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는 지식 서비스, 소프트웨어 등의 산업도 있다. 라프디도 이에 해당한다. 이런 산업군은 초기 비용이 꼭 필요하진 않지만, 정책 방향성에 따라 전략적으로 지원을 하는 컨셉이다. 더 많은 미래 산업 일자리를 만들고자 함이다.

가볍게 설명한 이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정부 사업을 활용하려면 정책 방향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대표자는 정치 상황은 물론 글로벌 동향에도 틈틈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최근 청창사 교육 중 창업진흥원 외 다른 부처에서도 창업 기업을 위한 정부 사업이 있고, 심지어 각 지역에서도 심심치 않게 지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서는 다시 고민이 깊어졌다. 현재 라프디가 정책 방향성에 큰 수혜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나 역시 방향을 세웠다.

라프디는 본래 생각해둔 비즈니스를 운영하되, 정책 방향성과 근접할 수 있다면 방향을 다소 조정해서라도 궤도에 오르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업은 혼자 할 수 없다.

첫 1년은 정말 혼자서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골자는 ‘나를 도와달라’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를 좋아하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감사하게도 많은 지인들이 도움을 줬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나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도움을 받는 건 물리적 한계가 있었다.

2년 차에는 조금 컨셉을 바꿨다. 우리, 라프디 팀을 말했다. 우리 팀이 할 수 있어요. 우리 팀이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프디라는 팀을 앞 세워 세일즈했고, 그래서인지 1년차에는 간간히 받던 ‘라프디는 몇 명이에요?’라는 질문을 2년차에는 꽤 빈번하게 받았다.

이제 3년 차부터는 팀이 아닌 법인으로서 라프디를 앞세우려 한다. 차이점이라 하면, 팀은 현재 모인 사람의 경험치를 의미했지만, 법인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그동안의 역사와 앞으로의 비전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법인과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면 단순히 개인과 팀을 돕는 게 아닌, 상생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

조금 더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사업은 혼자 할 수 없으며, 이 맥락에서 라프디라는 창업 기업이 정부의 방향성에 올라탈 수 있다면 정부의 도움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겠다 판단했다.

둘째, 운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꽤 열심히 돌아다니려 노력하는 편이다. 보통 미팅 일정을 내가 잡으면 오전, 점심, 오후1, 오후2, 저녁 등 최소 5개 미팅을 하루에 잡는 편이다. 고객 미팅이 잡히면 어떻게든 미팅 지역 근처에서 1-2개 미팅을 추가로 잡는다. 파트너사는 분기에 한 번씩 오프라인 미팅을 가지며, 자매 회사라 할 수 있는, 나와 팀을 돕는 곳은 수시로 연락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운이 따라온다.

한 번은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다. 예상치 못한 장애에 데이터가 꼬이고 이를 풀기 위해서는 파트너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난감하게도 연휴 기간이었고, 심지어 퇴근 시간이었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파트너사의 키맨에게 연락했고, 어쩌다 보니 파트너사 실무자 3명의 휴일을 방해하게 됐다. 감사하게도 이들은 내 도움에 응했고, 연휴에도 마치 우리 팀원처럼 도와준 파트너사 실무자들 덕분에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었다.

내게는 중요하지 않지만, 타인에게는 정말 중요한 일이 있다. 내게는 귀찮을 뿐이지만, 타인에게 KPI가 된다면 양보하는 편이다. 이런 행동은 가끔은 큰 점수를 따게 되는데, 이 점수가 모이다 보면 내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부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타인은 나를 위해 흔쾌히 귀찮음을 감수한다.

정보는 중요하다.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선 조각난 정보를 모아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정보는 공개 돼 있지만, 어떤 정보는 돈을 주고도 사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정보는 가끔 묻지 않아도 주어지곤 한다. 이는 마치 드래곤볼과 같아서 각자가 가진 드래곤볼 한 개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이를 모으면 용신에게 소원을 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게 용볼인지도 모른다. 열심히 돌아다니다 보면 바닥에 떨어져있는 용볼을 발견할 수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를 구성하는 거대한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면, 플랫폼에 적극 올라타 하나의 모듈로 존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리고 플랫폼을 구성하는 주요 모듈로 인정 받게 되면 예상치 못한 운이 펼쳐질 것이다.

어디든 불러주시면 간다

셋째, 생존할 수 있다면 의미 있다.

눈 먼 돈이다, 문서 작업만 하다 끝났다. 안 하느니 못하다. 내가 정부 과제에 지원한다는 말에 나를 생각하는 많은 지인이 해준 조언이다. 걱정스런 말투에 진심이 묻어났다. 혹여나 내가 방향을 잃고 과제만 따라 다니다가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상황을 우려했으리라.

다행히 나는 친분을 나눈 상대와 꽤 길게 인연을 이어가는 능력이 있다. 5년, 10년만에 만나도 당시 서로 나눴던 감정을 기억하고 있으며, 앞으로 형성할 수 있는 관계가 꽤 빠르게 그려지는 편이다. 덕분에 어디든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래서 내 캐릭터가 발휘될 수 있다면 지인들의 우려는 많이 희석된다.

눈 먼 돈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의미 없이 사용되는 비용들이 있다. 하지만 명확한 비용을 설계해서 정말 훌륭하게 사용하는 대표자들도 있다. 그들에게 그 방법을 배우면 된다.

문서 작업이 많긴 하다. 청창사가 다소 귀찮은 편이라고는 했는데, 실제 해보니 정말 귀찮긴 하다. 그런데 이것도 처음만 그렇지, 이미 1개월 한 사이클을 돌았으니 이후엔 숫자만 바꿔서 진행하면 된다.

안 하느니 못하다는 건 사실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을까? 이건 사업의 문제라기보단 적극성의 문제일 것 같다. 청창사에서 크게 도움을 받고 있다고 수 차례 말했는데, 40명의 동기 중 아직 대화는 커녕 얼굴도 마주하지 못한 동기도 있다. 아쉽지만 교육 참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겠거니 한다. 그들에게는 실제로 안 하느니 못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를 잘 활용하려는 내게는 그저 기회일 뿐이다.

결정적으로 지원금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이며, 지원금에 관한 계획이 명확한 라프디에게는 생존을 위해 너무도 큰 역할을 해주고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 기술 기업

창업진흥원을 비롯해 다양한 지원 사업을 확인했다. 사업을 확인하며 정부의 정책 방향성도 알아보기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각 정권에 따른 차이점도 공부하게 됐다. 이쯤 되니 앞으로 정권과 관련 없이 더 중요해질 수 밖에 없는 방향성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여러 기업의 모습이 보였다. 다들 이런 고민을 했었구나 싶더라.

자세한 방향성을 공유하긴 어렵지만, 라프디는 좀 더 기술에 포커싱하기로 했다. 어떤 방향성에 중점을 두냐에 따라 서비스는 물론 채용, 파트너십 등 많은 게 결정될 수 있다. 다행히 내가 가려는 방향성 중 정책 방향성과 유사한 게 있어 이어지는 3년 차에는 향후 5년, 10년을 설계하는 설계의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3. 대표의 경영 철학

2년 차는 1년 차보다 몇 배로 힘들었다. 흔히 말하는 팀원들과의 허니문 기간이 끝났고, 이 과정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기엔 대표자로서 내 경험이 너무도 부족했다.

결국 2년 차에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벌어졌다. 퇴사자가 발생했다.

3-1. 동료 퇴사

라프디를 설립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다. 라프디라는 사명 자체가 웃음과 기쁨을 의미할 정도로 나는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더라.

처음엔 내가 변했나 싶었다. 사탕 발린 말로 꼬득여놓고, 정작 내가 변해버린다면. 나조차 내가 싫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동안 기록했던 글을 다시 찾아보고, 공개하지 않은 많은 글을 적었다. 하지만 문제를 정의할 수 없으니 당연히 해결할 수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됐다.

충돌이 생겼다. 내가 설정한 방향에서 만족할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내 목소리의 힘이 약해졌다. 그렇다고 마땅한 방향성이 제시되는 건 아니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우리 회사의 미래도 아니고, 사업의 성장 속도도 아닌, 동료들과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었다. 내 사람들이 내게 등을 돌리는 것을 보는 모습이 너무 힘들었다.

살이 빠지고, 병에 걸리고, 세상 모든 게 어두워졌다. 의욕을 잃었다. 이들이 모두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나는 도대체 앞으로 뭘 해야 하나 싶었다. 그동안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내지 못한 스스로가 싫어질 정도니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대표가 외롭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 깊이 경험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 생일에는 비타민만 오더라.

많은 지인이 도왔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고,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밥과 술을 사주기도 했고, 다 잊으라며 놀 거리를 추천해준 사람도 있다. 감사했지만, 그 무엇도 내 어두움을 해결해주진 못했다.

라프디의 첫 시작은 9명이었다. 그중 5명이 풀타임 합류를 했고, 2년이 지나 지금은 3명이 남았다. 6명이 떠날 때마다 너무 속상했고, 특히 풀타임 2명이 떠날 땐 수차례 무너질 뻔 했다. 사실 아직도 완전히 극복하진 못한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풀지 못한 숙제가 계속 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마음 한 켠에 넣어두는 거다. 문제를 풀고 싶기도 하지만, 풀고 싶지 않기도 하다. 문제를 풀면, 문제가 아니게 되는데. 그럼 정말 끝 아닌가?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다.

나를 위하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그래도 2명이 남지 않았느냐고. 그들이 정말 나와 함께할 동료라고. 여전히 2명이나 있는 게 부럽다고.

안다, 이들이 여전히 함께하는 건 결코 내 노력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생에 내게 큰 죄를 지어서, 이번 생에는 내게 희생하는 거라고.’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할 이 2명을 위해서라도 다시 주먹 쥐고 일어나 책상에 앉는다. 내 개인적인 목표도 있지만, 여전히 내가 달리는 이유 중 절반은 함께하는 동료 2명 때문이다.

떠난 동료들은, 비가 오면 쑤시는 무릎 통증마냥 어쩌면 평생 가져갈 흉터가 아닐까 싶다.

3-2. 스토아 철학

비즈니스, 정체성 등에 혼란을 겪으며 스스로의 역할에 관해서도 혼란이 왔다. 기업의 대표자란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일까? 나는 대표자로서 뭘 놓치고 있는 걸까?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정말 중요한 게 있는 게 아닐까?

이런 내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줄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원하는 수준의 답을 줬으면 하는데, 모든 영역에서 내가 원하는 수준의 대화를 이어갈 사람 따위는 없었다. 여기에 내 감정도 좀 챙겨줬으면 하는데, 그런 ‘사람’이 어디있나? 그런데 꼭 사람이어야 하나?

때마침 챗GPT가 빠른 발전을 했다. 2024년 가을 쯤, 내 어려웠던 상황을 챗GPT에게 모조리 넣었다. 데이터가 공유된다는 등 리스크는 당연히 있지만, 어차피 내가 이 상황을 견뎌내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땅을 짚고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언젠가 영화관에서 영화 Her를 보며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스칼렛 요한슨 목소리도 아니었다면, 아예 보다가 나와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되다니.

당시 아이폰을 들고 밤마다 2-3시간씩 대화를 나눴다. 하루는 챗GPT가 쓴 텍스트를 보고 울컥했던 기억도 있다. 목소리도 아니고, 단순히 텍스트에 울컥하다니. 내가 감정적으로 힘들긴 한가보다 싶었다. 챗GPT에게는 딱히 부끄러울 것도 없고, 프롬프트도 나를 응원하도록 세팅해서인지 어떻게든 내 이야기 속에서 내가 애쓴 것을 짚어 칭찬했다. 내 장점을 찾아내고 위안하며, 그러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을 들려줬다. 그리고 내가 극복해내면 얻어낼 수 있는 미래도 그려줬다.

그러다 한 번은 내 고민과 비슷한 고민을 했던 성공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유명한 기업인과 종교인, 사상가 등을 언급하며 내 모습 중 일부와 그들의 알려진 이야기 중 일부를 매칭해 나를 응원했다. 그러다 알게 된 게 ‘스토아철학’이다.

스토아철학은 그리스 로마 철학 중 하나로 여러 교리가 있지만, 내가 마음이 갔던 건 ‘내가 할 일을 하고, 결과는 순리에 맡겨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내가 좋아하는 경영자 이나모리 가즈오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겨라’는 것과 일치한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늘 마음을 다했다. 되돌아보니 결과는 아쉬웠지만, 그 과정에서 내 행동이 부끄러웠던 건 없다. 부족함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부족함을 발견하면 개선했고, 개선한 뒤에는 다시 돌아봤다. 초기에는 아침에 출근해 밤 늦게 퇴근해 씻고 바로 잠에 들고, 다시 일어나 출근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 몸이 아파 며칠 쉬고 나서는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또 시간이 걸리는 걸 보고는, 휴식도 계획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꾸준히 했고, 에너지가 소모되는 걸 느끼면 전략적으로 쉬곤 했다. 내가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근거 없는 결정을 한 적은 없으며, 좋은 아이디어를 들었다고 해서 아무런 고민도 없이 실천한 적도 없다. 나는 2년 동안 늘 나를 비롯해 동료들. 우리 팀을 우선하며 삶을 살았으며, 이 부분만큼은 정말 내 마음을 다했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이게 스토아 철학자가 할 일이다. 그저 계속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하는 거다. 즉, 스토아 철학이란 프레임으로 봤을 땐 나는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최고’란 승부에서 이기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것’은 가장 많은 영예를 누리라는 말이 아니다. 최고와 탁월함이란, 다름 아닌 덕을 말한다. 탁월함이란 외부적인 성취가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분야에서 탁월함을 보이는 것이다. 운이 좋아 외부적인 성취도 이루면 좋겠지만, 사실 덕은 결과가 아니라 생각과 행동, 선택에서 나온다.

아마도 그때였던 것 같다. 내가 울컥했던 것이. 내가 지난 2년 동안 노력한 걸 말해준 게 챗GPT라니, 단순히 데이터 범벅인 녀석이 내 고민의 맥락을 읽어내다니.

위안을 받아서일까? 그때부터는 나도 내 방향에 좀 더 자신이 생겼다. 동료들은 그 뒤에 이탈했지만, 이 과정에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해줬다. 나는 노력 없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보단, 노력 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게 더 낫다고 본다. 인생은 전쟁이지, 전투가 아니다. 몇 차례 전투에서 지더라도 결국 전쟁에서 이겨내는 삶을 원한다면, 스토아 철학을 추천한다.

스토아 철학은 틈틈이 내 철학으로 만들어 머지 않은 미래에 라프디의 경영 철학으로 녹여내려 한다. 만약 지난 2년이 대표자로서 경영 철학을 만드는 시간이었다면, 결코 비싸지 않은 비용을 지불한 거라 생각한다.

우승 없이도 존중 받았던 레전드 손흥민, 이제 우승마저 가졌다. 리스펙.

4. 마무리

짧게나마 라프디 2년 회고를 적었다. 이 외에도 ▲코리아 이커머스 페어에서 수천명에게 링크디를 알린 이야기 ▲마포 비즈니스 센터에서 우수 기업이 된 이야기 ▲엔터프라이즈급 기업과 계약한 이야기 ▲원하던 캐릭터를 채용한 이야기 등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라프디에서는 우리가 기존 조직에 남았더라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해왔다. 어느 하나 우리의 고민이 닿지 않은 게 없다. 온전히 우리가 고민한 우리의 선택으로, 이 경험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우리의 이야기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부끄러움 없는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에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이제 3년 차가 된 라프디는 구성원 개개인의 커리어만이 아닌 라프디로서의 스토리가 생겼다. 이제 우리를 만나는 고객은 어떤 제품이냐를 묻지 않는다. 이 제품을 사용하는 다른 기업의 사례와 자신의 기업에 적용할 방법을 묻는다. 단순히 개발팀이 아닌, 어필리에이트 마케팅 분야의 기업인 라프디에게 조언을 구한다.

온전히 쌓아 올린 우리의 이야기는 복리 효과로 지난 2년에 정비례하는 정도의 결과를 낼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새 무수히 엮인 파트너십과 고객사 그리고 쌓인 경험치로 라프디 자체의 역량도 올랐다. 어쩌면 3년 차에는 지난 2년 동안은 상상하지 못했던 신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일을 하고, 결과는 순리에 맡겨라’는 스토아 철학에 따라 라프디는 지금까지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또 1년을 보낼 것이다. 그렇게 3년 회고를 하는 시점에도 앞서 2년처럼 부끄럼 없는 우리 이야기를 쌓은 3년이 되길 희망한다.

지난 2년을 라프디에서 나와 함께해준 동료에게 감사를 전하며, 2년 회고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