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를 한편으로는 흥미롭게 읽었다는 것을 밝힌다. 저자가 말하는 ‘가짜’에 관해 나 역시 경험 바 있으며 보다 내 삶을 살기 위해 도전하는 중이다. 때문에 저자의 주장에 관해 일부분 동의한다.

다만 굉장히 편향되다 못해 이념과 사상을 ‘노동’이라는 주제 뒤에서 풀어낸 방법에 관해서는 심히 부정적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13장과 14장에 압축 돼 있는 것 같다. 이 생각을 풀어내기 위해 앞서 많은 자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느껴진다.

이미 답을 정해두고 필요한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정리한 것과 자신의 이득을 위해 ‘가짜 노동’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결국 ‘너희는 잘못 하고 있어’라는 이 메시지를 읽는 입장에서 그러는 저자 스스로는 무엇을 했는지 심히 의문이다. 이 책으로써 이득을 보고 있는 거 아닌가? 부와 명성. 그런 것들 말이다.

불편함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초반부에는 다소 딱딱한 주제 탓에 읽기가 꺼려졌으나 본격 책을 읽기 시작한 후로부터는 저자의 궤변에 눈쌀이 찌푸려졌다.

  • 노동시간의 상당량은 모든 게 합법적인지, 혹시 간과한 허점은 없는지 확인하는 데 바쳐진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특허를 내는 데 기력이 소모된다. 인수 합병은 말할 것도 없다. 수 많은 인력이 다양한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선제적 방어를 준비하느라 수년을 소모한다. 치명적 세부 사항을 놓친 이가 내가 되어서는 안 되기에 수천 시간을 들여 오류와 간과를 검사하고 이중 삼중 확인한다. 실제로 오류와 간과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모두가 그걸 막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합리적 이유가 된다.

저자의 논리로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준비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건데, 이런 식이면 횡단보도 앞에서 빨간불에는 멈추고 파란불이 되기 까지 기다리는 것 조차 불필요하다는 것과 같다. 어차피 차도 안 오는데 빨간불이 뭔 소용인가? 그냥 가면 되지. 사고만 안 나면 되는 거 아닌가?

  • 실질적 방식으로는 사람들의 업무 성과를 측정하기가 극히 어렵다는 겁니다. 인사,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홍보팀뿐만이 아니라 판매팀까지도요. 고객 하나를 새로 얻는 데 100명의 직원이 필요하다고 합시다. 그중 누구 공이 제일 클까요? 아무도 자격이 없을 수 있어요. 어쩌면 경쟁이 심하지 않아서 그 회사의 상품이 1위가 되었는지도 모르죠. 핵심은 누가 회사에 부가가치를 가져왔는지 밝히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업무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지만 측정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자가 어려운 거다. 모든 업무를 동일한 잣대에서 평가할 수 없고, 감정적 이유나 정치적 이유로 관리자가 생각하는 대로 행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기 때문에 어려운 거다. 그럼에도 조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저자처럼 관리자의 역할을 폄하하고 부정하는 자들의 시선과도 싸워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거다.

시스템을 비판하고 싶은 것 같은데, 그 근거가 빈약하다. 부정적인 인터뷰 내용만 가져왔다는 점에서 편향적이며,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무책임하다.

파레토 법칙이란 게 있다. 80:20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이탈리아 20% 인구가 80% 땅을 소유한다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후 품질관리에 적용돼 80% 분량이 20% 원인에서 나온다는 내용으로도 알려졌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전체 기능 중 80%는 사용되지 않고 20%만 쓰인다. 전체 매출의 80%가 20% 기능에서 나온다 등으로 쓰인다.

그럼 전체 기능 중 80%를 만든 노동은 가짜 노동인가? 그 일에 관련된 모든 일은 가짜 노동인가? 결과로 이어지지 않거나 실무자가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가짜 노동인가? 그리고 이 가짜 노동의 원인은 관리자인가?

문제의 원인을 상대적 강자인 관리자와 시스템으로 돌린다고 해서 모든 논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관리자와 시스템이 그렇게 행동하고 구성된 그 이유를 명확히 알지 못한 채 그저 깎아 내리는 게 올바른 비판의 자세인가 싶다.

공감이 가는 부분은

물론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나 역시 저자가 말하는 ‘가짜 노동’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한 프로젝트에 개발자로 참여했을 때 일인데,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일시적으로 앞선 공정의 결과를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수백 명의 개발자가 참여한 큰 프로젝트다 보니 이 시간이 꽤 길어졌고 몇 주 동안 대기한 경험이 있다. 심지어 프로젝트 전체 규율을 따라야 했기에 대기하는 상황에서도 야근과 주말 출근을 했다. 이는 굉장히 비효율적이라 느꼈으며, 당시에도 무척 짜증이 났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회사 입장에서는 이게 필요했다. 보통 프로젝트는 노동자가 노동 시간을 채우는 맨먼스 단위로 계약되기 때문에 노동자가 앉아서 노동 시간을 채우는 게 회사 입장에서 필요하다. 그게 프로젝트 참여의 조건이다. 그리고 나는 회사에 속한 직원이기 때문에 회사가 계약한 프로젝트 조건을 수행할 의무가 있다.

물론 한동안 이른바 현타가 오기도 했고, 동료들과 많은 뒷담화를 했지만. 어쨌든 나는 월급을 받았고 이어서 진행된 내 역할을 잘 수행했다.

물론 여기서 해당 프로젝트의 일정이 더 잘 관리 됐어야 한다는 둥.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본질은 무엇이냐는 둥. 당연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걸 실제 내뱉으며, 수백명 중 한 명일 뿐인 사람이 모든 프로젝트의 일정을 흔드는 건 결코 현실적이지 않다.

  • 내 자리는 정치적이어서 우리 지분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해요. 하지만 그 이사회는 기본적으로 그냥 도장 찍어주는 곳이에요. 우리는 필요에 따른 약간의 잉여인 셈이죠. 거의 8년 동안 이사회 멤버인데 사무국에서 나온 제안을 거부해본 적이 아직 없어요. 그들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알 수 있죠. 우린 그냥 그들이 모으고 작성한 문서 더미를 보낼 곳이 필요해서 유지되고 있는, 대수롭지 않은 관리층이에요. 사실상 의미가 없는 장치죠.

저자가 가져온 인터뷰 내용은 굉장히 자극적이고 극단적이다. 이사회 멤버가 정치적인 이유로 8년동안 제안을 거부해본 적이 없는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도대체 얼마나 될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하나 들이밀며 ‘내 생각에 동의해’라고 말하는 게 정말 논리적인 방식인지 모르겠다.

‘가짜 노동’을 경험했다고 해서 이 세상 모든 노동이 ‘가짜’가 되는 건 아니다.

어처구니 없는 사회주의자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을 저자가 결국 말하긴 한다.

  • 우리와 대화를 나눈 어느 사회과학 교수는 동료들과 만든 연구 모델이 현실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고 인정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그럼 일을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니냐고 대놓고 물었다. 그는 가족도 부양해야 하고 집세도 내야 한다고 대답했다.

결국은 현실적인 이유다. 현실은 말 그대로 현실. 현실에 살며 현실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심지어 무시하는 게 옳다고 누가 말할 수 있나? 자신의 일도 아니거니와 심지어 자신이 책임질 수도 있지 않은데 말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저자는 이어서 이런 말을 뱉는다.

  • 우리는 그 점을 존중하고 싶었지만, 그 교수가 자존감을 잃을까 봐 걱정됐다.

이게 저자가 ‘엘리트주의’라고 느껴진 이유다. 저자가 뭔데 어떤 학문의 전문가로 인정 받은 교수의 삶을 ‘존중 해줘’야 하며, 자존감을 잃을까 ‘걱정 해줘’야 하나? 저자가 뭔데 한 가정을 부양하는 사람의 현실을 두고 걱정 하느냔 말이다.

이런 말도 있다.

  • 우리는 자영업을 한다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만일 어느날 그냥 더 이상 의욕이 없다면, 오후 2시에도 퇴근할 수 있다. 또 어떤 날은 자정이 넘도록 일을 계속할 수도 있다.
  • 이런 특권을 즐기는 사람이 왜 자영업자뿐이어야 할까? 왜 모든 사람이 즐기지 못하나?

결국 저자가 누리는 건 스스로 ‘특권’이라 인정했다. 책을 읽으며 저자는 참 운이 좋거나 영악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가짜 노동’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한 거라면 운이 좋은 것이고, ‘가짜 노동’이라는 주제를 잡고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면 평생 누군가를 ‘걱정’하거나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계산한 거라면 영악한 거다.

자영업자가 의욕이 없으면 쉬고, 의욕이 있으면 일하는 그런 단순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나 역시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이딴 무책임한 말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났지만 결국 그렇구나… 라고 체념한 건 다음 문장에서다.

  • 그에 대한 해결책이 보편적 기본 소득이다. 모두가 받아야 마땅할 최소한의 금액을 나라에서 지급하는 것이다.

결국 국가가 알아서 해라. 결국은 기본 소득을 누군가가 내고, 나는 좀 더 본질적인 생각을 하며 고고하게 살아가겠다. 저자 개인의 이념이다.

물론 나 역시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가 기본 소득을 만들고, 좀 더 많은 사람이 좀 더 많은 여가를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주6일제, 주5일제를 지나 주4일제가 되는 사회를 바라보며 결국은 인류가 더 많은 여가를 갖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흐름의 후폭풍을 감당해내야 하는 게 저자와 같은 사람들인지는 모르겠다.

마무리

저자가 언급하는 사람 중 회사에서 계속 놀다가 MBA도 공짜로 다녀오고, 심지어 회사에서 놀고 먹었던 걸 책으로 썼다는 사람이 있다. 부끄러워야 할 상황 아닌가?

보고서가 200페이지가 넘어서 아무도 안 읽는다고 툴툴대는 사람도 나온다. 200페이지를 다 안 읽고 자신에게 물어본다며 툴툴댄다. 200페이지라서 안 읽으면, 2페이지로 요약을 하던가. 200페이지를 요약 설명하는 영상을 만들던가. 그게 200페이지를 만들어서 보고하는 사람의 자세인가 싶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논리를 위해 이렇게 많은 궤변을 모아둘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열심히 산다 싶다. 그 열심히를 보며 내가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싶다.

한줄평

  • 현실감 없는 사회주의자의 궤변

인상 깊은 문구

  • 노동의 대부분이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가 없는 신기루에 가깝다.
  • 모두 뭔가 하느라 늘 바빠 보여야 했던 일터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방종, 예컨대 창문을 내다보며 생각을 가다듬는 행동을 해도 괜찮았다. 즉, 가짜 노동에는 관중이 필요했던 것이다.
  • 누가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것이 전혀 가치 없는 노동일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었다.
  • 우리는 왜 그렇게 일을 많이 할까?
  • 이 강연은 그의 논문 <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학적 예측>에 정리돼 있다. 이 논문에서 케인스는 1930년까지의 추세에 근거해 “100년 내로 경제적 문제는 해결될 수 있거나 적어도 해결 방법이 보이게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과 2030년까지 평균 노동시간은 주15시간이 될 것이며 그 시간조차 경제적이기보다는 인간적 필요를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 러셀은 사람들이 집에서 놀지 않고, 굳이 일터에 나와 일하려 하는 것을 의아해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4시간 근무 후 집에가는 사회가 더 멋진 삶을 가져올 뿐 아니라 더 고상한 문화를 낳는다고 보았다. 우리 문명의 위대한 진보, 위대한 예술 작품과 기념비적 과학 발견은 노동자들이 아닌, 여가라는 사치를 즐기는 계급에서 비롯됐다. 고대로부터 문명과 교양 있는 개인을 만들어 낸 것은 노동으로부터의 자유였다.
  • 일을 덜 하게 되면 다른 것을 추구할 여력이 더 생긴다.
  • 자동차 생산자 헨리 포드는 이미 1926년에 주5일제를 도입했다. 포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생산력이 증진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최초의 경영자 중 하나였다.
  • 그들이 관찰한 여러 부족은 우리 조상과 가장 닮았으면서도 풍부한 음식과 놀랄 만큼의 자유 시간이 있었다. 석기시대 조상이 하루 하루 살아남기 위해 고된 노동을 했다는 신화는 그저 신화일 뿐이다.
  • 인류 최초의 농부들에게 농사는 하늘이 내려준 축복처럼 느껴졌을 테지만, 그것이 그들을 더욱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 시기 유골에 관한 연구를 통해 너무나 명확히 드러난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13세기 영국 농부는 1년에 평균 1620시간 노동을 했다고 추정되어 석기시대의 700시간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것, 화이트칼라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뭔가 중요한 사람이된다는 의미였다.
  •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보통 사람이 느리고 편한 속도에 맞춰 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인간이 더 빠른 속도를 내는 경우는 스스로 상당량의 숙고와 관찰을 거친 후거나 본보기, 양심 또는 외부적 압력의 결과다.
  • 근대산업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를 빼놓을 수 없다. 위의 인용은 그가 한 말이다. 테일러는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효율성의 추구와 시간 관리에 바쳤다.
  • 테일러가 끼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관리직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도구를 최초로 만들어낸 그는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인정받는다. 그의 방법은 곧 사무직에도 적용되었다. 흰 실험실 가운을 입고 스톱워치를 든 남자들이 직원들의 모든 동작을 꼼꼼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맨눈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동작 감시 카메라로 진화되어 움직임을 주의 깊게 분석하고 순수한 수식으로 변환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은 그렇게 아주 작은 요소로까지 분해되었다.
  • 과거의 노동에 대해 살펴보면 한 가지 의미심장한 경향이 되풀이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절약할 방법을 알아낼 때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시간을 사용할 새로운 방식을 알아낸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을 ‘지식사회’와 ‘지식 노동자’보다 노동시장의 변화를 더 잘 설명하는 개념은 없다.
  • 교육 부분이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비교적으로 소수를 위한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대학은 매년 점점 많은 젊은이를 빨어들였다. 예전엔 아주 약간의 교육이나 훈련만으로도 충분했던 일자리들이 갑자기 대학에서 전공해야 하는 학문이 되어, 학사나 석사 학위가 필요해졌다.
  • 1979년 드러커는 지적인 사람들이 지루한 업무를 맡고 나서 자신이 지나친 교육을 받았음을 깨닫게 되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대단한 ‘지식인’이 되리라 기대했던 자신이 일개 ‘직원’일 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 다시 말해, 노동시장에 지식노동자나 넘쳐나 일종의 과잉 사태를 유발했다. 이 현상을 연구한 런던 킹스 칼리지의 앨리슨 울프 교수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 오직 잉여 대학 졸업생을 흡수하기 위한 목적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지경에 왔다.
  • 2005년 물리학자 조너선 휴브너는 인류의 삶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가장 중요한 발명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결과는 꽤 실망스러웠다. 그는 우리가 1873년에 혁신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 스탠퍼드와 MIT 대학교의 한 연구팀은 우리가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는 최고의 측정법을 연구했다. 이른바 ‘총요소 생산성’인데, 노동과 자본의 투입이라는 전통적인 측정 방법으로 설명되지 않는 생산성의 성장을 측정했다. 연구팀은 기술, 의료, 농업 같은 산업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를 벌였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1930년대에 비해 연구에 약 20배 더 투자하지만 오히려 예전보다 새로운 발명이 줄어들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 인류의 탄생 이래 노동의 역사를 연구해보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은 재량 시간이 더 확보될 때마다 자신을 계속 분주하게 만들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 여러 직업 중에서도 특히 컨설턴트의 수치가 높았다. 또 다른 기관의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경영 컨설턴트의 35%가 주 80시간가지 일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이 조사는 특정 집단이 자신의 노동량 과장을 부추키는 경쟁적 풍토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 ‘텅 빈 노동’이란 ‘봉급을 받는 이가 하리라고 고용주가 기대하지 않는 활동’이라고 정의된다.
  • 직장에서 늘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신화나 다름없습니다.
    • 너무… 너무 자극적임.
  • 2017년 네덜란드의 한 연구 결과는 더욱 절망적이다. 응답자의 40$가 자기가 하는 일이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 2013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12,000명의 응답자 중 50%가 자기 직업이 전혀 중요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답했다는 황량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 사회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은 그레이버는 이 현상에 대한 심층 연구를 진행했다. 내용과 의미가 대체로 결핍된 일을 하고 있다고 털어놓은 이들에게서 500여 가지 사례를 모아, ‘허튼 직업 이론’을 다듬고 2018년 저서 <불쉿 잡>을 출간했다.
  • 20세기 초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노동과 여가 시간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빈둥거림은 상층계급의 결정적 특징이라고 했다.
  • 가짜 노동을 하면 우리는 실질적인 일을 한다고 느끼지 못하면서도 계속 바빠진다. 혹은 우리가 아는 일 중에 무의미하지 않은가 의심되는 업무가 있다면 그게 바로 가짜 노동이다.
  •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듣는 회의도 가짜 노동이다. 프로젝터가 꺼지자마자 잊어버릴 프레젠테이션, 일이 잘못되는 걸 막지 못하는 감시나 관리도 가짜 노동이다.
  • 20세기의 단계적 산업화는 무대 뒤 노동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시켰다. 요즘에는 엄청난 양의 무대 뒤 노동이 컨설턴트, IT 전문가, 관리자, 연구자, 경영인, 홍보팀, 지원팀 등에 의해 이뤄진다.
  • 컨설턴트는 뭔가 하는 척하며 쉽게 3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운전사는 버스를 운전하는 척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둘 다 특정량의 시간을 투입하고 보수를 받는다. 이렇게 둘 중 한쪽은 속이기가 훨씬 쉽다.
  • 다시 말하지만, 모든 무대 뒤 노동이 가짜 노동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무대 뒤 진짜 노동이 존재한다. 관리자는 공장 업무를 조율하기 위해 꼭 필요하고, 예산을 세워야 하며,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맡아야 한다.
  • 관료제와 전체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에 의하면, 국가의 업무를 자유 시장에서 처리하도록 내놓으면 합리성이 담보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교육 지원금이 학생 수에 기초해서 배분되는 사례가 발생한다. 재미있고 오락적이고 쉬운 과정을 내세우는, 수준 높지 않은 교육기관에 학생이 몰리고 지원금도 더 받는다. 그래서 교육기관들은 평가 수준을 낮춰서 문턱을 낮추고,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졸업생을 양산한다. 학생을 더 많이 끌어들이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래야 그 기관이 더 많은 교사를 고용하고 계속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중 아무것도 교육기관의 본래 ‘존재 이유’와 상관이 없다.
  • 이제는 소련 전성기 때 같은 장기(5개년) 계획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자각이 커짐에 따라, 국가와 기업은 임시 프로젝트에 집중하게 되었다. 떨어진 지원자들의 시간 낭비도 어마어마하지만 프로젝트 기반 사업의 분위기 전반이 태생적으로 임시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사람들은 현재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에 다음 일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 노동시간의 상당량은 모든 게 합법적인지, 혹시 간과한 허점은 없는지 확인하는 데 바쳐진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특허를 내는 데 기력이 소모된다. 인수 합병은 말할 것도 없다. 수 많은 인력이 다양한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선제적 방어를 준비하느라 수년을 소모한다. 치명적 세부 사항을 놓친 이가 내가 되어서는 안 되기에 수천 시간을 들여 오류와 간과를 검사하고 이중 삼중 확인한다. 실제로 오류와 간과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모두가 그걸 막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합리적 이유가 된다.
  • 가속화에는 역설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를 해방시켜주리라 기대했던 기술은 결국 더 많은 일을 만들어냈다.
  • 주어지는 기술을 활용해 점점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으나, 우리는 별다른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는 듯하다. 우리 할머니를 포함해 아주 소수만이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물을 뿐이다.
  • 오래된 낡은 문화가 아주 광범위하게 퍼진 땅에서, 새로 태어난 젊은 문화가 숨도 쉬지 못하고 순수한 특유의 표현 형태를 성취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의식조차 온전히 발달시키지 못한 상황을 가리키기 위해, 나는 역사적 허위 형성이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 우리는 지난 세기 후반에 우리 문화가 허위 형성 과정을 겪었다고 믿는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자유롭게 만들고 더 큰 노력, 에너지, 관심을 서로의 관계에 쏟았어야 했다. 하지만 산업적 의식 구조에 사로잡혀 그러지 못했다. 더 위대한 자유의 기회를 움켜쥐는 데 실패한 것이다.
  • 파킨슨의 법칙, 일은 그것의 완수에 허용된 시간을 채우도록 늘어난다.
  • 영국 제국은 당시 서서히 쇠락하고 있었다. 특히 1935년에서 1954년 사이에 제국주의 활동이 극적으로 축소되었다. 상식적으로는 식민지 당국이 인원을 감축해야 했지만 실제로 당시 공무원의 수는 거의 450% 증가했다.
  • 조나스는 또한 매주 잡혀 있는 팀 회의가 다음 주의 업무를 의논하는 게 아니라 그 전 주에 한 일을 뽐내는 자리임을 곧 깨달았다.
  • 내가 근무했던 모든 회사의 모든 팀은 자신의 규모를 다른 곳과 비교합니다. 특히 인사팀과 홍보팀은 회사 내 제일 큰 조직이 되려고 경쟁하죠. 그래서 계속 새 자리와 할 일을 만듭니다. 다른 팀을 이기려고요. 그게 기본적으로 그들의 목적이에요.
  • 조나스는 또한 인사팀과 홍보팀 사이에 경쟁이 없었다면,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그래머가 이를 실행에 옮기는 데 단 2시간이면 충분했을 거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달이 걸렸다고 그는 회상했다.
  • 온갖 스프레드시트를 채워야 하는 교사는 어떨까요? 아마 교사는 시트를 채우기보다 특별히 더 돌봐줘야 하는 꼬마들에게 자기 시간을 쓰고 싶을 텐데 말이죠. 문제는 그녀가 엑셀에 제출되는 내용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겁니다. 고마들에게 해주는 일이 아니라.
  • 최근에 나는 손 씻기 수업을 듣고 수료증을 얻어야 했어요. 외과의로 30년을 일했어요. 제대로 손 씻는 법도 몰랐다면 오래전에 일을 그만두고 죽었을 겁니다.
  • 젠슨과 클라인에 의하면 문제는, 회사의 많은 규칙이 소수의 고위경영진에게만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돌아가는 상황을 내려다보고 감시하면서 내부적으로 제시할 믿음직한 자료를 획득하거나, 시장에서 유효한 가장 적극적이며 제한적인 보안 조치를 시행할 수 있다.
  • 넷플릭스의 최고 인사 담당자 패티 매코드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기사에서 자사의 방식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회사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최고의 직장에서 일하고픈 스스로의 욕망을 이해하고 추구하는 인력을 신중하게 채용한다면, 직원의 97%가 제대로 일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나머지 3%가 일으킬지도 모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사 방침을 규정하고 시행하면서 끝없는 시간과 비용을 소모합니다.”
    • 그건 넷플릭스니까 가능한거고…
  • 우리 대부분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 좀 실수해도 계속 살아갈 수 있고 대단한 계획이 많지 않아도 대강 때울 수 있다.
  • 요즘 우리 사회는 거의 초인에 가까운 관리자라는, 불가능한 이상을 숭배하는 안타까운 경향을 보인다.
  • 우리는 학생들 앞에 서기 전가지는 학생들이 어떨지 알 수가 없어요. 내가 이 동네의 부루퉁한 십대 20명을 가르치게 될지, 뭐가 먼지 모르는 네팔 학생 10명을 가르치게 될지, 아니면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온 무서우리만치 똑똑한 교환학생들을 가르치게 될지를 알아야 뭘 가르칠지 계획할 수 있으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어떤 상황인지 파악될 때까지 교육 방법에 대한 고려 같은 건 아무 쓸모가 없어요.
  • 일주일에 하루 정도 학생들이 편하게 강사를 찾아올 수 있다면 교육의 질이 높아질 거예요. 하지만 이런 일은 기록하거나 문서화할 수 없죠.
  • 프레데리크는 기록할 수 없는 활동을 조금씩 줄여나갔다. 그래야 주40시간 이하로 근무시간을 맞출 수 있다고 한다.
  • 어떤 직원은 스티커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을지도 모른다. ‘오늘 동료의 안부를 챙겼습니까?’ 같은 카피 문구를 넣어서 말이다.
  • 정책을 만들어내는 대신, 우리는 각각의 모든 책임자에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복지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그들의 업무라고 말해야 합니다. 관리직은 규정 준수 능력으로 평가되어선 안 됩니다.
  • 이런 상황에 저항하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예를 들어 루이세는 상사들의 가짜 노동 남발을 공공연히 비판하다가 하마터면 잘릴 뻔했다고 한다. 그러니 여러분도 온갖 어리석은 규칙과 문서 요구에 큰 소리로 의문을 제기하거나, 가치가 있는 일만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전에 다른 방법은 없는지 궁리해봐야 한다.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다면 말이다.
  • 리더십은 순전히 경영진이 50% 더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한 정당화 담론입니다.
  • 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많은 사람이 하나같이 자기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했어요. 예를 들면 어떤 직원은 홈페이지의 저기 저 구석, 저 아래 페이지에서 한 조각의 정보를 찾아내 아주 약간만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죠. 혹시 어느 고객이 이것을 보고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나면 어떨지 상상해보라면서요. 그렇게 되면 홈페이지 담당자는 다른 일을 즉시 멈추고 그걸 수정해야 하는 거예요. 어떤 것도 잘못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회사의 자기 중요성에 대한 지나친 믿음에 뿌리를 박은 두려움이죠.
  • 누군가 대가를 지급해도 가짜 노동일까? 알베손이 대답했다. “그럼요. 문제는 누가 지급하느냐입니다. 공급자와 구매자 사이의 순수한 거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매년 약 250만 편의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된다. 그리고 게재된 인문학 논문 중 84%가 5년간 전혀 인용되지 않는다.
  • 북유럽 경영 스타일에 대해 좋은 평도 많지만 때로는 그냥 리더가 결정 내리는 게 나아요. 그러지 않으면 모두가 충분하다고 느낄 때가지 의견만 듣고 도 들어야 할 테니까.
  • 원래 참조(cc)란 20세기에 문서를 1부 더 복제해 보관하기 위해 사용했던 먹물지(carbon-copy)를 뜻하는 말이다.
  • 왜 회의가 1시간이나 돼야 하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직원들의 설명은 논리적이지 못했어요. 아웃룩 프로그램의 스케줄 기능이 1시간 단위로 돼 있어서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나 회의 시간이 1시간으로 설정되고 나면 17분 만에 안건이 해결돼도 아무도 그만하자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파킨슨의 법칙을 통해 이미 알고 있죠. 오히려 세부 사항을 물고 늘어지며 질질 끌어요.
  • IIH 노르딕은 아웃룩 프로그램의 기본값을 바꾸었다. 이제 회의 시간은 20분이다.
  • 피곤할 때도 원기가 있을 때만큼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으리라는 건 환상입니다.
  • 직원들이 더 적게 일할수록 IIH 노르딕의 매출은 증가했다. 근무시간이 줄어든 후에 세전 수익은 거의 두 배가 되었다. 또한 병가가 50% 줄었다.
  • 18세기 말, 스코틀랜드 경제학자이자 윤리 철학자 애덤 스비스의 저술이 이 결정적 변화를 널리 알렸다. 그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구분했다. 여기서 새로운 점은 그가 노동을 교환가치의 척도로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 이전가지 교환가치는 음식, 옷 등, 즉 노동자가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것이었다. 스미스에게 노동은 환원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됐다. 인간은 언젠가 죽기에 생명은 제한된 자원이 된다. 우리의 제한된 시간 중 일부를 노동에 투여할 때, 우리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재화는 이제 우리가 원하는 무엇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노동시간의 축적을 의미했다.
  • 생산물의 가치가 아니라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다는 관념은 우리 안에 깊숙이 박혀 있다. 그 결과, 일이 실제보다 오래 걸린다고 말해야 유리해지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 실질적 방식으로는 사람들의 업무 성과를 측정하기가 극히 어렵다는 겁니다. 인사,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홍보팀뿐만이 아니라 판매팀까지도요. 고객 하나를 새로 얻는 데 100명의 직원이 필요하다고 합시다. 그중 누구 공이 제일 클까요? 아무도 자격이 없을 수 있어요. 어쩌면 경쟁이 심하지 않아서 그 회사의 상품이 1위가 되었는지도 모르죠. 핵심은 누가 회사에 부가가치를 가져왔는지 밝히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 내 자리는 정치적이어서 우리 지분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해요. 하지만 그 이사회는 기본적으로 그냥 도장 찍어주는 곳이에요. 우리는 필요에 따른 약간의 잉여인 셈이죠. 거의 8년 동안 이사회 멤버인데 사무국에서 나온 제안을 거부해본 적이 아직 없어요. 그들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알 수 있죠. 우린 그냥 그들이 모으고 작성한 문서 더미를 보낼 곳이 필요해서 유지되고 있는, 대수롭지 않은 관리층이에요. 사실상 의미가 없는 장치죠.
  • 성취 과정이 가치 있다는 관념은 끈기 있게 이어졌다. 서구, 특히 근대에 칭찬의 대상이 된 것은 최종 결과물뿐 아니라 작업 과정에 투입된 노력 그 자체였다.
  • 우리는 신중하게 나아가야 한다. 소외의 본질에 대해 두 학파의 서로 다른 두 가지 사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 번재 학파는 정상성에 적응하는 데 실패하면 소외되는 거라고 주장한다. 사회가 칭송하며 모든 사회적 기능의 근간을 이루는 규준과 가치에 자신을 맞추지 못하면 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다른 학파는 정상성 자체가 소외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경우 정상성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진정으로 인간다워질 수 있다. 즉, 정상적인 것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의미다.
  •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터뷰 대상이 가짜 노동에 홀리지 않은 이유는, 결국 인간은 뭔가 유용하고 의미 있고 진짜인 일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다만 이런 갈망이 이제는 유별나다고 취급되는 것뿐이다. 누가 돈을 주겠다고 하면 하는 게 일이라는 통념이 널리 퍼졌으니 말이다.
  • 우리가 가짜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다음과 같은 반대 주장에 부닥쳤다. “그래서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 정말 가짜 노동이라 칩시다. 하지만 난 가족을 위해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 비싼 동네에 주택 담보대출이 잡혀있어요.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문제란 말입니다.” 다시 말해 1, 2, 4번의 생존, 돈, 적응과 같은 이유다. 하지만 3번 이유(본질)는 달라 보인다.
  • 다 그만두고 자연인으로 사는 것보다는 좀 덜 급진적인 뭔가를 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우려를 제기하고 시민적 불복종을 실천하고 일에 간섭해 의미 있게 만들거나 좀 더 성취감 있는 직업을 위해 재훈련을 받는 건 어떨까?
  • 우리는 자영업을 한다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만일 어느날 그냥 더 이상 의욕이 없다면, 오후 2시에도 퇴근할 수 있다. 또 어떤 날은 자정이 넘도록 일을 계속할 수도 있다.
  • 이런 특권을 즐기는 사람이 왜 자영업자뿐이어야 할까? 왜 모든 사람이 즐기지 못하나?
  • 그에 대한 해결책이 보편적 기본 소득이다. 모두가 받아야 마땅할 최소한의 금액을 나라에서 지급하는 것이다.
  • 우리와 대화를 나눈 어느 사회과학 교수는 동료들과 만든 연구 모델이 현실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고 인정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그럼 일을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니냐고 대놓고 물었다. 그는 가족도 부양해야 하고 집세도 내야 한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그 점을 존중하고 싶었지만, 그 교수가 자존감을 잃을까 봐 걱정됐다.
  • 지금까지 우리는 기계가 발명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총력을 기울여왔다. 어리석었지만 영원히 어리석게 지낼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