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4강 진출. 새벽 3시에 알람을 맞추고 일찍 잠이 들었던 나는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 TV를 켰다. 홍명보가 이끄는 전사들의 전투가 기대되서 미쳐버릴지경이였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대한민국은 태권도의 종주국이다. 그래서 태권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고, 금메달을 따도 역시 태권도는 우리꺼야 라며 당연시 한다. 또한, 양궁도 그러하다. 양궁의 종주국은 영국이지만, 매 대회 우리나라는 양궁 메달을 싹쓸이 하고 있다. 몇일 전 양궁 국가대표 감독은 총 4개의 금메달 중 3개밖에 따지 못했다며 죄송하다고 인터뷰를 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만큼 피와 땀을 흘렸기에 지금의 양궁 강국 대한민국이 있는게 아니겠는가.

다시 축구 이야기로 돌아오면, 누구나 알고 있듯 축구는 영국의 스포츠다. 또한 코너킥 등의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평균 190cm에 육박하는 유럽 선수들을 이기기엔 우리선수들은 너무 작았다. 하지만 기성용, 이범영, 정성룡, 지동원 등 체격적으로 유럽 선수들과 부딪혀도 쉽게 지지 않는 선수들이 생기면서 어느새 우리나라는 어느 국가와 겨뤄도 해볼만한 강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칼럼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체격적인 부분의 반대되는 능력. 정신적 능력이다.

<4강 진출 대한민국 / 출처 – fifa.com>

3일에 한경기. 말그대로 살인적인 스케쥴이다. 기성용은 인터뷰에서 현재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분은 70% 정도라며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고 이야기 했고, 윤석영, 김영권, 황석호, 기성용, 구자철은 4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을 하며 심신이 지쳐있는 상대다. 여기에 앞으로 남은 상대는 브라질과 일본, 멕시코의 승자. 브라질을 이긴다 하더라도 만약 일본이 결승에 올라온다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분위기의 일본전은 선수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이렇게 지친 선수들을 효율적으로 투입하여 어쨌든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게 감독의 몫이다. 하지만 감독이 그렇게 전술을 짜려면 다양한 카드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바로 오늘 경기에서 보여졌다.

후보들의 반란?

전반 5분. 김창수의 부상으로 인한 교체. 그냥 올림픽 경기만 본 팬들은 모를테지만 홍명보 호의 오른쪽 수비수는 원래 김창수가 아니였다. 그리고 김창수는 1순위 와일드 카드도 아니였다. 하지만 홍정호가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하고 이정수가 소속팀 반대로 와일드 카드로 합류하지 못하자 그 대안으로 참가한게 김창수다. 원래 김창수 자리에는 오재석이라는 선수가 있었고, 오재석은 홍명보 호의 부주장을 맡고 있다.

어제 경기에서 오재석은 패널티 킥을 내주는 실수(사실, 패널티 킥을 주지 않아도 크게 항의 할 수 없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손에 맞긴 했으니 우리도 할말 없지만.) 를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평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반 날카로운 돌파까지 보여준 점을 봐서 오재석은 상당히 적응을 빨리 한 것이다.

K리그 해설위원으로 활약중인 송종국 해설위원은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교체출전을 하면 남들보다 더 체력적인 부분이 여유가 있으니 엄청나게 유리 한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경기는 분위기라는게 있고, 그 분위기를 교체된 선수가 따라가기는 상당히 힘들다.’ 고 말했다. 오재석은 경기 5분만에 투입되어서 막 시작되는 분위기를 쉽게 따라간거라 말할 수도 있지만, 조별 3경기동안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않았던 선수다. 그런 선수가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이미 팀 분위기에 녹아들어있는 선수이며, 홍명보 호가 강팀인 이유 중 하나이다. 주전과 비주전이 구분없는 팀은 모든 감독이 원하는 선수단이다.

또한 이번 올림픽 축구팀에서 탄생한 또 하나의 영웅 ‘이범영’ 골키퍼. 이범영은 오재석과 마찬가지로 와일드카드 정성룡의 합류로 자리를 빼앗겼다. 선수라면 누구나 뛰고 싶어 하고, 정성룡이 잘해주고 있었기에 이대로라면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범영은 기다렸다. 분명히 한번쯤은 올 기회를 기다리며 묵묵히 훈련했고 드디어 기회가 왔다. 역시…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패널티킥 선방. 11m의 앞에서 차는 패널티킥은 키커가 잘만 차면 키퍼는 손도 데지 못한다. 이론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키커와 키퍼 사이에 존재하는 기싸움. 그리고 그들의 정신력은 누군가를 울게 한다. 그리고 오늘은 첼시의 스터리지가 울었다.

누군가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철저히 준비된 경기였다. 마지막 조경기에서 홍명보는 후반전 박종우를 쉬게 해주었고, 그 결과 오늘 경기에서 박종우는 날아다녔다. 지동원에게 꾸준히 교체 출전의 기회를 주었고, 그 결과 오늘 첫 선발에서 7만 관중의 입을 막아버리는 환상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만들어냈다. 다소 시무룩 할 수도 있는 자리를 빼았긴 오재석과 이범영을 잘 다독여 기회가 왔을때 실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선수단을 관리한 홍명보 감독.

오늘 경기는 후보들의 반란도 아니고, 운도 아니다. 철저히 우리 대표팀의 실력이며, 팀플레이가 개개인의 능력보다 훨씬 좋은 전술임을 보여준 교과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