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흘리는 태극전사 ⓒ 뉴스뱅크F]

괴성을 지르다.

 EPL, K리그 등 대부분의 축구 경기를 즐겨보는 팬으로써 얼마만의 괴성을 질렀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후반전부터 시청하게 된 나는 1:1 상황에 너무도 흥분했다.

박지성의 PK 유도로 만들어진 기성용의 골 장면을 보고는 ‘역시! 박지성!’ 이란 감탄사가 튀어나왔고, 실점 장면 리플레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침묵 뿐이였다.

연장. 심판의 너무도 아쉬운 판정으로 1-2로 끌려가던 도중 나는 너무도 간절히 기도했다. 이대로 질 수는 없다고! 결국 연장 종료 직전에 황재원의 극적인 동점골로 일본과의 대결은 PK 승부로 이어진다.

0-3 완패.

열받는다. 3골이 연속으로 막히는 장면은 처음보는 것 같다. PK에서 말이다.

사실 연장전에 일본이 성공시킨 PK는 정성룡이 한차례 선방을 한 뒤에 실점을 하게 되어 너무도 아쉬웠는데, PK라면 이미 한번 막아본 정성룡과 막지 못한 일본의 가와시마 에이지 중 단연 정성룡이 유리하리라 생각했다.

조광래 감독은 키커의 순서를 이렇게 짰다.

구자철 – 이용래 – 홍정호 – 손흥민 – 기성용

힘겨운 혈투 끝에 대한민국이 얻은 결과는 패배였고, 이 패배의 원인을 대부분의 팬들이 조광래 감독의 잘못된 키커 선택으로 말하고 있다.

두명의 키커의 방향을 잡고, 한차례 선방을 한 정성룡은 단 한골도 성공시키지 못한 동료들의 성공률에 아쉬웠을 것이고, 결국 대한민국의 캡틴 박지성의 100번째 A매치는 패배로 기록되게 된다.

과연 조광래 감독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


[지시하는 조광래감독 ⓒ 뉴스뱅크F]

첫번째 키커 구자철

아시안게임에서 주장을 맡았고, 3위에 머무른 그에게 우리는 박수를 보냈다. 특히, 이란전 대역전극의 시발점이 되었던 그의 중거리 포는 환상이였다. 리그에서도 구자철은 팀의 에이스로 꼴찌였던 제주를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조광래는 구자철을 전술의 핵으로. 즉, 에이스로 활용하게 된다.

구자철은 이번 대회 4골 2도움을 기록. 단지, 킥력이 좋은 선수가 아닌 결정력이 있는 선수임을 증명했다. 이런 선수를 조광래 감독이 첫번째 키커로 세우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다만 1989년생이라는 어린 나이가 걸릴 뿐이였다.

구자철은 강하게 잘 찼고, 일본 키퍼는 잘 막았다.

두번째 키커 이용래

이번 대회에서 조광래 감독이 잘한 점으로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 전술. 그동안 많은 감독들이 교체되면서 항상 ‘색깔이 없다’ 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감독으로써 색깔이 없다라는 말은 ‘매력이 없다’는 것과 같다. 전 감독의 전술을 그대로 사용하고, 선수 기용도 그대로 할 때 우리는 ‘색깔이 없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조광래는 ‘만화 축구’라 불리는 자신의 전술을 조금씩 완성해 가고 있다.

둘째, 세대교체와 함께 신선한 선수들의 기용을 거침없이 한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수확은 ‘이용래’라고 생각한다. 이용래는 엄청난 활동량과 패싱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매력적인 왼발을 가지고 있다. 이용래가 주전으로 뛸 수 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함으로써, 조광래는 왼발 키커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 날아오를 이용래는 충분히 조광래 감독의 신임을 받을 자격이 있다.

세번째 키커 홍정호

19세이하 대표팀 주장이였던 홍정호. 저번시즌 제주의 돌풍을 일으킨 주역 중 한명이다. 홍명보 감독의 사랑을 받으며 국가대표까지 승선하였고, 중앙 수비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뛸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다.

19세이하이긴 하지만 대표팀의 주장이였던 그는 세대교체의 시작인 어린 선수들 중에서 리더쉽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PK를 성공시키지 못한 세명의 선수의 설명은 대략 이러했다.

하지만 이들의 능력을 떠나서 조광래 감독의 PK 선수 기용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조광래 감독이 분명 ‘멀리 보는 기용’을 했기 때문이다. 어제 박지성과 이영표가 은퇴를 알리는 헹가래를 받으면서 대한민국은 왼쪽 라인을 잃었다.

포메이션으로는 단지 한쪽이지만 그들의 비중을 볼땐 선수단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다.

이런 상황에서 조광래 감독은 세대교체를 염두하고 다섯명의 어린 선수들을 기용한 것이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조광래 감독은 이들의 잠재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기용한 것이다. 물론 말도안되는 도박은 아니다. 이들은 조광래 감독이 언급했듯이 연습시에 가장 훌륭한 킥력을 보였던 선수들이다.

조광래 감독은 뛰어난 선수들을 기용했고, 또한 그 선수들이 성공했을 때의 시너지를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PK에 실패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다른 것을 조광래 감독은 얻었다.

어린 선수들의 마음

결코 작지 않은 대회에서.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라이벌 일본과의 혈투에서. 어린 자신들에게 기회를 줬다는 점은 분명히 감독에게 감사할 일이다. 물론 실패하긴 했지만 분명히 조광래 감독은 잘했다고 했을 것이고 어린 선수들은 자신들을 믿어주는 감독을 위해 좀 더 열심히 뛸 각오가 된 것이다.

조광래 감독이 얼마나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고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앞으로 세대교체를 위한 핵심 선수들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 것이다.

K리그 득점왕 유병수가 불만을 표출하기는 했지만 조광래의 전술상 유병수의 희생은 피할 수 없었다.

즉, 조광래 감독은 단기적으로 큰 것(아시안컵 우승)을 잃었지만 장기적으로 더 큰 것(핵심 선수들의 충성)을 얻은 것이다.

이러한 도박을 한 조광래 감독의 대담함과 멀리 보는 혜안. 그리고 선수를 판단하는 통찰력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의 조광래식 만화축구에 더욱 기대가 된다.

Dragon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