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게 된 동기


STEW 독서소모임 지정도서

한줄평


청와대 경제수석의 원기옥

서평


이 책은 판타지 소설이다.

사실 나는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 가끔 세상에 지칠 때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 힘이난다. 첫째는 ‘아… 이런 퀄리티의 글도 돈 받고 팔 수 있구나…’ 싶을 정도의 3류 판타지 소설을 읽을 때 생기는 힘이 있다. 그냥 그 3류 감성이 좋다. 3류 판타지 소설은 대부분 동시에 벌어지는 이야기가 한정돼있다. 많아야 3-4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음을 편히 먹기 딱 좋다. 머리도 덜 쓸수 있어서 좋다.

둘째는 주인공이 짱이다. 주인공이 짱인 판타지 소설을 ‘먼치킨’이라고 하는데, 주인공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세계관이 참 마음에 든다. 아무튼 주인공이 짱이다. 주인공이 짱인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 짱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다.

셋째는 허무감이다. 3류 판타지 소설은 10권에 달하는 장편 소설도 빠르게 읽을 수 있다. 몇 차례 출퇴근을 반복하면 금세 완결을 볼 수 있다. 완결을 본 뒤엔 엄청난 허무감과 그동안의 시간이 아까운 생각이 든다. ‘아! 큰일났다!’ 하는 생각과 함께 뭐든 열심히 하게 된다. 그래서 좋다.

그런데 이 책은…


모피아는 판타지 소설이다. 표지에는 <우석훈 장편소설>이라고 써 있는데, 이게 왜 장편소설인가 싶다. 3류 판타지 소설 2권 정도에 달하는 분량(3류 판타지 소설은 본문 내 공백이 무척 많다)이지만, 짧은 판타지 소설도 5권 정도는 넘어간다.

조금 기대감은 있었다. 내가 잘 모르는 경제분야를 아주 쉽게 풀어준다는 저자의 말에 혹했다. 흥미진진하게 등장인물을 등장시켰지만,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모호하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주인공 오지환의 캐릭터가 잘 잡히지 않는다. 어찌어찌 이기긴 했는데, 그래서 오지환이 잘하는게 뭔데 이겼는지 잘 모르겠다.

3류 판타지 소설도 몇몇 핵심 인물이 있고, 핵심 인물을 돕는 조연이 있다. 잘 짜여진 소설은 조연도 꽤 매력적인 인물이다. 헌데 이 책은… 주인공도 매력이 없다. 평범함이 매력이라는데… 평범함이 매력이라 해도, 소설이면 적당한 매력 포인트를 만들었어야 했다. 매력 없는 인물에는 마음이 가지 않는다.

욕과 건방짐을 달고 사는 김수진도 매력이 없다. 온 세계를 누비며 힘을 자랑하더니… 갑자기 평범함에 이끌려 모든걸 버린다? 나를 여자로 봐준 유일한 남자다? 너무 판타지 아닌가? 개연성이라는게 너무 부족하다. 3류 판타지 소설도 이보다는 낫다.

게다가 경제를 알리기 위한 소설이라고 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은 지금 경제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트레이딩, 환치기 등이 주 공격이라면, 그 분야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풀었어야 하지 않는가? 아무리 판타지라고 하지만, 어떻게 온 세상이 한국 중심으로만 돌아가는가?

개연성 이야기를 하자면 주인공 오지환이 갑자기 경제특보가 되는 장면에서부터 물음표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악당 이현도는 왜 오지환을 꼽았는가? 잘 모르겠다… 개연성이란게 전혀 없다.

매력없는 캐릭터, 이해할 수 없는 개연성. 핵심 주제인 ‘경제’가 도대체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모르겠는 이 소설을 4류라 하고 싶다. 차라리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가 나오는 3류 판타지가 더 재밌겠다.

민주화 판타지


조금 솔직했다면 어떨까 싶다. 그냥 작가 자신의 이념을 소설에 녹이고 싶다고. 경제학자보다는 정치학자에 가깝다고.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 현대환경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정책분과 의장과 기술이전분과 이사. 화려한 커리어를 나열했지만, 이 소설처럼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개연성이 없다.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환경쪽에서 일했다면 환경 책을 써야하지 않았을까?

2012년에 쓴 책이지만, 소설 속 대통령의 환경과 선택에서 현 ‘문재인 대통령’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내 선거공약이었죠?” “네, 맞습니다.”

정치는 잘 모른다. 모른다는 게 자랑이 아니란 것은 안다.

엘리트 정치에 크게 찬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의 정치가 결국 ‘원기옥’을 시전해야만 이길 수 있는 것이라면 엘리트 정치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원기옥은 거의 모든 사람의 에너지를 모아야 하는데…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아닐까?

소설은 소설로


나는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 특히 3류 판타지가 좋다.

하지만 4류는 싫다.

인상 깊은 문구


  • 케이맨 제도는 겉으로 보기엔 흔하디흔한 카리브 해의 여느 관광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인구 5만이 약간 넘는 영국령의 이 섬들에는 280여 개의 은행, 780여 개의 보험회사, 560여 개의 자산운용사 등 총 8만여 개의 기업이 등록되어 있다. 인구수보다 기업의 숫자가 더 많은, 지구상에서 가장 기이한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 케이맨 제도이다. 케이맨 제도의 주지사는 영국 여왕이 직접 임명한다.
  • 한국은행에 처음 입사한 이후로, 그리고 국내 대학에서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의 공백 상태에 들어간 적은 아직 없었다. 그게 화려한 자리이든 아니면 조용히 대학원에 입학하던 순간이든, 그는 아랫사람은 물론이고 상사나 지도교수에게 존재의 흔적 같은 것을 남기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 오지환의 마음은 답답했다. 그런 말은 안 들었으면 했다. 해법이 없으면 말하지도 마라. 그가 민주당 쪽 사람들에게 수없이 들은 이야기였다. 그는 해법이 없었고,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지금도 그에게 복안은 없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 IMF 경제위기로 돈을 번 사람들을 통칭해서 강남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그 위기 한가운데에서 “이대로!” 라고 외치며 건배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왜곡이나 과장 없이, 정말로 그랬다. 새로운 정권이 경제적으로 숨통을 조여오자 은근히 IMF 같은 경제위기가 한 번 더 와서, 정치적 문제도 풀고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기업인이 많았다.
  •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은 한 가지를 알 수 있지만, 한 가지만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은 그닥 많지 않다.
  • “비정규직 문제 해결, 내 선거공약이었죠?” “네, 맞습니다.” 대통령의 옆에 서 있던 장관 이원호가 짧게 대답했다. “이건 산업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젠가요?” “우리 부처 소관이 아닙니다만, 여긴 법원 판결이 이미 난 상황입니다. 오너가 판단하면 될 문제입니다.”
  • “내가 바뀐 게 아니라, 시대가 바뀐 거지. 시민들이 직접 경제에 참여한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한국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살아남겠나. 미국, 일본, 프랑스 심지어는 중국까지 경제 엘리트들이 확실하게 국정을 주도하면서 선택과 집중으로 국가를 끌어나가는거 아닌가? 정치 민주화는 찬성하고, 경제 민주화도 찬성해. 그러나 지금 대통령이 생각하는, 그런 졸렬한 방식은 반대야.”
  • 거의 비슷한 시각에 1차 자금 100억 달러가 100개의 다양한 명목의, 케이맨 제도 어딘가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회사들로 입금이 되엇다. 12조 원. 대통령의 비자금이라고 할 수도 있고, 통치자금이라고 할 수도 있고, 경제 민주화를 위한 전투자금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 시민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10원도 좋고 100원도 좋습니다. 지난밤, 우리는 50조 원의 외부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이제 한 번만 더 막으면 원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저, 경제수석에게 딱 하루만 돈을 빌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