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을 쓰기 시작하고, 책을 많이 읽게 됐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책을 고르는 눈도 조금씩 올라갔고, 책을 평가하는 눈도 높아졌다. 어쩔 수 없다. 많은 책을 읽다 보니 더 좋은 책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기대가 컸던 것도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지 않은가? SNS 몇몇 친구도 이 책을 읽었다고 한 것 같고, 온라인 서점에서도 꽤 자주 본 것 같다. 저자 홍춘욱 박사는 이름도 들어봤고, 어쨌든 기대가 컸다.

내 눈이 높아진 것과 기대가 큰 탓이라 생각하자. 그래도 별점 한 개는 너무 낮은 것 같은가? 그럼 책이 별로였나보지 뭐.

얕은 너무나도 얕은 이야기

별점 한 개는 오랜만인 것 같았는데, 지난 2월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별점 한 개를 줬더라. 시답잖은 사랑 이야기는 별점 한 개를 줘 마땅하다. 이 책 <돈의 역사>도 별점 한 개를 줬으니, 내 별점 기준으로만 보면 동급이다.

생각해보자. 이 책은 352페이지다. 그리고 50대 사건이 담겨있다. 표지와 목차, 그림, 도비라 등 여러 페이지가 있지만, 그래도 넉넉히 350페이지를 내용이라고 선심 써보자. 그리고 50가지 이야기를 여기에 녹여보자. 7페이지. 그래, 한 이야기 당 7페이지다. 세상에, 무려 50대 사건이라 칭하더니만 이야기를 7페이지 내 끝낸다. 7장도 아니고, 7쪽이다.

말을 하다 마는 것은 짜증을 불러온다. 그것도 거창한 제목을 붙여두고 말이다. 이 정도 길이는 공짜로 매주 연재되는 네이버 웹툰에서도 욕먹는 길이다.

황당한 것은 이야기를 마칠 때마다 참고자료를 적어두는데, <사피엔스> 등 명서부터 보고서, 기사 따위도 있다. 심지어 저자 자신의 저서를 넣었는데, 무슨 뜻인가 싶다.

길이는 잘 요약했다 치고, 참고도서는 잘 발췌했다 치자. 그런데 말을 하다 마는 건 뭔가? 67페이지에 나오는 ‘스코틀랜드의 사기꾼 존 로와 프랑스의 몰락’이란 이야기가 있다. (제목이 다 이런 식이다.)

이 이야기는 67페이지에서 시작해 72페이지에서 끝나는데, 그나마도 첫 페이지는 절반이 제목이고, 마지막 페이지는 절반이 없다. 한 페이지는 도표이고, 1/3 페이지는 존 로 사진이다. 내가 화가 났던 것은 존 로가 사기꾼이라고 제목에 적어두고, 존 로가 무슨 사기를 쳤는지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이때부터 이 책을 읽는데 짜증이 났다.

2019년 11월 27일 발행한 이 책을 중고서점에서 샀는데, 당시 무려 62쇄다. 이 말도 안 되는 베스트셀러를 보며, 한때 소프트웨어 전문지를 출판했던 기자로서 굉장한 배신감이 들었다. 앞 몇 이야기는 ‘대 프랑스동맹’, ‘반도전쟁’, ‘독립전쟁’ 등 이야기에서 풀지 못한 굵은 사건을 각주로 풀며 독자를 배려했다. 하지만 이는 몇 이야기 지나자 사라졌다. 즉, 필자는 이야기를 자세히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나는 이 책을 4.5시간 동안 읽었지만, 뭘 읽었는지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무려,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를 읽었는데 말이다.

출판사와 편집자의 역량

소프트웨어 전문지 6권에 참여한 기자로서 이 책의 편집 역량에 큰 아쉬움을 표한다. 내 짧은 업력에도 아쉬움을 표하는 이유는 책을 만들어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열심히 편집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왜 프랑스는 2인자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돈이 없고 신용도가 바닥 수준이었던 탓이 크다. 프랑스 왕실은 1559년, 1598년, 1634년, 1648년, 1661년, 1698년, 1714년, 1721년, 1759년, 1770년, 1788년에 채무의 전부 혹은 일부를 이행하지 않았다.

위 문장에서 연도가 잘 읽히는가? 이런 연도는 별도 박스나, 도표로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연도가 중요하지 않다면, 1559년에서 1788년에 이르기까지 11번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적으면 될 일이다. 여태 책을 읽으며 필자가 중요시 생각하지 않는 연도를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다 나열한 것은 처음 봤다. 필자 탓도 있지만, 이건 편집 레벨에서 수정될 수 있다.

경제학에서 이런 현상을 ‘수확체감’이라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1마지기의 토지에 곡물을 심을 경우, 1명이 일할 때보다는 2명이 일할 때 더 많은 수확량을 거둘 것이다. 그러나 2명이 3명이 되고, 3명이 5명으로 늘어나는 순간 추가적인 생산량은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책 분야 특성상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어가 많이 나온다. 이는 역시 별도 박스로 빼 독자가 편히 읽을 수 있도록 편집할 수 있다. 또는 도서 앞부분 각주처럼 각주로 빼도 된다. 역시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전반적인 편집 스타일도 너무 단순하다. 도표는 모두 한 페이지를 할애하며, 내용 사이에 삽입됐는데, 한 페이지 자체를 모두 할애하는 바람에 적절한 위치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 맥을 끊는다.

삽화 출처도 없다. 꽤 많은 삽화를 넣었는데, 대부분 출처가 없다. 그나마 도표는 출처가 있는데, 삽화는 왜 없을까? 역시 의문이다.

책을 읽던 중 이 책 출판사에 관해 알게 됐다. 그래서 더 부정적인 생각을 느끼며 읽은 것도 있지만, 알기 전에도 이 책은 베스트셀러로 적절해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저자

사학과 학사를 졸업한 뒤 경제학 석사와 경영학 박사를 딴 저자다. 애널리스트로 활약하고, 많은 책을 썼다. 그런데 이 책은 누구를 타깃으로 하는지 모르겠다.

경제에 무지한 초급자를 대상으로 했다면, 실패했다. 그게 나인데, 위에서 말했듯 무척 실망스러웠다. 중급자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면 역시 깊이가 얕다. 그렇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했을까?

저자 정도 되는 학력과 커리어에 이 정도 블로그 모음집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 책으로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명성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마무리

아쉽다. 금융을 공부하기로 하고 집어 든 책이 이 책이라니. 내 귀한 평일 아침을 쪼개 읽었건만,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번역서를 읽겠다 다짐하게 된다.

무척 아쉬울 따름이다.

읽게 된 동기

금융을 공부하기로 마음 먹고, 베스트셀러를 한 권 샀다.

한줄평 ★☆☆☆☆

얕은 깊이의 이야기를 50개 묶은 블로그 모음집

인상 깊은 문구

  • 결국 시민들은 1688년 명예혁명을 일으켜 제임스 2세를 내쫓았다. 영국 의회는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 윌리엄을 새로운 국왕으로 앉힌 뒤, 그에게서 새로운 세금을 걷을 때 의회에 동의를 얻을 것과 국민의 재산을 자의적으로 강탈하지 않을 것을 약속 받았다. 그 후 영국 정부는 단 한 차례도 이자와 원금의 지급을 연체하지 않았다. 국왕이 자의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거나 채권 이자의 지급을 연체할 경우 곧바로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 주식회사란 것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사업을 시작할 때 ‘인생을 거는 수준의 결의’가 필요했다. 일이 안 풀려 망하게 될 경우 사업으로 인한 부채를 끝까지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지면서 ‘무한책임’ 원칙이 사업에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특히 대항해시대가 열린 후, 1~2년 단위가 아닌, 수년 혹은 수십 년에 걸친 사업을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면서 ‘유한책임’을 기본으로 오랫동안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 즉 주식회사에 대한 필요성이 거론되었다.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자기가 투자했던 지분만 포기하면 더 이상 책임을 추궁 당하지 않는 게 ‘유한책임’ 제도다.
  • 네덜란드 사람들은 다른 유럽 나라 사람들과 달리 직접 개척하거나 간척한 땅을 자유롭게 사고팔았다. 귀족이 소유한 땅은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해당되는 홀란트 주 기준으로, 단 5%에 불과했다.
  • 동인도회사 암스테르담 사무소의 초대 주주로 등록한 사람이 1,143명에 이를 정도여서 거대한 자본금을 쉽게 모을 수 있었다.
  •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약 100년 동안, 스페인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행운을 경험했다.
  • 네덜란드는 1959년 북해에서 대규모 가스전을 발견하였고, 이후 천연가스 수출로 매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런데 수출 대금이 유입되자 네덜란드 화폐 단위인 굴덴화의 가치가 크게 상승해 1970년대 들어 천연가스를 제외한 수출업체들은 해외에서 경쟁력을 잃게 된다. 이렇듯 자원이 개발된 후 오히려 해당 국가의 경제가 침체되는 현상을 ‘네덜란드 병’이라고 지칭한다.
  • 금은 매우 잘 늘어나는 물질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은 두드려서 1/272,000인치의 얇기로 만들 수 있고, 잡아 늘려서 가는실처럼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작게 조각 내어 거래하기도 편했고, 다양한 장신구를 만드는 데도 사용되었다.
  • 화폐환상이란, 임금이나 소득의 실질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았는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자신의 임금이나 소득이 늘어났다고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한다.
  • 1497~1499년 희망봉을 돌아 인도까지의 항해에 성공했던 포르투갈 항해자 바스코 다 가마는 4척의 배로 떠나 단 2척으로 돌아오는 힘든 여정을 거치긴 했지만, 투자자에게 무려 원금의 60배에 달하는 배당금을 주었다. 누구나 끌릴 만한 성과였다.
  • 메디치 가문은 14세기 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로마 교황청의 외환거래를 전담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 시 당국은 네덜란드 연합 주에서 유통된 다양한 통화가 상인들에게 실무적인 문제를 초래하자 그에 대한 해법으로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을 세웠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서로 다른 조폐국이 14군데나 있었고, 유통된 외국 통화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상인들이 표준화된 통화로 예금 구좌를 개설하도록 하여 수표와 자동이체 시스템 등 오늘날 당연시 여겨지는 제도를 실행했다. 이러한 장치들 덕분에 상업 거래는 점차 실물 주화 없이도 가능해졌다.
  • 명예혁명으로 국왕 자리에 오른 윌리엄 3세는 1694년 영란은행의 설립을 허가했다. 영란은행은 설립 당시 정부에 대한 대출을 대가로 화폐 발행권을 부여받았다.
  • 이는 매우 가치 있는 특권이었다. 은행권은 발행한 은행의 입장에는 부채일지 모르지만, 이자 지급이 필요 없는 데다 발행한 은행권에 대해 금과 은의 형태로 100% 지급 준비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막대한 주조차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란은행은 정부와의 특수한 관계로 인해 권한이 더욱 커졌고, 1844년에는 필 조례라 불리는 은행법에 의해 은행권 발행을 독점하면서 명실상부한 중앙은행이 되었다.
  • 왜 프랑스는 2인자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돈이 없고 신용도가 바닥 수준이었던 탓이 크다. 프랑스 왕실은 1559년, 1598년, 1634년, 1648년, 1661년, 1698년, 1714년, 1721년, 1759년, 1770년, 1788년에 채무의 전부 혹은 일부를 이행하지 않았다.
  • 통화 공급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움직이는데, 하나는 정부의 통화 공급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한 ‘예금-대출’ 경로다.
  • 인구가 감소해야만 1인당 소득이 늘어나는 현상을 ‘맬서스 함정’이라고 한다.
  • 경제학에서 이런 현상을 ‘수확체감’이라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1마지기의 토지에 곡물을 심을 경우, 1명이 일할 때보다는 2명이 일할 때 더 많은 수확량을 거둘 것이다. 그러나 2명이 3명이 되고, 3명이 5명으로 늘어나는 순간 추가적인 생산량은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 사람의 노동력을 줄이고 기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이 산업혁명이라면, 근면혁명은 값싼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해 경제의 외형을 키우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 1839년 중국의 아편 수입량은 1천만 명의 중독자가 사용할 정도였고, 20세기 초에는 중국에 약 4천만 명의 중독자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은이 유출되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1801년에서 1826년 사이에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7,470만 달러가, 1827년 사이에 1억 3,370만 달러가 유출된 것으로 본다.
  • 미국의 경제학자 포겔과 앵거만은 남북전쟁 직전인 1860년 미국의 지역별 농업 생산성을 비교했는데, 노예 수가 압도적이던 남부가 북부보다 생산성이 무려 35%나 높았다. 특히 노예를 한 명도 쓰지 않은 이른바 ‘자유민의 농장’은 북부 농장과 별 차이가 없었으나, 노예를 16~50명 정도 고용한 이른바 ‘중간 규모 노예 공장’은 북부에 비해 생산성이 무려 58%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금융 시장만큼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곳이 없다 보니 예금이 풍족한 곳은 더욱 돈이 넘쳐 흐르고, 예금이 부족한 나라는 한없이 돈이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은행에 100억 원이라는 목돈이 예치되어 있다면 이를 다양한 곳에 대출해줄 수 있다. 그러나 수백만 원 혹은 수천만 원의 돈이 집집마다 쪼개져 있다면, 이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 런던 금융 시장이 가진 장점은 ‘규모의 경제’뿐만이 아니었다. 안정적으로 ‘금본위제도’를 유지하는 데 성공하여 영국 파운드에 대한 쇤뢰가 대단히 높아져 전 세계 투자자들이 자국 돈보다 파운드를 선호하는, 이른바 ‘기축통화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 모든 참전국은 전쟁 동안 꾸준히 전쟁 채권을 발행하면서, 국채를 전혀 사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국채 구입이야말로 애국적 행위라고 설득했다. 반면, 연합국은 런던이나 뉴욕 같은 금융 시장이 형성된 곳에서 채권을 발행했다.
  • 1920년 이후 독일에서는 월간 기준으로 물가가 50% 이상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를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르는데, 최근 짐바브웨,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했던 사건 또한 이것이다. 하이퍼 인플레가 발생했다는 것은 지폐, 다시 말해 중앙은행권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할 정도의 주가 폭락을 겪을 때, ‘마진콜’이 발생한다. 마진콜이란, 말 그대로 ‘추가적인 담보 주식이나 현금을 예치하지 않는 한, 강제로 보유 주식을 매도해 대출을 회수하겠다’는 통보 전화를 의미한다.
  • 이런 일이 1929년 미국 주식시장에서 대규모로 벌어졌다. 1924년 말 레버리지 투자 규모는 22.3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1927년 말에는 44.3억 달러로, 그리고 1929년 10월 4일 대공황 직전에는 85.0억 달러로 불어났다.
  • 1933년 루스벨트 행정부가 출범해 븜본위제를 폐지하고, ‘예금보험’ 제도를 비롯한 대대적인 금융개혁을 시작하면서 금융 위기는 진정되었다.
  • 금본위제의 족쇄에서 풀려난 중앙은행은 예전보다 훨씬 더 과감하게 정책을 취할 여력이 생겼다. 1980년처럼 금리를 20%까지 인상할 수도 있고, 1983년처럼 3%대까지 금리를 인하할 수도 있다.
  •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이유는 결국 자본을 조달하기 위함인데, 회사 한 주의 기대수익률은 25%인 반면, 당시 일본의 은행 금리는 2.5%에 불과하니 주식을 상장하는 것보다 은행에서 대출받는 게 낫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식시장이 침체되어 상장 기업들의 PER이 낮을 때에는 기업의 증자나 상장이 크게 줄어든다.
  • 1997년 외환위기가 왜 발생했을까? 필자는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면서 금융자유화를 추진한 우리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