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다. 이제 각 조직은 마주하지 않고 일해야 한다. 속도는 물론 결과도 내야 하는데 마주할 수 없다니, 그야말로 새로운 업무 시대다. <노션으로 애자일 조직 만들기> 시리즈에서는 내가 CODEF 데이터랩 개발자로 일하며 도입한 애자일 조직에 관해 소개한다.
[편집자주]

SI 개발자, 프리랜서 개발자, 스타트업 대표, 언론사 기자 등 여러 환경에서 여러 포지션을 경험한 뒤 다시 개발자로 돌아왔다. 개발자로 돌아온 이유와 합류 후기는 이전 칼럼으로 대체한다.

다양한 이력과 스타트업 특성 때문에 CODEF에 합류한 뒤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 많이 보였다. 개발자로 합류했지만, 서비스 오픈을 위해 테크니컬 라이터 역할과 QA 역할을 잠시 맡았던 것도 한몫했다.

CODEF는 은행, 카드사, 공공 등 데이터를 API로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중계 서비스다. 이 서비스를 위해 API 개발가이드가 필요했고, 홈페이지 오픈을 위해 QA가 필요했다. 멤버 중 상대적으로 문서에 익숙한 내가 API 개발가이드 초안을 만들게 됐고, 당장 코드레벨에 투입하기 보단 QA로서 팀에 기여하는건 팀 적응과 효율 측면에서 합리적인 접근이었다.

이렇게 업무를 진행하다 보니, 팀 내 여러 포지션과 협업을 해야 했다. API 개발가이드를 위해 개발자에게 API 스펙을 물어야 했고, 개발자 관점에서 보기 편한 화면을 위해 개발자는 물론 퍼블리셔와 논의해야 했다. 좀 더 나은 화면을 위해 디자이너, 기획자와 협업도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개발자, 퍼블리셔, 디자이너, 기획자 등이 협업하는데 아쉬움이 있었다. 신생 팀이다 보니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때문에 강력히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서로를 존중하며 맞춰가고 있었다. 나는 속도를 위해 조금은 강한 주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내가 잘 활용할 수 있는 노션을 제안했다.

이 글에서는 신생팀이 겪는 협업 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협업 도구 제안, 그리고 노션을 선택한 이유에 관해 소개한다.

협업, 도구를 합쳐라.

앞서 내가 경험한 환경과 사용한 도구에 관해 설명했다. 협업에 있어 어떤 방법론이나 도구가 무조건 좋을 수는 없다. 각 환경에 맞게 적절한 것을 사용하는 게 시행착오와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도구를 줄이는 일이었다. CODEF는 뛰어난 멤버를 보유한 스타트업이고, 각자 환경에 맞는 도구를 선택해 능동적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각자 환경에 맞는 도구를 선택하다 보니, 여러 도구를 사용했고 이는 신규 멤버에겐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당시 CODEF가 사용했던 도구는 이렇다.

동기성 도구 : 슬랙, 아지트, 카카오톡 등

비동기성 도구 : 나스 오피스, 파일 서버, 맨티스, 업무가이드 웹페이지, 재플린, 구글 드라이브 등

다시 말하지만, CODEF는 뛰어난 멤버들이 일하고 있다. 내가 협업 관점에서 개선하려고 했던 건 멤버들이 도구 자체를 전혀 활용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각자 환경에 맞는 도구를 잘 활용하고 있어서 문제였다.

협업은 각자 환경에서 퍼포먼스를 더 끌어올리는 일이 아니다. 팀 관점에서 비용을 낮추고 중복을 제거하는 일이다. 즉, 협업 도구를 활용했을 때 오히려 각자 퍼포먼스가 줄어들 수도 있다.

때문에 각자 도구를 잘 활용하고 있는 환경에서는 협업 도구를 개선하는 과정이 오히려 더 불편해지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각자 잘 활용하는 도구를 하나로 합치는 일이었다.

2019년 7월에 쓴 노션 제안서

당시 CODEF가 사용했던 도구를 보면, 기능이 겹치는 도구가 많았다. 각 포지션에서 필요에 의해 도입한 도구는 도입 당시엔 적절했던 도구다. 하지만 멤버가 늘어나고 여러 포지션이 생기며 중복된 것이다.

바꾸고 싶은 도구가 많았지만, 이미 업무를 위해 적응된 도구를 한 번에 없애기란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사내 위키’였다.

위키(Wiki)는 협업으로 내용과 구조를 수정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말한다. 10개에 가까운 도구를 각자 활용하고 있는 환경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이 모든 도구를 하나로 합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 도구를 노션(Notion)으로 선택했다.

노션, 도구를 품을 수 있는 도구

모든 비즈니스가 그렇듯, 시간은 곧 돈이다. 오픈을 앞둔 스타트업에 고작 도구를 변경하기 위해 시간을 빼앗는 건 잘못된 선택이다. 때문에 각 도구 활용 경험을 해치지 않으며 각 도구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노션은 내가 2018년부터 사용한 도구다. 여러 활용 방법에 관해 알고 있지만,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사내 위키였다.

서버 IP부터 사내 제규정집, 깃 레파지토리 주소, 휴가 신청, 개발팀 발표 자료, 서비스 IR 자료 등 모든 자료가 파편화 돼 있었다. 처음 팀에 합류했을 때 혼란스러움을 여전히 기억할 정도다.

이 자료들을 한 번에 노션으로 옮길 수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비즈니스에서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움직일 경우 팀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때문에 각 도구 링크와 소개, 로그인 정보 등을 노션에 모았다. 모두가 동시 편집이 가능한 노션 덕분에 빠르고 쉽게 각자 사용하는 도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이 작업만으로도 신규 멤버가 팀이 사용하는 도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됐다. 어째서 이 간단한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답할 수 있다. 스타트업이 속도를 내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각자 맡은 일을 잘하면 됐던 시기였다.

하지만 내가 합류해서 API 개발가이드를 만들고, QA를 하는 과정에서는 포지션 사이 협업이 필요해졌다. 즉, 필요할 때 진행한 것뿐이다. 결코 내가 기존 멤버들보다 뛰어나서 그들이 몰랐던 것을 도입한 게 아니다. 그저 시기가 맞았을 뿐이다.

협업 도구 도입은 천천히

노션은 굉장히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말 그대로 올인원이다. 하지만 노션을 도입하는 이유로 다양한 기능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도구를 사용하는 팀에게 기능이 많은 도구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또한 노션이 제공하는 기능은 이미 각 도구를 보완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이 경우 노션은 팀에 스트레스가 될 뿐이다.

때문에 노션을 단지 ‘사내위키’로 포장해서 제안했다. 그렇게 모든 멤버가 노션에 가입했고, 내 개인 워크스페이스에 초대해 정보를 쌓았다. 알게 모르게 멤버들은 노션을 켰고, 정보를 확인하고, 수정했다.

다시 말하지만, 도구를 도입하는데 있어 기능으로 어필해서는 안 된다. 도구는 비즈니스를 돕는 역할, 딱 그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게 노션에 각 정보를 저장하는 ‘사내 위키’ 정도로 사용한 지 몇 달이 흘렀고, 나는 서서히 팀을 노션을 활용한 애자일 조직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마무리

이미 각 도구를 잘 활용하고 있는 팀이었던 CODEF에 노션을 ‘사내 위키’로 도입했다. 이제 각 정보를 간단히 기록하고, 확인하고, 수정하게 됐다. 각자가 활용하는 도구를 계속 활용하면서 각 도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도구가 성격적으로 겹친다는 것을 멤버들이 이해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중복되는 도구는 없앴다. 내가 제안한 것은 각 도구와 로그인 정보를 한데 모은 것뿐인데 말이다.

멤버들은 노션을 단지 각 도구 접속 정보를 활용하는 정도로 사용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도구에 관한 부담감을 없앴다. 이제 멤버들은 노션을 다 설치했고, 가입해서 사용했다.

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노션으로 애자일 조직을 만든 CODEF에 관해 설명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