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고작 서른즘 돼서 앓는 소리 하는 선배들이 우스웠다. 그래봤자 몇 살 차이 안 나면서 ‘너도 내 나이 돼 봐라’, ‘하루하루가 다르다’, ‘서른 넘으면 끝이야’ 등 왜 저리 티를 낼까 싶었다. 그렇게 내 나이도 서른이 넘어 한, 두해가 지나자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이 됐다. 아니,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네.

똑같이 먹어도 몸이 더 무겁다. 똑같이 마셔도 숙취가 더 오래간다. 똑같이 일해도 더 피곤한 것 같고, 똑같이 스트레스받아도 더 힘들다. 죽는소리 하고 싶지 않다만, 미묘한 차이가 모여 ‘어라?’ 하게 된다. 그래, 이게 지속하면 정말 달라지겠다 싶다.

나는 나름 관리를 한 편이다. 5년여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담배는 입에 대지 않았으며, 술도 즐겨하지 않는다. 수면 시간은 규칙적이며, 내 한 몸 뉘일 적절한 집에 산다. 9년여 사회생활 중 어느새 한 분야에서만 8년여 경험치를 쌓은 만큼 꽤 능숙해진 분야도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 큰 스트레스가 없다. 그럼에도 작은 차이를 느낀다.

이 미묘한 차이는 잠시 해이해졌을 때 더 커진다. 좀 더 먹었거나, 운동을 잠시 멈췄거나, 조금 더 마시면 그 후유증이 오래간다. 정확히는 정상 궤도로 올라서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게 무서운 게, 정상 궤도로 올라서는 시간이 하루라면 나는 이틀을 놓치게 되는 셈이다. 정상 궤도였다면 올라서는 그동안 앞서갔을 것이고, 다시 따라가는 순간 정상 궤도였던 나는 또 앞서간다. 결국 결코 따라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과거 하루, 이틀이면 돌아왔던 시기가 일주일, 이 주일로 늘어나는 것이다. 이게 몇 차례 반복되면 1년간 몇 달을 뒤처지게 된다. 문제는 정상 궤도에 오르는 시간 자체가 더 늦춰진다는 것이다.

멍청해진 뇌

나는 멍청함을 꽤 빨리 느끼는 편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생각보다 명석했던 걸까 하는 뒤늦은 의심도 해본다. 원래 컴퓨터도 메모리를 증설할 땐 모르다가, 제거할 때 느끼는 법이니까.

나는 사람의 특성을 꽤 잘 잡아내고, 기억하는 편이다. 어떤 인물을 떠올리면 그 사람의 특성이 저절로 떠오른다. 외형은 어떤지, 호기심이 많은지, 지적 유희를 추구하는지, 어떤 포지션에 있으며, 어떤 업계에 있는지 등 대략적인 프로필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마치 온라인 게임 상태 창처럼 말이다.

그런데 종종 상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름이 세자였던 것 같은데, 당최 성이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또 있다.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았고, 머릿속 떠오른 그 시점에 나눈 대화인 것 같다만 어떤 대화였는지 요약이 안 된다. 간략히 내용을 전달한 뒤 피드백을 받고 싶은데, 내용 정리가 안 되니 ‘엄… 엄…’ 하는 감탄사 따위만 내뱉는다.

인지 과부하의 잠재적 요인은 많지만 스웰러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관련 없는 문제의 해결’과 ‘주의력 분산’이다. 이는 정보 전달 도구로서 인터넷의 두 가지 핵심 특성이기도 하다.

내가 내 뇌를 사용하는데, 내가 내 리소스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 나는 내가 멍청해졌다 느낀다.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거나, 생각이 빠르게 정리되지 않는 것은 일시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내가 우려되는 것은 생각의 깊이가 얕아지는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끊임없이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우리 뇌를 멀티태스킹에 맞도록 더욱 민첩하게 만들지만 멀티태스킹을 가능케 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깊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사실상 저해하고 있다.

남들과 다르기 위해선 새로움을 추구하거나, 깊이를 추구해야 한다. 나는 어느 분야도 특출나지 않기에 적시에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는 편인데, 내 뇌가 적시에 활동하지 못하면 그저 그런 캐릭터에 머물고 만다.

하지만, 나는 앞선 선배들처럼 힘없는 소리를 하고 싶진 않았다. 멍청한 뇌를 덜 멍청하게 유지하기 위한 루틴을 만들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새 루틴으로 읽은 첫 도서다. 매일 아침 30분씩 책을 읽었고, 12일에 걸쳐 350페이지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독서가 가능하도록 스스로를 재배치하는 법을 이미 배운 뇌는 새로운 생각을 더 잘 받아들인다.

나는 읽을거리를 꽤 좋아한다. 책은 물론이고, 정말 많은 아티클을 읽는다. 쓰는 것 역시 좋아하는데, 말하는 것에 비하면 아니다. 이과에서 공대를 다녔고 개발자가 됐지만, 문과 계열도 꽤 잘 맞았을 것 같단 생각도 든다. 특히 언어를 활용한 업무는 내 무기 중 하나다.

정제된 문장을 보는 것은 내 즐거운 취미다. 온라인 아티클을 볼 때와 출판물을 볼 때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생각하긴 했다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펼치는 논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검색엔진은 종종 우리가 그때그때 찾는 내용과 깊이 연관 있는 문서의 일부분이나 문장의 몇몇 단어를 보여주며 우리의 관심을 끌지만 이 저작물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만한 근거는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종합하면, 주로 온라인에서 업무를 하는 내가 점점 멍청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새 루틴으로 매일 같이 출판물을 읽는 것은 멍청함을 늦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내 뇌는 멍청해지고 있으며, 나는 이를 늦추기 위한 방어를 할 뿐이다.

멍청함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점점 멍청해지는 내 뇌를 떠올리며 우울했지만, 바꿔 생각하면 편안해질 수 있다. 멍청해지는 것은 모든 사람이 죽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 멍청함의 기준을 재정의해야 한다. 어떤 연산이나 기억력을 빠르게 하는 물리적 똑똑함은 서서히 떨어질지 몰라도, 전체를 바라보는 그러니까 ‘지혜’ 따위의 혜안은 멍청함을 확연히 보완할지도 모른다.

웹에서 검색 할 때는 숲을 보지 못한다. 심지어 나무조차도 보지 못한다. 잔가지와 나뭇잎만 볼 뿐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저자 니콜라스 카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는 온라인에 빠지는 게 위험하다. 갈수록 떨어지는 뇌의 물리적 능력을 전체를 보는 시야로 보완해야 하거늘, 온라인이 이 능력을 막는다면 인간은 그저 더 멍청해지는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늘 새로운 답을 찾아왔다. 심지어 게으른 자들이 현대 과학을 만들었다고도 하지 않는가? 게으른 개발자들은 편하기 위해 기능을 지속해서 업데이트 한다. 새로운 세상을 제시한 게으름처럼, 숲을 바라보며 지혜를 얻었던 인간들은 또 다른 것으로 지혜를 이겨낼지도 모른다.

한때 목적을 위한 수단이자 진중한 학습이 요구되는 정보를 가려내는 방식이었던 훑어보기는 목적 그 자체가, 모든 종류의 정보를 이해하고 수집하는 데 있어 선호하는 방식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숲을 바라보려는 노력 자체가 이미 구식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지인의 휴대폰 번호를 줄줄 외우는 사람이 오히려 멍청해 보이는 지금처럼 말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지식을 함양하는 존재에서 전자 데이터라는 숲의 사냥꾼이나 수집가로 진화하고 있다.

모두가 멍청해진다 해도, 그중 누군가는 가장 멍청하고, 가장 덜 멍청할 것이다. 이념이 스펙트럼의 문제인 것처럼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 누군가는 새로운 해답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덜 멍청해지기 위한 발악은 의미 없을지 모른다. 온라인이 피할 수 없는 저주라면, 저주 속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찾는 게 해답일지도 모른다.

기술은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우리의 자연적 능력을 보완하거나 극대화시키는 방식에 따른다. 쟁기, 바늘 전투기 등을 아우르는 한 무리는 우리의 체력, 민첩성 또는 복원력을 키워준다. 두 번째 무리는 현미경, 확대경, 가이거 계수기 등으로 우리 감각을 더욱 민감하게 만든다. 저수지, 피임약, 유전자 변형 옥수수 등의 기술을 아우르는 세 번째 무리는 우리가 필요한 욕망에 더 충실할 수 있도록 자연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지도와 시계는 네 번째 무리에 포함된다. 의미가 약간 다르지만 ‘지적 기술’이라는 단어를 빌리면 그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 이는 정신적 능력을 확장시키거나 또는 지원하는 데 사용되는 모든 도구들, 즉 정보를 찾고 분류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노하우와 지식을 나누기 위해, 측정하고 계산하기 위해, 우리 기억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들을 망라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출판한 지 10년이 넘은 책이다. 10년 뒤 온라인의 저주에서 훌륭히 생존한 인류로서 10년 전 지식인의 우려를 보는 것은 꽤 즐거웠다.

그들이 우려했던 세상에 최강자는 누가 됐는지, 그들이 우려했던 문제는 어떻게 풀렸는지, 그들이 우려한 세상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런데, 아무리 똑똑해도 어떤 기준에선 멍청한 거라면. 덜 멍청해지기 위한 발악이 의미 있을까?

멍청함을 늦추는 방법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는 꽤 흥미로웠다. 모바일로 전염병을 퇴치할 시대가 오는 마당에 온라인을 부정하는 이야기는 개발자인 내게 전혀 색다른 시야였다.

제로스 측 발표자는 소프트웨어 코드를 짜고 있던 창으로부터 새로 도착한 이메일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는 또 다른 창으로 옮겨가 클릭했다. 그는 재빨리 메시지를 읽고 답장을 한 후 다시 프로그램을 짜던 창으로 가볍게 넘어와 계속 코드를 짰다. 관객 중 일부는 이 새로운 체계에 환호했다. 그들은 이 체계가 사람들이 컴퓨터를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촉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한발 물러났다. “세상에, 왜 프로그램을 짜다가 이메일을 확인하느라 작업에 방해를 받고 산만해지려는 거죠?”라며 참석했던 과학자 한 명은 화가 난 듯 주장했다.

더 멀리 가보면, 글쓰기 아니 문자 자체를 부정했던 과거 철학자들의 의견이 꽤 깊은 생각을 불러왔다. 그들이 우려했던 문자와 글쓰기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10년 전 그들이 우려했던 온라인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바꿔보면 현재 우리가 우려하는 무엇이 10년 뒤, 5년 뒤 어떤 결과가 될지.

소크라테스는 “망각하는 옛날과 달리 기억이 가능하다”며,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잡아내는 데 따른 실용적인 이익을 인정하지만 알파벳이라는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인간의 사고를 부정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앞으로 또 어떤 것을 우려하고, 어떤 문제를 만들고, 어떤 결과로 확장할지. 어차피 멍청한 우리가 더 멍청해진, 그러나 더 강력해진 다음 인류를 만날 거라면. 그래서 우리는 뭘 준비해야 할지.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복잡한 업무에 집중하는 능력은 잃어버릴지 모르나 그에 대한 보상으로 6개의 다른 미디어를 통해 34건의 대화에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데 멍청한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은 또 무엇일지.

마무리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이라 한다만, 생각에 지배받는 걸 생각하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왜,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을 때 있지 않은가? 내 기억이든, 누구의 기억이든 말이다. 생각하는 게 힘이 아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게 힘이라면 글쎄. 생각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게 꼭 잘못된 길일까?

아니, 생각하기 위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 생각하기 위해 생각하지 않기 위한 것을 고를 수 있다면. 생각하는 것을 위해 생각하지 않을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읽게 된 동기

STEW 멤버가 재밌다며 빌려줬다. 니콜라스 카는 꽤 유명한 작가이고, 이 책 역시 유명한 책이기에 마음 편히 펼쳤다.

한줄평 ★★★☆☆

내 뇌가 자주 멍청해지는 이유를 알게됐다.

인상 깊은 문구

  • 한쪽에서는 풍요로운 에덴동산으로 보이는 곳이 다른 쪽에서는 광활한 쓰레기장으로 보이는 셈이다.
  •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가 어설픈 솜씨로 나의 뇌를 손본 것은 물론 신경 회로를 재배치하고 기억을 다시 프로그래밍 한 것 같은 불편한 느낌에 시달렸다.
  • 미디어는 생각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생각의 과정도 형성한다. 또한 인터넷은 나의 집중력과 사색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
  • 수만 권의 책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당시 나는 오늘날 ‘정보 과부하’라 부르는 증상과 같은 불안감을 느껴본 기억이 없다. 그 수많은 책들이 보여주는 과묵함 덕에, 또 이 책들은 자신들을 정확히 필요로 하는 독자가 다가와 서고 내 고정석에서 자신들을 빼내줄 때까지 수년 또는 수십 년을 기꺼이 기다릴 것이라는 점에서 나는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 내가 사용한 AOL 서비스는 일주일에 사용 시간이 다섯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AOL 계정을 가진 소수의 친구들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몇몇 게시판 글을 읽고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기사를 검색하기 위해 한정된 그 시간을 소중하게 쪼개가며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다.
  • 나의 뇌는 굶주려 있었다. 뇌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보가 제공되기를 바랐고,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질수록 더 허기를 느끼게 된 것이다.
  • 니체는 “우리의 글쓰기용 도구는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한몫하지”라고 답했다.
  • 기계에 대한 비유는 20세기 중반 ‘생각하는 기계’라고 불리는 디지털 컴퓨터가 등장할 즈음에는 더욱 확대, 강화되었다. 바로 이때부터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우리 뇌의 회로와 심지어 행동까지도 컴퓨터 칩의 실리콘 기판에 새겨진 작은 회로들처럼 내장된 것으로 빗대어 말하기 시작했다.
  • 머제니치는 실험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 외과용 칼로 동물 손에 상처를 내 감각신경을 절단했다. 그는 주변부 신경조직이 상처를 입었을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고 또 이를 어떻게 치료하게 하는지 알아내고자 했다. 그가 발견한 사실은 실로 놀라웠다. 우너숭이 손의 신경은 예상대로 마구잡이로 자라났으며 뇌 역시 혼란에 빠졌다.
  • 신호는 꼬였고 뇌 지도는 뒤죽박죽되었다. 하지만 몇 달 후 머제니치가 동일한 감각 실험을 실시하면서 이 같은 정신적 혼란은 완전히 사라졌다. 손의 신경에서 발생한 재배치와 일치하도록 동물의 신경 통로 역시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 제임스 올즈의 말처럼 성인의 뇌는 단순히 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잘 변한다. 또는 머제니치가 말했듯이 대대적으로 변한다. 뉴런은 언제나 낡은 것들과 연결을 끊고 새로운 것을 취하며, 항상 새로운 신경세포가 만들어진다. 올즈의 관찰에 따르면 “뇌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며 과거 방식을 바꿔 스스로를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어떤 사람이 실명을 할 경우 시각적 자극을 처리하던 뇌의 부분, 즉 시각 피질이 그냥 멈추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즉각 청각 처리를 위한 회로로 채워진다. 또한 이 사람이 점자를 배울 경우 시각 피질은 촉각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처리하는 새로운 임무를 띠게 된다.
  • 미국 국립보건원의 신경의학부 과장인 마크 핼렛은 “신경가소성이 발생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냈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통해 우리는 변화하는 조건에 적응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배우거나 또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낸다”고 덧붙인다.
  • 우리 뇌 조직이 천재적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많은 것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 시간에 대한 더욱 정확한 측정을 요구한 최초의 사람들은 엄격히 정해진 계획에 따라 기도 생활을 하는 교회 수도사들이었다. 6세기 베네딕토 성인은 자신을 따르는 수도자들에게 정확한 시간에 맞춰 하루 일곱 번 기도할 것을 명했다.
  • 기술은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우리의 자연적 능력을 보완하거나 극대화시키는 방식에 따른다. 쟁기, 바늘 전투기 등을 아우르는 한 무리는 우리의 체력, 민첩성 또는 복원력을 키워준다. 두 번째 무리는 현미경, 확대경, 가이거 계수기 등으로 우리 감각을 더욱 민감하게 만든다. 저수지, 피임약, 유전자 변형 옥수수 등의 기술을 아우르는 세 번째 무리는 우리가 필요한 욕망에 더 충실할 수 있도록 자연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 지도와 시계는 네 번째 무리에 포함된다. 의미가 약간 다르지만 ‘지적 기술’이라는 단어를 빌리면 그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 이는 정신적 능력을 확장시키거나 또는 지원하는 데 사용되는 모든 도구들, 즉 정보를 찾고 분류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노하우와 지식을 나누기 위해, 측정하고 계산하기 위해, 우리 기억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들을 망라한다.
  • 수세기 동안 역사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문명의 형성에 있어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추적하고 토론해왔다. 일부는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렌이 말한 ‘기술적 결정주의’를 옹호했는데,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술적 진보는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자주적인 힘으로,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핵심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 이 결정론적 시각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표현은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 중 ‘기계 애호가’라는 장에서 쓴, 인간은 “기계 사회의 생식기”에 불과하다고 한 것이다. 우리의 핵심적인 역할은 더 정밀한 도구를 생산하기 위해, 즉 벌꿀이 식물을 수정시키듯이 기계를 수정시키는 것으로, 이는 기술이 스스로를 복제할 능력을 개발할 때까지 이어진다. 복제 지점에 이르면 우리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 지금까지는 기술의 영향, 특히 지적 기술이 인간의 뇌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오늘날, 결국 기술과 사고 간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던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 읽기와 쓰기가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우리는 쉽게 이 같은 기술을 타고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읽기와 쓰기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며, 의도적인 알파벳의 개발과 다른 많은 기술들로 인해 가능해졌다. 우리의 사고는 이 상징적인 문자를 이해 가능한 언어로 변환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읽기와 쓰기는 가르침과 연습, 계획적인 뇌의 성형을 필요로 한다.
  • 뇌 스캔으로 한자처럼 표의문자를 사용하는 이들의 읽기를 위한 뇌 회로는 표음문자를 사용하는 이들과 다른 방식으로 형성됨이 밝혀졌다.
  • 소크라테스는 “망각하는 옛날과 달리 기억이 가능하다”며,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잡아내는 데 따른 실용적인 이익을 인정하지만 알파벳이라는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인간의 사고를 부정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주장한다.
  • 글쓰기 능력은 “매우 중요하며 인간 잠재력의 보다 완벽하고 내적인 실현을 위해 진정 핵심적인 것”이라고 옹은 결론 내렸다. “글쓰기는 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이야기다.
  •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초기 기록에서는 단어 사이의 띄어쓰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필경사들이 쓴 책에서는 모든 줄, 모든 장에 걸쳐 단어가 연이어 기록되었으며, 오늘날 이 같은 형태는 ‘스크립투라 콘티누아’라고 불린다.
  • 사람들은 점차 빨리 그리고 혼자 책을 읽고 싶어 하기 시작했다. 독서는 공연이 아닌 개인적인 교육이나 성장의 도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 같은 변화는 알파벳의 발명 이후 글쓰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화였다.
  • 독자들은 단지 독서에 능숙해졌을 뿐 아니라 집중력도 더 좋아졌다.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자면 두꺼운 책을 차분히 읽기 위해서는 책 속으로 빠져들어 무아지경의 상태로 오랜 시간 집중하는 능력이 요구되었다. 이 같은 정신적 능력을 쌓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사고의 과정을 연습해야 함을 의미했고 하나의 정적인 대상에 대한 지속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집중을 요하는 일이었다.
  • 한 집계에 따르면 구텐베르크의 발명 후 50년 동안 생산된 책의 양은 그 이전 1,000년 동안 필경사들이 만든 책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 고급 문화는 저급 문화를 동반한다.
  • 영어 단어는 당초 수천 개에 이르는 수준에서 책이 확산되면서 수백만 개로 늘어났다.
  • 독서가 가능하도록 스스로를 재배치하는 법을 이미 배운 뇌는 새로운 생각을 더 잘 받아들인다.
  • 검색엔진은 종종 우리가 그때그때 찾는 내용과 깊이 연관 있는 문서의 일부분이나 문장의 몇몇 단어를 보여주며 우리의 관심을 끌지만 이 저작물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만한 근거는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 웹에서 검색 할 때는 숲을 보지 못한다. 심지어 나무조차도 보지 못한다. 잔가지와 나뭇잎만 볼 뿐이다.
  • 온라인 신문이 신문이 아닌 것처럼 전자책은 더 이상 책이 아니다.
  •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로 전자책은 다운로드 된 후에도 쉽고 자동적으로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데, 이는 마치 오늘날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이 일상적으로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다.
  •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대중화된 고요함이 의미와 정신의 일부였던 깊이 읽기의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계속 감소하는 소수 엘리트만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역사적인 표준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 제로스 측 발표자는 소프트웨어 코드를 짜고 있던 창으로부터 새로 도착한 이메일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는 또 다른 창으로 옮겨가 클릭했다. 그는 재빨리 메시지를 읽고 답장을 한 후 다시 프로그램을 짜던 창으로 가볍게 넘어와 계속 코드를 짰다. 관객 중 일부는 이 새로운 체계에 환호했다. 그들은 이 체계가 사람들이 컴퓨터를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촉진할 것이라 생각했다.
  • 그러나 어떤 이들은 한발 물러났다. “세상에, 왜 프로그램을 짜다가 이메일을 확인하느라 작업에 방해를 받고 산만해지려는 거죠?”라며 참석했던 과학자 한 명은 화가 난 듯 주장했다.
  • 10대를 포함해 청년들은 “동료들의 삶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무리에서 낙오되는데 대한 극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 우리가 마음속에 특정한 지적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무의식적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 2008년 인터넷 사용과 함께 사람들의 뇌가 변하고 있음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을 실시했다. 24명의 자발적 실험 참여자 중 12명은 숙달된 인터넷 검삭자였고 12명은 초보자였다. 연구원들은 이들이 구글에서 검색을 하는 동안 뇌를 스캔했다. 스캔 결과 숙련된 구글 이용자의 뇌 활동이 초보자들에 비해 훨씬 광범위했다. 숙련된인터넷 사용자의 경우 인터넷을 사용하는 동안 특별한 신경 통로가 발달되었다.
  • 독자로서 우리가 링크와 마주칠 때마다 적어도 몇 분의 몇 초라도 멈추고 우리의 전전두엽 피질이 그것을 클릭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토록 해야 한다. 이는 특히 자주 반복되었을 때 이해력과 기억력을 저해한다.
  • 인지 과부하의 잠재적 요인은 많지만 스웰러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관련 없는 문제의 해결’과 ‘주의력 분산’이다. 이는 정보 전달 도구로서 인터넷의 두 가지 핵심 특성이기도 하다.
  • 멀티미디어에 따른 집중력의 분산은 우리의 인지적 능력에 더 많은 노동을 가해 학습 성과를 낮추고 이해력도 약화시킨다.
  • 인터넷 항해는 특히 정신적으로 집중하는 형태의 멀티태스킹을 요구한다. 우리의 작업 기억을 정보로 넘쳐나게 하는 것뿐 아니라 이 곡예는 뇌과학자들이 우리의 인지력에 ‘전환 비용’이라고 부르는 것을 부과한다. 우리가 관심을 전환할 때마다 뇌는 스스로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하고, 우리의 정신세계에 더 많은 고통을 가한다.
  • 2003년 30~45세 엔지니어, 과학자, 회계사, 교사, 기업 간부, 대학원생 등 113명 고학력자들을 대상으로 읽기 습관이 최근 10년 동안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펴봤다. 거의 85%에 달하는 설문 참가자가 전자 문서를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고 답했다.
  • 한때 목적을 위한 수단이자 진중한 학습이 요구되는 정보를 가려내는 방식이었던 훑어보기는 목적 그 자체가, 모든 종류의 정보를 이해하고 수집하는 데 있어 선호하는 방식이 되었다.
  • 우리는 개인적으로 지식을 함양하는 존재에서 전자 데이터라는 숲의 사냥꾼이나 수집가로 진화하고 있다.
  • 온라인상에서 끊임없이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우리 뇌를 멀티태스킹에 맞도록 더욱 민첩하게 만들지만 멀티태스킹을 가능케 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깊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사실상 저해하고 있다.
  • 인터넷은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인터넷의 기준으로만 지능을 판단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가 지능에 대해 보다 광범위하고 전통적인 시각을 들이댄다면, 즉 속도뿐 아니라 사고의 깊이에 대해 생각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상이한 완전히 더 암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 웹에서 디자인은 예술이라기보다는 한층 더 높은 차원의 과학이 되어버렸다. 이는 사람들이 너무 빨리 반복하고 너무 정확히 측정하기 때문에 실제 아주 작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고, 어떤 것이 옳은지 수학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테일러식 과학 경영 관리법의 주요 신조는 첫째 인간 노도오가 사고의 유일하진 않더라도 가장 중요한 목표는 효용성이다. 둘째 기계적 계산은 인간의 판단보다 모든면에서 우월하다. 셋째 사실 인간의 판단은 부정확성과 모호함 그리고 불필요한 복잡함이라는 문제를 수반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 넷째 사고를 명료하게 하는 데 있어 주관은 방해물이다. 다섯째 측정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무가치하다. 여섯째 시민과 관련한 일은 전문가가 가장 잘 안내하고 수행할 수 있다.
  • 구글의 서비스 대부분은 그 자체로는 수익성이 없다. 일례로 업계 분석가는 구글이 2006년 16억 5천 달러를 들여 인수한 유튜브가 2009년에만 2억 달러에서 5억 달러 사이의 손실을 낸 것으로 추산한다.
    • … ㅋㅋㅋ
  • 구글이 여전히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600만 권을 포함해 약 700만 권에 이르는 책을 스캔한 이후 3년간 이루어진 협상 과정을 통해 양측은 합의에 이르렀다. 2008년 10월 발표된 협정에서 구글은 이미 스캔 작업을 마친 작품의 저작권자들에게 1억 2500만 달러를 보상하기로 합의했다.
  • 효율적인 정보 수집을 위한 시간과 함께 비효율적인 사색의 시간도, 그리고 기계를 작동하는 시간과 함께 정원에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도 모두 필요한 것이다.
  • 정보 과부하는 영원한 고통이 되었고, 이를 치유하려는 시도는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이에 대처할 유일한 방법은 훑어보고 건너뛰는 능력을 향상시키고, 문제의 원인인 이 놀랍도록 반응력이 뛰어난 기계에 더 깊이 의존하는 것이다.
  • 우리 뇌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다면, 심지어 대체된다면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그들의 안일한 추측은 여전히 흥미와 동시에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 장기 기억을 저장하는 것은 새로운 단백질의 합성을 필요로 하나 단기 기억 저장은 그렇지 않다.
  • 반복은 굳히기의 효과가 있다. 개별 신경과 시냅스에 대한 반복이 가져오는 생리학적 효과를 관찰했을 때 이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 냈다. 시냅스 내 신경전달물질의 농도가 변하면서 뉴런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들의 강도를 바꾸어놓을 뿐 아니라 뉴런들은 완전히 새로운 시냅스의 말단을 생성한 것이다.
  • 암묵 기억이란 학습한 기술을 반복하거나 반사적인 행동을 행할 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과거의 경험에 대한 무의식적 기억을 말할다. 달팽이는 아가미를 수축할 때 이 암묵 기억에 의존한다. 농구 공을 굴리거나 자전거를 탈 때 사람들도 이 암묵 기억에 의존하게 된다.
  • 미국과 같이 집단적인 성취를 중시하지 않는 사회에서 태어난 이는 한국과 같이 집단적인 성취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자란 이들보다 유년기의 일들을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 와이젠바움은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는, 우리가 지닌것 중 가장 기계화하기 어려운 바로 그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즉 우리의 사고와 신체와의 연결, 우리의 기억과 사고를 형성하는 경험, 감정과 공감을 위한 능력 등이 그러한 것이다.
  • 와이젠바움은 이 운명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자기 인식 그리고 우리의 정신 활동과 지적인 추구, 특히 “지혜를 요구하는 업무를 컴퓨터에 위임하는 것을 거부할 용기”라고 적었다.
  • 사람들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명백한 길잡이에 더 의존할수록 과제에 덜 몰입하고 덜 배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 오래된 인쇄본 저널이 디지털화되어 웹에 올려지고 있지만, 학자들은 최근 논문들을 더 자주 인용하고 있었다. 하이퍼링크를 따라가는 것이 용이해짐에 따라 온라인 연구자들은 인쇄물로 연구했던 이들이 저널이나 책 페이지들을 넘기며 습관적으로 훑어보던 관련성이 적은 논문들은 상당수 그냥 지나치게 된다. 에반스는 학자들이 더 빨리 우세한 의견을 찾을 수 있게 될수록 그들은 더 적은 수의 눈문에서 더 많은 인용을 하며 이를 따를 가능성이 커진다고 적었다.
  •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가 과학적 경영을 도입하기 전에는 자신만의 훈련과 지식 그리고 경험을 지난 각각의 노동자가 스스로 어떻게 일을 해나갈지에 대한 판단을 했을 것이다. 테일러 이후 이 노동자는 다른 사람이 적은 명령 체계를 따르기 시작했다. 개개인의 자율성에 따른 혼란은 사라졌고,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공장은 더 효율적으로 변했다. 생산물의 예측 가능성도 높아졌으며 산업은 번창했다. 이 혼란과 함께 잃은 것은 개인의 자발성, 창의력 그리고 즉흥성이다. 의식 있는 작업은 무의식의 일상이 되었다.
  • 온라인에 접속할 때 역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작성한 명령 체계, 즉 숨겨진 코드가 비록 공개되어 있긴 하지만 우리 중 거의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알고리즘 명령을 따르고 있다.
  • 우리가 더욱 산만해질수록 인간의 가장 섬세하고 고유한 특성인 공감, 열정 등과 같은 감정의 경험은 더욱 줄어든다.
  •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복잡한 업무에 집중하는 능력은 잃어버릴지 모르나 그에 대한 보상으로 6개의 다른 미디어를 통해 34건의 대화에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얻게 될 것이다.
  • 큐브릭의 암울한 예언의 정수는 바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면서 인공지능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바로 우리의 지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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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오세용

글 쓰는 감성개발자 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도밍고컴퍼니를 창업해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도밍고뉴스를 만들었습니다. 소프트웨어 전문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CODEF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합니다.